3기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인간화된 아이를 채용한 것은 굉장히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진화니 배신이니 하는 지금까지 플래그를 회수한 건 물론이요,
유사쿠에게도 움직이지 않는 퀸과 소울버너가 맡게 된 리볼버 대신 새로운 대립각을 세워줬으니까요.
다크 시그너 편까지 있었던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의 위협을 마주한 팀 5D's,
WDC 편까지 있었던 과거를 털어내고 칠황이라는 새로운 적을 마주친 유마와 아스트랄과는 달리
유희왕이 유희왕해서 뉴런 링크에 당했던 사람들이 전부 살아나긴 했습니다만, 이번 VRAINS 2부에서는 아이를 제외한 이그니스 전부가 죽었습니다.
아이가 이 대사건을 겪고 심경에 변화를 겪게 되는 건 당연지사요,
무패연승 머신이었던 유사쿠는 조금이나마 '또 하나의 나'라고 할 수 있는 존재와 떨어진 것으로 모자라 그를 적으로 맞이해야만 하죠.
며칠 전만 해도 '사람이고 이그니스고 다 살아나겠네,
1기랑 비슷하지만 지금의 유사쿠는 SOL이랑 하노이 둘 다 제대로 족치지 못할 텐데 어쩌냐'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이의 배신으로 한 방에 해결됬습니다.
1기에서 보여주던 복수귀 모습은 어디 가고 2기에서 라이트닝 공격대를 통솔하느라 갈팡질팡하던 유사쿠는
공격대가 해체되자마자 다시 대립각 한가운데에 낀 것은 물론
아이를 헤치지 못하게 하노이와 SOL을 전부 족쳐야 하며,
아이가 타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아이마저 제 손으로 쓰려뜨려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어요. 사이다 마신 느낌이네.
한편 아이의 캐릭터성에도 굉장히 좋은 묘사인 게, 아이는 2기 종료 시점까지 SOL과 하노이를 피해 도망다니기만 했습니다.
유사쿠가 자기 대신 딱지를 쳐 줬다지만 이그니스 내전에서 자기 친구들과 싸우게 된 만큼 1기만큼의 적극성을 보이지 못했어요.
그러던 아이가 '본능'을 최대한 살려 '무언가'를 추구하며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인물이 됩니다. 굉장히 좋아요.
그렇다면 아이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인간들에 대한 분노, 이그니스들을 되살리고 싶다는 집념. '유사쿠를 위해 악역을 자처하면서까지 어떠한 목적을 이루려 한다'는 의견도 자주 나오더라고요.
'이그니스를 되살리고 싶다'는 목적이라고 하니까 하나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인류 최초의 영웅 서사시인 '길가메시 서사시'입니다.
인간의 이야기 중 가장 근본적인 것은 '무언가를 추구하는 이야기'라고들 하는데,
그러한 이야기의 첫 번째 완성작이며, 서양사의 '이야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길가메시가 추구하게 되는 무언가는 바로 '불사'.
정확히는 자신 대신 엔키두가 죽어버리자 불사라는 개념에 집착하게 되었던 거죠. 아이랑 닮지 않았나요?
인간의 행동 데이터로 만들어진 AI인 이그니스.
본래의 이름은 기계어요 인류가 이해할 수 없는 데이터 스톰을 창조하는 등 인류와 '다른' 존재라는 것 또한 극중에서 계속 강조되었습니다.
근데 아이는 이그니스 중 유일하게 '본능'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작품 내내 여섯 이그니스 중 가장 '인간스러운' 모습을 보였고요.
그런 아이가 인류의 가장 원초적 열망인 (친구가)'죽지 않는 것'을 바라고, 인간형 육체까지 얻어가며 현실에서 행동한다.
하노이 세력이 주구장창 언급했던 '이그니스의 진화'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 주는 수단이죠. 종족의 우상이 좀 심하지 않나 생각하지만.
그렇다면 3기 결말은 어떻게 되느냐? 이것도 길가메시 서사시를 인용하겠습니다. 꺼라위키랑 블로그 망가 좀 켠 김에 유식해 보이고 싶다구요.
두 번이나 개고생을 했는데도 길가메시는 불멸을 얻는 데 실패합니다. 그리고는 겸허히 죽음을 맞이하죠.
아마 길가메시 서사시도 어디까지나 '서사시'였던 만큼, '사람이 죽는 이유'를 신화적으로 설명하려던 목적으로 쓰이기도 했을 겁니다.
이그니스들이 인간과 '다르다'고 언급되었지만 이들이 '인간같은' 모습을 여러 번 보이는 것도 어찌 보면 모순적이고요.
더군다나 이그니스 또한 영원히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노이의 기사가 시도했던 것처럼 지금의 전자 문명은 정전 한 방에, EMP 한 방에 허무하게 박살나 버립니다.
하다못해 2000년대 영상 사이트들의 영상이 지금 유튜브에 얼마나 그대로 남아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어디까지나 이그니스도 인간의 서버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라이트닝이 인류를 정복하려고 했음에도
이그니스가 확실히 기술적 특이점을 뛰어넘어 영원불멸한 자체 서버를 제작하지 않는 한 인류 없이 이그니스는 존속할 수 없어요.
유희왕이 유희왕해서 죽은 이그니스들이 되돌아온다는 결말도 가능하겠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3기 첫 화와 오프닝의 분위기가 너무 암울하며
등장인물들이 '이그니스 동료들의 상실'을 되풀이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이그니스들이 되살아나면 SOL-이그니스-하노이로 이어지는 지금의 대립 구도는
"우리들의 싸움은 이제부터다!"라며 또 다시 이어질 테니 완결성이 떨어지기도 하고요.
결정적으로 아이의 실패는 2기 오프닝부터 언급되고 있었습니다.
kimeru는 지금까지의 VRAINS 시나리오와 앞으로의 내용을 보고 곡을 만들었다고 하니 2기와 3기 오프닝이 직접적으로 작품을 스포일러하는 게 당연하고요.
"생명이 있는 우리들은 영원하지 않아
사는 의미를 찾아 끊임없이 방황해"
이는 102화 플레임의 대사에서 거의 그대로 언급되죠.
"우리는 AI, 그 중에서 고도로 발달된 이그니스. 영원한 삶을 살 수 있지.
그렇기에 잊어버렸지만, 생명이 있는 것은 언젠가 사라지게 돼. 그게 바로 지금이야."
마지막으로 3기 오프닝은 이례적으로 기존 오프닝보다 현실 세계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현재 엔딩도 현실 세계를 다루고 있고요.
초반에 비를 맞고 있는 인간형 아이와 유사쿠가 나오더니,
마지막에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유사쿠와 아이가 없는 듀얼 디스크가 등장한다는 점이 3기 결말을 직접적으로 암시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뇌피셜이 맞든 틀리든, 이번 3기는 링크 브레인즈에서 이어졌던 유사쿠의 싸움을 매듭짓는 시즌이 될 텐데.. 과연 그 결말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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