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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ected Ones - 08
Shark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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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라알!"
파란 머리 남성이 사정없이 벽을 발로 찼다. 후드를 뒤집어 쓴 이빨이 뾰족뾰족한 사내, SS다. 가온에게 듀얼로 패배한 직후,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귀환했다.
"젠자아아앙!"
사라질 때는 가온에게 크게 티를 내지 않았건만, 패배한 것이 분했던 걸까 주변 사물에 분풀이를 하고있다.
"진정하거라. 이기냐 지냐, 그게 중요한 승부가 아니였으니."
"그래도 진 건 분하다고! 링커만 뽑았음 그냥 이기는 건데!"
"뭘 그렇게 분해하는 게냐. 애시당초 이기기 위해 아득바득 이를 갈 필요가 없는 걸 알기에 링커를 부르지 않은 것 아니더냐?"
"그건 그렇지만."
팍. 그의 발이 벽에 꽂혔다. 그가 미적거리며 발을 빼내자, 부숴진 돌 파편을 대충 털어서 버려버린다.
"링커도 안 뽑은 놈한테 당했다는 게 분해 죽겠다고!"
"무엇보다도 그 듀얼로 얻은 것이 크단다."
"뭘 얻었다는 건데?"
"천금같은 정보."
"그래. 확실하게 해보자. 그녀석 내가 아무리 환경을 조성해줘도 링커를 안 뽑던데. 대체 이유가 뭐야?"
"그 아이가 링커를 안 뽑은 이유. 쉽게 설명하면 이렇지."
새까만 머리를 늘어트린 여성이 SS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이마를 쿡쿡 찔렀다.
"링커를 뽑을 수 없던게야."
"뭐? 그게 뭔 헛소리야 할매."
"이눔. 할매는 누가 할매야."
여성이 SS의 이마에 꿀밤을 박아넣었다. 그늘에서 벗어나 드러난 여성의 얼굴은 늙음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처녀의 얼굴이었다.
"그래서 그놈이 링커를 못 뽑은 이유는 뭔데?"
"그 아이와 직접 마주한 너는 잘 알고 있을테지. 그 아이의 영혼이 갈기갈기 찢긴것처럼, 그 아이의 내부에서 가만히 못 있고 엉망으로 흩어졌다는 걸."
"그래. 한 눈에 바로 알 수 있었지."
"그래서 너는 엑시즈 소환을 하며, 네 힘을 바다의 형태로 방출시켰다. 네 힘의 압력으로 그 아이를 짓눌러 영혼이 고정되도록 했지?"
"그랬었지. 아무리 영혼이 흩어져있다고 한들, 그 정도 압력으로 누르면 정상적으로 되돌아오는 법이야. 링커를 뽑을 수 있게 상을 다 차려줬는데 숟갈질도 못 하니 원. 얼마나 약해빠진 거야."
"어느정도는 정답이다. 하지만 대상이 약간 잘못됬구나."
"뭔 대상?"
"모자랐던 건 너의 힘이지?"
"아아?"
SS는 눈 앞의 여성이 자신을 놀리는 걸까 생각하며 찡그린 표정을 지었다. 어린애처럼 즉각 반응하는 SS를 일부러 골리려는 듯 여성은 애둘러 설명한다.
"너의 방법은 분명히 성공해야 했단다. 이론상으로는 말이지."
"그런데 왜 실패했다는 거야."
"압력이 부족했던 게다."
"뭐라고?"
"완전히 짓뭉개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풀어주는 것도 아닌. 고장난 솥마냥 증기를 맞고 뚜껑을 씰룩거렸던 게지."
"할망구. 지금 뚫린 입이라고 개소리를……."
SS가 화풀이로 여성을 한 대 치려고 하는 순간, 그보다 빨리 여성이 손이 그의 팔 안쪽을 잡아 반댓방향으로 꺾어버렸다. 순식간에 자기 뒤로 자리를 옮긴 여성에게 경악하며 그가 고개를 돌리자, 여성이 그의 팔을 완전히 꺾어 부러트려버렸다.
"윽. 아아아악!"
팔이 뒤틀려 뽑혀버린 것 같은 고통이 뒤따랐다. SS가 일그러진 자기 팔을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자 여성은 혀를 끌끌 찼다.
"버르장머리 없기는 여전하구나. 어릴적에나 귀엽지. 지금 그러면 추하기만 하단다."
"그으으윽."
"계속 설명해보도록 할까?"
통증을 호소하는 SS. 여인은 그를 안중에도 안 두고 말을 이어간다.
"그 아이가 링커를 뽑을 수 있도록 너는 힘을 방출해서 그 애를 압박했다. 하지만 압박하는 힘이 모자랐다."
"크윽."
"즉 너의 힘이 모자랐다는 거다. 샤크 슬레이."
"그래서 뭐냐……. 더 큰 힘을 짜내라고?"
"아니.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본들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아."
"그럼!"
"하지만 시도는 좋았단다."
SS의 오른팔이 뿌각거리며 뼈가 원위치로 되돌아가며 회복됬다. 여성은 무릎을 굽혀 그와 얼굴을 마주한다.
"그렇지만 이번 일로 확신했어. 이 방법은 효율이 별로라고."
"그럼 뭐 뾰족한 수가 있는거냐?"
"아니. 아직 없네."
"무책임하긴."
"하지만 알아내고자 하는 건 충분히 알아냈단다."
"뭘? 그놈이 링커를 못 뽑는다는 거? 내가 용을 써도 그놈이 링커를 뽑게하지 못 한다는 거?"
"그 아이가 내 목적에 부합하다는 걸."
"그게 무슨……."
"여기서부턴 비밀. 쉽게 가르쳐줄 수는 없구나."
"그으으윽. 그게 뭔 헛소리냐고!"
"그러지 말고. 돌아가도록 할까. SS?"
여인이 손짓하자, SS를 가온의 앞에서 이 장소에 데려올 때 보였던 검정색 소용돌이가 일었다. 그녀는 벽면에 검정 소용돌이를 붙여 새까만 틈이 펼쳐지게 했다.
'교활한 여우같은 년.'
SS는 자신의 팔 상태가 이제 정상으로 돌아왔음을 확인했다. 자신보다 먼저 검정색 틈을 통해 본거지로 되돌아간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새까만 머리, 새까만 눈동자, 새까만 옷가지. 그리고 새하얀 아홉 갈래 꼬리. 새하얀 꼬리털이 지워지자 그는 그녀의 이름을 증오하며 불렀다.
"폭시."
……
"그런건 못 봤는데?"
"불기둥 치솟는 거는 몇 번 본 것 같다."
SS와의 듀얼이 끝나고 가온은 힘이 다리에 풀려 풀썩 쓰러졌다. 하지만 그건 무릎 아래로만 힘이 들어가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겉에 보이는 상처는 없다. 내적으로 축적된 충격이 커서 잠시 쉬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시간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회복되는대로 가온은 시온과 클린트가 있는 탕비실로 곧장 돌아가자, 그들은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오븐에서 닭을 꺼냈다.
"바다가 보이지는 않았냐니."
"만약 그랬음 불기둥보다 그게 더 선명하게 기억났겠지."
둘에게 자신이 SS와 듀얼을 하던 도중, 솔리드 비전으로 배경이 바다가 되지 않았느냐고 묻자 되돌아온 대답은 그랬다. 둘은 바다같은 것은 보지 못 했다고 말한다.
'그럼 내가 봤던 건 대체 뭐지?'
헛것을 보았을리는 없다. 몸 전체에 물속을 헤엄치는 듯한 느낌이 감돌았고, SS도 그들이 물 속에 잠겨있음을 시인했다.
'바다가 있던 건 분명해. 그런데 다른 녀석들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니.'
어쩌면 SS가 말했던 대로, 그 바다는 SS가 자신의 힘을 방출해내 보이는 것이라, 그와 싸우던 가온밖에 보지 못 한 것일수도 있다.
'도대체가 머리로 이해하지 못 할 일 뿐이네.'
SS가 누구였냐고 묻는 시온과 클린트에게는 "그냥 나한테 듀얼을 신청하러 온 처음 보는 사람이다." 가온은 그렇게 설명했다.
"그럼 그릇이나 준비하셔."
어느덧 클린트가 요리하던 닭이 다시금 도마 위로 올라왔다. 매운 향이 잔뜩 서려있는 붉은빛이 감도는 찬란한 모습이었다.
"우선 다리."
뜨거운 닭다리를 조심조심 잡으며 시온은 칼을 가져갔다. 다리살에 칼을 대 가르더니, 어느정도 내려간 다음 왼주먹으로 칼등을 퍽 쳐버린다. 그러자 칼이 다리를 깔끔하게 잘라냈다. 식칼이 지나간 다리 단면에서 폭 익은 속살이 보였다.
"부드럽게 잘리네."
잘 익은 닭은 칼이 닿는 족족 주욱주욱 잘려나갔다. 온갖 조미료가 뭉친 향이 남자들을 압도했다.
'나나 스타 선생님이 하는 거랑은 비교가 안 된다니까.'
보건실 교사를 맡고있는 스타의 요리와 비교하면 천지차이다. 가끔 그녀가 주방에 들어갈 일이 있으면 가온이 그녀를 막 서툰 실력으로 엉망진창으로 요리를 하기도 했다. 시온이 만들어낸 요리는 그것들과는 비주얼부터가 크게 달랐다.
가온과 클린트는 시온이 잘라낸 닭고기들을 접시에 담아 식기와 함께 식당 테이블에 가져갔다. 탕비실 바로 옆 방이 식당이니 몇 걸음만 걸어가도 되는 구조였다.
"잘 먹겠습니다."
피곤함을 잊고 지금은 시온이 만들어낸 예술품에 기뻐하기로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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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즈키엘 "재수가 뭐요?" | 17.07.06 23:5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