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언가의 쿵쿵 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다.
윗집에 부부싸움이라도 났나…
움직이기 거부하는 손을 뻗어 핸드폰을 들어올린다.
11시 47분. 물론 아침이다.
어제...아니 오늘 아침 6시까지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었으니 6시간도 못 잔 셈이다.
한참 쿨쿨 자야 하는 시간인데...민폐네, 민폐야, 정말로.
백수 특징 1. 백수에겐 밤낮이 의미가 없다, 편의점은 24시간 열려있으니까.
지금쯤 사회인들은 회사에서 점심시간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며 버티고 있겠지.
이거 참 미안하게 됐구만. 백수로의 전직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고!
다시 한 번 꿀잠에 빠지기 위해 눈을 감았을 때 다시 큰 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안에 있는 거 다 아니까 빨리 문 열어!"
쿵쿵쿵
아...이거...설마 윗집이 아니라 우리집인가…
쿵쿵쿵
무시한다.
딩동 딩동
무시한다.
쿵쿵쿵
딩동 쿵 딩동 쿵쿵쿵 딩동 딩동 딩동 쿵쿵쿵
"아, 정말! 미쳤나!"
아주 비트를 타고 있네.
열이 받을 대로 받아 잠옷차림으로 현관으로 달려나가 문을 열어 재낀다.
거기엔 어제 만난 소녀...아니 꼬맹이, 레이가 인상을 팍 쓴 채로 서있었다.
문 열고 욕을 한바가지 해줄려고 했는데 막상 저쪽이 인상을 쓰니까 무섭다…
이게 요즘 10대인가…
"너말야...사람이 자는데 그렇게 시끄럽게...하면..."
"하아...아저씨, 이 시간까지 퍼자는 건 사람이 아니라..."
개나 소라고 말하려던 것 같지만 거기까진 말하지 않았다.
의외로 정도는 알...긴 개뿔 이 아주 예쁜짓만 골라하는 꼬맹이가…
"여튼 앞으로는 일찍 열도록."
그렇게 이야기 하며 내 집안으로 쏙 들어오더니 냉장고에서 딱 하나 남은 인기의 차 음료를 꺼내 침대에 앉아 리모콘으로 티비를 튼다.
이쯤 오면 내가 남의 집에 있는 듯한 감각이다.
한숨을 크게 쉬고는 세수를 하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
세수와 양치를 마치고 나왔을 때 상전마마는 편하게 내 베개를 안고 침대에 옆으로 누워 티비를 시청중이셨다.
"또 듀얼 중계 보고 있냐. 남의 거 봐도 별로 재미 없잖아."
식탁 의자를 거꾸로 돌린 다음 티비를 향해 걸터앉으며 물었다.
"프로니까 당연하잖아."
"꼬맹이 주제에 프로의식은 대단하네."
"아저씨는 나보다 다섯살이나 어릴 때 이미 프로였으면서. 그리고 꼬맹이가 아니라 레이."
꼬맹이한테 한방 먹었다. 이런 꼬맹이는 나에 대해 잘 모를 것 같았는데...애초에 내가 현역일 때 얜 집에서 어부바 하고 있던 거 아닌가...그렇게 까지 어리진 않나.
화제를 돌리자.
“그래서 누가 이길 것 같아. 드래그니티랑 다른 하나는...뭐지, 염왕?"
"...사라만그레이트..."
"오...그래, 그거 말이야 사라다 그레이프...알아, 알고 말고. 마돌체 같은 귀여운 과일 채소 컨셉의 카드군이지..."
그녀는 나를 무시한 채 한숨을 크게 쉬었다.
"지금은 사이좋게 C그룹이지만 분명 이번 시즌 둘이 같이 B그룹까지 올라올 거야, 우선은 드래그니티 쪽이 먼저 올라오지 않을까. 바렐 세비지도 있고 링크 서포트도 있으니. 수호룡도 간간히 써먹는 것 같고. 저번의 싱크로 서포트에 더해 드래그니티는 확실히 강해졌어."
흐응, 어제도 그렇고 녀석 C그룹이나 B그룹의 프로들까지 체크하고 있는 건가. 의외로 꼼꼼한 부분이 있네.
"그래? 다행이네. 드래그니티 듀얼리스트들한테는 차마 얼굴도 들지 못할 만큼 민폐를 끼쳤는데...그걸 들으니까 좀 마음이 놓이네 ."
"그래도 가까이 가는 않는 게 좋을지도, 아저씨 얼굴 보면 욱 할지도 모르니까 말야."
"그...그래..."
"뭐, 저쪽은 드디어 용의 계곡의 서치가 생겨서 염원을 이뤘지만 말야."
뭐...라고...?
용의 계곡의 서치...?
이클립스 라이다...이클립스 레다메...이클립스 붉은...음 이거는 아니야.
가능성의 우주가 머리 속에서 팽창한다.
용의 계곡이 서치가 가능하다면...다크메터를 뽑을 필요도 없이 이클립스 덤핑이 확정 될 수 있으면…
기다리고 기다리던 광/암정룡이 결국 등장하지 않았어도
광암 드래곤 조차도 완벽하게 새로운 장.난.감.이 된다.
그리고 이 지난 10년간 어떤 광암 드래곤이 나왔을지 누가 아는가.
분명 무언가 망가져 있는 게 안 나왔을 리 없다. 그래야 내 드래곤 족 답지.
의식도 하지 못하는 사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심장이 아플 정도로 두근두근 뛴다.
마치 10년간 뛰지 못한 분 만큼 몰아서 뛰는 것 처럼.
서치 조건은 뭐지? 레이의 말대로 저 서포트로 인해 드래그니티가 강해질 정도라면 당연 초동을 도와주는 것이겠지. 그렇다는 건 싱크로 몬스터를 소환할 때 서치해오는 건 아닐 것이다. 싱크로를 이미 뽑을 정도면 용계는 필요 없으니까.
그럼 혹시 드래그니티 몬스터의 일반소환에 반응해서 서치? 이 경우 드래곤족 몬스터라면 금궤등으로 람정룡을 제외해서 드래그니티 드래곤 족 몬스터를 서치해서 일소. 어차피 일소권은 안 쓰는 수준이니 잃는 건 없다. 비행야수쪽의 경우라도 튜너라던가이면 아직 쓸만할지도... 1레벨이나 3레벨이면 좋겠는데.
1레벨이면 8싱을 3레벨이면 10싱 혹은 드래고사크 토큰 2개와 트리슈라를 뽑으면 된다.
확실히 옛날에 스팀 싱크론이랑 조율을 넣고 스팀 싱크론을 서치해서 드래고사크 토큰 2개랑 싱크로해서 상대턴 깜짝 트리슈라를 뽑기도 했었지...
재밌었어! 너와의 엑셀 싱크로 놀이!!!
순간 레이가 나를 마치 벌레를 보는 마냥 보고 있는 걸 눈치 챘다.
"아저씨...지금 드래그니티 두 번 죽일 생각 하고 있었지..."
"아, 아니거든!"
하고 있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전국의, 아니 세계의 드래그니티 프로와 팬 여러분!
"아저씨는 이미 전과범이라고, 아무도 믿어주지 않아."
아니, 어쩌다 이야기가 이렇게 된 거지.
"근데 오늘 무슨 요일이더라."
백수 특징 2. 백수는 요일에 관심이 없다, 편의점은 연중무휴이기 때문에.
"금요일."
"아, 그래. 벌써 주말이 가깝네. 딱히 나한테 의미는 없지만."
…
잠시간 이어지는 침묵
잠깐만 기다려봐라…
오늘은 그녀가 교복이 아니라 사복을 입고 와서 잊고 있었는데 아직 학생이잖아?
참고로 어께가 살짝 파인 살구색 블라우스에 살짝 대담한 숏팬츠는 여유있는 대학생이라는 느낌을 뽐내고 있었다.
잘 어울리는데...그런데...지금 그것보다 중요한 건
"잠깐. 갑자기 생각난 건데 말야...너 오늘 수업 없냐?"
그녀가 나를 쓱 쳐다본다.
"있는데."
"안 가?"
"응."
너무나 당연하다는 얼굴.
이게 그건가
신문의 사회면에 자주 보이는 불량학생인가!
"너 말야...수업을 빠지면 안되지. 고3이잖아? 대학 안 가?"
"안 가."
속답.
"아무리 그래도 요즘 시대에 대학은..."
특히 백수인 나로서는 더 뼈저리게 대학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대학을 포기해버리면 할 수 없는 것들이 이 세상엔 너무 많다.
"아저씨도 안 갔잖아? 자신이 하지 않은 걸 남한테 강요하지 말라고."
"뭐...그러면 할말 없지만 말야."
듀얼은 바둑 장기와 같이 아주 어린 나이에도 프로 데뷔를 하는 게 가능하다.
나 같은 경우도 13살 때 이미 프로 자격을 얻었으니까.
하지만 바둑이나 장기와는 한가지 커다란 차이가 있다.
한 해에 치르는 대국(듀얼)의 수.
바둑이나 장기의 경우는 연구생 시절에는 승급과 관련된 많은 대국을 둬야하지만 프로가 되면 여러가지 타이틀전에 전부 도전중인게 아닌 이상 한해에 치르는 대국의 수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고되긴 하지만 학업을 마무리 하면서 프로 생활을 계속했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리니까.
하지만 프로 듀얼리스트의 경우 프로로서 1년에 기본 그룹 토너먼트만으로 312전, 그 외에 세계대회나 각종 타이틀이 걸린 대회까지 포함하면 가볍게 400전 이상은 펼쳐야한다.
그리고 협회에서 주최하는 태그듀얼이나 스피드 듀얼등 거의 매달 한 두 개씩 열리는 각종 이벤트 대회에도 참가해야만 한다 (어느정도 짬이 차면 잘 이야기 해서 빠질 수 있지만).
적게 잡아도 1주일에 6회 프로 경기를 해야하는 것이다. 바둑이 초단에서 9단까지 올라가는데 공식대국 300승을 필요로 하니 만약 듀얼이었다면 이론상 1년 내에 초단이 9단이 될 수 있는 승수를 쌓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듀얼은 보통 하루에 몰아서 하거나 아니면 2,3일에 나누어서 하니 일주일 내내 듀얼을 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절대 가볍게 학업과 분담해서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적어도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면 말이다.
다행히도 그럭저럭 수요가 있는 대학 리그가 있어서 듀얼 특기생으로 대학에 갈 수도 있지만 그건 프로 수준에서 버티기 힘들어하는 선수들이 자주 선택하는 방향이다.
고로, 내가 그녀에게 대학을 가거나 고등학교 수업을 빠지지 말라고 참견할 권리는 단 하나도 없다.
이 세상 누가 그녀에게 그런 참견을 해도, 프로였던 적이 있는 나 만큼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미안. 내가 참견할 게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좀 보호자 기분이 된 것 같네. "
그녀도 세계대회 우승자, 정점에 서있는 시대 최강의 듀얼리스트다.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가 아닌 것이다.
진짜 짜증나는 꼬맹이긴 해도…
얘가 또 뭐라고 쏘아될까 살짝 불안한 마음을 가지며 그녀의 얼굴을 본다.
의외로 조용하네...?
하지만 그녀는 화를 내긴 커녕 얼굴이 빨개진 채로 굳어버렸다.
말을 못할 정도로 화가 난 건가...? 사과까지 했는데?! 쫌탱이!
그녀는 그렇게 잠시 대기모드에 들어가더니 갑자기 크게 동요한 듯 고개를 돌리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아뇨...저야말로..."
응...잠깐...존댓말?
"너 나를 아저씨라고 놀리는 거냐? 왜 갑자기 존대?"
그녀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하며 무언가 말하려고 하다가 멈춘다.
말이 목구멍 끝까지 나온 것 같았는데…
"못..들은 거야.."
"뭐?"
"아저씨가 잘못 들은거야."
레이는 평소대로 돌아와 단호하게 말했다.
----
"107번 손님, 주문하신 갤럭시 타키온 버거 세트 나왔습니다!"
"아 내 거다."
얼른 일어나 내 음식을 받아온다.
갤럭시 타키온 버거, 햄버거의 번을 들어올리면 은하가 보인다는 이 페스트푸드점의 초 인기 메뉴이다.
근데 이 꼬맹이는...푸훕…
"근데, 너는 왜 프랑키즈밀이냐, 너가 꼬맹이는 맞는데 그렇게 어리진 않거든 푸하하하"
그녀는 아이들이 시켜먹는 어린이 메뉴를 고른 것이다!
이건 성인군자가 와도 놀리고 싶어지잖아!
그녀가 살짝 눈물 글썽이는 표정으로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프랑키즈밀을 시키면 이 프랑키즈 피규어를 줘서 시키는 것 뿐이거든! 내 친구인 하나가 모으고 있는 거라 주려고 시킨 거니까 착각 하지 마."
내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지어진다.
"응 그래~친구에게 주려고 그러는 구나~ 우리 레이 기특하네 우쭈쭈. 흘리지 말고 먹으렴~"
그녀는 분한 듯 빨대로 책상을 내리친다.
종이 커버에서 튀어나온 빨대가 ‘퐁’ 하고 공중에 떠오른다.
아~ 너무 통쾌하다!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갤럭시 타키온 버거의 감칠맛도 랭크 UP!
와, 잠깐 이거...CM 대사 대박 아닌가.
다시 프로 데뷔하면 이걸로 CM 따볼까.
"너 나랑 나중에 CM 하나 찍자."
"갑자기 뭔 소리야."
그녀가 인상을 팍 찌푸린다.
"푸흡, 너는 프랑키즈밀 광고지만 말야."
"뭐래."
오늘 텐션이 이상하게 높다.
이런 적...꽤 오랜만일지도.
일부러 사람들과 떨어져 지냈다.
듀얼 쪽 관계자들은 만나고 싶지 않았고
듀얼 관계자가 아니더라도 나를 만나면 항상 대화는 듀얼과 관련된 화제가 나왔다.
그나마 유일한 정상적인 대화상대는 내 단골 편의점의 천사같은 알바양 뿐.
기분 좋게 버거를 크게 한입 물자 진한 타키온의 맛이 났다.
“아저씨, 그래서 덱은 대부분 준비 되어 있지? 우승하고 받은 카드들 두 세트나 있잖아? 사이드, 엑덱이랑 패트랩은 싹 갈아야겠지만.”
감자 튀김만 깔짝거리고 있던 레이가 내게 물었다.
“으음...그게 말이지...”
10년 전 은퇴할 때 카드는 전부 버렸다.
덱이야 다시 팩을 까던지 해서 만들면 되지 않겠냐고들 하겠지만...
이게 ‘프로’ 듀얼의 까다로운 부분이다.
프로 듀얼에서 사용되는 카드는 일반 판매되는 카드와 종류가 다르다.
종이로 되어 있지도 않고, 솔리드 비전 시스템과 동조를 위해 특수한 칩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반판과 대비가 되는 건...찍어내는 숫자가 터무니 없이 적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새로운 카드군이 발매된다고 하면
“프로용”으로 찍어내는 물량은 아마 프로 듀얼리스트가 적게는 5명에서 많으면 10명 정도가 사용할만한 물량이다.
마도서의 심판 같은 경우 “프로용”으로 발매된 건 단 9장 뿐이었다고 한다.
정룡은 그나마 30장씩 넉넉히 찍히긴 했지만.
즉 10년 전 내가 활동하던 분기의 세계대회는 마도 듀얼리스트 4명, 정룡 듀얼리스트 10명과 그 외의 벨즈 염성 머메일등의 듀얼리스트들이 경쟁 했다고 보면 된다.
그러면 이렇게 적게 발매된 카드는 누구의 손의 들아가느냐가 문제인데..
물론 프로 리그인 만큼 ‘돈’에 결정된다.
프로 듀얼 협회가 카드를 발행할 때 각 기업 스폰서들은 돈으로 그 카드의 소유권을 살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업 스폰서와 계약한 프로 듀얼리스트가 스폰서의 카드를 이용해 듀얼을 하는 시스템이다.
즉 스폰서가 없는 듀얼리스트는 집안이 억만장자가 아닌 이상 죽어도 프로가 될 수 없다.
싸이클론 같은 평범한 메타 카드 한 장만 해도 수천만원씩을 호가하고
고성능의 카드일수록 많은 스폰서들이 원하기 때문에 억대를 뚫는 건 기본이다.
10년 전 마도서의 신판이 금지를 먹기 전의 가격이 어느정도였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하긴, 그건 그정도 할 만 하지. 1장만 있어도 쓸 수 있는데다가 세계대회 우승권 후보로 바로 치고 올라올 수 있으니...
아무리 그래도 그 가격은 지금 생각해도...이 세상 금액이 아니었다.
어찌됐든
협회에서 프로 듀얼용 카드를 발행 -> 기업 스폰서가 구매 -> 스폰서가 프로 듀얼리스트를 고용 -> 듀얼! -> 듀얼리스트의 성적으로 스폰서가 광고비용 등으로 이득을 봄
같은 형식이다.
유일한 예외로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할 경우 우승시 덱에 있던 카드들의 새로운 카피를 협회가 우승자에게 증정한다.
세계대회 우승자는 스폰서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카드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대회 우승자 에디션으로 발행된 카드를 판매나 구매하는 건 협회 룰로 금지되어있지만.
즉, 프로로서 자신의 카드를 가지는 유일한 방법은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는 것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기업 스폰서에 질질 끌려 다닌다.
특히 좀 짠돌이 기업 스폰서와 계약 했을 경우 다른 스폰서들이 고액으로 선점해서 새로 나오는 카드를 못 구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카드를...버리셨다? 전부?
레이가 손에 쥐고 있던 감자튀김을 떨어뜨리며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끄덕.
“이....이 바보가!!!!”
그녀가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치며 일어선다.
주변에 어머니들이 아이들의 눈을 급히 가린다.
“뭐, 그렇게 화내지는 말라고, 나도 생각이 있으니까.”
“뭐? 생각?”
후후, 나도 아무런 생각이 없지는 않은 것이다.
“지금 프로 세계에서 정룡을 쓸 수 있는 건 나 혼자 뿐이야. 정룡이 발매되고 나서 금지로 가기 전에 치뤄진 3번의 세계대회중 2번을 내가 먹고 1번은 메이가 먹었기 때문이지.”
“그래서, 계속해봐.”
그녀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털썩 주저 앉았다.
“즉, 지금 세계에 존재하는 내 2회분의 세계대회 우승 에디션 2쌍을 포함한 36장의 정룡은 전부 타지 않는 쓰레기와 다를 바 없단 말야! 박물관 같은데 대부분 전시되어 있을테지. 그걸 싸게 구입하는 거야. 어차피 나 밖에 못 쓰니까 스폰서들에게 있어 가치는 0에 가깝다고. 어때? 그럴싸 하지?”
그녀는 아무말 없이 나를 쳐다보다가 한숨을 푸욱 쉬고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람정룡...제한이야.”
“뭐?”
“람정룡...제한이라고 이 바보야.”
어............................?
“뭐...라고”
순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마냥 눈 앞이 캄캄해진다.
람정룡이 제한이라는 건...누구나 람정룡을 한장 씩은 쓸 수 있다는 것.
내가 버린 6장은 우승자 에디션이라 거래가 불가능하니 남은 30장은 스폰서 30곳이 한장씩 거래를 하며 30명의 프로 듀얼리스트들이 람정룡을 나눠 가질 것이다.
즉...
“아저씨의 계획, 근본부터 파탄 났단 소리지.”
“거기다 람정룡이 풀렸으니 이제 다른 정룡들도 풀릴 가능성이 생겼어. 떡상 노리고 존버 하는 기업 스폰서들도 많을 거라고. 이런 판국에 아저씨가 정말 정룡을 전부 3장씩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망.했.다.
이건 진짜 너무도 깔끔하게 망했다.
이렇게까지 망하면 박수를 칠 수 밖에 없다.
나의 백수 탈출 계획은 이렇게 끝이 나고 만 것이다.
“잠깐 기다려봐...나 내 스폰서 프론트에 전화 해보고 올 게.”
그녀가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머리에 손을 얹고 잠시 밖으로 나섰다.
저질렀다!!!!!
이건 답이 없다.
카드가 없어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뭐 모케모케 덱 같은 거라면야 어떻게든 기업 스폰서가 없어도 프로용 카드를 준비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걸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희망도 꿈도 없다.
갑자기 화가 끓어오른다.
도대체 정룡을 왜 풀어? 협회는 뭘 하는 거야. 제정신이야?
아니면...설마 지금 환경이 정룡을 풀 정도로?
거기까지 생각이 도달한 순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떠올리지 못한 의문을 가진다.
정룡이 풀릴 정도의 현 환경에서 우승한 저 꼬맹이는 얼마나 강한 거지?
그녀를 만난 이후 단 한 번도 생각 해본 적 없다.
그녀가 나보다 강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의심 해본 적 없다.
내가 그녀보다 한참 위에 있다는 사실을.
순간, 통화하러 밖에 나갔던 레이가 돌아왔다.
그녀가 털썩 앉으며 말했다.
“우리 스폰서가 람정룡 지금 1장당 315억에 트레이드 중이래. 3장 사면 장당 280억에 해준다는데. 풍정룡은 3장 서비스로 주고. 우리 스폰서랑 계약중인 듀얼리스트중에 람정룡 필요한 듀얼리스트가 없으니까 아마 이게 지금 풀린 물량중에 가장 싸게 풀린 걸 거야. 내 우승자 특권도 조금은 들어갔고.”
이 쯤 되면 너무 현실성이 없는 액수라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듣고 있게 된다. 메시의 연봉이 900억이라는 걸 들을 때 느낌일까.
“그리고 정룡을 전부 구한다고 해도 패트랩도 구해야 한다고. 요즘 2 우라라 3 증쥐는 기본인데. 지명자, 포영, 와라시도 필요할 거고. 물론 패트랩 같은 건 협회에서도 물량을 넉넉하게 풀어서 스폰서가 있다면 프로라면 못 가질 이유는 없지만 개인이 구매하려면 이것도 장당 최소 수억 이라고? 아, 그리고 황금궤는 어떡할 거야, 이것도 요즘 썬더 드래곤 때문에 비싸다고? 15 억쯤 할려나. 엑덱도 문제인데...바렐 세비지가 지금 핫한 카드라...지금 구하려면 협회에서 직접 판매하는 건 이미 다 품절됬을테니 스폰서들한테 구하려면 가볍게 세자릿수 아닐까...트로이메어 세트는 전부 일괄구매를 하면 깎아주긴 할텐데 그리폰은 거의 안 쓰니 차라리 급한 것만 개별 구매를....사이드용으로 판크라톱스랑 라의 익신룡도 구해야 하고...”
이것이 현실.
프로 듀얼은...
이 세계는...
돈에 미쳐있다.
그래서 나는...
“뭐, 장난은 여기 쯤으로 하자.”
레이가 어깨를 으쓱 하며 콜라를 마신다.
“아저씨가 카드 다 버렸다니까 괜히 놀리고 싶어졌잖아. 어차피 카드야 스폰서가 준비해주니까 우리가 걱정할 거 없잖아?”
그녀가 유리컵의 얼음을 빨대로 휘젓는다.
“아저씨가 복귀한다고 한마디만 하면 이 세상 모든 스폰서들이 엑덱에 사이드까지 완벽한 정룡 풀세트를 준비해놓고 제발 계약 해달라며 러브콜을 날릴테니까. 아저씨 카드야 또 우승해서 받으면 되는 거고.”
그녀가 나를 보고 살짝 웃는다.
그녀는 좋은 의도에서 한 말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아니. 스폰서는 찾지 않아.”
그녀가 고개를 갸웃한다.
“아저씨, 설마 그정도로 돈이 많았어? 상상한 것 이상이네”
최저치로 잡아도 900억인데 있겠냐! 10년 전에도 그정돈 못 벌었어!
“아니, 그런 돈 없어.”
“그럼 어떡하려고?”
나는 씨익 웃으면서 대답했다.
“협박해서 뜯어낸다.”
“우와...아저씨 바보인데다 범죄자였어? 누구한테?”
그거야 물론...
“프로 듀얼 협회 회장.”
-----
(IP보기클릭)211.225.***.***
남정룡:아, 이 늙은이는 이제 한 물 갔어... 수호룡? 아니, 이 늙은이가 없어도 충분히 굴러가는데, 굳이 낄 필요가 있갔어?
(IP보기클릭)182.31.***.***
간드라 : 남정룡... 그건 그저 파츠일뿐이죠. 없어도 길은 있어요
(IP보기클릭)211.225.***.***
남정룡:아, 이 늙은이는 이제 한 물 갔어... 수호룡? 아니, 이 늙은이가 없어도 충분히 굴러가는데, 굳이 낄 필요가 있갔어?
(IP보기클릭)182.31.***.***
간드라 : 남정룡... 그건 그저 파츠일뿐이죠. 없어도 길은 있어요
(IP보기클릭)116.123.***.***
(IP보기클릭)175.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