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0년.
단 하나 배운 게 있다면
무엇이든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말라고들 한다.
포기하면 거기서 끝이라고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도달한다고.
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항상...재능을 가진 자들이다.
나는 그런 그들이...
증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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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눈을 뜬다.
조금만 뛰어도 머리를 부딪칠 것 같은 작은 3평 원룸의 천장이 보인다.
이미 해가 중천에 떳는지 커텐의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어오고 있었다.
꼬르르륵...
“배고파...”
하품을 크게 하고 일어나 배를 긁으며 싱크대 위의 수납칸을 연다.
라면도 다 떨어졌나...
그렇다는 건 더 이상 이 작은 방 안에 배를 채울 만한 건 없단 소리다.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남은 돈을 확인한다.
3천원인가...
이번 주 진짜 위험하지 않아?
근처 마트까지 발을 옮길 힘 조차 남아 있지 않다.
이대로 그냥 굶어 죽도록 하자 생각하며 소파에 쓰러지듯 앉아 주워온 18인치 고물 테레비에 전원을 넣는다.
마침 프로 듀얼의 중계가 방영되고 있었다.
“『전투희』 레이 오스프레이! 또 다시 압승! C그룹의 1위 자리를 지켰다!!!! 올해 최고의 루키, 이대로 내년의 세계대회에 직행할 것인가!!!!”
MC의 열정 가득한 클로징 멘트 이후 화면은 전 프로를 포함해 여러 해설가들이 앉아있는 분석 데스크로 넘어간다.
“오늘의 분석 데스크는 제28회 세계대회에서 베스트 8 까지 들었던 마이 어거스트 전 프로를 모시고 진행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이 선수.”
“안녕하세요. ‘선수’라고 불리는 건 꽤 오랜만이라 기분이 색다르네요.”
“아하하, 팬들은 언제나 마이 선수가 돌아오는 걸 기다리고 있다고요. 마침 옆에 앉아 계신 오 해설 역시 그 팬 중 한명이시죠?”
“예?! 지금 여기서 그걸 언급합니까! 뭐 들킨 이상 어쩔 수 없죠, 마이 선수! 데뷔 때 부터 쭉 팬입니다! 옆에 앉아 영광입니다!”
요즘은 이런 꽁트 같은 해설이 트렌드인가...
하품을 크게 한다.
빨리 분석이나 하라고 분석.
“요즘 가장 핫한 선수라고 하면 오늘 역시 완승을 거둔 『전투희』 레이 오스프레이 선수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마이 선수는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녀의 강함에 이유가 있을까요?”
“아, 레이 프로 말이죠. 저도 그녀의 듀얼을 자주 지켜보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강함은 그녀가 사용하는 섬도희의 덱 파워에서 오는 거라고들 하지만 프로의 세계를 경험해본 저는 알 수 있습니다...그녀의 강함은 그녀의 결정력 입니다.”
“결정력...이요?”
“네. 자신이 믿는 걸, 판단한 걸, 주저 없이 관철할 수 있는 결정력. 프로 듀얼리스트에게는 양날의 검과 같은 것이죠.”
“하지만 그녀는 그런 양날의 검을 잘 다루고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예. 그 뿌리에 무엇이 있는지는 저 역시 알 수 없으나 그녀를 보고 있으면 확신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절대 지지 않을 자신이, 아니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운명도 억지로 휘어버리는 것 같은...마치 과거의 ‘그’를 생각나게 하는...”
“‘마이 선수, ‘그’라면...?”
“아, 죄송합니다. 혼자만의 감상에 젖어있었네요.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레이 프로의 듀얼을 보고 있으면 『정복왕』이 생각나서요.”
“확실히 마이 선수는 현역 때 『정복왕』과 여러번 듀얼을 한 적이 있지요.”
“한 번도 이기지 못했지만요 하하.”
“그런 그와 비교된다면 그건 아마 신인 선수에게 있어서 최고의 영광이 아닐까요.”
“아, 물론 절대적인 비교는 아닙니다, 하지만 느낌이...비슷하다고 할까. 제 감은 그렇네요.”
“확실히 레이 프로는 매치에서 1세트를 내줘도 2,3 세트를 가져오며 역스윕을 하는 일이 잦죠. 심리적 압박감이 엄청날텐데도요. 그녀가 아직 고등학생이라는 걸 믿을 수 없네요.”
“예. 저는 확신합니다. 그녀는 아마 올해의 세계대회에서 돌풍을 일으킬 것입니다.”
“마이 선수 처럼 첫 세계대회 출전에 베스트 8까지도 노려볼만하다고 보시나요?”
“글쌔요...세계대회는 그만큼 만만하진 않지만 지금 기세의 그녀라면 16강까지는 어쩌면 노려볼 수 있지 않을지...”
화면에 레이 오스프레이가 듀얼을 하는 모습이 비춰진다.
처음 보는 사람은 시선을 빼앗길 수 밖에 없는 매끄러운 금발, 할 말을 잊게 만드는 아름다운 벽안.
눈이 부시다.
데뷔하고 1년도 안 됐는데 그녀는 이미 온 관계자들과 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미 CF 제의도 여러개 들어가있다고 한다.
프로 선수들도 그녀의 칭찬에 말을 아끼지 않는다.
잡지의 표지에도 자주 등장한다.
만약 이 기세로 올해의 세계대회에서 베스트 16까지 들 수 있다면 내년 그녀의 주가는 폭발할 것이다.
아직 그녀는 겨우 17살인데 말이다.
성공한 프로의 모범.
순수한 재능의 결정체.
하늘에게 선택받은 듀얼리스트.
이 세상 누가 믿을까.
내가 그녀와 프로데뷔를 함께한 동기라고 말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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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한.
내 이름이다.
부모님이 크고 대범한 마음을 가지고 자라라고 지어준 이름이라고 한다.
두 분은 내가 어릴 때 사고로 돌아가셔서 내가 자라는 모습은 보지 못하셨지만 적어도 부모님이 남겨준 이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 노력해왔다.
적어도...그렇다고 생각하고 싶다.
부모님을 떠나보낸 건 내가 7살 때.
이후 막 가정을 꾸리셨던 작은 삼촌이 나를 받아들여주셨다.
하지만 나는 약 1년동안 아무런 반응도,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마치 걸어다니는 인형...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아무런 즐거움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나도 이 시기의 기억은 거의 없다.
마치 찢어진 흑백 필름을 보는 듯한 느낌...
하지만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
순식간에 흑백 필름이 칼라 필름이 되어버린 순간.
내가 웃음을, 감정을 되찾은 순간.
초등학교 2학년 같은 반이자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친구가 점심시간에 권해주었다.
“혹시 너 듀얼 할 줄 알아?”
처음 잡았던 덱은 아직도 잊지 않는다.
[마도] 라는 덱이다.
듀얼을 하는 방법 조차 제대로 몰라 패에 쥔 마법카드를 다 발동한 다음에야 [마도서의 신판]을 발동하고 엔드를 했었지.
그 시점으로 내 인생은 변했다.
인생에 즐거움이 생겼다.
인생에 목표가 생겼다.
안개로 꽉 차있던 눈 앞에 길이 보였다.
그래, 나는 프로가, 프로 듀얼리스트가 될 거야.
절대로 되어 보일 거야.
우선은 반 최강의 듀얼리스트를 노린다!
그리고 나선 당연 학교 최강이다!
그리고는 음...지역 최강?
잘 모르겠다.
어찌됐든 되어보인다!
프로가!
그 어린 소년의 꿈이 현실이 된 건 11년이란 세월이 지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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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듀얼리스트가 되는 과정은 험난하다.
만 12세부터 참가가 가능한 ‘프로서킷’ 이라 불리는 공식대회에 참가해서 입상을 하는 것으로 일정 이상의 DP라 불리는 “듀얼 포인트”를 1000점 이상 모아야 한다.
한 지역에서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대규모 프로 서킷의 참가자는 대략 3000명. 우승할 경우 300 DP를, 준우승할 경우 150 DP를 얻을 수 있다. 단순 계산으로는 이런 지역 대회에서 3회 우승 1회 준우승을 해야 프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카드샾등에서 하는 CS를 생각해보면 3회 우승이란게 그리 어렵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참가자 3000명의, 그것도 참가자 한 명 한 명이 듀얼에 생활을, 목숨을 걸고 참가하는 대회라면 말이 달라진다.
프로 서킷에 참가하는 이상 더 이상 듀얼은 취미가 아닌 것이다.
거기다 듀얼 포인트는 패배하면 일정 포인트를 잃게 되어서, 이것 때문에 10년 넘게 도전을 해도 프로의 자격을 얻지 못하는 듀얼리스트는 셀 수 없이 많다.
보통 평균적으로 프로가 될 만큼의 DP를 모으는데 걸리는 기간은 7년 정도라고 한다.
12살 때 부터 바로 프로를 노리기 시작하면 평균적인 성과를 낼 경우 성인이 되는 19살까지는 프로 데뷔가 가능하단 소리다.
물론 지금 주목을 받는 『전투희』 레이 오스프레이 같은 경우는 5년만에 프로 데뷔가 가능했지만 말이다.
들리는 말로는 그녀가 집안의 반대 때문에 초창기에 많은 대회에 참가하지 못한 걸 생각하면 사실상 3년만에 프로 데뷔도 가능했을지도 모른다는 것 같다.
하지만 DP를 모으는 것 말고도 유일하게 단 하나, 프로 데뷔를 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1년에 한 번 열리는 프로 서킷의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는 것.
프로 서킷 세계대회의 우승자는 지닌 DP와 상관 없이 바로 프로 데뷔가 약속된다.
거기다 이렇게 화려하게 온 세간의 집중을 모으며 프로 데뷔 하는 것이다, 신인 듀얼리스트를 노리고 있는 기업 스폰서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겠지.
흔히들 최강의 듀얼리스트였다고 칭해지는 『정복왕』은 프로 서킷에 데뷔한 그 해, 프로 서킷 세계대회에서 우승해 역대 최연소인 13세에 프로 듀얼리스트로 데뷔, 줄을 서서 기다리던 대기업 스폰서들로부터 당시 최강의 덱이라 칭해지던 [정룡]덱을 받아 다음 해 세계대회에서 14세의 나이로 듀얼리스트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라 불리는 프로 듀얼리스트 세계대회에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이 쯤 되면 그저 웃음 밖에 안 나온다.
인간이냐? 묻고 싶어진다.
너무 이질적인 이야기라 구역질이 나올 것 같다.
나는 14살 때 뭘 하고 있었더라...DP가 아무리 패배해도 0 미만으로 내려가지 않는다는 걸 감사하고 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프로를 준비해온 11년은 행복했다.
매일 매일 꿈을 꿀 수 있었다.
나도 얼른 정복왕이, 다른 세계대회 우승자들이, 챔피언들이 걸어온 세계에 발을 들이고 싶다.
같은 프로가 되고 싶다.
동등한 프로 듀얼리스트로서 서고 싶다.
지금 실력차는 확실해도, 같은 무대에 설 수만 있다면...따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재능을 쥐어짜내 쫒아간다면, 남들의 두배, 세배의 노력을 한다면...
정말 닿을 것만 같았던 거야...
손 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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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헉!”
나도 모르게 입에서 침이 덩어리 진 채로 튄다.
숨을 쉴 수 없다.
시야가 흐려진다.
동시에 배로부터 시작해서 찌릿한 통증이 전신에 달린다.
그대로 다리가 흔들리며 무릎을 꿇었다.
“어이 형씨, 정말 가진게 3천원이야? 요즘 초딩 새끼들도 이거보단 더 들고 다녀.”
“아우...우으...”
말이 나오지 않는다.
숨을 쉴 수 없으니까.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게 다예요...”
“씁...그지새끼가.”
나를 둘러싸고 있던 덩치 한 명이 골목의 벽에 가래침을 뱉는다.
“어이 형씨, 프로 듀얼리스트라며, 이거 존나게 벌 거 아니야?”
덩치중 한 명이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돈 모양을 만들며 비웃는다.
“너 이 새끼 구라치는 거면 확 평생 딱지 못 가지고 놀게 손가락 다 부러뜨려버린다.”
“정말 없다구요! 다음에 더 가져올테니까 손 만은....”
“이게 확!”
덩치들이 나를 구타하는 걸 뒤에서 보고만 있던 썬글라스를 낀 남자가 나를 더 때릴려던 덩치를 멈춘다.
“잠깐 기다려. 어이, 너, 한이라고 했나.”
차마 그를 올려다보지도 못한 채 고개만을 끄덕인다.
“사정은 딱하게 됐어. 딱히 낳아준 부모도 아닌데 삼촌인지 뭔지 때문에 어린 나이에 빚을 지게 됐으니까 말야.”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그가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한 번 크게 빨고는 말을 계속했다.
“내 전에 이 구역을 담당했던 놈이 너를 좀 봐주고 있던 것 같은데...나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걸 좀 알아줬으면 좋겠네. 응?”
벌벌 떨면서 고개를 마구 끄덕인다.
“응. 그래, 그러면 됐어. 내일까지 50 가져와. 늦을 때 마다 왼손부터 손가락 하나씩 나간다. 어차피 딱지 치는데 양손은 필요 없잖아? 아닌가? 필요한가? 너네들 아냐?”
썬글라스가 덩치 두명에게 묻는다.
덩치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야, 이 XX 떨거지 새끼들아, 니 새끼들은 한 손으로 고스톱 칠 수 있겠냐 이 XX만도 못한 XX새끼들아!!”
갑자기 썬글라스가 덩치 한명을 무릎 꿇리고 구두로 얼굴을 마구 밟기 시작한다.
덩치의 입과 코에서 붉은 피가 줄줄 흐르기 시작한다.
저기...사실 프로 듀얼은 듀얼디스크를 쓰니까 한 손으로 가능하긴 한데요...
하지만 그런 말을 꺼낼 수 있을리가.
나는 그저 그 관경을 보고 벌벌 떨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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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프다...배고프다...배고프다...
쩔뚝거리며 거리를 걷는다. 주변 사람들이 알아서 피하는 게 느껴진다.
그나마 있던 3천원 마저 빼앗겼다.
제기랄, 당장 내일까지 50만원을 구하지 못하면 손가락이 날아가게 생겼는데 정작 먹을 것 부터 생각하고 있다.
지나가다 편의점 앞에 발이 멈춘다.
편의점 창가에 앉아서 오뎅을 맛있게 먹고 있는 꼬마아이와 눈이 마주친다.
분명 나는 지금 제발 한 입만 달라는 표정을 짓고 있겠지...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
프로가 되면...프로의 세계에 들어오면...인생이 바뀔 거라 생각했다.
그랬는데...
순간 큰 소리가 들린다.
“루리이이이이! 루리이이이이이이! 루리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깜짝이야.
핸드폰의 밸소리를 바꿔뒀던 걸 깜빡 잊었다.
액정이 깨진 구형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낸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한 프로. 협회에서 다음 듀얼에 관한 사전 연락입니다만...”
마침 잘 되었다.
지금...돈이 죽을 만큼 필요하니까.
프로 듀얼은 보통 1주일에 6회 정도 치뤄진다.
물론 하루에 6회 듀얼을 치루는 건 무리니까 보통 이틀에 나누어서 하는 일이 잦다.
랭킹전이 최소 6회에 타이틀 전 까지 생각하면 더 추가되긴 하지만 나 같은 말단 프로는 타이틀 전 따위 먼 나라 이야기다.
“언제든지 좋습니다. 뭣하면 오늘...될 수 있으면 6회 다 하고 싶은데요.”
“예? 오늘요? 준비 기간이 없어도 괜찮으시겠어요?”
제대로된 프로라면 당연히 준비기간을 두고 며칠 정도 컨디션 조절이나 덱의 사이딩 준비를 끝낸 다음 듀얼을 하겠지.
하지만 이 쪽은 내일 당장 50만원을 구하지 않으면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다.
오늘 듀얼을 최대한 몰아서 다 해버리면...50만원...아슬아슬 가능한가.
보통 나 같은 최하위 D그룹의 말단 프로는 1회 듀얼 시 약 10만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
1주일에 최소 6회의 듀얼을 가지니까 주당 약 60만원, 1달에 약 240만원, 1년에 2880만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는 소리가 된다.
다행히 듀얼을 하고 받는 돈은 법적으로 상금으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평균적인 소득세가 적용된다.
그래서 매달 실 수령액은 대충 200정도. 즉 나 같은 최하위권 프로 듀얼리스트는 세금, 건강보험과 협회에 내는 회원비등 여러가지를 다 제외하면 연 약 2100정도를 가지고 돌아가는 것이다.
물론 이게 안정적인 직장이었다면 년 2100 정도로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프로로서 속해 있는 D그룹은 A,B,C,D로 나뉘는 프로들의 그룹들 중에서 최하위 320명이 속하는 그룹.
반 년마다 만약 320명중 하위 10%인 하위 32명에 들 경우 프로 자격을 박탈당한다.
지금 나는 320명중 276위...
즉 프로로서 생활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아슬아슬한 것이다...
“부탁 드립니다! 제발 어떻게든 오늘 경기를 몰아서!”
“으음...어쩔 수 없네요. 그럼 오늘 오후에 3경기, 내일 오전에 3경기 잡아드릴 수 있는데...정말 괜찮으신가요?”
“예! 예! 제발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대신 화, 수요일은 다른 프로들이 대부분 듀얼을 하지 않아서 듀얼 상대는 조금 랜덤하게 배분될지도 모릅니다만, 괜찮으신가요?”
“네, 상관 없습니다! 부디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오후 2시 30분까지 MS에 와주세요.”
MS란 메이거스 스타디움, 프로 듀얼에 사용되는 솔리드 비전을 개발한 대기업 메이거스 코퍼레이션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최첨단 듀얼 스타디움중 한 곳이다.
“저 그리고...대전료 말입니다만...”
보통 대전료는 각 달의 1일과 15일에 입금된다. 하지만 지금은 4일...15일까지 기다렸다간 손가락이 남아나질 않는다.
“...또 대전료가 바로 필요하신거죠?”
“예...어떻게 안 될까요...”
“...저번에도 말씀 드렸지만 규정상 대전료는”
“제발 부탁드립니다! 어떻게든!”
편의점 앞에서 배를 꼬르륵 거리며 전화를 들고 고개를 90도로 숙이고 있다.
죽을 만큼 꼴 사납다.
“...정말, 어쩔 수 없네요. 알겠습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니까요!”
천사다.
실제로 만나본 적은 없지만 내 담당 협회 연락원은 천사가 틀림 없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고개를 계속해서 숙인다.
편의점 안에서 어묵을 먹으며 한심한 듯 나를 쳐다보는 꼬마와 눈이 마주쳤다.
뭐, 아무렴 어때, 내일은 어찌저찌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저는 이만.”
“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깍듯한 자세로 저쪽이 끊은 걸 확인하고 통화를 종료한다.
후우...이걸로 60만원을 입금 받으면 내일 썬글라스한테 50 넘겨주고 남은 10만원으로 생활이 가능해진다.
하하, 죽을 법이란 없구나.
그나저나 오늘 오후에 3전, 내일 아침에 3전인가...
준비고 컨디션 조절이고 뭐고 다 최악의 상태다.
“이길 수 있을리...없겠지...”
오늘 내일 총 6패를 하면 내 순위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충 290위 대로 떨어질 것이다.
프로 자격 강탈권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끝인가...
뭐 각오는 하고 있었으니까.
순간 내 핸드폰이 울린다.
60만원이 입금 되어있다.
“고마워, 천사 씨.”
씁쓸한 웃음을 짓고는 편의점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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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선수, 또 패배다!! 이걸로 오늘 매치 2전 전부 전패!! 이대로 괜찮은가!!!”
프로 듀얼 중계의 MC 열정의 “G”의 목소리가 스타디움에 울려 퍼진다.
하하...하하하하...
질 거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미 포기했었는데
어째서...어째서 이렇게 분한 거야...제기랄...!
이가 부러질 것 마냥 강하게 악문다.
“젠장! 젠장! 젠장!”
선수 대기실의 벽을 손으로 있는 힘껏 두드린다.
오른손에 감각이 없다.
썬글라스 놈들이 해줄 것도 없이 내 멋대로 고장낸 건가 하하...
이런 걸 원하지 않았어...
이런 처참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내 인생을 바쳐서 프로가 되려고 했던 게 아닌데..
꼴사납다...꼴사납다 한!
방금 전의 듀얼은...프로 듀얼에 대한 모독이다.
그런 한심한 듀얼을 내 손으로...이 빌어먹을 손으로!!
부숴버리겠어, 다시는 듀얼을 두지 못하게!!!
다시 오른손에 온 힘을 싣고 벽에 두둘기려는 순간 누군가가 내 팔을 강하게 잡아챈다.
“아..아앗!”
팔이 으스러질 것 같다! 뭐야 이 완력!
고개를 돌아보자 2미터는 가볍게 넘는 거한이 서있었다.
“『기가』...카를로프 부회장...”
제21회 세계대회 우승자, 『기가』 로한 카를로프. 인잭터를 사용해서 세계를 정복한 전설의 듀얼리스트.
그리고 현 프로 협회의 부회장...
어째서 이런 사람이 여기에.
“...꼬맹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듀얼리스트에게 있어서 손은 생명이다. 그 손으로 수 많은 듀얼을 이겨온 거잖아?”
“...죄송합니다.”
차마 그와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자네가 나한테 미안할 건 없네. 다만 사과는 자네의 덱에게 하게나. 듀얼리스트가 드로우를 하지 못해서야 덱도 어쩔 도리가 없을테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그는 내 팔을 살며시 놓고 떠났다.
아직도 감각이 돌아오지 않는 오른손을 쥐고 휴게용 의자에 앉아 듀얼디스크에서 덱을 꺼낸다.
[샐러맨그레이트]
내가 프로가 되고 기업 스폰서로부터 얻은 덱이다.
소위 말하는 티어덱이 아니다.
나 같은 D그룹 하위권 찌꺼기에게 섬도희, 얼터, 강귀, 썬더드래곤, 마술사 같은 이번 분기의 티어 덱을 투자할 기업 스폰서는 이 세상에 없다.
하지만 그래도...내가 프로를 데뷔하고 만난, 지금까지 함께 싸워온 내 소중한 덱이다.
“미안...정말 미안하다....”
너희들에게 그런 듀얼을 시키게 될 줄이야...
왜 나 같은 듀얼리스트와 만나서...
11년전에 프로가 되기로 결심한 나는 지금의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아니, 물어볼 것도 없다.
내 마음속엔 아직도 처음 프로가 되기를 꿈꾸던 시절의 내가 살아있다.
아직 내 속 어딘가에 살아있을 어린 시절 나에게 묻는다...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꿈에도 그리던 프로가 됐는데 이 모양이다.
“나는...어떡하면 좋지? 대답해줘...제발...”
마음의 깊은 곳에서 어린 시절의 내가 나타난다.
그는 나를 동정하는 눈빛을 보내오더니 내 옆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뒈져.”
그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니, 그렇게 생각한다.
이 추한 인생은 그만 끝내도록 하자.
정했다.
다음 듀얼에서 패배하면 그렇게 하도록 하자.
결심을 하고 일어선다.
마침 퉁퉁 부어있는 오른손에 감각이 조금은 돌아온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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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듀얼 상대는 아직인가...
대기실에 서서 협회측으로부터의 공지를 기다린다.
타이틀전은 상대를 미리 알 수 있지만 랭킹전은 듀얼 시작 직전까지 상대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사이드를 짤 때도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현재 자신이 속한 그룹에서 자주 보이는 카드군을 연구하고 준비해서 프로들은 사이드를 짜온다.
하지만 물론 나에겐 그럴 시간과 여유 조차 없었지만.
머리에 착용한 VR 고글로부터 목소리가 들린다.
“한 프로, 듀얼 시작까지 5분입니다. 스타디움까지 와주세요.”
협회측이다.
내 인생의 마지막 듀얼, 라스트 듀얼이 될지도 모르는 매치.
그래도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혹시 모른다, 여기서 목숨을 건 이 듀얼에서 이기게 되면...무언가 변할 지도.
기세를 타버릴 지도 모른다!
좋아, 이기자, 이기도록 노력해보자! 인생 마지막 기회다!
살라맨더와 같이 온 몸을, 영혼을 불태워서 인생 마지막 역전을 노려보도록 하자!
감각이 거의 없는 오른손 꽉 쥐고 대기실을 나서 스타디움으로 향한다.
내가 스타디움에 도착함과 동시에 고글에 상대 선수의 정보가 표시된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으헤...하하하하....으허허허...
웃는다. 근처의 협회 스테프들이 이상한 듯 쳐다보지만 혼자 미친듯이 웃는다.
웃을 수 밖에 없잖아?? 너희들도 같이 웃자고!!!
표시된 VR 디스플레이를 다시 확인한다.
[Opponent: A그룹 조 1위 - 세이아 메이거스]
『ARC』 세이아 메이거스, 제33회 세계대회 우승자이자. 현 프로 듀얼 판의 최정점을 대표하는 챔피언.
운명이란 게 진짜 있구나 소름이 돋는다.
그래, 다들 내가 죽기를 원하는 거야.
나 자신도, 세계도, 전부.
사실 나는 부모님과 함께 죽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같은 사고에 휘말렸었으니까.
나만 살아남은게 의아했다.
하지만 지금 확실해진 거야.
난 살아남은 게 아니야, 그 때 이미 죽어있었던 거다.
그리고 지금 사신이 운 좋게 낫을 피해가던 내 목숨을 거두러 왔을 뿐.
그래...난 죽는 게 맞아.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누구보다 유쾌하게 웃으며 경기장에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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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 1세트를 후공을 잡고 가볍게 가져가더니 이번 2세트에는 선공을 잡고 엑스트라 링크를 완성시켰다!!!!!! 한 프로, 뚫을 수 있을 것인가!?!?”
어...뭐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스트로그래프매지션] 2체로 [환상수기 드래고사크]가 나와서 드래고사크 토큰 2체로 [피안의 흑천사 케루비니]를 링크 소환해 [댄디 라이온]이 덤핑됐던 것 것 까지는 기억나는데 그 이후에 기억이 없다...
정신을 차리니 그녀의 필드에는 3 상호링크 [트라이게이트 위저드]와 자독이 세트된 펜듈럼 스케일, 그리고 [시공의 팬듈럼 그래프]와 [성상의 팬듈럼 그래프]가 세팅된 상태로 패가 6장...
이거 뭐야...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마술사 덱 아니었어?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뚫는 방법...[퓨전 오브 파이어]를 잡는다면...하지만 3 상호링크의 트라이게이트 위저드가 있다. 무리다. 그렇다면 [초융합]을 잡으면 된다.
감각을 잃은 오른손이 부들부들 떤다.
덱을 믿는 거야.
나와 함께 싸워온 덱이다.
내 목숨이 걸린 라스트 듀얼이다.
응답해줄 거야.
대답해줄 거야.
이 한 장의 드로우로, 내 목숨이 결정된다.
덱을 향해 손을 천천히 옮겼다.
그리고는...
“아!!!! 한 선수!!!!덱 위에 손을 올렸다!!!!!!서렌더!!!!!!!!!!드로우도 해보지 않고 서렌더다!!!!!!!! 챔피언의 가벼운 0:2 압승!!!!”
어...
순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른다.
왜...
드로우 해보면 초융합이었을지도 모르는데.
이길 확률이 작아도 존재했는데
어째서...나는...포기해버린 걸까.
알고 있다.
이 듀얼에서 패배하면 다 끝내겠다니 전부 핑계였다.
나는 애초에 결과가 어찌 끝나던 살.생각이.없던거다.
혼이 빠진 채로 스타디움의 한 끝에 서서 멍하니 있는다.
순간 시선을 앞으로 향하자 누군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마치 보석과 같이 빛나는 적안, 넠 없이 보고 있게 될 정도로 살랑거리는 단아한 레이어컷의 흑발.
저게...현 세계대회 우승자...듀얼리스트의 정점에 선 챔피언.
왜 나한테 다가오지?
그녀가 내 바로 앞까지 다가온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내 바로 코앞까지 와 그녀가 활짝 웃으며 손을 내민다.
“어라, D그룹 잔챙이들은 듀얼이 끝나면 중앙에서 만나 악수하는 에티켓도 모르나요? 여기까지 오게 만들다니, 실례네 정말.”
어?
“뭐 하죠? 빨리 손을 안 잡고. 저라도 당신같이 한심한 인간이랑 1초라도 더 얼굴 맞대고 있고 싶지 않은데요.”
어...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한다.
이 여자...지금 뭐라고...?
악수를 하며 그녀가 내게 작게 말한다.
“그 딴 장난 같은 각오로 듀얼 하지 말아 주시겠어요? 어울려 줘야 하는 이쪽 생각을 좀 하라고요, 정말. 듀얼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고요?”
...
악수가 끝나고 그녀가 뒤돌아선다.
나도 모르게...내가 생각하기도 전에...먼저 외치고 있었다.
“네가 뭘 알아! 너 따위가 내가 어떤 각오로 이 듀얼을 했는지 알기나 해?!”
그녀는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뒤돌아선다.
“하아...알고 말고요, 듀얼을 하면서 확실하게 느껴졌다고요, 당신의 한심하다 못해 추악한 각오.”
“닥쳐! 아는 척 하지 마! 다 가진 주제에...넌 다 가진 주제에 내 각오를 이해하는 척 하지 말라고!”
숨이 거칠어진다.
“너도 프로 데뷔까지는 나랑 똑같이 7년 걸렸잖아? 너랑 나랑 듀얼의 재능은 거기서 거기란 소리야. 근데 그저 네 언니가 과거 세계대회 우승자라는 이유로, 네 집안이 솔리드비전 개발에 관련된 대재벌이니까 시작부터 마술사 같은 톱티어덱을 기업 스폰서한테 받고 시작한 거 아니야!!!”
한 번 깨진 뚝이 멈출 수 없는 것 처럼, 이제 되돌릴 수 없다.
어차피 이 이후 끝낼 거, 자제할 이유가 없다.
“네가 그 자리에 있는 건 오로지 운과 빽이란 소리야! 내가 있었어야 한다고! 지난 11년간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어! 너보다 2배는 더 노력했을 거라고! 그런데 어째서 너만!!!”
너만...다 가진건데...
차마 마지막 한마디를 마무리 하지 못한다.
폭발하듯 뿜어져나오던 아드레날린이 순간 다 죽은 마냥 힘이 빠진다.
나 자신도 안다.
내가 지금 얼마나 추한지.
그녀가 어떤 독설을 내뱉을지 기다리길 잠시.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덱, 내놔요.”
“뭐...?”
무슨 소리야.
“당신의 덱, 내놓으라고요.”
뭐야. 설마 내 덱을 받고서 눈 앞에서 갈갈이 찢을 생각이야?
내 것도 아니고 스폰서 건데...
하지만 그녀의 빽과 위치라면 못할 것도 아닌가.
미안하다...카드들아...
순순히 듀얼디스크에서 덱을 꺼내 그녀에게 넘긴다.
물론 스폰서는 내게 책임을 묻겠지만 어차피 난 이 이후...
그러자 그녀가 잠시 무엇을 하더니 주먹을 뻗어 내 가슴을 퉁 친다.
아프...진 않다.
내려다본다.
가녀리고 새하얀 손.
이 손으로 그녀는 우승자가 된 것인가.
하지만 그것보다, 그녀의 손에 무언가가 쥐어져있었다.
“그렇게까지 말 한다면...보여줄 각오는 되어 있겠죠?”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던 덱을 받아 확인한다.
이건...그녀의 덱...
우승자의 덱.
무겁다...
세계대회 우승자는 특권으로서 이후 금지 제한 리스트에 관계 없이 자신이 우승할 시 사용하던 카드들로 프로 듀얼을 계속하는 게 가능하다.
“제 2차전입니다. 그렇게 까지 말한 이상, 책임을 지어 주셔야 겠습니다.”
그녀가 나의 덱을 듀얼디스크에 끼우고는 돌아서서 스타디움의 반대편을 향해 돌아간다.
“이...이건! 프로 듀얼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챔피언, 갑자기 한 프로와 덱을 바꾸더니 매치를 걸어왔다!!!!!!!!!!!!이건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하...하하하....
대단한 자신감이다.
이게 우승자라는 건가?
좋아, 이쪽도 보여주겠어.
네가 지금까지 얼마나 온실의 화초처럼 자랐는지.
좋은 덱을 받아서, 좋은 코치의 아래, 좋은 스폰서의 아래, 화목한 가정의 아래
그저 정상에 도달하기 위한 지름길만 달려온 너를 위해
내가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알려주마.
까불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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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 한 프로의 [시공의 팬듈럼그래프]를 [샐러맨그레이트 폭시]를 묘지에서 특수소환하며 파괴! 이어서 챔피언!!! [퓨전 오브 파이어]가 작렬! 패의 [샐러맨그레이트 에머랄드 이글]와 한 프로의 필드에 존재하는 [바렐소드 드래곤]을 융합!!!!”
필드의 중앙에 스타디움을 가득 채우는 불꽃의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솔리드비전으로 생성된 그 소용돌이는 마치 내 피부를 전부 태워버릴 것 같은 열풍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샐러맨그레이트 바이올렛 키메라]가 모습을 들어낸다.
“[샐러맨그레이트 바이올렛 키메라]는 융합소환시 턴 종료시까지, 소재로한 몬스터의 공격력의 수치의 합계의 절만만큼 올라가죠. [샐러맨그레이트 에머랄드 이글]와 [바렐소드 드래곤]의 공격력의 합계는 5800. [바이올렛 키메라]의 공격력이 2900 상승해 5700이 됩니다.”
그녀가 나지막이 한 말이 VR 헤드셋을 통해 내게 들려온다.
“...알고 있어. 내 덱이니까.”
“그렇겠죠.”
그녀가 팔을 올리며 내 필드의 몬스터를 가리킨다.
“[바이올렛 키메라]로 상대 필드의 [폭룡검사 이그니스터P]를 공격.”
공격력 5700은 확실히 높다. 하지만 [바렐소드 드래곤]처럼 연속 공격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이그니스터P]의 공격력은 2850. 공격력 5700과의 전투로 베틀 데미지를 받아봐야 기껏해야 딱 절반인 2850의 데미지만 받을 뿐이다.
전승소환으로 인해 [바이올렛 키메라]의 제3 효과가 발동되어 [폭룡검사 이그니스터P]의 공격력이 0이 되는 게 아니고서야 이번 턴은 살아남는다.
그리고 이번턴만 살아남는다면 다음 턴엔 아드빨로 밀어붙여 승리 확정이다!
승리에 젖어있던 그 때, 챔피언의 침착한 목소리가 들린다.
“이 때, [바이올렛 키메라]의 제2의 효과를 발동합니다. 만약 이 카드와 전투를 하는 몬스터의 공격력이 원래 공격력과 다를 경우, [바이올렛 키메라]의 공격력은 두배가 됩니다."
뭐...라고?!
"잠깐 기다려! [이그니스터P]의 공격력은 상승하지 않았어...! 따라서 [바이올렛 키메라]의 제2효과는 발동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녀는 그런 작은 희망 마저 짓밟는 듯 말했다.
“당신이 펜듈럼 존에 세팅해둔 [조현의마술사]...엑스트라 덱에 있는 마술사 팬듈럼 몬스터의 숫자만큼 필드의 몬스터의 공격력을 상승시킵니다. 엑스트라 덱의 마술사는 총 3장. 따라서, [폭룡검사 이그니스터P]의 공격력은 300 상승해 3150이 됩니다.”
아...그렇구나.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이 덱은...'그녀의 덱'인 것이다. 주인인 그녀를 돕는 게 당연한 것이다.
그에 비해 나는...
“따라서 [샐러맨그레이트 바이올렛 키메라]의 제2효과가 적용. 공격력이 2배인 11,400이 됩니다, 그 공격력을 받아내는 이그니스터P의 공격력은 3150, 받으시죠...”
“총 8250의 배틀 데미지입니다.”
스타디움 전체가 보라색 화염에 뒤덮인다.
하늘 높이 날아오른 [바이올렛 키메라]는 한심한 전 주인에게 그동안 쌓여왔던 울분을 토하는 듯이
사정 없이 불꽃의 날개를 태우며 날아들어 심장에 깊숙히 칼을 꽂는다.
베틀 데미지 8250 [8000 → 0]
스타디움이 조용해진다.
“아...챔피언의 0:2 매치...승리다”
MC의 벙찐 목소리만이 울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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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디움의 바닥에 대자로 누워있는 나를 향해 챔피언이 다가온다.
비참하다...
사실 알고 있었어.
알고 있었단 말야...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녀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덱을 바꿔잡아도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D그룹의 최하위권을 달리는 프로이건 세계대회 우승자건
샐러맨그레이트 덱이건 마술사 덱이건
대기업의 재벌 자녀이건 빚더미에 앉은 입양아건 관계 없다.
나는 그녀에게 이기지 못한다.
그저 투정이 부리고 싶었다.
이제 곧 마지막이니까...생애 마지막 응석이 부리고 싶었던 걸 지도 모른다.
부모님을 잃은 이후론 그럴 여유가 없었으니까.
투정을 받아줄 누군가도, 응석을 부릴 누군가도 없었으니까.
줄곧...뒤돌아 볼 여유 없이, 숨 돌릴 여유 없이 달려왔으니까.
그러니까 최후의 최후...마지막에...욕심이 났을지도 모른다.
누구라도 무시했겠지.
그런데도...그녀는 그걸 받아주었다.
세이아 메이거스...제33회 세계대회 우승자.
이게...챔피언의 그릇...
하, 이런 것과 나란히 서려고 하고 있었다니.
내가 생각해도 완전 개그콘서트잖아.
몸을 일으켜 그녀를 향해 다가가 먼저 손을 내민다.
“...고마워.”
그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내 손을 잡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네? 뭐가 고맙다는 거죠?”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뭐야, 화내는 얼굴이 아니니까 훨씬 귀엽잖아.
“아니. 아무것도.”
듀얼디스크에서 덱을 꺼내 그녀의 손에 쥐어주고 그대로 전력으로 뛰어 경기장을 빠져나온다.
“저기, 당신의 덱...!”
뒤에서 점점 멀어지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동안 고마웠어, 샐러맨그레이트.
이제...안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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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에서 뛰쳐나와 택시를 잡아 기차역으로 향한다.
핸드폰에서 여러가지 장소를 검색한다.
지금 내겐 아침에 받은 60만원이 있다. 편의점에서 왕창 먹느라 3만원 정도는 이미 써버렸지만.
기왕 죽을 거면...맛난 거 잔뜩 먹고 하늘이 보이는 곳에서 죽고 싶다.
찾아본다.
찾았다.
아구찜이 명물인 지방의 한 곳.
경치가 절경인 바닷가옆의 절벽이 있는 곳이다.
이곳으로 정했다.
가서 아구찜과 해산물을 실컷 먹고...절벽에서 바다로 뛰어내리자.
딱히 바다를 고른 건 어쩌면 떨어져도 살 가능성이 1%는 있어서 아닐까...
아니 0%인가.
잘 모른다.
나는...어떡하고 싶은 걸까...
기차역에서 내려 지방으로의 티켓을 끊는다. 4만 8천원인가...비싸다.
이걸로 거의 50만원 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때깔좋게 먹고 죽는데는 충분하겠지.
출발이 15분 남은 열차에 아슬아슬하게 몸을 싣는다.
텅텅 빈 열차칸의 4인석 좌석에 홀로 앉아 조용히 생각에 잠긴다.
이제 진짜 마지막이다.
이 열차가 출발하면...돌이킬 수 없는 길을 떠나는 것이다.
외롭다.
이렇게 혼자서...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구나.
그리고 혼자서...쓸쓸하게...
싫다.
무섭다.
그래도...이제 되돌릴 수 없어.
“하아...하아...찾았다...”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에 눈을 뜬다.
눈 앞에는 숨을 헐떡이는 미소녀가 지쳤는지 좌석에 기대 서있었다.
“세이아...메이거스.”
어째서 그녀가 여기에...
영문을 모르겠다.
죽기 직전이라 헛 것을 보고 있는 걸까.
“어째서...”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녀가 무언가를 내 가슴팍에 내리 꽂는다.
“이거...놓고 갔다고요...엄청 불렀는데...정말...”
그녀의 손에는 내 덱이 쥐어져있었다.
転生炎獣
전생염수 Salamangreat
“열차, 출발합니다.”
순간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홀로 떠나려던 내 인생 최후의 여행에 그녀가 무임승차를 해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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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프로 듀얼리스트에서 백수로 전직하였습니다]의 2부 전개 전에 1.5부나 외전 같은 느낌으로 써나갈 예정입니다. 아마 2화에서 완결이 날 것 같네요.
1부에서도 끝에 살짝 등장했던 세이아 메이거스와 신규 캐릭인 유 한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레이가 아직 챔피언이 아닌 걸 보고 눈치 채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시대상은 [프로 듀얼리스트에서 백수로 전직하였습니다]의 1년 전 이야기입니다.
세이아가 사용하는 엑스트라 링크 버전 마술사는 풀 듀얼로그를 넣고 싶었지만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빼버렸는데 나중에 2부에서 보일 일이 있으면 좋겠네요.
스토리는 샐러맨그레이트의 전생이란 컨셉을 중심으로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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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모음:
프로 듀얼리스트에서 백수로 전직하였습니다 1부 - [1화] [2화] [3화] [4화] [5화] [6화] [7화 - 완결]
듀얼리스트가 된 걸 죽을 만큼 후회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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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키메라의 제3효과가 적용되면 제2효과도 발동되는 게 맞습니다. 원래 조현의 효과로 제2효과를 발동시키는 전개였는데 그걸로 원턴킬이 안 나서 급하게 퓨전태그와 제3효과를 섞었더니 오류가 생겼네요. 그대로 두기도 뭐 하니 [퓨전테그]와 [폭시] 대신에 [에메랄드 이글]을 융합소재로 하는 전개로 오류를 수정했습니다. | 18.11.12 05:4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