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것은 무의식의,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혹은 이미 세팅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했을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리츠카는 그 카드<운명>을 뽑았다는 것이다.
귓가에 울리는 천둥벼락과 같은 커다란 울음소리가 직격했을 화염들을 소멸시키고, 리츠카의 손에서 뽑혀나온 홀로그램 카드가 빛의 입자로 되돌아가며 소멸하는 화염 속에서 형태를 이룬다.
빨려들어갈 것 같은 푸른 눈동자를 번뜩이는 거대한 새하얀 몸체.
강인하며, 무적인 최강의 모습은─
"...아름다워..."
─무심결에 누군가가 그런 소리를 내뱉을 만큼 유려하면서 현혹적이었다.
"...핫!"
몇번이나 봐온 모습이지만, 적<상대>으로서가 아닌 아군으로서 든든한 모습에, 무심결에 자신도 넋을 놔버렸던 리츠카는 상황을 깨닫고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 앞의 적을 향해 공격<배틀 페이즈>에 돌입한다.
"멸망의 버스트 스트림!!"
과학 기술과 오컬트.
그런 쓰잘데기 없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단 하나만을 생각한다.
그것은 확신.
카이바 세토라는 남자가 평범한 것을 자신에게 넘겨줬을리가 없다는 믿음.
자신의 손에 의해, 카이바 세토가 남긴 듀얼 디스크에 의해 소환된 몬스터<푸른 눈의 백룡>이 진짜라는 사실을.
그리고 어둠을 찢어발기는 창백한 순백의 번개가 쏘아졌다.
─쿠오오오!!
불기둥을 찢어발긴 창백한 빛의 한 가운데에서, 푸른 눈의 백룡의 포효가 울려퍼졌다.
*****
용의 마녀인 잔 다르크와 그녀가 이끌고 온 검은 거체의 용, <붉은 눈의 흑룡>의 모습에서 일순 당혹감을 옅보였다.
아니, 분명히 당황하고 있었다.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대체 눈 앞에 나타난 저것은 무엇인가.
대체 왜 저 녀석<푸른 눈의 백룡>이 저 소녀에게서 나타난 것인가.
"...쓸데 없이 손이 가게 만드는군요! 레드 아이즈<붉은 눈>들! 우연은 한번 뿐이에요, 다시 한번 집중 공격하세요!"
갑작스러운 푸른 눈의 백룡의 등장에 동요하던 붉은 눈의 용들은 잔 다르크<용의 마녀>의 카리스마가 섞인 호통에 일제히 동요를 멈추고는, 다시 한번 더 리츠카 일행을 향해 일제히 공격을 퍼부었다.
잔 다르크의 배후에 서있던 붉은 눈의 흑룡도, 푸른 눈의 백룡을 강하게 노려보면서 포효하고는 이글거리면서 타오르는 초고열의 화염탄을 쏟아부었다.
명백히 방금 전 보다도 더욱 거센 포화.
제 아무리 푸른 눈의 백룡이라 할지라도, 백룡 자신은 둘째치더라도 이 포화의 직격으로부터 리츠카들을 전부 지켜낼 방도는 없다.
─그러니까.
"파트너! 너의 차례야!"
듀얼 디스크의 홀로그램 덱의 전원을 내리고, 코트의 덱 포켓에서 자신의 덱을 꺼내 장착한 리츠카는 마치 알고나 있다는 듯이 2장의 카드를 뽑아 세트시켰다.
그것은 수 많은 화염탄의 집중 포화가 시작된 것과 동시였고─
크리! 크리~!!
─불바다가 되었을 곳에서 수 많은 털복숭이들이 솟아올랐다.
"─?!"
만의 하나라도 무언가 나올수 있다.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이딴 것들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용의 마녀인 잔 다르크의 소리 없는 절규에 아랑곳하지 않고 둑 터진 물줄기마냥 쏟아진 털복숭이들<크리보>은 반달처럼 치켜 뜬 두 눈동자로 붉은 눈<레드 아이즈> 군단을 노려보며 작고 귀여운 울음소리와 함께 달려들었다.
"가자, 얘들아! 우리들의 필살콤보!"
리츠카의 손길을 맞이하여 뽑혀나온 그 카드는─크리보 및 크리보 토큰을 모두 파괴하고, 같은 수 만큼 상대 필드 위의 카드를 파괴하는 <기뢰화> 마법 카드.
마치 리츠카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처럼, 크리보와 증식 이후 뽑혀나온 이 카드에서 흩어져나온 빛의 입자가 <실체화>된 크리보들에게로 날아들었다.
그리고─
"터져라!!"
리츠카의 신호와 함께, 레드 아이즈들의 화염 폭격에 버금갈 정도의 폭발이 일어난다.
위력은 화염 폭격에 비하면 크지 않지만, 폭발의 충격과 폭음, 폭연은 성내는 물론 성 전체를 가려버릴 정도였다.
"크읏, 어디에?!"
마음 같아서는 그대로 무차별로 포화를 쏟아넣고 싶었지만, 자신의 바로 앞 시야까지 가려진 폭연 탓에 주저하고 만 잔 다르크<용의 마녀>는 뒤늦게 붉은 눈의 흑룡의 날개짓으로 폭연을 걷어내고는 이딴 거창한 폭발을 일으킨 범인을 찾아 눈을 부릅떴다.
"...쯧! 어새신. 어딨습니까."
성내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본 잔 다르크<용의 마녀>는 왼팔을 가볍게 휘둘러 <검은 피막의 날개를 형상화한 건틀렛>을 펼친다.
그러자 그 위로 반투명한 모습을 한 형상이 나타나며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요, 룰러? 한참 재미를 보던 참인데...]
"피에 굶주려서 날뛰는 것은 좋습니다만. 일을 게을리 하는건 아니겠지요?"
[지금 막 <그녀>의 고기와 피를 받아가려는 참이에요.]
"잘 됐군요. 그녀를 처리한 후에 <다음>을 처리하세요. 기뻐하라고요? 그들도 강자니까요."
[...아~아아, 오늘은 생일상이라도 되는건가요, 마스터. 좋아요, 금방 끝내고 다음 요리로 넘어가도록 할까요.]
기쁨에 찬 요염한 목소리 속에서 느껴지는 피와 같은 섬뜩함과 함께 반투명한 형상이 지워지며 없어진다.
"흥. 우리들도 돌아가죠, 붉은 눈의 흑룡<레드 아이즈 블랙 드래곤>. 방금 그 녀석들을 다시 만났을 때, 놓치지 않기 위해선 좀 더 새로운 게 필요하겠어요."
*****
"...후우. 좋아, 이 정도 도망쳤으면 괜찮을까?"
"어떤가요, 닥터?"
[괜찮아. 반응은 이미 소실됬어.]
"아하하~ 정말 잘해줬어. 파트너들."
폭신폭신.
무사히 모두를 피난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파트너들>을 한마리씩 껴안고 부비부비하기 시작한 리츠카의 품 안에서 귀여운 목소리가 울린다.
붉은 눈 군단에 맞서 많은 수가 뛰쳐나갔던 검은 털복숭이 <크리보>.
리츠카와 마슈, 아르토리아와 잔느를 각각 도맡아서 이곳까지 도망칠 수 있도록 다리와 날개가 되어준, 날개가 달린 털복숭이 <날개 크리보>
맨들맨들하면서 무지개색이 돋보이는 <무지개 크리보>
맨들맨들한 둥근 몸의 <크리보르>와 기계 장치가 몸에 장착된 크리보 <새크리보>
단순한 모습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귀여운 그 몬스터들은 자신의 <주인>의 칭찬에 기쁜듯이 귀여운 울음소리를 내었다.
"...<정령>인가, 이건 또 희귀한 녀석들이군..."
"정령이요?"
귀한 것을 봤다는 얼굴로 입을 연 아르토리아의 말에 마슈가 궁금한듯 되묻는다.
"신대에서는 흔했던 것들이다. 현대는 물론, 이 시기의 시대에서도 자취를 감췄을터인데...아니, 그보다도. 저것들을 다룰 수 있는 마스터의 역량이 무섭군."
"어째서인가요?"
"정령들은 기본적으로 제멋대로다. 선악의 구분이 없어. 그런 녀석들이 제멋대로 굴지 않고 명령대로 움직인다는 것은 놀랄 수 밖에 없는 일이다."
특히 아까와 같이 용의 형상을 한 녀석도...라면서 말을 이으려던 아르토리아는 어느새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 크리보를 내려다 본다.
커다란 눈동자를 껌벅거리며 검은 성검과 아르토리아를 번가라 바라보던 크리보는 둥실하고 아르토리아의 가슴께로 다가오더니.
크리~ 라는 귀여운 울음소리와 함께 아르토리아의 가슴팍에서 몸을 부비거렸다.
"...이거 참."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크리보를 바라보던 아르토리아였지만,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 폭신폭신한 털뭉치로 손을 올렸다.
마찬가지로─잔느에게는 날개 크리보가 다가가 그녀의 길게 땋은 머리카락에서 노닐듯이 날아다니더니 이내 잔느의 가슴품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행동에 놀랐던 잔느였지만, 이내 그 푹신함과 부드러움에 긴장이 풀린듯 털과 깃털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마치 지금까지 꽉 조여져있던 긴장을 풀어주듯이, 크리보들은 각자의 푹신함으로 그녀들의 긴장된 정신을 조금이나마 이완시켰다.
다만, 마슈에게는 그녀의 품 속으로 내려온 포우가 마치 여기는 자기 전용이라는 것을 과시하듯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다가가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러면 어...잔느라고 불러도 좋을까?"
"...아, 네. 물론입니다. 그렇게 불려지면, 꽤나 그리운 기분이 드네요."
"알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을래?"
방금 전 상황으로 어느정도 이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감이 잡혔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 시대에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필수.
그렇게 생각한 리츠카의 말에 잔느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입을 열었다.
"전에 이야기했다시피, 저는 몇시간 전에 현계했습니다. 룰러로서의 권한과 능력도 주어지지 않은채로. ...저의 기준으로 보자면, 전 제가 죽은지 3일만에 서번트로 되살아난 셈이 됩니다."
"이번에 첫 소환, 이라는거?"
"저에게 전해진 다른 기억이 없는 것을 볼 때...네, 맞습니다. 저의 현계는 이번이 처음이에요."
"명백히 이상 사태군. 대성배의 백업을 받아야 할 <룰러>에게 그 어떠한 권한도 주어지지 않았다는건 심각한 문제다. 서번트의 소환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거다."
"그 검은 잔느도 그때문...?"
"보신 것 처럼, 또 1명의 잔 다르크가 있는겁니다. ...프랑스 왕 샤를 7세를 죽이고, 오를레앙에 대학살을 행하는 잔느가..."
"같은 시대에 같은 서번트가 2체 소환 되었다, 라는 얘기입니까...? 가능한 이야기인가요?"
[음... 성배전쟁의 기록을 뒤져보면, 그런 동시소환의 예시는 있을거라곤 생각하지만. 어쨌던, 그걸로 확정이야. 샤를 7세가 죽고, 오를레앙이 점령당했다.]
마슈의 의문에 답한 로망은 통신너머로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그건 즉, 프랑스라고 하는 국가의 붕괴를 의미해.]
"그건...큰일이네."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이 시기에 프랑스가 붕괴하면 역사상으로 모든 것이 붕괴해버리는거야, 리츠카 쨩. 역사상, 프랑스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한 최초의 국가이면서, 많은 나라가 거기에 추종했어. 그 권리가 100년 늦는다면, 그것만으로도 문명은 정체될거야.]
"...목소리만 들려? 지금건 마술입니까?"
[아참, 그러고보니 소개를 하지 않았네. 처음 뵙겠습니다, 성녀 잔 다르크. 저는 로마니 아키만. 모두에게는 로망이라고 불려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서포트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과연, 로망. 몽상가인거네요!"
[뭐지, 이 칭찬받았는데 전혀 기쁘지 않은 듯한...]
"그런데...당신들은 대체?"
"저희들의 목적은, 이 어긋난 역사의 수정입니다. 칼데아. 그렇게 불리는 조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인리가 소각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이제 막 도착한 참이었어."
"...어긋난 역사와 인리, 소각..."
리츠카의 이야기를 잠시 곰곰히 씹던 잔느는 이내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고개글 끄덕였다.
"네, 이해했습니다."
"...그건 그렇고. 방금 그 비룡들과 드래곤...마스터는 무엇인지 눈치챈 것 같았다만."
이야기의 흐름을 가늠해 말할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아르토리아는 용의 마녀<잔 다르크>와 싸울 당시의 리츠카의 모습에서 무언가를 본 듯 입을 열었다.
"응...다들 크리보라던지, 푸른 눈의 백룡이 정령이라는건 알았으니까, 말하는거지만. 그것도 분명 <정령>들일거야."
"용이 아닌건가요?"
"으음...정령이지만, 용이라고 할까? ...이름은 <붉은 눈의 흑룡>과 <붉은 눈의 비룡>"
"생전의 저는 용을 부린다던지, 같은건 생각하지 않았기에, 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생각했습니다만..."
"<얼터화> 라면 어울리지 않느냐. 평생 독실히 신을 모시던 자가, 신이 아닌 정령을 부린다. <반전>된 것이라면 이만큼도 어울리는 능력도 없지."
"그렇다고해도 이상하네...저 <카드의 정령>들의 바탕이 되는 카드 게임은 우리 시대때에나 생긴건데..."
[용의 소환이든, 정령의 소환이든. 저 정도의 숫자를 다루는건 현대의 마술사로는 불가능한 레벨이야. 리츠카 쨩과 같은 예외를 제외한다면. 그렇다면 이건 <반칙>을 이용했을 가능성을 생각해봐야겠네.]
"반칙...성배의 가능성인가요?"
[억측의 범주지만.]
"...상황에 불명확한 점은 많습니다만, 어느 정도 파악은 됐습니다. 잔느 씨, 당신은 이제부터 어떻게 하실건가요?"
마슈의 물음에 잔느는 자신의 깃발을 쥐며 대답한다.
"목적은 정해져 있습니다. 오를레앙에 가서, 도시를 탈환한다. 그를 위해 방해가 되는 잔 다르크를 배제한다. 주에게서의 계시는 없고, 그 수단은 보이지 않습니다만, 여기서 눈을 돌릴 수 없으니까요."
"...혼자서라도 싸운다...뭐랄까, 역사대로의 분이네요, 선배."
"응,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마스터, 그리고 닥터. 우리들과 잔느씨의 목적은 일치합니다. 이후의 방침입니다만, 그녀에게 협력한다, 라는건 어떻습니까?"
"임무가 아니더라도 협력할거야."
[이쪽도 현장의 결정과 같아. 여기선 잔느와 협력하는게 좋다고 생각해, 구국의 성녀와 함께 싸운다니 좀처럼 없는 명예고!]
"아르토리아 씨는?"
"불만은 없다. 무얼, 나는 마스터의 명령에 따를 뿐이니, 신경쓰지마라."
"다행이다. 그럼 다시, 잔느 씨. 우리들은 우리들의 목적이 있습니다만, 그것과 병행해서 당신의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이제부터 당신의 협력자로써 그 깃발 아래에서 싸울것을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이쪽이야말로 잘 부탁합니다. 아무리 감사해도 부족할 정도입니다.
"응, 잘 부탁해."
손을 내밀어온 리츠카의 악수 요청에, 잔느도 웃으며 받아들였다.
"그러면 최종 목적을 위해선, 척후에서 움직이면서 기점을 만들고 정보를 모아야겠네."
"기본적인 방침을 변경되지 않네요, 선배."
"응, 그러게 말이──"
"목적이 정해진 것은 좋지만, 마스터. 서번트다."
앞으로의 방침을 다시 결정하던 리츠카를 뒤로 물리며 아르토리아가 검은 성검을 빼들었다.
그 직감적인 행동에 잔느와 마슈도 각자의 무기를 들고 이쪽을 향해오는 기색을 향해 대비했다.
그렇게 잠시 뒤─
─털썩.
"어라...?"
"...이 사람은?"
우거진 수풀 속에서 나온 인영이 풀썩, 하고 자신들의 앞에서 쓰러져 넘어졌다.
푸른빛이 도는 검은 머리카락과 하얀 성의, 그리고 십자가의 지팡이를 든 그녀는 종교인으로 보였다.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된 모습이 아니었다면, 분명 아름다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서번트다. 만신창이로군."
"설마...저처럼 소환된 또 다른 영령이...?"
대체 무슨 일인걸까?
그런 의문을 품고 있던 일행의 머리 위로 검은 까마귀가 시끄러운 울음소리를 내며 불길하게 날아올랐다.
*****
"...아~아아, 오늘은 생일상이라도 되는건가요, 마스터. ...좋아요, 금방 끝내고 다음 요리로 넘어가도록 할까요."
노출도가 높은 본디지 복장에 중세식의 귀족의 드레스를 겹친 옷차림.
눈가를 가리는 검은 마스크까지 포함해서 특이한 취향<변태>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모습이지만, 창백한 피부에 색이 바랜 머리칼의 <그녀>가 입고 있으니 섬뜩하다는 느낌 밖에 들지 않는다.
그런 그녀의 바로 앞에는, 피가 굳어 달라붙은 백발과 흙먼지로 더러워진 화려했을 옷 차림의 <소녀>가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누가봐도 서있는 것 조차 힘들어보이는 만신창이. 그럼에도 청초한 아름다움을 잃지 않은 그 소녀는 숨을 고르면서 미소를 지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카밀라>"
"아니, 이제 끝이야. <마리 앙투아네트>"
두 사람을 둘러싼 불길하기 짝이 없는 검은 불꽃의 안에서 괴이한 인영이 떠올라있었다.
카밀라라 불린 여자의 앞에는 창백한 피부색의 검은 망토를 나부끼는 <뱀파이어>와 괴물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보랏빛 피부의 거인>이, 마리라 불린 소녀의 앞에는 돌아가는 고문 기구에 붙잡혀 만신창이가 된 <백은의 보석기사>가 처참한 모습으로 묶여있여 있었다.
[카밀라 VS 마리]
[4000 : 500]
[필드]
[카밀라 : 뱀파이어 제네시스, 뱀파이어 로드, 세트 카드 1장, 고문 바퀴 -> 젬나이트 크리스타]
[마리 : 젬나이트 크리스타 <- 고문 바퀴, 세트 카드 1장]
─이 시대에서는 존재할리 없는 의식<듀얼>이 그녀들을 통해 행해지고 있었다.
"네가 무엇을 한다해도 내 뱀파이어들을 넘어서 날 죽일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걸?"
"그건, 아무도 모르는거잖아...?"
힘 없는 웃음이었지만, 마리의 눈동자는 아직도 반짝이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호응하듯이, 고문 바퀴에 묶여있음에도 반짝임을 잃지 않은 백은의 보석 기사, [젬나이트 크리스타]는 안광을 빛낸다.
"마법 카드, [젬나이트 퓨전]! 패나 필드에서 <젬나이트> 융합 몬스터 카드에 기재된 융합 소재 몬스터를 묘지로 보내고, 그 융합 몬스터 1장을 엑스트라 덱에서 융합 소환한다! 난, 패의 젬나이트 라피스와 필드 위의 젬나이트 크리스타를 융합!"
마리의 손에서 빠져나온 카드와 필드 위에서 고문 바퀴로 구속되어 있던 젬나이트 크리스타가 각각 붉은색과 푸른색의 빛으로 바뀌어 마리의 머리 위로 솟아오른다.
그 빛은 이윽고 소용돌이치며 밝게 빛나는 찬란한 후광이 되어 마리와 그 필드를 비추기 시작했다.
"빛과 함께 소용돌이쳐 새로운 빛과 함께 하나로 되어라!"
소용돌이 치는 보석같이 빛나는 후광을 등진채, 기도를 올리듯이 양손을 쥐어 머리 위로 올린 마리는 그 손을 강하게 가슴팍으로 끌어당긴다.
"융합 소환! 환혹의 빛, 젬나이트 지르코니아!"
절정에 이른 빛이 폭발하며 비산한다.
그 빛 속에서 튀어나온 것은 강인한 갑주와 모든 것을 분쇄하는 헤비 너클을 장착한 보석의 기사─
[젬나이트 지르코니아 - 레벨 8, 땅 속성, 암석족, 공격력 2900, 융합]
"공격력 2900. 그걸로 [뱀파이어 로드]는 쓰러뜨릴 수 있어도, [뱀파이어 제네시스]에는 닿지 않을텐데?"
"...우뢰를 부르는 비석이여! [젬나이트 르말린]을 일반소환!"
[젬나이트 르말린 - 레벨 4, 땅속성, 번개족, 공격력 1600, 일반]
토르말린의 힘으로 신기한 에너지를 만드는 전력의 보석 기사가 스파크를 튀기며 나타난다.
"마법 카드 발동! [파티클 퓨전]! 자신 필드 위에서 융합 몬스터 카드에 기재된 융합 소재 몬스터를 묘지에 보내고, <젬나이트>라는 이름이 붙은 그 융합 몬스터 1장을 융합 소환으로 취급하여 엑스트라 덱에서 특수 소환한다!"
젬나이트 지르코니아가 붉은 안광을 빛내고, 젬나이트 르말린 또한 강한 전격을 내뿜으며, 마리의 뒤에서 후광처럼 빛나는 소용돌이치는 빛 속으로 몸을 던진다.
"융합 소환!"
다시금 마주 잡은 손을 꽉 부여잡은 마리의 눈 앞에 망토를 흐날리며 나타난 노란빛의 갑옷을 두른, 번개를 형상화한 쌍검을 쥔 보석의 기사가 화려하게 춤을 추며 내려앉는다.
"승리의 탐구자, 젬나이트 파즈!"
[젬나이트 파즈 - 레벨 6, 땅 속성, 번개족, 공격력 1800, 효과, 융합]
"하아...? 기껏 부른 공격력 2900을 1800으로 바꿨다?"
이 무슨 웃기지도 않는 짓인가, 다 죽어가는 마당이라 쓸데 없이 남아도는 패의 카드라도 쓴 것인가?
"드디어 정신이 나갔나보지, 왕비 마마?"
"지금은 왕비가 아닌, <친구>를 위해 앞을 막아선 조금 고집있는 여자아이니까?"
"그 고귀함이 참...맛있게 느껴진단 말이지!"
곧 잡아먹힐 고귀한 자의 피와 고기를 상상하며 입맛을 다시던 찰나, 마리의 <묘지>가 빛나기 시작한 것을 본 카밀라는 눈을 찡그렸다.
"파티클 퓨전의 또 하나의 효과! 이 효과로 융합 소환에 성공했을 때, 묘지의 이 카드를 게임에서 제외하고, 그 융합 소환에 사용한 <젬나이트>라는 이름이 붙은 융합 소재 몬스터 1장을 선택하여 발동! 그 융합 몬스터의 공격력은 엔드 페이즈시까지, 선택한 몬스터의 공격력만큼 올린다!"
"뭣...?!"
"난, 젬나이트 지르코니아를 선택! 젬나이트 지르코니아의 힘이여! 젬나이트 파즈에게!"
묘지에서 제외된 파티클 퓨전의 효과로, 반투명한 모습으로 나타난 젬나이트 지르코니아의 모습이 필드 위의 젬나이트 파즈에게로 깃든다.
[젬나이트 파즈 - 공격력 1800 -> 공격력 4700]
"공격력 4700...?!"
"이걸로 당신의 뱀파이어들의 공격력을 넘어섰어...그리고 함정 카드 발동! [트랩 스턴]! 이 턴에 이 카드 이외의 필드 위의 함정 카드의 효과를 무효로 한다!"
"쯧...!"
"가자, 모두!"
젬나이트 지르코니아의 힘을 받아들여 더욱 강해진 전력을 발하며 전신으로 스파크를 발하기 시작한 젬나이트 파즈는 안광을 빛내며 함정 카드에 대한 두려움 없이, 카밀라의 필드로 뛰어들었다.
"젬나이트 파즈는 1번의 배틀 페이즈 중에 2회 공격할 수 있어!"
"...!"
"그리고 전투로 몬스터를 파괴하고 묘지로 보냈을 경우에, 그 몬스터의 원래 공격력만큼의 데미지를 상대에게 줄 수 있어!"
파즈의 공격력은 4700.
뱀파이어 로드와 뱀파이어 제네시스의 공격력은 각각 2000과 3000.
전투 데미지만 받는다 해도 총합 4400의 데미지.
전투 데미지를 회피할지라도, 효과 데미지로 총합 5000의 데미지.
"이걸로...!"
─이긴다!
[BGM START] 카뮬라의 테마
"─그래. 그래서 감동을 억누를 수 없어."
전신에 창백한 스파크를 튀기며 번개를 두른 듯한 참격으로 뱀파이어들의 목을 내리치려던 젬나이트 파즈의 몸체 허공에서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에...?"
"공포와 절망, 그 스파이스에 어렴풋한 희망. 언제고 가장 좋은 소리로 우는건..."
어째서? 라는 얼굴로 똑같이 굳어버린 마리의 눈 앞에, 감미로운 미소를 흘리며 카밀라는 세트시켜두었던 속공 마법 카드의 모습을 드러내보였다.
"이걸로 도망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꼬마 다람쥐들이니까."
─[금지된 성전]
"금지된...성전...?"
"양쪽 플레이어의 몬스터가 전투를 실행하는 데미지 계산시에 발동. 데미지 스텝 종료시까지, 이 카드 이외의 필드 위의 카드의 효과는 무효화되고, 그 전투의 데미지 계산은 원래의 공격력과 수비력으로 실행한다."
[젬나이트 파즈 - 공격력 4700 -> 1800]
젬나이트 파즈의 몸 안에서 젬나이트 지르코니아의 형상이 빠져나온다.
젬나이트 지르코니아의 반투명한 형상은 괴로운듯한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며 소멸하고, 창백한 스파크를 내뿜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사질렀던 젬나이트 파즈의 모습 또한 눈에 띄게 약해져간다.
그것을 비웃듯이 지켜보며, 목 언저리까지 가까이 와있던 젬나이트 파즈의 번개의 모습을 한 칼날을 그 강한한 손으로 쥐어 부러뜨린 뱀파이어 제네시스는 곧바로 반대 손을 뻗어 젬나이트 파즈의 목을 쥐어 부러뜨릴 기세로 부여잡았다.
"나보다 아름자운 자의 피는, 얼마나 나를 아름답게 해줄까?"
콰직! 콰직!
목을 쥔 손을 쥐어 목을 부러뜨린다.
떨어지는 그 몸을 자시 한 손으로 쥐어, 갑옷째로 우그러뜨린다.
"아아, 신선한 과일을 으깨는건 즐거워. 과육은 버리고 과즙만을 즐긴다...그것이야말로 밤의 귀족의 특권."
그렇게 형체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으깨버린 젬나이트 파즈를──뱀파이어 제네시스가 주먹을 휘둘러 완전히 분쇄시켰다.
"─한 방울도 남김없이 짜내줄게."
[카밀라 VS 마리]
[4000 : 0]
[WIN : 카밀라]
"...미안...아마데우스...미안, 마르타..."
젬나이트 파즈의 파괴와 함께 라이프 포인트가 0이 된 순간, 마리의 무릎이 꺽인다.
의식<듀얼>의 종료와 함께, 두 사람을 가두었던 검은 불꽃이, 마리의 두 눈동자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생기처럼 꺼져간다.
이윽고 완전히 의식을 잃은 마리가 풀썩하고 엎어지며 쓰러진 후, 마리의 몸은 빛이 되어 새로운 형상으로 바뀌어간다.
─한 손에 들어갈 만큼 작은, 데포르메된 인형의 모습으로.
"느긋하게 맛보고 싶지만...마스터의 일이 있으니, 휴대식으로 할까."
그 인형을 집어올리며 입맛을 다신 카밀라는, 이곳의 너머에 있는 장소를 바라보며 비릿하게 웃음지었다.
***********************************************************
이번화로 여러분이 아시던 1장 오를레앙편 스토리는 미궁으로 <-
(IP보기클릭)39.115.***.***
(IP보기클릭)61.101.***.***
쥬다이 본인이 나올지언정 그런식으로는 나올 예정은 없습니다. 몇몇 인물들은 세계관 사정상 캐스터라던지, 데미 서번트라던지 등으로 나올 수 있지만요. | 18.08.10 22:23 | |
(IP보기클릭)221.154.***.***
(IP보기클릭)61.101.***.***
유희왕을 한동안 접었던 사람에겐 링크 소환으로 속도가 늦춰지겠거니했는데...더 빨라져서 도저히 적응 안되는.... 페그오는 스토리만보고 간다는건 1부 6장 이후부터라서.. | 18.08.10 22:29 | |
(IP보기클릭)121.172.***.***
(IP보기클릭)61.101.***.***
그러나 이후에.... | 18.08.10 23:19 | |
(IP보기클릭)1.245.***.***
(IP보기클릭)61.101.***.***
그래서 페그오랑 유희왕 둘 다 하는 지인이 카이바에게 시구르드 넣을거냐는 이야기를... | 18.08.10 23:20 | |
(IP보기클릭)1.245.***.***
아 작품에 관해 3개!의 질문이 있는데 괜찮을까요? | 18.08.11 00:08 | |
(IP보기클릭)61.101.***.***
괜찮습니다. 여기다 달아주셔도 되요. | 18.08.11 00:08 | |
(IP보기클릭)1.245.***.***
감사합니다 SENSEI! 1. 성기사나 DD와 같이 영령들과 이름이 겹치는 카드들은 그 영령들과 이름/모티브 빼곤 관계가 없는건가요? 뭐 성기사나 DD는 에이스가 엑덱몹이라 나오진 않겠지만... 2. 싱/엑/펜/링을 쓰지 않는다면 듀얼로그 짜기도 쉽지 않을테고, 또 덱 선정도 쉽지 않을텐데(다크 고즈/디크 카오스/다카포같은 것을 내보낼 수도 없는 노릇) 이에 대해 생각해두신 바가 있나요? 3. '금단의 이본'이나 튜너 몬스터같이 싱/엑/펜/링에 관계된 카드는 아예 나오지 않나요? | 18.08.11 00:16 | |
(IP보기클릭)61.101.***.***
1. 일단 비축분에선 성기사 덱의 등장이 예고됩니다. 영령들의 모습을 따라할지 어떨지는 아직 고민 중. 2. 그 점은 페그오의 세계관과 연동되어 원래의 리츠카 쪽 세계관이 아닌 다른 세계관의 몬스터들로 등장 예정. 즉, 프롤로그라 볼 수 있는 1장 이후엔 등장 예정에 있습니다. 단 링크 소환은 나오지 않게 할 예정입니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제가 워낙 옛날 듀얼리스트(...)라서 어느 정도 덱이 짬뽕으로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게 이후 스토리의 떡밥이 될 수도 있고요. 3. 위와 연결해서 링크 소환 이전까지는 대부분 나올 예정입니다. 단, 페그오의 1장 스토리인 오를레앙에서는 등장 예정 없습니다. | 18.08.11 00:31 | |
(IP보기클릭)1.245.***.***
빠른 답변 감사합니다 SENSEI! 교차로도 재밌게 봤습니다. 이번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 | 18.08.11 00:43 | |
(IP보기클릭)121.190.***.***
(IP보기클릭)61.101.***.***
이집트! | 18.08.10 23:2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