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희★왕
Spirits of Glory
Rebellion
==============================
01. 맞서는 자, 듀얼리스트!
2017년 5월 19일.
2교시가 끝날 즈음, 중간고사가 끝난 지 1달 정도가 지난 여남중앙고등학교의 교정 위로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었다. 수업이 끝나자 학생들은 평소처럼 기지개를 켜고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나날이었다.
교실 뒤편을 차지한 채 에어컨 바람을 쐬는 양아치들을 뒤로 한 채 차현준은 1학년 6반에서 뛰쳐나왔다. 수업 시간의 자리와 점심 시간에 밥을 먹는 자리를 포함해서 교실의 '자리'는 서열로 결정된다. 그렇기에 서열 최하위인 현준과 그의 친구들은 여남중앙고에 입학하자마자 제 자리를 찾을 생각을 접은 채 교실 밖으로 나가 계단을 찾았다. 4층과 5층 사이, 1학년 1반 옆에 있는 계단. 옥상과 화장실은 담배연기로 자욱했고, 복도도 사람으로 가득했지만 한 층과 다른 층 사이에 만들어진 작은 공간은 그들에게 공터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현준과 친구들은 오늘 중요한 토의를 앞두고 있었다.
"자아, '팀 글로리어스 톱' 2017년도 제... 제 몇 회더라, 아! 제 74일차 토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야, 현준이 너 또 늦었지?!"
"니네는 공부도 안 하냐, 이렇게 일찍들 나오게?"
"매번 복습하고 나오는 거야, 넌 공부도 안 하면서 왜 그리 늦어?"
현준을 쏘아붙이는 뿔테안경의 꺾다리는 팀 글로리어스 톱의 회장 겸 서기, 유공석이었다. 돌대가리마냥 딱딱하게 굳은 녀석의 성격만 해도 현준과는 정 반대였다. 매번 어려운 단어만 써 가면서 말하는 데다, 공부를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현준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물론 학교 공부보다 공룡 뼈다귀를 사랑한다는 것 때문에 범생이가 되지 못했지만.
"둘 다 그만들 해! 교실에 들리겠다!" 라며 둘을 진정시키는 남자는 팀의 리더인 한천수. 현준만큼이나 평범한 외모에 키는 현준보다 작았지만, 팀 중에서 재철 다음으로 가장 플레잉 센스가 좋은 인물이었다.
"일단 이묘희, 허영호, 고재철, 하수빈은 넷 다 카드 준비로 바쁠 테니까 다음 교시에 부르면 되고.. 첫 번째 안건부터.
우리 부원은 6달 전이나 3달 전이나 지금이나 확.실.히 7명이다.
벌써 3달째 얘기하는 건데...차현준 너는 진짜 원래 3달 전만 해도 개소리 안 했는데 왜 그러는 거냐 대체?
라틴어 씨부리면서 없던 얘기 만들어 내는 거 그만해! 라틴어는 공석이 전공이잖아!"
"한천수 너 이 ㅆ..." 화 내는 것도 지친 현준이 입을 다물었다. 이렇게 화를 낼 때마다 가장 답답해지는 것은 현준 자신이었으니까.
"이어서 팀 랭킹 확인... 사이트가.. 여깄다. 이번에도 학교 랭킹은 꼴찌네. 그래도 여남시 랭킹 최하위는 어린 애들이 차지하고 있으니까 여남시 꼴등은 면했나.. 팀 맨체스터는 8위, 팀 첼시는 9위, 팀 NBA는 7위, 팀 AK-47은 11위, 팀 후라이펜은 10위, 그나마 팀 팟지가 6위네. 하튼 양아치들은 듀얼전형으로 대학 갈 실력도 안 되는 자식들이 매번 중위권에나 머무는 주제에 지네가 1등이라고 까분다니까... 맨날 입만 살아가지고. 마지막으로 점심 시간 안건."
점심 시간.
분명 고등학교였고 시설을 식당으로 교체할 정도로 충분한 예산이 있었으며 급식 회사 직원들이 반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남중앙고등학교는 학교의 전통을 운운하면서 선생들은 교직원 식당에서 급식을 먹으면서도 학생들에게는 점심시간마다 급식차를 가져와 교실에서 급식을 먹는 규칙을 고수하고 있었다. 중학교 시절이나 지금이나 현준 일행은 양아치 급식당번들의 차별과 다른 양아치들의 새치기에 밀려 가장 늦게, 가장 적게 밥을 먹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았다.
여남서중의 학생 대부분이 여남중앙고로 올라왔기 때문에 사실상 다른 녀석이 학생들 사이에서 실권을 잡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갑자기 녀석들이 고등학교에 들어온 뒤로 어린이 카드 게임에 흥미가 생겼다는 점이 문제였다. 양아치들의 눈에 카드 장사는 이제는 한 물 간 패딩 장사보다 발각되기도 어렵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수입이 높았다. 그 카드를 어디서 구하냐고? 당연히 왕따들에게서 뺏으면 된다.
각종 핑계로 카드를 뺏던 양아치들은 왕따들의 덱에 더 이상 값어치가 나가는 카드가 없어지자 새로운 꼼수에 눈을 돌렸다. 이른바 식사 듀얼이었다. 듀얼은 솔리드 비전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확실히 왕따를 때리되 증거는 남지 않는다. 싸웠냐고 물으면 잠시 놀았다고 얼버무리면 그만, 거기에다 레어 카드와 승률이 높은 덱으로 무장한 자신들이 질 리가 없었기 때문에 찌질이들의 밥 한 숟갈까지 자신들의 입에 넣을 수 있다는 짭짤한 부가 효과까지 얻을 수 있었다. 밥이 걸린 문제이니만큼 왕따들은 계속 강력한 카드를 가지고 덤벼오기 때문에 안티 룰을 적용하기도 편했다. 이길 수 있다는 헛된 희망만큼 좋은 고문법도 없었다.
공만 차면서 듀얼을 찌질이들이나 하는 게임이라고 비웃던 양아치 녀석들이 듀얼리스트가 되었다는 것도 답답했지만, 더 답답한 것은 밥을 아예 먹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현준 일행은 급식비를 내지 않고 도시락을 교무실에 맏겨 뒀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도시락은 급식보다 뺏어먹기 편했고, 아예 매점 갈 돈만 챙겨서 학교에 와도 양아치들은 밥값을 털어갔다.
"하지만 녀석들의 식량 폭정에 계속 탄압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법. 녀석도 우리와 같은 듀얼리스트!
그렇다면 우리가 듀얼로 녀석들에게 승리와 급식을 얻어내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며칠 전에 맹세했었지?"
"하... 유공석 넌 뭐 범생이가 중2병까지 걸렸냐 진짜?"
그래서 팀 글로리어스 톱의 일원은 얼마 전 큰 도박을 감행했다. 여남중앙고등학교 1학년의 왕따들을 대표해 양아치들에게 이번 듀얼에서 차현준이 이길 경우, 급식 듀얼(을 빙자한 폭행) 자체를 없앤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
"시끄럽다 차현준. 하여튼 어제 D톡방에서 보낸 거 봤지? 오늘 안건은 못 나오는 애들에게 미리 전달해뒀으니까 걱정 말고,
공석이 너는 쉬는 시간마다 각 반 돌면서 팀원들에게 엑스트라 덱 몬스터들 받아 와.
현준, 그리고 니가... 우리 팀, 그리고 모든 1학년 왕따들의 대표로 우리 모두의 밥을 걸고 싸우는 거니까,
..... 오늘 점심시간만큼은 언데드덱을 들지 말고 애들 카드를 모아서 만든 진공룡성 덱을 쓰도록 해."
그렇게 말하며 천수는 덱을 내밀었다. 현준은 잠시 주저하다가 덱을 받았다.
"......알았어. 나도 배고프니까. 오늘만큼은 프라이드를 접어 둘게."
덱 안에 든 벨릭이 "나는? 나는 덱에 안 넣는 거야?! 너무하잖아!"라고 텔레파시로 말을 걸어왔지만, 현준은 무시했다.
3교시 쉬는 시간이 끝나자마자 엑스트라 덱의 카드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티어 덱의 구축 가격은 예전보다 많이 싸졌다. 재록 덕분이기도 했지만, 웬만한 티어 카드군은 팩 1통을 뜯으면 우수수 쏟아져 나오는 시절이 되었으니까. 문제라면 역시 엑스트라 덱의 카드였다. 고레어 범용 카드를 제외하면 양아치들이 노리는 카드도 대부분 엑스트라 덱 몬스터들이었다.
현준은 [조총사 카스텔] 담당이었고, 같은 6반의 공석에게서 [에볼카이저 라기아]와 [에볼카이저 돌카]를 받아갔다. 5반의 수빈이는 엑스트라 덱 몬스터 대신 [하루 우라라] 2장을 넘겨줬다. 싱크로 몬스터는 사실 전부 2반 재철이의 카드였지만, 양아치들에게 빼앗길 것을 대비해 4반의 묘희와 영호, 2반의 재철이가 나누어 보관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1반의 천수가 [No.41 이수마수 바구스카], [여휘사 벨즈뷰트], [미라지 포트리스 엔터프라즈닐], [진룡황 V.F.D.(더 비스트)]를 넘겨 주었다. 마침내, 모든 카드가 모였다.
6반 교실의 점심 시간. 급식차를 펼쳐 두고 몇 명의 양아치들이 이미 급식을 받고 있었으며, 평소의 급식 듀얼과 달리 교실 한가운데에는 현준과 공석의 도시락이 놓여 있었다. 다른 반들도 가운데에 핸드폰으로 6반의 영상을 스트리밍하는 한편 그 밑에 왕따들의 도시락을 쌓아 두었다. 핸드폰으로 시끄러운 자칭 MC, 전영준의 산만한 모습이 녹화되기 시작했다.
"자~아! 오늘도 2017년 5월 19일! 점심 듀얼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뭔가 특별한 게 보이시죠? 우리 찐! 따~아들이 오늘 출전하는 찐따의 덱을 바꿨다길래 특별히 시설을 준비했죠! 워메~오져따잉! 그럼 청 코너! 우리의 대빵! 팀 맨체스터의~! 이!웅!환!"
경멸 가득한 미소를 지은 채, 이웅환이 팔의 근육을 자랑하며 등장한 뒤 현준에게 뻐큐를 날렸다. 뻐큐 한 방마다 환호성이 뒤따랐다. 그제서야 현준은 오늘의 듀얼이 함정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일행의 도시락을 굳이 가운데에 둔 이유는 도시락이 솔리드 비전에 치이면서 바닥에 나뒹굴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반의 책상도 물론 마찬가지의 구조로, 애들이 구경하면서 자연스럽게 책상과 도시락을 넘어뜨리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어서! 우리의 찐! 따! 팀 구려스 똥의 차시체를 빵!빠레로 맞이해보겠습니다!
차~시체 차시체! 차~시체 차시체! 아~싸! 차시체! 차~시체시체시체!
차시체는 밥을 못!먹!어! 왜? 시~체!시체니!까!
차시체는 듀얼도 못!한!다! 왜? 시~체!시체니!까!
차!시!체! 차!시!체! 차!시!체! 차!시!체!
차시체의 집은 어디라~고? 관!짝!관!짝!과~안!짝!"
굴욕적인 노래와 함께 차현준이 걸어나왔다.
"이웅환!" "어머나, 시체가 말~을하네에~? 왜에에~? 시체자식아?"
"우리가 덱 바꾼 걸 어떻게든 들었나보군.
어떻게든 오늘 우리가 급식을 못 먹게 만들려고 함정 깔아둔 거 다 알아. 하지만 그것도 오늘까지다!"
"이여~얼, 근거없는 자신감 오져따리 지렸구요! 시체가 말이 많구나아~!"
"이기면 먹는 거 가지고 장난치는 걸 그만 둬." "그래? 그러지뭐어. 아.마.도?"
오늘도 현준의 듀얼 디스크는 낡디낡은 강철 시대의 마지막 모델, I2 프리덤 스완송이었다. I2 프리덤 시리즈는 어느 손을 주로 쓰든 구애받지 않도록 덱과 묘지를 놓는 자리가 똑같은 규격으로 되어 있었으며, 몬스터 존, 필드 존의 순서마저 자유롭게 정할 수 있었다. 심지어 청각 장애인용과 시각 장애인용 커스텀 모델을 내놓았을 정도로 '가장 자유롭고, 가장 평등한' 듀얼 디스크를 모토로 출시된 I2사의 야심작이었지만 KC사가 솔리드 비전으로 전개되는 듀얼 디스크를 내놓은 뒤로 I2사는 내리막길을 걸었고, 신 마스터 룰 적용과 동시에 듀얼 디스크를 포기한 채 카드 디자인에 전념하게 되었다. I2 프리덤 스완송은 2번과 4번 몬스터 존 위에 솔리드 비전을 구현해 엑스트라 몬스터 존을 쓸 수 있도록 한 제품, 즉 I2 듀얼 디스크의 황혼이었다.
그러나 웅환의 듀얼 디스크는 KC사의 최신작 중 하나인 KC 아크 수프림이었다. <유희왕 GX>의 패왕의 듀얼 디스크를 모델로 한 이 듀얼 디스크는 무게도 가벼웠을 뿐더러 솔리드 비전으로 전개된 몬스터 존을 회전시켜 듀얼 할 때 이외에도 흉기로 쓸 수 있는 무시무시한 물건이었다. KC 아크 프리덤은 듀얼 디스크계의 떠오르는 태양이자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폭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두 명의 디스크는 점심 듀얼에 '일몰과 일출의 대결'이라는 상징성을 부여하여 자금력을 과시할 뿐만 아니라 관객과 상대에게 팀 맨체스터가 영원한 1등이라는 프로파간다까지 심어줄 수 있었다. 그러나 덱을 바꿨다면서 살기어린 눈빛을 보이는 현준의 모습은 이런 무의식적 수단마저 동원한 웅환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듀얼!""
[이웅환: LP 4000]
[차현준: LP 4000]
(IP보기클릭)121.66.***.***
(IP보기클릭)210.99.***.***
당연히 신마룰입니다 | 17.10.19 13:54 | |
(IP보기클릭)223.39.***.***
그렇군요. 이전엔 이엠이엠이었는데 진공룡성이라니... 뭔가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하네요. 열심히 하시길! | 17.10.19 15:37 | |
(IP보기클릭)211.212.***.***
(IP보기클릭)210.99.***.***
아아 얼마나 쌈마이합니까 시대적 배경을 살리기 위해 급식체와 패드립을 추가하려고 노력해봤지만 1화까지는 이미 썼던 글을 덧붙이기도 했고... 뭣보다 잘 써지지가 않더라고요 나도 아재인가! 앙대! | 17.10.19 19:21 | |
(IP보기클릭)59.15.***.***
(IP보기클릭)210.99.***.***
원래 학교는 무법지대였습니다..는 반쯤 농담이지만, 학창 시절에 많이 느꼈어요. 선생님이라는 사람은 학생들을 전부 통솔하는 위치에 놓여 있지만 정작 그 위치에서 권한을 써서 반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어려운 위치라고. 공권력이라도 끌고 와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문제가 좀 나아진다고. 물론 급식 듀얼 사태는 학교 자체가 대놓고 양아치질을 묵인하는 상황이니 조금 다른 얘기지만요. | 17.10.19 21:3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