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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ected Ones - 59
흑과 백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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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까만 용의 날개가 펄럭였다. 그의 몸은 하얀 대지 위에 짙은 그늘을 그리며 나아갔다. 지천에 널린 눈과 똑같이 새하얀 색으로 온몸을 칠한 사악한 여우 한 마리를 발견한 그는, 잽싸게 칼 한 자루를 던졌다. 여우는 그 칼을 꼬리로 쳐냈다.
폭시 크리스타는 양을 발견하자, 그가 혼자 왔음을 확인하고 입맛을 다시듯 혀로 입술을 핥았다. 양은 징그러운 괴물을 보는 듯한 눈동자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홀로 찾아온 게냐. 제법 용감하구나."
"널 쓰러트리는데 몇 명이나 필요하지 않다."
"같은 초월체라 하더라도 힘은 내가 월등하다는 것을 잊었느냐?"
"그딴 건 아무래도 좋다. 누가 죽게되던간에 나는 결착을 내러 온 것이니까."
"후회할게다."
"시끄럽다. 요물."
양은 날개를 접고 지상으로 내려갔다. 양과 폭시는 말없이 왼팔을 펼쳐 카드를 올릴 판자를 만들어냈다.
"듀얼."
담백한 목소리로 둘은 다시금 싸움의 시작을 선언했다.
"선공은 받아가마."
여인은 손끝으로 스치듯이 카드를 건드렸고, 어느새 뽀얀 흰색이 감도는 손가락 사이로 카드가 다섯이나 걸려 있었다.
"필드 마법 [드래고닉 D] 발동."
폭시가 처음 내놓은 카드는 십자 무늬가 그려진 초록색 카드 한 장. 그녀는 그것을 듀얼디스크 끝단에 찔러넣었다.
"효과를 발동하마."
[드래고닉 D]의 효과는 자신의 패 / 필드의 카드 1장을 골라 파괴하고, 덱에서 "진룡" 카드 1장을 패에 넣는 것. 양은 잽싸게 카드 한 장을 내질러 그녀를 가로막았다.
"체인2. 패에서 [유령토끼]를 묘지로 보내고 효과 발동. [드래고닉 D]를 파괴하겠다."
폭시의 앞으로 부적을 든 흰 머리의 꼬마 아이가 나타났다. 그 아이는 손에 든 부적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부적은 새파랗게 빛나며 불꽃이 붙어 타올랐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폭시를 향해 달려들었고, 폭시는 꼬리 두 개로 바람을 불어 불을 꺼뜨렸다.
"필드 마법 [유사공간] 발동."
"칫."
"묘지에서 [드래고닉 D]를 제외하고 [유사공간]의 효과 발동. 제외한 카드와 같은 이름과 효과를 얻게 되니라."
폭시는 양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효과를 발동시키기로 했다.
"[유사 공간] 효과 발동. 패에 있는 [진룡황 바하루스토스F]를 파괴하고 덱에서 [진룡검황 마스터P]를 가져오겠노라."
패를 하나 버리고 덱에서 카드를 하나 가져온다. 일련의 행동을 마친 폭시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파괴된 [진룡황 바하루스토스F]의 효과 발동. 덱에서 [진룡봉황 마리암네]( LV 9 / DEF 2100 )를 특수 소환하도록 하지."
폭시의 뒷편에 유리창이 깨지듯, 허공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투명한 벽은 부숴졌다. 벽 너머의 공간은 새까만 우주처럼 별이 총총히 맺힌 어두운 공간. 그곳에서 날개 여섯을 나비처럼 부드럽게 퍼득이며 거대한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새의 몸집은 너무나도 컸기에, 한 눈에 잡기 힘들었다. 마리암네의 몸은 잔잔한 은빛이 감도는 새하얀 깃털로 뒤덮였고, 부드러운 금발이 그의 목 뒤를 덮었다.
"[진룡의 계승] 발동."
폭시는 카드를 뽑기 바쁘게 또다시 손을 움직였다.
"마리암네와 계승을 릴리스."
서로 색이 다른 카드를 집어들고 여인이 말을 이어갔다. 카드를 차례로 묘지로 보내자, 하늘에 금이 가더니 그녀의 앞에 커다란 검 한 자루가 떨어져내렸다.
"생명이 태어나기 전, 그 자리를 지키던 것은 오직 재앙 뿐."
새하얀 검을 본 마리암네는 여섯 날개를 몸 안쪽으로 붙이고서 턱을 가슴팍에 붙였다. 새는 둥그런 알처럼 변했다. 그의 머리에서 샛노란 금발이 하얀 깃털을 타고 흘러내렸고, 날개에선 뼈가 뚜득거리며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 뒤는 재앙이 일어난 것만 같았다. 새하얀 마리암네의 몸이 붉은 빛이 차오르면서 돌연히 머리가 터져버린 것이었다.
"혼돈을 야기하거라. [진룡검황 마스터P]( LV 8 / ATK 2950 )"
진득한 피냄새가 자욱히 퍼졌다. 피칠갑이 된 마리암네의 몸뚱이 아래로, 그와 똑같은 새하얀 깃털 갑옷을 입고 찰랑거리는 금발을 늘어트린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지면에 꽂힌 검을 빼어들었다.
그의 모습은 천사와도 같았다. 오른손에는 두터운 검 한 자루가, 왼손에는 별을 그려낸 단단한 방패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그가 나타난 자리, 피가 솟구치고 살점이 흐르는 새빨간 지옥과는 너무나도 다른 신성하고 경건한 모습이었다.
"몬스터와 마법을 릴리스한 마스터P는 몬스터와 마법의 효과를 받지 않느니라."
3000이나 다름없는 공격력과 몬스터와 마법에 대한 효과 내성. 함정 카드는 세트한 턴에 발동할 수 없으니, 지금 당장은 무적이나 다름없는 카드였다.
"카드를 하나 세트. 차례를 마치마."
여인은 여유로운 태도로 양에게 턴을 넘겼다. 그녀의 필드에는 용을 사냥할 준비가 완료되었다.
--- 폭시 크리스타 ---
몬스터 : □[진룡검황 마스터P]
마법 / 함정 : □[유사 공간] + ■
패 ■
--- --- ---
"내 턴이다. 드로."
카드를 뽑아드는 양.
'마스터P를 파괴하려면 함정 카드를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이제 막 첫번째 턴을 맞이한 양에게 그런 일은 불가능 하다.
'아니. 꼭 그렇지만도 않겠지.'
양은 초록빛 카드 한 장을 내밀었다.
"마법 카드 [세피라의 신의] 발동. 덱에서 [세피라 트라 그라마톤]을 패에 가져온다."
"호오."
그가 꺼내든 것은 폭시 또한 알고있는 카드였다.
"스케일 1 [보룡성-세피라후우시]와 스케일 5 [세피라 트라 그라마톤]으로 펜듈럼 스케일을 세팅."
방금 막 덱에서 가져온 카드와 패에 있던 카드 하나를 듀얼디스크 양 끝단에 올리는 양. 그가 올려놓은 두 카드에서 밝은 빛을 내는 용 두 마리가 빠져나왔다. 한 마리는 회색빛의 도자기같은 비늘을 가진 자그마한 용. 다른 하나는 반쪽은 희고, 반쪽은 검게 양분된 산처럼 커다란 용이었다.
"그라마톤의 펜듈럼 효과 발동. 덱에서 [비룡성-세피라시우고]를 엑스트라 덱으로 보내는 것으로, 세피라시우고의 펜듈럼 스케일 7을 그라마톤에게 덧씌운다."
그라마톤의 머리 위로 새하얗게 숫자 7이 떠올랐다. 이것으로 양은 레벨2에서 6까지, "룡성" 몬스터를 자유롭게 소환할 수 있게 되었다.
"울부짖어라 더렵혀진 영혼이여. 가련하게 떨리며 머나먼 곳에서 내려 오너라."
세피라후우시와 그라마톤, 두 용이 하늘을 향해 턱을 올렸다. 새파란 하늘을 향해 입을 찢고 포효했다. 울음 소리에 천지가 뒤흔들렸고, 하늘에 일자로 상처가 생겼다. 그 상처는 점점 더 벌어지더니, 결국에는 타원형으로 주욱 늘어졌다. 그 중심에서 한 줄기의 굵은 빛이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펜듈럼 소환. [비룡성-세피라시우고]( LV 6 / DEF 2600 )"
빛은 점점 굳어지며 형상을 갖게 되었다. 소의 몸통에 새하얀 깃털이 수북한 커다란 날개가 돋아났다. 용은 날개를 허공에 휘적거리며 유유히 떠올랐다.
"내가 준 힘을 버리고 취한 것이 바로 그 세피라. 아직도 너의 얼굴 절반은 내 손결이 닿아있건만, 너는 정말로 내 손아귀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느냐?"
폭시는 양의 오른쪽 얼굴, 새까만 뿔과 이빨이 튀어나온 원시적인 생김새의 가면을 가리켰다.
"내가 아직도 네가 만든 가면에 조종당한다고 생각하나?"
"너는 내게 칼을 겨누고는 있어도, 혈관속에는 나의 피가 흐르고 있지 않느냐."
"흥. 시원찮은 소릴."
양은 코웃음치며 폭시의 말을 덮어버렸다.
"세피라시우고의 효과 발동. 덱에서 함정 카드 [세피라의 성전]을 가져온다."
카드의 이름을 들은 순간, 폭시의 눈이 가느다랗게 뜨였다. 그 아래로는 입꼬리가 살짝 위로 향했다.
"패에서 [세피라의 성전] 발동. 세피라후우시와 마스터P를 파괴하겠다."
[세피라의 성전]은 함정 카드지만, 자신 펜듈럼 존에 "세피라" 카드가 2장 존재하면 패에서 발동할 수 있다. 그 효과는 단순하게도, 자신의 "세피라" 카드와 상대 필드의 카드 하나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녀석은 몬스터 효과도, 마법 효과도 받지 않지만 함정 효과는 받는다."
"가만히 파괴당할 것 같더냐? 묘지에 있는 [진룡의 계승]을 제외하고 마스터P의 효과를 발동하겠노라."
검사가 검을 빼어들고 날개를 활짝 펼쳤다. 새하얀 천사의 날개를 퍼득이며, 천사는 하늘 높게 치솟았다.
"[세피라 트라 그라마톤]을 파괴하겠다."
새하얀 날개를 지닌 검사가 양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천사의 검이 용의 심장을 찌르려 했으나, 그라마톤은 그보다 먼저 손을 움직였다. 아주 찰나의 순간, 그라마톤의 뭉툭한 발톱이 마스터P의 두터운 갑옷을 뚫고 그의 장기를 짓뭉개 놓았다. 그러나 중상을 입기는 그라마톤도 마찬가지, 그의 검이 용의 가슴을 찢어발겼다.
격통을 느끼며 포효하는 용. 그라마톤은 손아귀에 마스터P를 쥐고는 으꺠버렸다. 갑옷이 찌그러지는 소리와 마찰음이 텅 터지더니, 새빨간 핏물이 용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패배하여 죽음을 맞이한 천사의 분노는 또다른 용을 덮쳤다. 잿빛이 흐르는 용 한 마리의 머리 위로, 천사가 잡았던 찬란한 빛깔의 검이 떨어져내렸다. 용의 머리가 둘로 쪼개졌다.
"카드를 두 장 세트. 턴 엔드다."
비록 폭시에게 데미지는 주지 못 했으나, 괴물과도 같던 마스터P를 제거했다.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양은 그렇게 생각하고 턴을 마쳤으나, 폭시는 깔깔 웃으며 그 생각을 뒤집어 엎었다.
"지속 함정 [진룡황의 부활] 발동! [진룡검황 마스터P]( LV 8 / DEF 2950 )를 특수 소환하겠노라!"
"진룡황이 아니라 마스터P를 소생시키겠다?"
양은 당황했다. [진룡황의 부활]은 "진룡" 몬스터를 소생시키는 것이니 마스터P를 부황시킨다 하더라도 문제는 없다. 그러나 그녀가 지금 그 카드를 구태여 뽑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의 묘지에는 그녀가 주력으로 삼는 레벨9 '진룡' 몬스터가 둘이나 있지 않던가.
'어드밴스 소환이 아니라 특수 소환으로 불러냈으니, 몬스터 효과나 마법 효과에 대한 내성도 없다. 말하자면 이빨빠진 호랑이나 마찬가지.'
이점이라면 공격력이 다른 몬스터들보다 살짝 높다는 것 정도. 양은 폭시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 폭시 크리스타 ---
몬스터 : □[진룡검황 마스터P]
마법 / 함정 : □[유사 공간] + □[진룡황의 부활]
패 ■
--- --- ---
--- 양 ---
몬스터 : □[비룡성-세피라시우고]
마법 / 함정 : ■■
패 ■
--- --- ---
"후후후. 꼬마야. 너는 모르겠지."
여인은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웃음 소리를 냈다.
"내가 언제나처럼 엑시즈에 전력을 다하며 싸울 거라 생각했느냐?"
"뭐라고."
"듀얼이란 흐르는 물과도 같은 것."
폭시는 웃는 표정을 숨기려 입을 가리고 있었으나, 그녀의 둥글게 휜 눈매가 양에게 조소를 짓고 있다는 것을 보였다.
"전략을 간파당하고, 예상대로 흘러가는 일이 있으면 안 된다. 듀얼이란 항상 즐거워야 하지 않겠느냐."
"즐거움을 추구한다. 지금 네년과 나의 듀얼에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매정한 말을 하는구나. 나에게 있어서 듀얼이란 항상 즐거운 것이니라."
"뭘 말하고 싶은거냐."
"만약 이미 점지된 미래가 있고, 그것을 따라 그저 흘러가기만 한다면 이 얼마나 재미없고 딱한 일이겠느냐."
폭시는 혐오감을 드러내며, 입가에서 손을 치웠다. 언제 웃었냐는 듯 그녀의 입가에선 전혀 웃음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 세상 모든 것은 규칙성없이 난잡하게, 혼재해야 하지."
그녀는 마침내 카드를 잡았다.
"사설이 길어졌구나."
여인은 카드를 뽑아 확인했다.
"자 다시금 시작하자꾸나. 즐거운 듀얼을."
……
10월 금제가 먼저인가.
듀얼이 끝나는게 먼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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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코코. 수정해야겠네요. | 17.09.15 22:4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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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했습니다. 신의 이녀석. 쓸데없는 디메리트나 달고 있고말야. | 17.09.15 22:5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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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게 웬걸. 아직 9월. 9월 중순이었던 겁니다. | 17.09.15 22:5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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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덱구성은 진룡황+진룡이었다고 한다 | 17.09.15 23:1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