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lected Ones - 53
태양 아래에 2
……
환하게 피어난 해바라기 꽃밭은 새빨간 불꽃이 지나간 이래로 새까만 잿더미가 되었다. 두 남자가 밟고있는 땅은 서서히 지상을 향해 떨어져 갔고, 차가운 바람이 그들을 칼날처럼 스쳐 지나갔다. 바람이 불씨를 꺼뜨려서야 새까만 재를 뒤집어 쓴 검은 머리 남자는 눈을 떴다.
"메인 페이즈가 사라졌으니, 배틀 페이즈. 맞지?"
카드를 뽑고, 몬스터를 내놓으려던 그를 초아의 불꽃이 덮쳤다. 그의 메인 페이즈는 송두리째 말라버리고, 스킵되었다.
"몬스터가 없으니 배틀 종료."
소환한 몬스터도 없겠다. 코트 메달리아는 배틀 페이즈를 종료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순간, 패에서 함정 카드 [길항승부]발동."
"뭣?"
"내 필드에 카드가 없으면 [길항승부]는 패에서도 발동할 수 있어."
코트 메달리아는 함정 카드를 세트하지도 않고, 바로 패에서 발동시켰다. 그 카드의 발동 조건도 효과도 초아는 이미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 필드의 카드의 수와 같아지도록, 상대는 자신의 필드의 카드를 고르고 뒷면 표시로 제외해야 한다. 코트 메달리아의 필드에는 지금 발동하고 효과 처리를 진행중인 [길항승부] 하나 뿐이니, 초아는 카드 하나만을 남길 수 있는 것이다.
"자. 카드를 하나만 남겨주셔야 겠어. 초아."
"[파워 툴 드래곤]( LV 7 / ATK 2300 )을 남겨두겠다."
"그럼 나머지 카드는 뒷면으로 제외되."
초아의 필드 한 켠에서 반짝이던 두 초록빛 카드. [요도 죽도]와 [불타는 죽도]가 소멸했다.
"이걸로 다시 내 메인 페이즈를 날려버리지는 못 하겠지."
초아는 이미 [요도 죽도]를 두 장이나 사용했으니, 설령 [불타는 죽도]가 여러 장 있다고 하더라도 다시 발동하긴 어려울 것이 뻔했다. 코트는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 못을 박으며 그의 카드를 치웠다.
"패에 있는 [문장수 레오]를 버리고 [문장수 암피스바에나]( LV 4 / ATK 1700 ) 특수 소환."
허공에 에메랄드빛 문장이 새겨졌다. 그 문장을 중심으로, 연녹색 비늘을 가진 용의 머리 두 개가 삐져나왔다. 용의 몸에는 상체만 있으며, 다리 없이 몸통을 중심으로 머리가 둘 이어져 있었다.
"묘지로 보내진 레오의 효과 발동. 덱에서 [문장수 두 머리의 이글]을 가져온다."
"1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그 카드를 쓰는건가."
"그러는 너도 건 달라지지 않았지. 우리는 모두 과거에 묶여있어."
코트는 레오의 효과로 덱에서 꺼낸 카드를 듀얼디스크에 강타했다.
"[문장수 두 머리의 이글]( LV 4 / ATK 1200 ) 소환."
머리가 둘 달린 용이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허공에 문장이 새겨졌다. 문장은 주황색으로, 점점 크기가 커지며 굳어서 딱딱해졌고, 머리가 둘 달린 새의 가슴이 되었다.
"레벨4 암피스바에나와 이글을 오버레이."
코트의 손끝을 따라, 두 문장수의 몸에 새겨진 문장이 물에 탄 것처럼 흔들렸다. 문장이 사라진 문장수는 형체가 무너져 액체처럼 흐물거렸다. 그들의 몸에서 빠져나온 문장은 고유의 색깔만이 남았고, 코트는 그것을 섞었다. 두 색은 서로 뒤엉켰다. 코트는 새롭게 만들어진 색을 손가락 끝에 찍어, 허공에 숫자를 썼다.
"엑시즈 소환. [No.41 이수마수 바그스카]( Rank 4 / DEF 2000 )"
코트가 쓴 숫자 41에 해당하는 넘버즈가 나타났다. 크기가 거대한 코끼리 한 마리. 그 주변에 수많은 배게를 놔두고 엎어져 잠을 자는 기이한 괴물이었다.
"바그스카가 수비 표시로 존재할 때, 필드의 모든 몬스터는 수비 표시가 되지."
"[파워 툴 드래곤]( LV 7 / ATK 2300 → DEF 2500 )은 수비 표시가 된다."
"카드를 하나 세트. 턴 엔드야."
--- 초아 ( LP : 2000 ) ---
몬스터 : □[파워 툴 드래곤]
마법 / 함정 :
패 ■■■
--- --- ---
--- 코트 메달리아 ---
몬스터 : □[No.41 이수마수 바그스카]
마법 / 함정 : ■
패 ■■
--- --- ---
초아는 품 속에서 담배 한 개피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라이터를 마저 꺼내 그 끝에 불을 붙였다. 새하얀 끝이 주황빛에서 검정색으로 변해가며 짙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상황이 좋지 않아.'
바그스카가 수비 표시로 존재하는 이상 모든 몬스터는 수비 표시가 된다. 우선 전투 파괴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걸로 끝이 아니다. 바구스카는 몬스터들을 수비 표시로 돌리고, 수비 표시 몬스터가 발동한 효과를 무효화 시키기까지 한다.
'공격도 못 해. 효과도 맘대로 못 써. 간단하게 튀어나오는 주제에 별 이상한 효과를 다 가지고 있구만.'
공격력이라면 파워 툴이 근소하게 더 높다. 하지만 그 기회를 살릴 수가 없다.
'그냥 턴을 넘겼다가, 바그스카를 공격 표시로 하고 파워툴을 파괴할 몬스터를 뽑으면 그대로 난 끝장이다.'
[망룡의 전율 - 데스트루도]를 사용한 대가로 초아의 라이프는 고작 2000밖에 남지 않았다. 바그스카한테 직접 공격이라도 당한다면 그대로 초아의 패배가 결정된다. 초아는 심각한 표정으로 담배를 태우고,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어쩔 수 있나. 뽑아야지. 역전의 한 수.'
"내 턴. 드로."
초아는 카드를 하나 잡아당겼다. 초록색 카드였다.
'빙고.'
초아는 그것을 그대로 듀얼 웨펀에 찔러 넣었다.
"마법 카드 [어리석은 매장] 발동. [망룡의 전율 - 데스트루도]를 묘지로 보낸다."
"흐음? 또 그 카드를 쓰려고?"
"[AD 체인저]( LV 1 / ATK 100 → DEF 100 ) 소환."
초아의 앞에 커다란 깃발 두 개를 든 난쟁이가 나타났다. 키는 작지만 근육이 탄탄하게 잡힌 것이 특징적이었다.
"라이프를 절반 지불하고 튜너 몬스터 [망룡의 전율 - 데스트루도]( LV 7 → 6 / DEF 3000 ) 소생."
깃발을 든 난쟁이 옆에 비틀거리며 용 한 마리가 기어 올라왔다. 힘겹게 숨을 내쉬는 검붉은 용. 코트는 자신의 해바라기밭을 엉망으로 망친 원흉인 그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다시 싱크로 소환을 해봤자 바그스카에 의해 수비 표시가 되. 그러면 이제 효과를 발동하는 것도 못 하겠지."
"글쎄다. 그건 지켜봐야 알 일이지."
초아는 코트의 말을 가볍게 넘겨버리고 생각을 행동에 옮겼다.
"레벨1 AD 체인저에게 레벨6이 된 데스트루도를 튜닝."
피빛의 용이 날개를 흐느적 펼쳤다.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날아 오르는 용 한 마리. 근육질의 난쟁이는 용의 꼬리를 잡고 그를 따랐다. 용이 초아와 코트가 있는 곳을 향해 불꽃을 쏘아보냈고, AD 체인저는 그 속으로 뛰어내렸다. 그의 몸은 빛나는 별이 되었고, 새빨간 불꽃은 서커스에 쓰이는 화염링처럼 변했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지난 별빛은 새까맣게 탄 상태로 지면을 밟았다.
"싱크로 소환. [사룡성-가이저]( LV 7 / DEF 2100 )"
그가 불러낸 것은 포악한 괴물 한 마리. 몸은 검푸른 비늘로 뒤덮였고, 눈은 새빨갛게 이글이글 타올랐다. 가이저는 칼날처럼 날카로운 이빨들이 수북히 쌓인 입을 열고 괴성을 내질렀다.
"싱크로 소재가 된 데스트루도는 덱 맨 밑으로 되돌아간다."
사용한 데스트루도는 묘지로 가지 않고, 덱으로 되돌아 간다.
한 편, 코트는 폭력적이며 무자비한 짐승이 으르렁 거리기만 할 뿐, 자신에게 다가오지는 못 한다는 사실에 코웃음 쳤다.
"가이저도 수비 표시. 효과는 쓸 수 없어."
"잊은건가. 내가 싱크로 소재로 사용한 카드를."
"흠?"
"묘지에서 [AD 체인저]를 제외하고 효과 발동. [No.41 이수마수 바그스카]( Rank 4 / DEF 2000 → ATK 2100 )의 표시 형식을 변경한다."
"호오."
"이걸로 내 몬스터들은 다시금 효과를 쓸 수 있게 됐지."
초아는 방금 막 소환한 새하얀 몬스터를 집어 들었다.
"가이저의 효과 발동. 가이저 자신과 상대 필드의 카드 하나를 파괴한다."
"공격 표시가 된 바그스카는 효과 대상이 되지 않아."
"애초에 내 목적은 그게 아냐. 내가 파괴할 건 마법 / 함정 존에 세트 카드다."
당장이라도 날뛰고 싶은 심정을 억지로 추스리던 가이저는 "파괴"라는 한 마디를 듣자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기다란 몸통에 달린 다리 넷을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코트를 향해 달려가, 그의 앞에 있는 카드를 향하여 주먹을 내질렀다. 이름 모를 분홍빛 카드 한 장이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파괴된 카드는 마치 가시처럼 변해, 가이저의 살을 찔렀다. 피를 내뿜는 괴룡. 그는 그 자리에 쓰러지며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파괴된 가이저의 효과 발동. 덱에서 튜너 몬스터 [어버이해마]( LV 7 / DEF 1400 )를 특수 소환."
사악한 마룡의 피는 새까만 잿더미 위를 타고 흘렀다. 역한 냄새를 풍기는 피는 강물처럼 흘러 흘러 초아의 발 아래로 다가왔다. 초아를 삼킬것만 같은 폐수의 무리는 돌연히 솟구쳐 올랐다. 지면에 수직으로 올라온 핏물은 해마의 모습을 하였다. 새까맣고 더러운 빛도 사라지고, 연한 주황빛만이 해마의 피부로 남았다.
"[어버이해마]( LV 7 → 4 )의 효과 발동. 자신의 레벨을 낮추고, 레벨 하나 당 [해마 토큰]( LV 1 / DEF 200 ) 한 마리를 특수 소환하지!"
해마가 기다란 주둥이로 보글보글 거품을 뿜어냈다. 방울방울 맺힌 거품이 바람결에 톡톡 터지며, 자그마한 새끼 해마가 셋이나 어버이의 곁에 나타났다.
"레벨1 해마 토큰에게 레벨4가 된 어버이해마를 튜닝!"
새끼 해마가 어버이 곁에 찰싹 달라붙어, 주둥이를 툭 내밀었다. 커다란 해마도 똑같이 주둥이를 내밀며 방울을 뿜어냈다. 거품이 그들의 몸을 감싸는 유리빛 베일이 되었다. 내부의 모습을 난반사하여 어지롭게 보이도록 하는 거품들. 그 속에서 별빛 하나가 찬란히 반짝였다.
"싱크로 소환. [액셀 싱크론]( LV 5 / DEF 2100 )"
거품들의 위로 새빨간 불꽃이 타올랐다. 불꽃의 발원지에선 새까만 연기가 팍 피어오르고, 타이어 타는 냄새가 풍겨왔다. 그 원흉은 쌔앵 속도를 높혀 달렸고, 거품벽을 가르며 나타났다. 빨간색과 하얀색이 교대로 나타나는 커다란 오토바이 한 대였다.
"덱에서 [싱크론 익스플로러]를 묘지로 보내고 효과 발동. [액셀 싱크론]( LV 5 → 7 )의 레벨을 높히겠다."
"레벨을 낮췄다가 높혔다가. 아주 바쁜데."
"레벨1 해마 토큰 두 마리에 레벨7이 된 액셀 싱크론을 튜닝!"
굉음을 내며 달려가는 오토바이. 그의 몸이 새빨갛게 불타오르며, 보글보글 올라오는 거품들을 터트렸다. 새끼 해마 두 마리가 그의 등 뒤를 따라 헤엄쳤다. 뜨겁게 타오르는 레일에 화염의 링이 일곱이나 만들어졌고, 해마들은 그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갔다. 마지막 화염 고리를 지나는 순간, 눈이 멀어버릴 듯한 강렬한 섬광이 터졌다.
"차갑게 얼어붙은 심장. 요동치거라. 싱크로 소환! [빙결계의 용 트리슈라](LV 9 / ATK 2700 )"
화염은 모두 말라버렸다. 새까만 세상 위로 은은한 푸른 빛의 투명한 살얼음이 깔렸다. 굉음이 터져나온, 섬광이 반짝인 곳에는 별처럼 생긴 가슴을 내민 용 한 마리가 커다란 얼음 날개를 휘저으며 떠있다. 용의 머리는 셋으로, 그 하나 하나가 코트를 잡아먹을 수 있을만큼 충분히 거대했다.
얼어붙은 것은 두 남자가 밟고 있는 땅으로 끝이 아니었다. 땅을 딛고있는 발에서 시작해, 코트의 몸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코트는 새하얀 숨결을 뿜어내며 초아를 보았다.
"이걸로 끝이다. 코트."
하늘 위에서, 세 개의 머리가 코트를 노려보았다.
……
오랜만이에요 여러분. 백만년만이던가요.
어제는 못 썼던 이유가. 뭐더라. 뭐 아무튼 이유가 있지 않았을 까요.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아님 말고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