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이 손의 모양대로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장갑에 손이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 또한 그렇습니다. 사람이 이런 모습을 한 것은, 어디까지나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의 영혼이지 짐승이나 기계가 되어선 안되기 때문입니다.
아래층에서는 목사님이 신도들에게 해주시는 말씀이 작게나마 들려오고 있었다.
남해는 잠시 그 목소리에서 신경을 끄고 허공에 둥둥 뜬 머리로만 모습을 드러낸 가이저와 그때의 일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듀얼 에너지가 뭔데?”
-“말 그대로다. 듀얼을 통해 축적되는 에너지다. 활용할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라 그렇지, 활용만 할 수 있다면 온갖 꿈과 같은 일들을 이룰 수 있지.”
가이저의 말을 들은 남해는 마리오네트가 말한, [당신만큼 에너지를 품은 상대를 본 적 없다.]는 이야기가 기억났다.
마리오네트는 어디에 사용하려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자신의 듀얼 에너지를 노리고 듀얼을 걸어왔고 불행 중 다행인지 듀얼은 중간에 중지되었다.
졌을 때 무슨 일이 생겼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둠의 듀얼이라느니 뭐니 하는 이야기와 자신을 집어삼키려면 암흑을 생각해보면…
“온갖 꿈과 같은… 그럼 혹시 집으로 갈 수도 있어?”
“으음. 얼마나 필요할지는 나도 구체적으론 모르지만… 가득 축적할 수만 있다면 그 힘을 통해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지 모른다.”
가이저의 말을 들은 남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목표에 드디어 구체적인 방법까지 더해진 것이다.
하지만…
“근데 나한테 그정도의 에너지가 있어?”
-“아니. 네가 여기로 넘어오면서 무슨 변화들이 생겼는지는 몰라도 지금 너에게 에너지가 가득 들어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네 꿈을 이루기엔 턱없이 모자라는 양이야.”
“그럼 어떻게 모아야 하는데? 가르쳐줘!”
다급한 목소리로 남해가 목소리를 높이자 머리만 둥둥 떠있던 가이저의 옆에 솥뚜껑만한 손이 나타나 남해의 머리를 슬쩍 움켜쥐었다.
두피 전체에서 느껴지는 가이저의 단단한 손의 촉감에 숨이 멎는 듯한 긴장감을 느낀 남해는 이 이상 말을 잇는 대신 입을 닫고 가이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남해가 말을 멈추자 가이저는 그제야 남해의 머리를 붙든 손을 떼고 말을 이어갔다.
-“이미 말했다시피 듀얼을 통해 축적된다. 상대가 강할수록 발생하는 에너지도 늘어나고 이겼을 때 네게 모이는 듀얼 에너지도 늘어난다.
그 뭐냐, 비유하면 경험치랑 비슷하겠지.”
“강한 상대와의 연전…”
남해는 문득 그 말을 듣고 떠오른 것이 있었다. 학교대항전이었다.
도내의 학교들이 대표를 선출해서 맞붙는 대회라고 들었었다.
당연히 각 학교의 대표니만큼 강함이라면 틀림없이 보장될 것이고 그렇다면 모을 수 있는 에너지의 양도 훨씬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대항전의 교내 대표로 선출되려면?
하지만 남해에게 그것보다도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가이저, 넌 왜 나를 도와주는 거야?”
-“친구를 돕는 일이 그렇게 이상한 거냐?”
남해는 가이저의 대답을 듣긴 했지만 뭔가 켕기는 기분이었다.
동상이몽이라고, 가이저는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뭔가 목표가 더 있는 것 같았다.
그게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리고 몇 년을 같이 한 친구라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가이저는 분명 자신과 초면인데?
그리고 친구라고 말하는 것 치고는 가이저를 소환할 때마다 느껴진 그 감각은 뭐라 말하기 힘들 정도로 소름끼쳤다.
물론 저번에 있던 어둠의 듀얼에서야 누구보다도 든든한 아군처럼 느껴지긴 했었다.
그렇지만 그때 상대방에게서 느낀 파장을 곱씹어보면, 이곳에서 처음 가이저를 소환했을 때 느낀 그 파장과 이상할 정도로 비슷했다.
그리고 문득 남해는 다른 것에 궁금증이 닿았다.
‘그런데 그럼 마리오네트라는 애는 대체 목적이 뭘까…?’
한편 그시각, 교회 근처의 공사장 크레인 위에 사람의 것과 닮은 그림자가 앉아있었다.
그 그림자의 옆에서 뭔가 시커먼 것이 일렁거렸고 그림자는 고개를 그 방향으로 돌렸다.
“이 시간에 굳이 신의 이야기 같은 걸 들으러 모이고… 대체 왜 저러는 걸까요?”
크레인 위의 마리오네트는 교회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자신 옆의 검은 덩어리에게 말을 걸었다.
“전 이해 못하겠어요. 인간들을 보면 너무 아무렇지 않게 자신에게 무익해보이고… 아니, 아예 해가 되기만 하는 행동을 하잖아요? 왜일까요?”
그림자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마리오네트는 인간을 몇 번 더 비하하는 말을 하다가 한번 한숨을 쉬고는 다시 교회를 내려다보았다.
미사가 끝났는지 교회 안에서는 하나둘 불이 꺼지기 시작했고 잠시 후에는 사람들이 교회 바깥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하긴, 제가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네요.”
아직은 쌀쌀한 밤바람이 크레인을 스치고 지나가자 마리오네트의 모습도 바람에 휘날리는 잿가루처럼 허공으로 부스러지듯 사라졌다.
…
“이 승부, 내가 가져간다!!”
콰장창창!메가로어비스의 쌍날검이 상대 플레이어를 내리찍었다. 상대의 라이프가 0이 된 것을 확인한 남해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패드에 놓인 카드들을 정리했다.
이걸로 6연승째다.
“너 뭔일 있냐? 밥 먹고 듀얼만 하고 있는데?”
남해의 듀얼을 한참 관전하던 준오는 듀얼이 끝난 남해에게 걱정된다는 듯 다가왔다. 준오는 남해가 걱정된다는 듯한 말투로 남해에게 말을 건넸다.
남해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슥 닦아내고 시계를 보더니 교내로 향했다.
남해가 제대로 대답이 없자 심상치 않다고 생각한 준오는 자신의 패드를 남해의 패드에 가까이 대고 블루투스 기능을 켜 남해의 최근 전적을 띄워 확인했다.
그리고 전적을 한번 쭉 둘러본 준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야, 너 대체 얼마나 많이… 뭐야? 오늘만 12전 11승? 아 이새끼 미쳤네! 게다가 거의 다 해황이잖아!”
그 전에도 남해가 듀얼을 하지 않던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남해에게 먼저 상대가 승부를 걸어온 경우였다.
그렇지만 지금의 남해는 오히려 두 눈에 불을 켜고 듀얼할 상대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벌써 4월 절반이 갔어, 이제 교내 대표 선출까지 몇주 남지도 않았다고.”
“죄 날빌인데?”
“딴 애들은 이미 점수 수두룩하게 벌어뒀어. 쫓아가려면 어쩔 수 없어.”
그날 이후 며칠간 남해는 학교에서 귀신같은 기세로 듀얼을 반복했다. 남해는 피곤한 머리를 부여잡고 교실로 돌아가며 그때의 일을 떠올렸다.
강자와의 듀얼, 그리고 더 많은 듀얼. 그런 듀얼 그 자체가 지금 남해의 목표가 되어있었다.
남해의 신분인 학생으로써 가장 강한 상대를 만날 수 있으면서 가장 많은 듀얼 역시 치룰 수 있는 방법은 교내대표로 선출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듀얼 아카데미의 학생이 학교대항전의 대표가 되려면 필요한 제도에 아카데미아 포인트라는 것이 있다.
기본적으로 교내의 학생들 사이의 듀얼을 통해 포인트를 획득하고 승률, 내신 실기 등에서 가산점을 붙여 획득한 포인트의 총량 등을 고려해
최종적으로 대표를 선출하는 제도였다. 문제는 그동안 다른 아이들과 달리 이 제도에 관심이 없던 남해가 가진 포인트는 경쟁자들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랐다.
지민이가 아니라 금선에게도 미치지 못하는 점수를 가진 남해는 지금의 추세로는 도저히 상위권에 위치할 수 없었다.
교내대표로의 선출도 이대로라면 불가능하다.
그래서 남해가 낸 결론이 해황이었다.
해황의 순간적인 폭발력은 룡성이나 흑룡이 비할 바가 아니다.
극초반에 채 집이 완성되기도 전에 폭발적인 화력을 쏟아붓는 것에만 집중한다면 안정성은 모자라지만 매판 매판의 듀얼에 오랜 시간을 투자할 수 없는 남해에겐 최선이었다.
요컨대, 시간이 부족하다면 횟수를 늘리면 된다는 것이다.
며칠 내내 해황 위주로만 듀얼을 하자 이제는 듀얼을 받아들이는 상대방들도 대응책들을 준비해왔지만,
남해 역시 이 지경에 이르자 해황과 함께 룡성, 공룡 등 다른 덱들을 쓰거나 운영형 해황을 꺼내고
한데스를 비롯한 다양한 돌파 방법들을 강구하는 등 하나의 승리라도 더 붙잡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독한 놈 같으니.”
남해의 옆에 두둥실 떠오른 가이저의 머리가 혀를 끌끌 차고서 남해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가이저가 말했던 여기로 넘어오며 생긴 변화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남해는 그날 이후로 듀얼에 쓰이는 카드들의 목소리와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전부터 얼핏 모습이 보이거나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그 듀얼 이후로는 확실하게 모습과 목소리가 같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모든 카드가 말을 하거나 모습을 보일 수 있지는 않았고 그 수도 생각보다는 적었지만 어림잡아 반에 하나씩은 이런 것들을 데리고 다니는 애들이 보였다.
정작 정령들을 보고 반응하는 아이는 자신 외에는 만나지 못했다. 가이저가 예외일 뿐 다들 주인 옆의 숨은 조력자 정도로 만족하는 것 같았다.
남해는 가이저의 말을 대충 한귀로 흘리고 상위권 점수에 놓인 애들을 떠올려봤다.
자신의 점수는 대충 상위 15%까지는 치고 올라왔다. 주목할만한 상대는 노이드와 섀도르를 쓰는 금선, 템포 가제트를 쓰던 지민,
그리고 드래그니티를 쓴다고 들은 어윤수라는 애. 이렇게 셋이 가장 요주의 상대들이었다.
상위에 놓인 상대일수록 격파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점수도 커진다. 충분히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승부를 겨뤄볼 가치가 있는 상대들이다.
그날 수업이 모두 끝난 남해는 준오가 부르는 소리에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윤수라는 아이를 찾아 교문으로 달려갔다.
정작 그래서 어윤수가 대체 어떻게 생긴 아인지, 누군지도 알 턱이 없는 남해는 교문 앞에 서서 애들의 명찰만 둘러보다가 패드를 급하게 꺼내서 팔에 찬 다음 전원을 켰다.
“누구 찾아?”
“어윤수라고 7반 애.”
“왜?”
“걔랑 듀얼 하려고.”
우우웅… 그제야 남해는 지금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상대가 누군지 확인하려고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처음 보는 아이가 D-패드를 켜고 남해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 아이의 가슴팍에 붙은 명찰에는 틀림없이 [어윤수]라는 본인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금방 올 줄 알고 있었지. 이미 교내에 네 소문 다 퍼졌거든.”
“그럼 긴 말 할 필요 없겠네.”
“잠깐.”
뒤로 물러서며 거리를 벌리던 남해를 제지한 윤수는 남해가 패드에 꽂은 덱을 가리켰다.
남해의 패드에 꽂힌 그 덱은 남해가 윤수를 단박에 끝장내고자 준비한 원턴형 해황이었다.
“해황 말고 다른 덱. 그게 내 조건이야.”
남해는 그 말에 망설임 없이 덱을 뽑아 허리의 케이스에 넣고 다른 케이스에서 아까보다 훨씬 두꺼운 덱을 꺼내 패드에 세팅했다.
그걸 본 윤수는 자신 역시 패드에 덱을 세팅하고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다.
어느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둘의 패드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남해는 가방을 옆에 대충 던져놓고 완전히 패드를 펼쳤다.
한창 귀가하던 아이들의 시선이 그 둘에게 모였고 그중엔 막 귀가하던 금선과 지민, 그리고 남해를 쫓아온 준오도 끼어있었다.
“룰은?”
“스탠다드지!”
“좋아, 선공은 내가 가져간다. 그럼 듀얼!!”
D-패드가 맹렬하게 가동하자 둘은 덱의 맨 위에서 다섯장의 카드를 뽑아들었다. 선제공격권을 가져간 남해는 제일 먼저 패를 확인했다.
이미 상대방의 덱이 무슨 덱인지 알고 있었고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현재의 금지-제한 리스트에서 용의 계곡은 한 장만 투입 가능한 카드. 그렇다면 어떻게든 하나뿐인 용의 계곡을 잘라낸다면 듀얼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
… 고 하지만, 말이야 쉽다.
운디네나 리사이클러와 로즈닉스가 함께 패에 잡혔다면 상대 턴에 트리슈라를 뽑아 언제라도 용의 계곡을 끊어버릴 수 있었겠지만 두장 다 남해의 패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용의 계곡을 견제할 수 없다면 드래그니티의 핵심인 둑스와 팔랑크스라도 견제할 수 있어야 할텐데 그럴 마땅한 수단도 패에 딱히 없다.
정면승부로 나간다면 타점 뻥튀기가 특기인 드래그니티의 싱크로 몬스터들을 상대로 유리하게 풀어가는 건 한계가 있다.
아니, 이런 고민이 다 무슨 소용인가. 어차피 상대의 패에 대한 정보도 없는데.
“카드를 한 장 세트하고 패의 몬스터도 하나 세트한 다음 차례를 마치겠어.”
-강남해/LP 8000/패 3장
‘평소랑 다를 거 없네.’
듀얼을 구경하던 금선은 남해의 초동을 보고 결국 저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이번에는 차례를 넘겨받은 윤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한편 남해는 문득 가이저가 신경쓰여 뒤를 돌아봤다.
생각해보니 교실에서 뛰쳐나온 그 순간부터 가이저는 뭔가 아는 게 있는 듯 교문쪽으로 자기보다 한발 앞서 움직이고 있었다.
꼭 거기에 뭔가 있다는 것처럼.
“오케이, 드로우.”
이건 윤수의 예상대로였다. 윤수는 남해가 세트한 카드가 무엇일까 생각하며 패를 슬슬 살폈다.
무작위의 상대들을 닥치는 대로 격파해야 했던 남해와 다르게 이미 충분한 점수가 쌓여있는 윤수는 상대를 분석할 여유가 있었다.
남해의 수정룡성의 특기는 수성전. 룡성 몬스터는 파괴해도 리쿠르트로 다시 필드를 채워버리고 크리스트론 몬스터들은 파괴당해도 묘지에서 다시 발동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남해를 막아설 것인가?
‘좋아, 패는 제대로 잡혔어.’
“먼저 패에서 [용의 계곡]을 발동한다!”
윤수의 필드쪽에 구름과 안개가 얕게 깔렸고, 바닥은 바위로 변하며 곳곳에 갈라진 틈이 생겨났다. 시작부터 드래그니티의 필수 카드가 잡힐 줄은 몰랐는데…
“패의 [드래그니티 암즈-레바테인]을 버리고 덱에서 [드래그니티-파랑크스]를 묘지로 보내겠어.”
드래그니티의 필수품인 파랑크스로 스타트가 끊어졌다. 이제 당연히 둑스를 소환하고-
“그리고, 패에서 [드래그니티-레기온]을 일반 소환.”
남해는 둑스가 아니라는 점에서 약간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둑스가 아니라면 나올 수 있는 몬스터의 종류도 훨씬 줄어드니 환영이다.
“레기온의 효과로, 묘지의 파랑크스를 소생시켜 장착!
다시 파랑크스의 효과로 자신을 특수 소환하고 레벨 3 레기온을 레벨 2 파랑크스에 튜닝, 레벨 5 [환층의 수호자 아르마데스]를 싱크로 소환한다!”
똑. 하고 윤수의 필드에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맑게 울리며 허공에 파장이 일어났고, 그 뒤에서부터 반투명한 거한이 서서히 모습을 나타냈다. 파장이 난 지점을 통과한 시점부터 거한의 모습은 또렷하고 선명하게 변했다.
[환층의 수호자 아르마데스/Lv5/2300/1500]
-“너 지금 큰일났는데?”
가이저의 말에 남해는 대답도 하지 못하고 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남해의 표정을 읽은 금선도 피식, 하고 실소를 터트렸다.
공격력 2200의 토우테츠로도 돌파할 수도 없고 구상화를 통해 몬스터를 불리는 것도 막혀버린다. 한마디로 뭐 된 셈이다.
“아르마데스로 세트된 몬스터를 공격한다! 조준, 발사!”
아르마데스가 양손에서 불덩어리와 푸른 파동을 난사해 세트되어 있던 [수룡성-비시키]를 공격했다. 산산이 부서진 비시키가 있던 자리에서는 비시키의 정수가 두둥실 떠오르며 다른 기운을 끌어모으려 했지만 아르마데스는 그 정수를 향해 정조준한 파동탄을 한발 쏴 박살냈다. 쨍강! 하는 맑은소리가 남해의 필드에서 울렸다.
“카드를 한 장 세트하고 턴 종료.”
-어윤수/LP 8000/패 2장
‘초장부터 말렸네. 괜히 룡성을 찍은게 아니었어.’
둘의 듀얼을 지켜보던 지민은 대충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드래그니티가 공세를 펼친다고 해도 사실 룡성을 돌파할 이렇다할 대처법을 제대로 가진 것은 아니다.
기껏해야 제거계 카드를 체인해서 체인 트릭으로 리쿠르트 타이밍을 끊는 것이 전부다.
이를 위해 소모되는 아드나 타이밍 등을 고려해보면 이런 배틀 페이즈 효과봉쇄형 몬스터를 용병으로 투입하는 쪽이 가장 덱의 구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매턴 가장 안정적으로 남해의 흐름을 끊고 자신이 필드를 주도할 방법이다.
다른 애였다면 칼같이 기권하고 다음 승부를 노릴 수도 있겠지만 남해는 승수에 비해 전적이 적은데다 요 며칠간 너무 몰아서 듀얼한 탓에 기권했을 때 잃을 점수가 너무 뼈아팠다.
‘시우고라면 벽은 될 수 있지만 드래그니티의 수준을 생각해보면 금방 파괴되겠지. 어떻게 할래?’
덱에서 카드를 뽑은 남해는 패와 필드를 다시 확인했다. 세트된 카드는 [크리스트론 임팩트].
상대의 필드에는 용계, 아르마데스가 있고 정체가 불명인 세트 카드도 있다.
아직이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몬스터를 세트하고 턴 종료.”
-강남해/LP 8000/패 3장
일단 남해에게 상황이 별로 좋지 않게 돌아간다는 것은,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뭐가 되었든 일단 아르데마스를 돌파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정말 그게 끝일까?
금선은 아르데마스 말고도 뭔가 준비한 수가 더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수가 무엇인지 몰라서 그렇지.
‘아르마데스 하나만 믿고 승부를 걸었을 거 같지는 않은데…’
“내 차례, 드로우. 패에서 [데브리 드래곤]을 소환, 데브리의 효과로 묘지의 [드래그니티-팔랑크스]를 부활시키고! 데브리를 제외해 패의 [붉은 눈의 암흑 메탈 드래곤]을 특수 소환한다!!”
[붉은 눈의 암흑 메탈 드래곤/Lv10/2800/2400]
“오, 큰 거 나왔다.”
불꽃의 폭풍이 윤수의 필드를 뒤덮었다. 불꽃이 걷히면서 그 안에서 불타는 듯 붉은 눈동자를 가진 강철의 드래곤이 윤수의 필드에 사뿐 내려앉았다.
“그리고 용의 계곡의 효과로 패의 [아크브레이브 드래곤]을 버리고 덱에서 [드래그니티-레기온]을 패에 넣은 다음,
레다메의 몬스터 효과 발동! 묘지의 [드래그니티 암즈-레바테인]을 부활시킨다! 재배치다. 준비해!”
‘여기서도 저 카드는 레다메구나.’
남해는 잠깐 레다메의 별명을 신경쓰다가 필드로 나타나는 몬스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계곡의 틈새에서 뭔가 울리는 소리가 나더니 쏜살같은 속도로 [드래그니티 암즈-레바테인]이 날아올랐다.
“레바테인이 특수 소환에 성공했으니 묘지의 [아크브레이브 드래곤]을 장착 마법 취급해서 장착하고! 파랑크스와 레바테인을 튜닝!”
파랑크스가 빛의 고리로 변신해 윤수의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레바테인 역시 빛덩어리로 변하며 고리 안으로 들어갔고 고리는 점점 커지다가 이윽고 레다메보다도 한수 위인 덩치로 변했다. 이 상황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남해쪽이었다.
“어…?”
“압도, 강타, 파괴! 삼두의 파괴룡, [트라이든트 트라기온]을 싱크로 소환한다!!”
[트라이든트 트라기온/Lv10/3000/2800]
콰아아아앙-!! 폭음을 울리면서 붉은 삼두룡이 윤수의 필드로 착지했다.
삼두룡은 가볍게 몸이라도 푸는 것처럼 세 개의 머리에서 불벼락을 필드에 흩뿌리고는 한번 콧김을 강하게 내쉬었다.
“세트 카드 발동, [강제 탈출 장치]! 세트된 몬스터를 패로 올리고 배틀 페이즈 개시! 교전 돌입!”
텅! 푸슝-!! 커다란 캡슐이 남해의 필드에 세트된 몬스터를 포장하고 격발음과 함께 저 높이 날려버렸다.
대부분이 저 멀리 사출된 캡슐을 보는 사이 아르마데스가 팔을 힘껏 휘둘러 파동탄을 남해에게 명중시켰다. 푸른 불티가 폭발과 함께 사방으로 퍼졌다.
“잠깐… 공격력 합계가 지금 2300, 5100. 8100…”
“1사로 사격 중지, 2사로 목표 사격 개시!!”
아르마데스의 공격이 걷힌 직후 남해에게 레다메의 흑염탄이 날아왔다. 남해는 양 팔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콰아앙-!! 폭발음이 남해의 필드를 뒤덮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애들 몇 명은 뒤로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기도 했다.
레다메의 공격이 끝난 직후 트라기온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공격력 합계가 이미 8000을 넘은 상황이었다.
“마지막, 3사로! 목표 조준, 전 포문! 일제사! 트라이던트 브레스!!”
트라기온의 세 머리가 남해를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거대한 턱을 쩍 벌렸다.
입 안에서 불꽃과 전기가 틱틱 소리를 내며 튀어오르고 시뻘건 입 안이 점점 밝아져왔다.
잠시 빛이 사그라든 직후 폭음과 함께 남해를 향해 불벼락이 밀어닥쳤다.
콰아아아아-!!
“패에서 몬스터 효과 발동!!”
콰과과과과과과과-----남해의 눈앞에 펼쳐진 작은 방벽이 트라기온의 브레스를 막아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떨리던 방벽은 끝까지 그 자리를 버티고 서서 공격을 막아냈고 그 방벽 뒤에는 크리보르가 온 힘을 다해 벽을 지켜내고 있었다.
끝끝내 붕괴하지 않고 공격을 막아낸 방벽은 되려 공격의 흐름을 트라기온에게로 되돌렸다.
트라기온은 방벽에 의해 반사되어 자신에게 날아오는 브레스를 보자 급하게 입을 닫고 방어태세를 취했다. 준오의 필드로 불덩이들이 떨어져내렸다.
“그런 말 알아? 패에서 소환하면 몬스터, 패에서 내면 마법, 그리고… 패에 쥐고 있다면 패트랩이라고!”
-강남해/LP 8000 → 2900
방벽이 걷히고 크리보르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누가 보기에도 전세는 확실히 윤수의 쪽이었지만 지민은 문득 저번의 듀얼이 겹쳐 보였다. 분명 몇 번이나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도 남해는 그 공세를 전부 버텨내고 역으로 자신이 공세를 펼쳐오기까지 했다.
그 듀얼은 자기가 이겼지만… 이번에는 어떨까?
“턴 종료다.”
-어윤수/LP 8000/패 2장
“드로우.”
“이때, [아크브레이브 드래곤]의 효과가 발동. 이 카드가 묘지로 간 다음 턴의 스텐바이 페이즈에 묘지의 레벨 7이나 8의 드래곤족 몬스터를 소생시킬 수 있어. 레바테인을 재배치!”
-“그리고, 레바테인의 효과로 다시 아크브레이브를 장착.”
가이저의 말대로 다시 아크브레이브 드래곤이 레바테인에게 장착되었다.
남해는 처음에는 아르마데스로 리쿠르트를 틀어막고 찍어누를 의도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필드를 보자 생각이 바뀌었다. 아마 아르마데스는 판을 깔아주는 용도였고 본래 목적은 아마 이 물량전이었을 것이다.
아르마데스를 끊어도 레다메를 끊지 못하면 몬스터는 계속 충원될 것이고, 레다메를 끊어도 아크브레이브의 무한루프를 건드리지 않으면 매턴 대형 몬스터를 상대해야 한다.
하지만 남해는 절대 여기서 물러나줄 생각이 없었다. 자기에겐 어떻게든 학교대항전에 출전할 이유가 있었으니까.
“아직 듀얼 안 끝났거든! [암룡성-죠쿠토]를 일반 소환 하겠어!”
원래라면 코스트로 버릴 룡성 몬스터는 한 장 모자랐을 것이다. 하지만 방금 강제 탈출 장치에 의해 세트된 몬스터가 패로 되돌아와서 딱 두장이 됐다.
오히려 이 몬스터가 파괴되었다면… 남해는 그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원래 듀얼이란 늘 새옹지마다.
이제는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는가에 달렸다.
“패의 시우고와 후우시를 버리고, 죠쿠토의 효과를 발동! 덱에서 수비력 0의 룡성 몬스터와 공격력 0의 룡성 몬스터를 한 장씩 특수 소환한다.
소환할 몬스터는 공격력 0의 [수룡성-비시키]와 수비력 0의 [염룡성-슌게이]!”
남해의 필드로 정수 두 개가 두둥실 떠올랐다.
한쪽에서는 격한 물살을 두르며 안에서부터 거북을 닮은 푸른 용이 나타났고 또 한쪽은 폭염으로 변해 타오르다가 사자를 닮은 붉은 용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 레벨 2 비시키와 레벨 4 슌게이에 레벨 2 죠쿠토를 튜닝!
어둠속에 모인 정수는 휘몰아치는 파도처럼, 불꽃처럼 타오르며 하늘을 가르고 별을 잇는 용이 되어라! 싱크로 소환, [휘룡성-쇼후쿠]!!”
남해가 패드를 조작해 2, 4, 2라는 숫자를 입력하자 8이라는 숫자가 패드에 떠올랐고
남해의 필드에선 검은색 정수만 남기고 녹아내리듯 사라진 죠쿠토의 주변으로, 비시키였던 물살과 슌게이였던 불기둥이 회오리치며 죠쿠토의 정수로 빨려가더니
물살과 불꽃이 사그라들자 안에서 눈부신 빛을 발하며 거대한 용이 모습을 드러냈다.
[휘룡성-쇼후쿠/Lv8/2300/2600]
“쇼후쿠가 싱크로 소환에 성공했을 때 자신이 소재로 쓴 환룡족 몬스터의 속성의 숫자까지 필드의 카드를 대상으로 하고 주인의 덱으로 되돌릴 수 있어!
내가 사용한 속성은 어둠, 물, 화염 이렇게 셋! 덱으로 되돌릴 카드는 레다메, 레바테인, 그리고 트라기온 이렇게 셋!!”
남해가 패드에서 덱으로 되돌릴 몬스터들을 빠르게 터치하고, 확인을 누르자 윤수의 머리 위에서 빛의 기둥이 떨어지며 윤수의 몬스터들을 집어삼켰다.
잠시 후 빛이 걷히자 원래 있던 몬스터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다음이었다.
“아크브레이브로 다시 소생시키려고 해도… 이제 묘지에 레벨 7이나 8의 드래곤족이 없지?”
듀얼을 지켜보던 준오는 로그와 윤수의 묘지 정보를 확인했다.
한순간에 윤수의 필드에 있던 주력 몬스터가 셋이나 증발했을 뿐 아니라 쇼후쿠의 공격력 역시 슌게이를 소재로 쓴 탓에 원래보다 500이 올라 아르마데스보다 높은 수치가 되었다.
“배틀! 쇼후쿠로 아르마데스를 공격하겠어! 환룡파!”
쇼후쿠가 밝게 빛나는 브레스로 아르마데스를 공격했다. 아르마데스는 이렇다할 반격도 하지 못한 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남해는 패드를 터치해 [배틀 페이즈]를 끝냈고 [엔드 페이즈]라 써진 패널이 한번 점멸한 후 윤수에게로 턴이 넘어갔다.
-어윤수/LP 8000 → 7500
-강남해/LP 2900/패 1장
준오의 예상보다도 빠르게 남해가 판을 뒤집었다.
레다메는 덱으로 돌아갔기에 빠른 복귀를 기대할 수 없다. 아크브레이브와 레바테인의 무한루프 역시 레바테인이 묘지로 가지 않게 되면서 박살나고 말았다.
마지막 남은 아르마데스도 슌게이의 지원을 받아 타점을 높이는 것으로 클리어.
비록 이것으로 데미지를 크게 준 것은 아니었지만 불리하게 돌아가던 판세를 한순간에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남해는 절박함 따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노력도 의욕도 없이 괜히 재능만 썩히는 거 같은 친구였는데 지금의 남해는 달랐다.
눈빛부터가 다르다. 마치 저번에 자신이 말한 듀얼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생긴 것 같았다.
“내 차례, 드로우.”
반대로 코앞에서 승부를 놓친 윤수는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스텐바이 페이즈에 아크브레이브의 효과가 발동하긴 했지만, 무력하게 대상 없이 불발되었다.
딱 한걸음이었는데, 딱 한걸음…
“용의 계곡의 효과 발동, 패에서 [바람의 정령 가루다]를 버리고 덱에서 [드래그니티-아큐리스]를 묘지로 보낸다! 그리고 패의 [드래그니티-레기온]을 일반 소환하고 묘지의 아큐리스를 장착!”
윤수는 패드를 탭해 레기온을 두 번 터치하고 패드 화면의 쇼후쿠를 검지로 탁 내리쳤다. 레기온이 앞으로 팔을 뻗자 레기온의 뒤에서 아큐리스가 잽싸게 위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아큐리스는 방향을 틀어 혜성처럼 쇼후쿠를 향해 떨어졌다.
콰아아앙-!!
-“쇼후쿠 격파..”
“그리고! 이때 아큐리스의 효과 발동, 그 세트된 카드를 대상으로 선택하고 파괴하겠어!”
쇼후쿠가 파괴된 자리의 폭연 안에서 빛이 번뜩하더니 아큐리스의 형체를 한 덩어리가 남해의 세트카드에 내리꽂혔다. 꽝 하는 폭음과 함께 남해가 세트한 카드 역시 파괴되고 말았다.
“자, 배틀이다! 레기온, 전진! 상대 플레이어를 직접 공격!”
그리고 제자리를 박차고 뛰쳐오른 레기온이 연달아 일었던 폭발의 연기를 뚫고서 남해에게로 달려들었다. 남해에게 한방 먹인 레기온은 뒤편의 틈새로 들어가고 잠시 후 다시 윤수의 필드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강남해/LP 2900 → 1700
“턴 종료라고!”
틀림없이 지금의 윤수는 조급해하고 있었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승부를 너무 아쉽게 놓치고 역공을 당한 상황이니 누구라도 아쉽지 않을 수 없다.
가이저는 그런 윤수를 보면서 혀를 쯧, 하고 찼다. 그리고 그 직후 윤수의 옆에서 무언가가 흐릿하게 보이다가 사라졌다.
-“응?”
“뭐야, 왜?”
-“아냐, 신경 꺼라. 하던 거나 마저 해.”
남해는 가이저가 뭔가에 반응하자 신경쓰이는지 잠시 가이저를 쳐다봤지만 돌아오는 가이저의 대답에 맥이 빠졌는지 다시 윤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카드를 드로우.”
지금은 자신의 페이스다. 끝낼 수는 없어도 필드의 주도권을 쥐고 상대를 몰아붙이면 된다.
“패에서 [제넥스 운디네]를 일반 소환하고, 운디네의 효과를 발동.
덱에서 [크리스트론-설퍼프너]를 묘지로 보내는 것으로 덱에서 [제넥스 컨트롤러] 한 장을 패에 넣겠어.”
“결국 설퍼프너 떴다.”
“패에서 [크리스트론-쿠온]을 버리고 묘지의 설퍼프너를 부활시키겠어, 그리고! 설퍼프너는 자괴한다!
파괴된 설퍼프너의 효과로 다시 덱에서 [크리스트론-시스트번]을 특수 소환하고, 시스트번 자신의 효과로 제넥스 운디네를 파괴하고
덱에서 [크리스트론-리온]을 특수 소환한 다음 레벨 3 시스트번과 리온을 튜닝해 레벨 6 [코랄 드래곤]을 싱크로 소환한다!”
[코랄 드래곤/Lv6/2400/500]
남해의 필드에 물살을 일으키며 해마를 닮은 해룡이 바닥에서부터 올라왔다. 이어서 남해는 패에 들고있던 [제넥스 컨트롤러]를 그대로 묘지로 보냈다.
“코랄 드래곤의 몬스터 효과 발동, 패를 한 장 버리고 상대 필드의 카드 한 장을 파괴한다. [용의 계곡]을 파괴하겠어!”
코랄 드래곤이 제자리에서 포효하자 필드에 조금씩 끼어있던 구름이 걷히면서 바닥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남해는 잽싸게 패드를 터치해 [메인 페이즈]에서 [배틀 페이즈]로 시점을 옮겼다.
“배틀! 코랄 드래곤으로 레기온을 공격!”
코랄 드래곤의 입에서 발사된 물대포로 일격에 레기온이 파괴되었다. 남해는 패드를 터치해 [엔드 페이즈]로 시점을 옮겼다.
-어윤수/LP 7500 → 6300
“턴 종료!”
-강남해/LP 1700/패 없음
“드로우. 몬스터를 세트하고 턴 종료.”
-어윤수/LP 6300/패 1장
턴을 돌려받은 남해는 덱에서 카드를 한 장 드로우했다. 드로우한 카드는 [크리스트론-프라시레타]. 남해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패드를 확인했다.
“패의 [크리스트론-프라시레타]를 버리고 설퍼프너의 효과를 발동, 부활한 설퍼프너를 자괴시켜 시토리를 특수 소환한 다음 묘지의 시스트번을 제외해 덱에서…”
남해는 거기서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고 리스트 맨 위에 있던 로즈닉스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로즈닉스를 패에 넣고, 일반 소환하겠어. 그리고 레벨 4 로즈닉스에 레벨 2 시토리를 튜닝하는 것으로 레벨 6 [인잭트론 파워드]를 싱크로 소환한다!
그리고 두장의 몬스터로 배틀!”
코랄 드래곤의 물대포가 세트된 몬스터를 파괴했다. 뒤이어 인잭트론 파워드의 집게발 안에서 발사된 빔이 윤수에게로 빗발쳤다.
“크으으읏!!”
-어윤수/LP 6300 → 3800
“턴 종료야!”
-강남해/LP 1700/패 없음
턴을 넘겨받은 윤수는 드로우를 망설이고 있었다. 거의 흐름을 탄 남해는 승리를 확신했지만, 한가지 궁금증이 들었다.
왜 둑스가 나오지 않는 거지?
패에 잡히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
분명 [용의 계곡]을 통해 둑스를 패에 가져올 기회도 있었고, 둑스는 항상 드래그니티에서 최우선으로 패에 넣어야만 하는 카드다.
8레벨 싱크로 몬스터야, 카드풀이 어딘가 나사빠진 이 세계에서는 구하지 못해 투입할 수 없었다고 칠 수도 있지만 둑스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둑스와 팔랑크스가 없이 드래그니티를 구성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왜?
-“저길 봐라.”
가이저의 목소리에 남해는 가이저가 코 끝으로 가리키는 곳을 확인했다. 윤수의 등 뒤편에서 무언가 흐릿한 형체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형체는 조금씩 제 모습을 갖춰나가다가 이윽고 남해에게 익숙한 모습으로 변했다.
둑스였다. 남해는 패드를 확인했지만 윤수의 필드에는 둑스는 소환되지 않았다. 놀란 눈으로 남해가 가이저를 쳐다보자 가이저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쟤 왜저래?”
“…난 알 거 같은데.”
남해의 행동에 듀얼을 지켜보던 한 아이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지만, 그 옆에서 듀얼을 지켜보던 지민에게는 뭔가 보였는지 윤수를 쳐다보다가 이내 남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윤수의 등 뒤에 나타난 둑스는 윤수의 어깨에 한쪽 손을 얹었다.
-“포기하고 싶겠지. 준비해온 수는 전부 파훼 되었고 전황은 그대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럼에도 그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 의지를 인정하겠다. 지금 이 시간부로 나는 그대의 조력자가 되어주겠다.
그대가 부른다면 지금 이순간부터 나 둑스는, 내 전우인 그대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을 것이다.”
이야기를 마친 둑스는 아지랑이처럼 변해 남해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순간 윤수는 뭔가 정신이 들었는지 급히 들고있던 패를 확인했다.
그리고 잠시 패드와 패를 번갈아 보다가 자신의 턴이 돌아왔음을 확인하고 덱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래, 턴 받았어. 드로우!!”
-“이번이 중요하다. 이번에 나올 놈을 꺾어야 승리할 수 있어.”
가이저의 이야기에 남해는 직감적으로 윤수가 낼 카드가 감이 오기 시작했다.
지금 소환될 몬스터는 틀림없는 그 카드다. 아니, 그 카드일 수밖에 없다.
[드래그니티-둑스/Lv4/1500/1000]
“용기사단의 지휘관을 이 전역으로 배치한다! [드래그니티-둑스]를 일반 소환하겠어!여기서 둑스의 효과를 발동!”
커다란 돌풍을 일으키며, 윤수의 필드에 장교의 예장을 착용한 비룡기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윤수의 필드에 등장한 둑스는 남해를 정면으로 노려보다가 이윽고 시선을 코랄 드래곤과 인잭트론 파워드에게로 한번씩 돌렸다.
“윤수 둑스 있던거야?”
“쟤도 특기생 상대라고 바짝 준비했나 본데.”
구경하던 학생들이 웅성거리는 사이 둑스가 한 팔을 들어올리더니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그 소리를 신호로 윤수의 필드로 [드래그니티-팔랑크스]가 날아들었다.
“둑스의 효과로 묘지의 [드래그니티-팔랑크스]를 장착한다! 그리고 팔랑크스의 효과로 자신을 필드에 특수 소환하고 레벨 4의 둑스를 레벨 2의 팔랑크스에 튜닝!!”
둑스는 익숙한 듯 뛰어올라 팔랑크스의 등에 탔고, 팔랑크스는 속도를 올려 저 하늘 위의 구름 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나온 것은 유생인 파랑크스가 아니라 완전히 성장한 비룡과 그 비룡을 조종하는 둑스였다.
“드래그니티의 창끝이 되어라, 비룡기사단의 선봉장!! 싱크로 소환, [드래그니티 나이트-게이볼그]!!”
[드래그니티 나이트-게이볼그/Lv6/2000/1100]
올 게 왔다. 게이볼그에 탄 둑스는 당당한 눈으로 남해를 내려다보며 창을 휙휙 돌렸다.
인잭트론 파워드도 코랄 드래곤도 뒤로 한걸음 물러났고 가이저 역시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고 둑스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배틀이다! 게이볼그로 코랄 드래곤을 공격한다!! 이때 게이볼그의 효과가 발동,
묘지의 비행야수족 몬스터인 [바람의 정령 가루다]를 제외해 그 공격력만큼 자신의 공격력을 올린다고!
쿠루드의 심장, 우리가 받아간다!”
-드래그니티 나이트-게이볼그/A 2000 → 3700
둑스가 쥐고있던 창을 코랄 드래곤을 향해 던졌다. 쏜살같이 날아간 창은 솜씨좋게 코랄 드래곤의 가슴팍을 관통해 등으로 삐져나왔고, 남해의 바로 코 앞에서 멈췄다.
-강남해/LP 1700 → 400
“코랄 드래곤의 효과로 덱에서 카드를 한 장 드로우 하겠어.”
“메인 페이즈 2! 패에서 필드 마법 [반마도대역]을 발동하고 턴을 마친다!”
-어윤수/LP 3800/패 없음
턴을 받은 남해는 아직 듀얼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라이프도 남아있다. 그래도 지금 윤수가 확실히 분위기를 탔다는 것은 느껴졌다.
아이들의 시선도 남해가 아니라 윤수에게로 돌아가있었다.
금선은 천천히 패드에 떠오른 정보들을 보며 둘의 상황을 흝어보았다.
“반마도대역이 깔려있어서 배틀 페이즈 전에는 제거도 힘들고, 방금 코랄 드래곤도 날아가버렸네. 뭘 어떻게 하려나?”
남해는 말없이 게이볼그에 탄 둑스를 올려보다가 윤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갑자기 도로 분위기가 윤수에게로 가긴 했고, 자신의 라이프도 바닥이긴 했다. 그래도 아직 자신의 라이프는 남아있다.
그리고 하나 더.
‘넌 이 승부에서 이미 목표를 이뤘을지 몰라도, 난 아직이거든!!’
“게임을 했으면, 이겨야지! 내 차례다. 드로우!”
준오와 지민의 시선도 남해에게로 향해있었다. 자기가 아는 남해라면… 적어도 여기서 포기할 애는 아니다.
그럼 이번에도 카드는 남해에게 대답을 해줄까?
그 대답이라는 듯 남해의 필드로 빛의 기둥이 내려찍혔다.
“나는 [광룡성-리훈]을 일반 소환!”
빛의 기둥이 걷히자 그 안에서 은빛의 잉어를 닮은 용이 뛰쳐올랐다. 잉어를 닮은 용은 그대로 인잭트론 파워드의 머리 위까지 날아올라선 빛의 고리로 변신했다.
“그리고 레벨 6 인잭트론 파워드를 레벨 1 리훈에 튜닝!!”
빛의 고리가 자신을 감싸자 인잭트론 파워드의 엔진도 부아아앙- 소리를 내며 격하게 진동했다.
인잭트론 파워드가 6개의 광채로 변해 일렬로 늘어섰고, 남해가 패드를 조작해 1, 6이라는 숫자를 입력하자 숫자 7이 패드에 떠올랐다.
“레벨 7? 하지만 반마도대역이 있으면 가이저로 게이볼그를 손댈 수 없을텐데? 대체-”
“가이저가 아냐.”
옆에서 이야기하던 아이의 말을 지민이 턱 끊어버렸다. 그 말대로 가이저의 머리는 필드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여전히 남해의 등 뒤에 두둥실 떠있었다.
빛의 고리 안에서 푸른 빛이 번쩍이며 주변으로 돌풍을 일으켰고, 가이저와는 전혀 다른 드래곤의 실루엣이 그 안에 생겨났다.
“별빛의 인도 아래, 빛의 날개를 펼쳐라! 싱크로 소환, [클리어윙 싱크로 드래곤]!!”
[클리어윙 싱크로 드래곤/Lv7/2500/2000]
빛이 걷히자 클리어윙이 날개를 반짝거리며 남해의 필드로 모습을 드러냈다.
필드로 소환된 클리어윙이 한번 기운차게 포효하자 게이볼그도 질 수 없다는 듯 날개를 활짝 펴고 클리어윙을 노려봤다.
“자 간다! 클리어윙 싱크로 드래곤으로 게이볼그를 공격! 클리어윙 다이브!!”
클리어윙이 돌풍을 두르고 저 높이로 날아올랐다. 게이볼그도 질 수 없다는 듯 따라서 날아올랐고, 돌풍을 두른 클리어윙과 둑스의 창끝이 정면으로 부딪혔다.
철판을 긁는 듯한 고음과 함께 두 몬스터는 한치의 물러남도 없이 몇합이고 승부를 겨뤘다.
“게이볼그의 몬스터 효과를 발동! 묘지의 [드래그니티-밀리텀]을 제외하는 것으로, 자신의 공격력을 1700 올리겠어!”
둑스가 창을 고쳐쥐고 다시 클리어윙을 향해 돌격했다. 그 순간 클리어윙의 날개에 둑스와 게이볼그가 비췄다.
“그걸 기다렸다! 필드의 레벨 5 이상의 몬스터의 효과가 발동한 이때 클리어윙의 효과가 발동한다! 그 발동을 무효로 하고 파괴하겠어, 일방투망경!!”
클리어윙의 온몸이 빛나다가 이내 빛은 날개로 집중되어 눈이 부시도록 빛이나기 시작했다.
속도를 높인 클리어윙은 다시 게이볼그를 향해 날아왔고, 두 몬스터는 다시 충돌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까와 달랐다.
서서히 게이볼그의 창끝이 갈려나가다가 창대에서 갈라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이 효과로 몬스터를 파괴했을 때! 클리어윙의 공격력은 그 수치만큼 올라가! 이 승부, 내가 가져간다!”
-클리어윙 싱크로 드래곤/A 2500 → 4500
결국 둑스가 들고있던 창이 부러졌다. 클리어윙의 날개는 게이볼그를 베어버리고 그 뒤의 윤수까지 베어버렸다.
그 공격을 끝으로, 한바탕 돌풍이 몰아친 필드에서 솔리드 비전들이 서서히 걷혀나갔다.
-어윤수/LP 3800 → 0
“끝났다. 가자.”
“응, 잘 봤어.”
“아깝다. 윤수가 이길 줄 알았는데.”
둘의 듀얼이 끝나자 주변에서 승부를 구경하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떠나가기 시작했다.
남해는 뭔가 할 말이 떠올랐는지 윤수에게로 다가갔지만 그 전에 윤수가 먼저 남해를 돌아봤다.
“재밌었어. 얻은 것도 있었고! 언제 기회 되면 또 한판 붙자, 먼저 간다!”
윤수는 그렇게 말하고서 대충 내던져둔 가방을 등에 메고 교문으로 뛰쳐갔다. 윤수의 뒤에서는 둑스가 날개를 펄럭이며 따라가고 있었다.
한참이나 둑스와 윤수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남해는 패드를 정리하고 가방을 챙기다가 가이저에게 슬쩍 말을 건넸다.
“너, 쟤 있는 거 알았어?”
-“저 새대가리? 그건 왜?”
“아까 나보다 앞서갔잖아. 처음부터 알고 있던 거 아냐?”
그 말에 대해서는 가이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남해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더는 추궁하지 않고 듀얼 정보를 패드에 저장하고서 집으로 향했다.
준오도 남해를 따라 뛰어가고, 금선도 다른 애들이랑 대화하며 자리를 뜬 그곳에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지민은 방금 둘이 듀얼하던 자리로 가서 자신의 덱을 꺼냈다.
“역시, 남해도 볼 수 있나?”
지민이 덱을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지민의 뒤에 흐릿하고 하얀 형체가 잠시 나타났다가 금새 사라졌다.
…
교회의 접이식 침대에 앉아 덱을 손보던 남해는 엑스트라 덱을 놓고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슬슬 다가오는 대표선출에 대해 생각했다.
금선은 올해의 대회에는 별다른 욕심도 관심도 없다고 했으니 패스.
윤수는 오늘 꺾었으니 역시 뺀다고 쳐도 아직 승부를 겨룰 애들은 좀 더 남아있지만,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상대는 역시 지민이었다.
저번의 승부에서는 분명 흐름을 가져왔다고는 생각했지만 결국 라이프의 차이를 뒤집지 못하고 불의의 일격에 패배하고 말았다.
위기감이 아니라 치열함으로는 아마 이곳에 와서 치룬 듀얼 중 제일 격렬했을 것이다.
“결국엔 걔를 못 이기면…”
대회로 갈 수 없다.
…그렇다면 꺾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은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갈 것이다. 반드시.
끝.
------------------------------------------------------------------
Q. 클리어윙 싱크로 드래곤의 효과는 데미지 스탭에 발동할 수 있습니까?
A. 네, 가능합니다.
Q. 남해가 싱크로몹 소환 영창 할때마다 내용이 달라지는데 뭐임?
A. 룡성들 소재로 쓰면 소재별로 소환 영창 달라집니다.
약 한달만에 돌아온 글쓴이입니다.
간만에 첫 에이스 클리어윙쟝의 활약입니다. 크리보르는 오늘도 고생이 많네요.
이번에도 로그가 잘 짜지지 않아 한번 뒤엎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드래그니티에서 트라이든트를 활용해 가이저, 보우텐코우 등을 싹다 갈아버리면서 밀어붙이는 걸 생각했는데 막상 써보니 듀얼이 늘어지고 읽는 제가 다 답답할 정도로 재미가 없어서 이 안은 폐기.
그러다가 윤수의 초기 캐릭터성을 이용해서 아예 둑스 없는 드래그니티는 어떨까? 그렇게되면 드래그니티가 써야할 전술은 무엇일까? 하며 로그를 재설계.
늦게나마 로그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로그도 로그인데 이곳에 작성하는 도중에도 한번 글이 날아가서 멘탈붕괴했었읍니다 으으윽흑흑
아마 두세편 안에 학교대항전 파트가 시작할텐데... 그 전에 치룰 듀얼 로그가 뼈대가 부실해 걱정이네요.
첫 설계 당시의 로그에 있던 카드들중 일부가 지금의 남해가 쓸 수 없는 친구들이라...
어서 1기를 마쳐야 플랜대로 10기 카드도 투입하고 그러면서 글을 쓸텐데 말입니다.
어쨌든 다음 편에서는 사실상 유지민과의 리매치가 확정!
이걸 넘어서야 학교대항전으로 갈 수 있다! 과연 나매의 교내대표 선출기는 얼마나 더 굴곡질 거신가!
그것 역시 다음편에!
끝으로,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IP보기클릭)220.122.***.***
레다메의 유작 (아닙니다)
(IP보기클릭)220.122.***.***
레다메의 유작 (아닙니다)
(IP보기클릭)121.172.***.***
실은 3기에도 레다메 등장이 예정되어 있는데 이렇게 가버렸으니 으으윽흑흑 | 19.03.23 15:08 | |
(IP보기클릭)121.190.***.***
(IP보기클릭)121.172.***.***
떡밥들은 잘 회수할 수 있을지가 제일 걱정입니다 자꾸 독자분들의 기대에 못 미칠 거 같은 이 불안함... | 19.03.23 19:26 | |
(IP보기클릭)175.206.***.***
(IP보기클릭)121.172.***.***
주인공 친구 포지션도 박준오입니다. 사실 이름 지을 때 실존인물들에게서 따온 이름이 좀 많습니다요... | 19.03.23 20:0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