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투쟁을 좋아했던 침울한 심령아,
박차로 네 열정을 불러일으키던 희망은 더 이상
너를 올라탈 마음이 없다! 스스럼없이 드러누워라,
땅이 팬 곳마다 비틀거리는 늙은 말이여.
-샤를 보들레르-
……
Selected One - 45
소멸의 애착
……
"저의 턴. 드로."
새하얀 머리의 남자는 살며시 카드 한 장을 뽑아들었다. 가온과 혜르의 듀얼은 이미 시작되었고 가온은 선공을 차례를 마쳐, 혜르의 후공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의 듀얼디스크에 출력되는 필드의 상황. 혜르는 그것을 흘낏 쳐다본다.
--- 가온 ---
몬스터 : □[초중검성 무사-C] + □[초중황신 스사노-O]
마법 / 함정 :
패 □[초중무사소울 파이어 아머] + ■■
--- --- ---
가온은 수비력 3800의 거대한 몬스터를 소환했다. 그럴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혜르는 자신의 패를 조합하여 지금 상황을 타개할 계책을 내놓는다. 그것은 절반은 주황색 그리고 절반은 초록색인 기묘한 색상의 카드. 듀얼디스크의 귀퉁이에 그것을 올려놓는다.
"스케일 6의 [EM 기터틀]을 펜듈럼 존에 세팅."
"펜듈럼. 펜듈럼 사용자였나."
"네. 이것이 저의 전력."
- 몬스터들이 단숨에 쏟아져나오니까 조심해라.
"그래도 스케일 6이야. 내 필드에는 무사-C랑 스사노-O가 있으니 걱정 없다고."
- 아니 그걸 말하는 게 아냐.
"음?"
두 마리의 주력 싱크로 몬스터를 뽑고 안심하는 가온의 옆에서 소울 이터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리고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설명이라고 하듯 혜르는 곧장 답을 내놓았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스케일6. [EM 리저드로우]를 세팅."
"똑같은 스케일 몬스터를 세팅?"
- 말이 씨가 된다더니…….
혜르가 두번째 펜듈럼 카드를 발동시키자, 푸른색의 섬광이 터져나왔다. 기타의 모양을 한 거북이, 광대가 입는 화려한 옷에 정숙함을 더한 예복을 입은 주황색 목도리 도마뱀. 두 마리 아기자기한 몬스터였으나, 그들이 내뿜는 기운이란 남다른 것이었다. 무엇인가 감춰놓은 듯한 강렬한 느낌이 피부를 찔렀다. 그 기묘한 기운에 방안의 나뭇가지들은 빛에 반응하여 움찔거렸고 뒤로 물러난다. 마치 혜르를 두려워하듯 몸을 숙인 신목. 방을 비추는 색은 점점 더 푸르게 변해간다.
"기터틀의 펜듈럼 효과. "EM" 펜듈럼 카드가 세팅되면 카드를 하나 드로합니다."
"펜듈럼은 단순히 어드밴티지 벌이용이었나!"
- 아니. 이걸로 끝이 아냐.
"뭐?"
"그말대로. 리저드로우를 파괴하고 펜듈럼 효과를 발동하지요."
"자괴 효과!"
"덱에서 카드 드로."
기터틀의 효과로 한 장, 리저드로우의 효과로 다시 한 장. 총 두 장의 카드를 뽑아드는 혜르. 자기 자신의 펜듈럼 소환을 방해하는 것처럼 보였던 행동은 패를 불리는 전략, 어드밴티지를 벌어들이기 위한 중간 단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지속 마법 [성상의 펜듈럼 그래프]를 발동."
"저 카드는 뭐야?"
- 저건…… 나도 처음 보는데!
소울 이터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번에는 스케일 5. [혜안의 마술사]를 펜듈럼 존에 세팅."
"스케일 5와 6. 이걸로도 펜듈럼 소환은 못 하잖아."
- 당최 꿍꿍이를 알 수 없는 녀석이야. 방심하면 큰일난다!
혜르가 어떤 행동을 벌일지 모르지만, 그 행동의 위험성을 알고있는 소녀는 청년에게 경고한다. 그 모습은 마치 어둠속에 놓여 어느 방향에서 맹수가 튀어나올지 몰라 경계하는 사람의 모습을 같았다.
"혜안의 펜듈럼 효과 발동."
"역시!"
"혜안 자신을 파괴하고 덱에서 "마술사" 펜듈럼 몬스터를 펜듈럼 존에 세팅합니다."
"덱에서 펜듈럼을 부른다고?"
다른 한쪽 자신의 펜듈럼 존에 "마술사" 카드 또는 "EM" 카드가 존재할 경우에 자신을 파괴하고, 덱에서 [혜안의 마술사] 이외의 "마술사" 펜듈럼 몬스터 1장을 골라, 자신의 펜듈럼 존에 놓는다. 리저드로우에 이어서 또 한 장의 자괴 펜듈럼 카드. 혜르는 덱에서 주황색과 녹색이 절반씩 섞인 카드를 한 장 뽑아내며 순조롭게 덱을 얇게 만들어갔다.
"덱에서 스케일 1. [자독의 마술사]를 펜듈럼 존에 세팅."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다란 로브.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짙은 화장. 순전히 변태로 보이는 로브 차림의 마술사가 굵은 채찍을 손에 쥐고서 기터틀의 맞은편에 떠올랐다.
- 우웩.
"변태같은 녀석이잖아."
"제 몬스터에 대한 비난은 나중에 듣도록 하죠. "마술사" 펜듈럼 몬스터가 펜듈럼 존을 벗어난 이 순간, 지속 마법 [성상의 펜듈럼 그래프]의 효과가 발동됩니다."
"스케일이 마련되버렸으니…… 체인2! 패에서 [증식의 G]를 묘지로 보내고 효과 발동! 이걸로 펜듈럼 소환을 하면 그 순간 드로 확정이다!"
체인의 처리는 역순. 상대가 특수 소환을 할 때마다 카드를 드로하는 [증식의 G]가 먼저 효과 처리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 반짝이는 초록빛 카드의 효과가 처리될 차례다.
- 저녀석. 또 이상한 서치 효과를 들고 오는 건 아니겠지?
"튜너 그리고 동시에 펜듈럼 몬스터인 [조현의 마술사]를 서치."
- 젠장 또 서치냐!
"자괴하는 펜듈럼. 그 다음에는 튜너인 펜듈럼 몬스터까지!"
이번 턴에만 벌써 몇 번째인가. 혜르는 덱에서 카드를 뽑는 족족 가져와 패에, 필드에 가져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보라빛 마술사와 기타 모양 거북이의 머리 위에 그들의 펜듈럼 스케일을 상징하는 숫자 1과 6이 띄워졌다.
"하늘을 가르거라 푸른 보석이여!"
떨리는 두 개의 빛. 푸른 기둥이 요동친다. 신목의 천정 아래는 어느덧 푸른빛이 범람하였고, 쩌적거리는 소리와 함께 청아하고 아름다운 별빛이 그들의 머리 위로 흐르기 시작했다.
"대기를 가르고, 바람을 갈라 지상으로 빛을 퍼붓거라!"
별빛의 계곡에서 청광이 범람한다. 그것은 지상으로 떨어져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은 찬란한 광채를 내뿜었고, 무엇인가 정형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혜르의 몬스터들로서 빛은 형상을 갖게 되었다.
"엑스트라 덱에서 펜듈럼 소환. [EM 리저드로우]( LV 3 / ATK 1500 ) 그리고 [혜안의 마술사]( LV 4 / ATK 1500 )!"
카드를 목도리 삼아 목 주변에 두른 목도리 도마뱀 리저드로우. 차분하면서도 화려한 예복을 입은 백발의 마술사. 일찍이 펜듈럼 카드로서 세팅되었던 이들이 몬스터로서 필드에 나타났다.
"그리고 패에서 펜듈럼 소환. [조현의 마술사]( LV 4 / DEF 0 )!"
[성상의 펜듈럼 그래프]의 효과로 가져온 카드. 펜듈럼인 동시에 튜너이기까지 한 그 몬스터를 듀얼디스크에 강타한다. 그러자 짧은 분홍색 단발 머리, 하늘색이 섞인 새하얀 활동복을 입은 말광량이 소녀가 나타났다.
"튜너 몬스터. 싱크로 하려는 속셈인가."
- 레벨 합계는 11인가.
"그 전에 먼저, 특수 소환을 했으니 [증식의 G] 효과로 카드를 드로한다."
혜르가 늘어트린 몬스터들을 보고 추측하는 가온과 소울 이터. 하지만 혜르는 그들의 추측이 모두 쓸모없다는 것을 강조하기라도 하려는 듯 다른 행동을 하였다.
"아직 싱크로 하기에는 이르지요."
"뭐라고."
"조현의 효과 발동. 덱에서 [조현의 마술사] 이외의 "마술사" 펜듈럼 몬스터 1장을 수비 표시로 특수 소환합니다."
"덱에서 특수 소환!"
- 막아!
"패에서 [이펙트 뵐러]를 묘지로 보내고 효과 발동! 조현의 효과를 무효로 한다!"
덱에서 몬스터를 소환하려던 혜르. 가온은 그 행동을 저지했다. 추가 전개가 막히자, 혜르는 혀를 찼다.
"하지만 상관없죠. 레벨4 혜안과 조현으로 오버레이."
"엑시즈? 싱크로가 아니라?"
두 마술사가 각각의 지팡이를 들었다. 하늘에는 푸른 별빛이 흐르는 강이, 지상에는 금색의 별빛이 반짝이는 어둠의 우주가 펼쳐진다. 소용돌이치는 별빛의 검정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두 마술사. 그들은 각각 상반되는 색으로 반짝이더니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충돌하여 크게 반발한다.
"엑시즈 소환. [별을 새기는 마술사]( Rank 4 / ATK 2400 )!"
상극을 나타내는 빛과 어둠, 서로 반발하는 두 존재가 맞부딪혀 만들어낸 것은 새파란 로브를 입은 장발의 마술사였다. 검, 창, 지팡이 그리고 천문 기구들을 모조리 조합해놓은 듯한 기묘한 생김새의 무기를 들고서는 어둠의 가리었다.
"카드 드로!"
새로운 마술사가 모습을 드러낸 그 순간, 가온은 카드를 다시 한 장 드로했다. 혜르의 행동을 제약하기 위해 패를 계속 소모한 결과 가온의 패는 제자리 걸음을 반복한다.
"오버레이 유닛을 하나 제거하고 [별을 새기는 마술사]( Rank 4 / ORU : 2 → 1 ) 발동. 덱에서 [아스트로그래프 매지션]을 가져오겠습니다."
"서치 효과를 몇 번이나 쓰는거냐."
"여기까지 해놓도록 하죠. 배틀입니다."
패를 잔뜩 불리고, 몬스터도 수없이 소환한 혜르. 하지만 그가 공격을 선언함에도 가온은 전혀 떨지 않았다. 애초에 그의 공격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카드르 아무리 뽑아도 공격력은 고작 2400. 무사-C를 이기는 게 한계다!"
"과연 그럴까요."
"뭐?"
"별을 새기는 마술사로 무사-C를 공격하겠습니다."
새파란 로브를 입은 마술사가 오른손에 쥔 길다란 무기를 창처럼 사용하여 내질렀다. 양손에 쥔 검을 각각 들어올려 X자를 펼치고 막아내는 무사-C. 그 순간 혜르의 왼편에 있던 변태적인 외모의 마술사가 채찍을 휘둘렀다.
"[자독의 마술사] 펜듈럼 효과 발동. [별을 새기는 마술사]( Rank 4 / ATK 2400 → 3600 )의 공격력을 1200 높히고 자독은 파괴됩니다."
"무사-C를 공격하는데 공격력을 높힌다?"
- 추가 공격이라도 하려는건가?
"공격력을 올려도 스사노-O의 수비력이 더 높다!"
"하지만 그 순간, 파괴된 자독의 효과가 발동."
- 뭐야. 또 자괴되고 효과라고?
"필드의 앞면 표시 카드 1장을 대상으로, [초중황신 스사노-O]를 파괴합니다."
- 무슨 그딴 효과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자신보다 훨씬 강한 적에게 무모한 승부를 걸었던 혜르였으나, 그것은 페이크. 펜듈럼 효과를 이용해서 스사노-O를 요격할 생각을 한 것이다.
"체인이다. 패에서 [초중무사소울 파이어 아머]를 버리고 효과 발동! [초중황신 스사노-O]( LV 10 / DEF 3800 → 3000 )의 수비력을 낮추는 대가로 이 턴동안에는 파괴되지 않게 한다!"
"파괴를 회피하겠다. 그렇다면 저도 패에서 카드 효과를 발동하지요."
"패에서 효과 발동이라고?"
"체인3. [아스트로그래프 매지션]."
순식간에 체인을 거듭한다. 마지막으로 쌓인 것은 혜르가 선언한 체인3. 그 효과들은 거꾸로 시작하여 처리되었다. 사태를 진정시키는 새파란 불빛. 천정에 새겨진 별의 강물을 닮은 푸른빛의 마술사가 나타났다.
"[아스트로그래프 매지션]( LV 7 / ATK 2500 )을 패에서 특수 소환합니다. 그리고 덱에서 두번째 [혜안의 마술사]를 서치하도록 하죠."
"서치에 서치에 서치……."
- 작작 좀 하라고!
"네가 그 몬스터를 소환한 걸로 나도 카드를 드로하겠다!"
자신 필드의 카드가 전투 / 효과로 파괴되었을 경우에 패에서 특수 소환한다. 그 후, 이 턴에 파괴된 몬스터 1장을 고르고, 그 같은 이름의 몬스터 1장을 덱에서 패에 넣을 수 있다. 파괴된 몬스터는 몬스터 존에 있던 것만을 카운트하지 않고, 펜듈럼 존에서 파괴된 펜듈럼 몬스터 또한 카운트 한다. 그 점을 이용하여 펜듈럼 존에서 파괴되었던 [혜안의 마술사]를 덱에서 당겨오는 혜르. 하지만 가온은 그것을 보고만 있지 않고서 자신도 덱에서 카드를 한 장 뽑았다. 서로 덱에서 카드를 한 장씩 취하는 두 남자. 붉은 불길이 치솟는다.
"파이어 아머의 효과가 먼저 처리되었으니 네 변태같은 몬스터 효과는 불발이다!"
"상관없습니다. 예정대로 무사-C는 파괴하도록 하지요."
기다란 창을 내지르는듯한 마술사. 무사-C는 제자리에서 묵묵히 공격을 받아내고, 마술사는 전진한다. 빠르게 찌르고 들어오는 창을 닮은 무기에 검으로 방어하는 것에 한계를 느끼는 무사-C. 기계 무사의 약점을 이미 다 알고있다는 듯이 마술사는 빠르게 창을 찌르고 되감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검을 쥔 팔을 날려보내고 무게중심을 잃어 휘청거리는 무사의 목을 베어버렸다.
"배틀은 이걸로 끝."
고철덩어리가 되어버린 무사의 목이 급류를 타고 흐르던 전투의 끝을 고한다.
"아스트로의 효과로 서치했던 [혜안의 마술사]를 펜듈럼 존에 세팅."
그리고 종말이 찾아든 땅에 혜르는 새로운 씨앗을 심었다.
"혜안의 효과 발동."
"그 효과는 이미 썼을텐데!"
- 설마 발동 제한이 없는거냐!
"그말대로. 혜안의 효과는 한 턴에 몇번이고 발동할 수 있지요."
"대체 뭘 세팅할……."
"그리고 효과 처리시에, 혜안이 파괴되는 것을 [별을 새기는 마술사]의 효과로 막겠습니다."
"뭐……?"
- 그러면 펜듈럼 세팅이 안 되잖아?
"파괴를 막는 대가로, 저는 덱에서 마법사족 몬스터 1장을 묘지로 보내야만 하죠."
덱을 자동으로 셔플하는 듀얼디스크. 카드 한 장을 틱 꺼내놓는다.
"덱에서 (#)[일루전 조커]를 묘지로 보내겠습니다."
- !!!
혜르가 묘지에 묻은 것은 초록색이 섞이지 않은 주황색 카드 한 장. 하지만 그 카드를 보고서 소울 이터의 온몸에 있는 털이 곤두섰다.
- 그래. 왔구만…….
"뭐가 왔다는거야?"
- 그런 게 있어.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 소울 이터. 가온은 혜르의 행동에 의아해한다.
"혜안의 효과는 몇 번이든 발동 가능. 이번에야말로 혜안의 효과를 발동해 스스로를 파괴합니다."
"온다!"
"덱에서 스케일 8. [홍채의 마술사]를 펜듈럼 존에 세팅."
파괴와 재생을 반복하는 펜듈럼. 혜르는 또다른 마술사를 불러낸다.
"그리고 홍채의 효과 발동. [아스트로그래프 매지션]에게 몬스터와 전투할 때 상대에게 두 배의 데미지를 주는 효과를 부여하고 파괴됩니다."
"이미 배틀 페이즈는 끝났을텐데? 무슨 수작이지."
"제 노림수는 이쪽입니다. [자독의 마술사]와 마찬가지로 [홍채의 마술사]에게는 파괴되었을 때 발동하는 몬스터 효과가 존재하지요."
분홍빛 카드 한 장이 덱에서 빠져나와 그의 손가락 사이에 걸린다.
"덱에서 지속 함정 [시공의 펜듈럼 그래프]를 서치하겠습니다."
"이번에는 몬스터가 아니라 함정까지 서치하는거냐."
- 진짜 가지가지 하는구만.
"이걸로 제 전개는 끝입니다. 마지막으로 스케일 8의 [흑아의 마술사]를 펜듈럼 존에 세팅. 카드를 2장 세트하고 턴을 마치도록 하죠."
--- 가온 ---
몬스터 : □[초중황신 스사노-O]
마법 / 함정 :
패 ■■■
--- --- ---
--- 혜르 위미르 ---
몬스터 : □[별을 새기는 마술사] + □[아스트로그래프 매지션] + □[EM 리저드로우]
펜듈럼 존 : □[EM 기터틀] + □[흑아의 마술사]
마법 / 함정 : □[성상의 펜듈럼 그래프] + ■■
패 ■
--- --- ---
마침내 혜르의 기나긴 턴이 끝났다. 이제 차례는 가온에게로 돌아와 그에게 카드를 뽑으라고 손짓하고 있다.
'저 필드. 하마터면 끝장날 뻔 했다.'
선공 첫턴에 [초중무사소울 석궁]의 효과로 서치했던 카드가 [초중무사소울 파이어 아머]가 아니라 다른 카드였으면 어떻게 됬을까. 자독의 효과로 스사노-O는 파괴되고 무사-C 또한 전투로 파괴된다. 자독의 파괴를 트리거로 특수 소환되었던 아스트로와 리저드로우의 공격력을 합하면 그 수치는 4000. 가온에게 직접 공격을 하여 그대로 듀얼을 끝낼 수 있는 수치다.
'공격력이 낮아보이는 건 모두 허상이야. 철저하게 라이프를 0으로 만들 생각을 하고 있어.'
상대가 눈치채지 못 하도록 공격력 4000을 짜놓는다. 그야말로 마술같은 재주. 이 전략의 놀라운 점은 혜르의 노림수를 눈치채는 타이밍이 지금에서야 이루어졌다는 점에 있다. 눈 앞에서 칼을 빼들고 자신을 향해 휘두르는데도 자신은 그것을 인지할 수 없는 것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그렇지 않다가는 바로 잡아먹힌다.
"드로!"
"스텐바이 페이즈. 세트해둔 카드를 발동하겠습니다."
"뭣."
- 이 타이밍에 효과를?
가온이 카드를 당긴 직후, 메인페이즈에 돌입하기 직전.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혜르는 엎어둔 카드를 뒤집어 올렸다.
"지속 함정 [시공의 펜듈럼 그래프] 발동."
"홍채로 서치했던 그녀석인가!"
"그 효과는 저의 몬스터 존 / 펜듈럼 존의 "마술사" 펜듈럼 몬스터 카드 1장과 상대 필드의 카드 1장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
가온의 필드에 있는 것은 스사노-O 하나. 반면에 혜르의 필드에는 "마술사" 펜듈럼 몬스터는 물론이요, 그것이 필드를 벗어나면 덱에서 또다른 "마술사" 펜듈럼 몬스터를 서치하는 [성상의 펜듈럼 그래프]까지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불길한 건…….'
가온은 [흑아의 마술사]를 보았다. 혜르는 파괴하는 것으로 효과를 발휘하는 펜듈럼 몬스터를 수도 없이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흑아 또한 순순히 파괴되지는 않을 것이다.
'저번 턴에 덱에서 마법사족 몬스터를 묻었었지.'
혜르는 저번 턴, 혜안의 자괴 효과를 방해하고 덱에서 (#)[일루전 조커]를 묘지로 보냈다. 혜안이 파괴되는 것을 막으려고 한 것이 아니다. 그 직후에 바로 혜안을 자괴하고 효과를 다시금 발동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 행동은 그 몬스터를 묻어버리기 위함이였겠지.'
(#)[일루전 조커]가 묘지로 보내질 때 소울 이터가 보였던 행동을 생각한다면, 그 몬스터는 상당히 가치있는 몬스터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파괴 대상으로 도마 위에 오른 [흑아의 마술사]에게는 어떤 효과가 있을까.
"몬스터 소생 효과인가!"
- 뭐?
"저녀석의 목적은 스사노-O 파괴가 아냐. 방금 전에 묻은 (#)[일루전 조커]를 소생시키려는 거지!"
- 그런건가! 하긴 그 녀석의 효과는…….
"그러니 발동하겠다."
가온은 지금 드로한 카드를, 초록빛으로 반짝이는 카드를 듀얼 웨펀에 꽂아 넣었다.
"체인2! 속공 마법 [마력의 샘] 발동!"
스사노-O와 흑아의 위로 드리우는 암운. 새까맣고 불길한 기운이 흐르는 별빛의 그들의 몸을 감싼다. 하지만 파괴를 원하던 흑아의 바람과는 달리, 그의 몸은 아무런 이상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원인은 가온이 발동한 카드, 흘러넘치는 마력의 샘물.
"오호라. 그 카는 분명."
"네 필드의 앞면 표시의 마법 / 함정 카드의 수만큼 자신의 덱에서 드로. 그리고 내 필드의 앞면 표시의 마법 / 함정 카드의 수만큼 자신의 패에서 카드를 고르고 버린다. 4장 드로!"
카드를 4장 뽑고서 패를 한 장 버리는 가온. 뜬금없이 발동한 마법의 진짜 목적은 그 다음에 존재한다.
"이 카드의 발동 후, 다음 상대 턴의 종료시까지, 상대 필드의 마법 / 함정 카드는 파괴되지 않으며, 발동과 효과는 무효화되지 않는다!"
"즉 저의 마술사 자괴를 방해하겠다는 거군요."
"그래. 이걸로 네 속셈은 저지됬다!"
"좋습니다. 하지만 흑아의 파괴를 막더라도 [시공의 펜듈럼 그래프]의 효과로 스사노-O는 파괴됩니다."
자신의 카드가 파괴되도록 방치하고 상대의 카드를 지켜준다. 기형적인 전술을 펼친 가온.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그 무엇보다도 현명한 판단이었다.
"휴우."
카드를 드로하고서 고작 한 순간, 두 장의 카드가 오고갔을 뿐인데도 엄청난 피로감이 축적된 기분이다.
- 잘 선택한거다. 다음 턴에 시공과 성상으로 허튼 지꺼리를 하는 걸 막아냈어. 덤으로 기터틀의 펜듈럼 효과를 다시 사용하는 것까지 막았고.
"패도 잔뜩 늘어났으니 다행이다."
메인 페이즈에 돌입한다. 가온의 패는 3장에서 6장으로 불어났다. 그리고 때마침 들어온 또다른 녹색 카드가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럼 가볼까."
녹색 카드를 꺼내놓기에 앞서 주황색 카드를 던지듯이 듀얼 웨펀에 강타한다. 출력되는 것은 자그마한 공처럼 생긴 고철덩어리. 새빨간 눈알 하나 달려있는 구형의 기계가 삐릭거리는 소음을 낸다.
"튜너 몬스터 [언논 싱크론]( LV 1 / DEF 0 ) 특수 소환!"
"싱크론……."
"상대 필드에 몬스터가 존재하고, 자신 필드에 몬스터가 존재하지 않을 경우 이녀석은 패에서 특수 소환할 수 있지!"
"예. 저도 알고있답니다. 그건 그가 사용했던 카드니까요."
"누굴 말하는 거지?"
"초아. 당신도 이미 알고 있을 그 남자입니다."
"이사장!"
"저의 동료 한 명이 듀얼에서 손을 뗀 이후로, 저에게 남은 유일한 적수……. 그 효과정도는 알고 있지요."
"이사장이 라이벌이라고."
- 그래. 저놈은 초아하고 또 한놈, 셋이서 모여서 나를 쓰러트렸거든.
"뭐?"
- 트리. 나는 그놈 링커거든.
"트리……."
그 이름을 듣자 몸이 욱씬거린다. 그 무엇하나 살갗에 닿고있는 것이 없음에도 그의 신경을 타고 이름 모를 화학 물질이 도약하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냐."
녹색빛의 카드를 집어 듀얼 웨펀에 꽂아 넣는다.
"마법 발동 [어리석은 매장]! 덱에서 [페어리테일-백설]을 묘지로 보낸다!"
그것은 곧바로 그의 덱에서 주황색 카드 한 장을 뽑아 자신의 길동무로 묘지로 가게끔 하였다.
"묘지에서 일곱 장의 카드를 제외하고 [페어리테일-백설]( LV 4 / ATK 1850 )을 특수 소환!"
반짝이는 두 장의 녹색 카드 [어리석은 매장] 그리고 [마력의 샘]. 그 둘을 뒤따라 [크리터], [증식의 G], [초중무사 텐B-N], [초중무사 호라가-E] 그리고 [초중무사 빅와라-G]가 묘지에서 빠져나와 공기중에 사르르 녹아 사라진다.
"백설의 효과로 [별을 새기는 마술사]( Rank 4 / ATK 2400 → DEF 1200 )를 뒷면 수비 표시로 변경한다."
일곱 난쟁이의 시중을 받아 잠에서 깨어나는 눈처럼 새하얀 공주. 언뜻 보기에도 불길한 보랏빛이 감도는 독사과를 양손으로 들어올린다. 투수처럼 한 발을 들어올리고서 사과를 내던지는 백설. 사과는 빠르게 나아가 목표물인 마법사의 얼굴에 정확히 명중한다. 묵직한 사과가 쪼개지며 마술사의 몸에 독이 퍼졌고, 새하얀 로브는 보라색으로 물든 채 마술사는 비틀거리며 균형을 잃었다.
"언논 싱크론과 백설을 릴리스!"
몬스터를 두 마리 제물로 바쳐 그보다 강한 몬스터를 소환한다. 듀얼 몬스터즈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소환법. 가온은 마룡을 불러낸다.
"어드밴스 소환! [파멸룡 간드라X]( LV 8 / ATK 0 )!"
새까만 비늘. 수백개의 붉은 눈동자. 들끓는 검붉은색의 불꽃이 용의 몸을 감싸고 타오른다. 그의 전신을 타고 이어지는 붉은 눈동자가 동시에 뜨이고 거센 열풍이 가온을 둘러싼 별빛을 지워버리고 그대신 어둠을 채우기 시작한다.
"간드라X 이외의 필드의 몬스터를 전부 파괴하고, 파괴한 몬스터 중, 공격력이 가장 높은 몬스터의 공격력만큼의 데미지를 상대에게 준다!"
"!"
몬스터 둘을 제물로 하여 소환된 최상급 몬스터임에도 불구하고 공격력이 0을 가리키던 그는 특이한 효과를 발휘하였다. 그것은 다름아닌 필드 전멸.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불사르는, 양이 사용했던 검붉은 용과도 닮은 효과였다.
마룡의 붉은 눈이 신목 아래에있는 모든 사물을 시야에 둔다. 그리고 시야의 끝에 검붉은 불이 점화되었고, 그 지점까지 최단거리를 잇는 붉은 광선이 수도 없이 발사되었다. 엄숙한 기운을 내뿜던 신목마저도 불태우며, 그 아래에 있는 마술사들조차 모두 짖이겨버린다.
"크윽! ( LP : 4000 → 1500 ) "
"그리고 상대에게 데미지를 준 만큼 [파멸룡 간드라X]( LV 8 / ATK 0 → 2500 )의 공격력을 올린다!"
- 공격력 2500! 해치워버려라!
"배틀이다! 간드라로 직접 공격!"
"리버스 카드 오픈. 지속 함정 [펜듈럼 스위치]."
새까만 태양이 떠오른다. 지상의 생명을 모두 멸절시킬 강력한 화력. 새빨간 불꽃을 입에 머금고서 혜르를 불태우려던 간드라가 나지막한 외침에 주춤한다.
"펜듈럼 존의 [흑아의 마술사]( LV 4 / DEF 800 )를 수비 표시로 특수 소환합니다."
"펜듈럼 존의 몬스터를 특수 소환한다고!?"
푸른 기둥을 주먹을 내질러 깨부수고서 갑작스럽게 혜르의 앞에 나선 검은 머리의 마술사. 우락부락한 근육이 꿈틀댄다.
"자. 공격하실 겁니까? 이 몬스터는 당신이 파괴하기를 주저하던 그 몬스터."
"파괴해도 데미지는 못 준다……."
공격한다 하더라도 가온의 입장에서는 이득되는 일이 전무하다. 우선 흑아가 파괴되면 이번턴 발동을 사실상 봉인시켰던 [성상의 펜듈럼 그래프]가 다시금 부상, 혜르는 덱에서 "마술사" 펜듈럼 몬스터를 서치할 것이다. 그리고 흑아 자신의 몬스터 효과로 묘지에 묻어놓은 (#)[일루전 조커]를 소생시킬 것이다.
'그리고 다음 턴에 다시 기터틀의 효과를 발동할 여건까지 마련되잖아.'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 흑아를 파괴하고 혜르의 라이프를 0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면 모를까, 지금으로서 그에게는 공격 한 방 먹일 수 없다.
"배틀을 종료한다."
"역시나."
"그대신……."
묘지에 묻힌 카드의 수를 세기 시작한다. [초중무사소울 츄우사이], [초중검성 무사-C], [초중황신 스사노-O], [초중무사소울 석궁], [초중무사 호라가-E]. 다섯 몬스터가 공통적인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내 묘지에는 땅속성 몬스터가 다섯. 이 몬스터의 소환 조건이 충족되었다."
그것은 패에 반짝이는 대지의 야수를 불러내기 위한 조건.
"다섯 장, 삐걱거리는 맞물린 암반. 암갈색 틈 사이로 피거라. 특수 소환! [지령신 그란소일]( LV 8 / ATK 2800 )!"
가온과 혜르가 딛고있는 땅 아래, 지각이 삐걱거린다. 암반을 가르고서 솟구쳐오르는 거대한 맹수. 대지의 갑옷 파편들을 온몸에 달고있는 암반덩어리 사나운 맹수가 엄니를 드러낸다.
"그란소일이 특수 소환했을 때 묘지에서 [초중황신 스사노-O]( LV 10 / DEF 3800 )를 특수 소환한다!"
최상급 몬스터가 연이어서 소환된다. 혜르의 필드가 두렵지않을 정도로 탄탄한 구성. 가온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턴 엔드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선언한 순간, 허공에 맺혀있던 검붉은 불덩이가 그의 위로 떨어진다.
"큭. ( LP : 4000 → 2000 ) "
가온의 라이프를 수직낙하시키는 간드라X. 마룡을 소유한 자는 그 대가로 라이프 절반을 잃는다. 볼 기회가 별로 없던 간드라X의 디메리트를 절실히 느끼며 가온은 바통을 넘겼다.
--- 가온 ( LP : 2000 ) ---
몬스터 : □[초중황신 스사노-O] + □[지령신 그란소일] + □[파멸룡 간드라X]
마법 / 함정 :
패 ■■
--- --- ---
--- 혜르 위미르 ( LP : 1500 ) ---
몬스터 : □[흑아의 마술사]
펜듈럼 존 : □[EM 기터틀]
마법 / 함정 : □[성상의 펜듈럼 그래프] + □[시공의 펜듈럼 그래프] + □[펜듈럼 스위치]
패 ■
--- --- ---
"저의 턴. 드로."
초록색 카드 한 장을 뽑아낸다. 그리고 그것을 곧장 듀얼디스크에 꽂아넣었다.
"마법 카드 [듀얼리스트 어드벤트] 발동. 덱에서 "펜듈럼" 펜듈럼 몬스터를 한 장 가져옵니다."
"카드군이 "펜듈럼"인 펜듈럼 몬스터라고?"
"제가 가져올 카드는 (#)[PB-Ya]."
"!!!"
처음 들어보는 카드의 이름을 듣고서 가온은 경직됬다. 소울 이터는 역시나싶은 표정으로 혜르를 노려보았다.
- 그렇게 트리를 증오하던 녀석이 그 카드를 덱에 꽁여놓고 있었데.
"원래는 없애버릴 생각이였습니다."
- 그딴건 중요하지 않아. 지금 들고있잖냐. 네 손으로.
"그건 맞는 말입니다. 당신들 클리파를 제거하려고 했었을 때도, 프로젝트 클리파를 처음 구상할 때도 제가 이 카드를 만질 생각은 없었건만."
"무슨 뜻이지?"
"트리가 사용했던 10장의 링크 몬스터. 그들을 클리파 링커라고 부릅니다. 그녀에게서 그정도는 들어봤겠죠?"
"그래."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는 열 명의 실험체들 그리고 초월체 포피리아를 흡수하여 막대한 힘을 일궈낸다. 그것이 프로젝트 클리파였습니다."
"그것도 들어봤다. 너는 뭐때문에 그런걸 하려고 했었던거지?"
"스스로 자칭하기를 엑시즈 차원. 엑시즈 차원의 침략자들에게 대항하기 위해서죠."
"엑시즈 차원의 침략자라니. 무슨 소리냐."
"이 세상, 아니 저 너머의 다른 세상에서는 자신들이 사는 영역외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침략하려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그게 엑시즈 차원이라는 거냐."
"예. 그렇게 침략당한 차원이 싱크로 차원이라 불리는 곳. 당신도 이미 알고있는 초아씨의 세상입니다."
"이사장의 세상……?"
"그의 세상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엑시즈 차원에게 침략을 받았고 결국에는 멸망했습니다."
혜르는 덱에서 꺼내온 주황색과 초록색이 결합된 카드를 왼손에 쥐고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항상 눈에 불을 켜고서 침략할 차원을 찾는 엑시즈 차원. 그들을 막기위해서 힘을 기르려던 곳이 바로 스쿨."
"처음 듣는 이야기다."
"그리고 스쿨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단 걸 깨닫고 프로젝트 클리파를 실행했지요. 그러던 와중에 포피리아가 아직 죽지않고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 그래서 엑시즈 차원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포피리아를 잡는 걸 최우선 과제로 하고 있었구만. 그 녀석들은.
스쿨은 애시당초 엑시즈 차원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가온이 입학하고서 한참동안 들었던 포피리아를 쫓던 이야기는 잠깐동안 돌았던 긴급한 화제였을뿐, 본질은 아니었다. 참으로 시기적절하게도 가온에게는 스쿨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 실행했던 프로젝트 클리파는 지금과는 모습이 달랐습니다."
"뭐가 달라졌다는 거지?"
"실험체들로 하여금 링커를 키우게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하지만 그 대상이 달라졌지요."
혜르는 손을 뻗어 검지손가락으로 맞은편의 청년을 가리켰다.
"트리의 스페어 바디들. 최초의 실험체들은 모두 당신들이었습니다."
"뭐……?"
"다만, 원본에서 열화되었던 클리파 링커들조차도 독기가 너무 강해 스페어 바디 대부분이 죽었던 것이죠. 그것 때문에 실험체들은 트리의 스페어 바디들을 사용하자는 것에서, 다른 곳에서 사람을 끌어오는 것으로 변해갔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원래는 트리의 또다른 몸뚱아리로서 사용될 열매들, 즉 당신들에게 맡길 역할이였다는 겁니다."
"……."
"아직도 모르는 것 같군요. 그렇다면 알게 해드리죠."
마침내 혜르는 패에 꽂아넣은 카드를 뽑아 듀얼디스크위에 강타했다.
"내 살을 찢고 피부를 뜯어, 새빨간 이슬을 흘려보내거라.
고이 모여든 빨간 호수에 발을 담그고 목을 축이거라."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듣는 카드 이름, 그리고 처음 듣는 소환 영창임에도 불구하고 가온은 그것을 알고있는듯 했다.
"어째서 네가 그걸……."
- ??? 잠깐. 야?
그리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저 카드는 자신이 썼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PB-Ya]( LV 4 / ATK 0 ) 소환."
단정한 하얀색 옷을 입은 어린아이가 나타났다. 어깨 위로, 머리 옆으로 자그마한 천사의 날개가 돋아난 꼬마는 가온을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 오랜만이에요.
"넌……."
- 켁. 재수없는 녀석이잖아!
꼬마를 보고서 질색하는 소울 이터. 하지만 꼬마는 항상 있는 일이라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간다.
"듀얼을 계속하도록 하지. 몬스터 존에 소환한 [흑아의 마술사]를 대상으로 (#)[PB-Ya]의 효과 발동."
- !!! 야! 빨랑 효과 발동시켜! 뭘 멍때리고 있는거냐!
"앗. 뭐라고?"
- 빨리 묘지에서 꺼내!
"알았어. 묘지에서 지속 함정 [빛의 봉인영검]을 제외하고 효과 발동!"
- 이 턴에 직접 공격은 불가능!
가온은 [마력의 샘]의 대가로서 묘지에 묻었던 분홍색 카드를 들어올렸다. 그것은 묘지에서 제외하는 조건으로 상대방의 직접 공격을 이 턴동안만 봉인하는 카드. 샛노란 검형상의 빛이 가온의 앞을 지킨다. 한편, 맞은편에 있는 순백색 어린아이는 근육질의 검은 남성의 머리통을 잡아 으깨기 시작한다.
"저게 뭐야!"
"대상으로 지정한 몬스터를 파괴하고 덱에서 몬스터를 하나 특수 소환한다. 이것이 바로 (#)[PB-Ya]의 효과."
"덱에서 조건없이 몬스터를 특수 소환한다고!?"
- 예전이랑은 좀 다르게 개조를 했구만.
새하얀 꼬마가 어깨위의 날개를 펼쳤다. 크기를 부풀린 날개에서 예쁜 깃털들이 빠졌고, 앙상한 뼛가지만 남았다. 피빛과 잿빛으로 얼룩진 뼛조각들이 휑하게 바람을 맞으며 천사를 부유시켰고, 그 아래로는 근육질 마술사의 곤죽이 되어버린 살덩이가 떨어졌다. 그 살덩이들 아래로 흐르던 검은 빛이 새까만 입을 벌려 우악스럽게 살을 먹어치운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빛의 싹이 돋아나 또다른 마술사를 불러낸다.
"덱에서 [크로노그래프 매지션]( LV 6 / ATK 2000 )를 특수 소환."
바닥에 퍼져있는 진득한 피냄새. 새빨간 물줄기를 뒤엎어 쓴 검정색 몸체. 신목의 천정이 보여주던 파란 별빛을 몸에 담았던 아스트로그래프 매지션과는 달리 검붉은 어둠이 흐르던 지하의 빛을 간직한 마술사가 등장했다.
"공격력 2000. 그래도 저정도면 아직."
- 잊어버린거냐 빡대가리야! 뭐가 파괴됬었는지.
"앗."
"파괴된 흑아의 몬스터 효과. 묘지에서 어둠 속성 마법사족 몬스터를 하나 소생시킨다. 그리고 지속 마법 [성상의 펜듈럼 그래프]의 효과 발동."
"젠장. 또 저 카드가!"
"성상의 효과로 덱에서 [백익의 마술사]를 서치. 그리고~."
즐겁게 미소를 짓는 혜르. 아까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인간이 되어, 표정이 뒤틀리는 것 같다.
"춤춰라 하늘을 나는 제비.
땅을 기거라 날개의 그림자.
지상의 도화지를 적셔, 검은 먹을 번지거라."
혜르의 그림자는 마치 출렁이는 물결처럼, 풍랑이 일렁이는 바도처럼 흔들렸다.
"끝나지 않는 악몽. 꿈에서 현실로 드나들며 진실을 가리거라. (#)[일루전 조커]( LV 7 / ATK 2500 )!"
새까만 그림자에서 튀어나와 혜르의 몸을 감싸는 검정색 괴물. 깃털같은 칼날이 수북하게 등 위로 돋아난다. 광대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고, 잔혹한 방법으로 처형당한 죄수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는 조커는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채 음침한 웃음 소리를 연신 뱉어낸다.
"조커의 소환에 성공한 턴에, 너는 몬스터의 효과를 발동할 수 없다."
- 그리고~ 조커가 몬스터 존에 존재하는 한, 상대는 묘지에서 카드의 효과를 발동할 수 없지~.
"무슨 그딴 효과가!"
몬스터 효과를 발동할 수 없다. 묘지에서 카드의 효과를 발동할 수 없다. 철저하게 가온을 찌르는 효과들로 무장한 조커의 등장에 가온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 그래. 확실히 상성 최악이구만. 저놈이랑은.
"그래서 미리 봉인영검을 제외하라고……."
- 저놈이 나오면 쓰지도 못 하고 나자빠지는 수가 있으니까.
소울 이터가 외쳐서 자신도 모르게 봉인영검을 제외해 효과를 발동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최고의 타이밍이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지속 함정 [펜듈럼 스위치]의 효과 발동. 스케일 1인 (#)[PB-Ya]를 펜듈럼 존에 세팅."
천사가 징그러운 날개를 퍼득이며 기터틀의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꼬마를 감싸는 푸른 빛이 기둥의 형태가 되어 펜듈럼 스케일 1을 머리위에 띄어올렸다. 이것으로 혜르의 여유 몬스터 존은 3칸. 3마리의 몬스터를 단숨에 펜듈럼 소환할 수 있게되었다.
"하늘을 베어가르고, 별빛 피를 흩뿌리게 하여라. 지하에서 우글거리는 망자의 무리여 대지 위로 빠져 나오너라!"
검정색으로 물든 대지가 꿈틀거린다. 신목은 혜르의 의지대로 움직여, 땅바닥을 이루던 뿌리를 흔들었고 평평하던 땅이 고저가 생겨 복잡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펜듈럼 소환. [흑아의 마술사]( LV 4 / DEF 800 ). [홍채의 마술사]( LV 4 / DEF 1000 ). 그리고 [자독의 마술사]( LV 4 / DEF 2100 )."
일찍이 강력한 효과를 발휘해 가온을 몇 번이나 골탕먹였던 마술사 무리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원래 평범한 남성의 모습을 하고있던 마술사들이 모두 살이 썩고 뼈가 훤히 드러나는 모습이 되어, 무덤 위로 시체만 앙상하게 드러난 모양이다.
"마술사들이 모두 모인 이 순간, 나는 [크로노그래프 매지션]을 제외하고 효과를 발동하겠다."
핏빛으로 얼룩진 새까만 마술사가 손을 들었다. 그의 손에 시계침을 닮은 검이 쥐어졌고, 그가 그것을 쥐자 뼈만 남은 시체들의 몸에 살이 붙고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패 / 필드 / 묘지에서 "펜듈럼 드래곤" "엑시즈 드래곤" "싱크로 드래곤" "퓨전 드래곤" 몬스터를 1장씩 제외하여 효과를 발휘."
"무슨 헛소리를 하고있는 거냐. 그런 카드는 너한테 지금 한 장도…… 설마!"
- 저 몬스터들이 그 드래곤들이라고?!
혜르의 패는 2장. 필드와 묘지에 없는 소재를 패에서 충당한다고 하더라도 드래곤 네 마리가 필요한 시점에서 혜르의 패에 드래곤들이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면 드래곤은 어디에 존재할까. 답은 간단하다. 혜르의 필드에 있던 저 시체들이, 지금은 살아생전의 모습으로 돌아온 마술사들이 드래곤인 것이다.
"홍채는 펜듈럼, 흑아는 엑시즈, 자독은 퓨전. 그리고 [성상의 펜듈럼 그래프]의 효과로 패에 가져온 [백익의 마술사]는 싱크로 드래곤으로 취급할 수 있다."
"그럴수가……. 그렇다면 몬스터를 다섯이나 써서 융합한다는 거냐!"
"정답이다."
신목의 천정과 뿌리, 그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이 점점 넓어진다. 지금부터 부르려고 하는 어떤 존재의 크기가 이 자그마한 공간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려는 듯이.
"검게. 검게. 검게. 타올라라. 타서, 타올라서, 붉은 고깃덩이조차 검게 그슬려라. 짖부러트리고 비명지르고, 피를 토해라."
마술사들이 크로노그래프의 검에 빨려들어간다. 새파란 별빛과 검붉은 별빛이 흐르는 공간의 중앙에서 시간은 비정상적으로 흘러간다. 과거로, 미래로, 방향성이 불분명하게, 난잡하게 이행되는 시간. 시간과 이어진 모든 종속변수들이 뒤틀리고 왜곡된다. 그것이 형상으로서 눈 앞에 나타나자, 가온과 소울 이터는 처음에는 검정색만을 볼 수 있었다. 세상의 시작과 끝까지 닿을만큼 크다고, 공간이라는 개념이 뒤틀린 이곳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괴물의 존재를, 둘은 목도했다.
"융합 소환. [패왕룡 즈아크]( LV 12 / ATK 4000 )."
너무나도 거대한, 시야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는 거대한 용이 날개짓하였다. 그러자 그저 날갯바람이었을 뿐인데도, 새까만 불꽃의 마룡과 가부좌를 틀어 움직이지 않던 산과도 같은 거신이 휩쓸려나갔다.
"이게 무슨……."
가온이 턱을 올리자, 섬뜩한 녹색빛을 내뿜는 용이 가온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즈아크의 특수 소환에 성공했을 때, 상대 필드이 카드는 모두 파괴된다."
"내 필드를 모조리……."
- 무슨 저렇게 무식한 놈이 다 있는 거냐고…….
"그래도 [빛의 봉인영검]의 효과를 미리 발휘해뒀다! 내 필드를 다 파괴했다고 하더라도 직접 공격은 못 해!"
"그래. 최소한의 자비는 베풀어주지. 턴 엔드다."
--- 가온 ( LP : 2000 ) ---
몬스터 :
마법 / 함정 :
패 ■■
--- --- ---
--- 혜르 위미르 ( LP : 1500 ) ---
몬스터 : □[패왕룡 즈아크] + □(#)[일루전 조커]
펜듈럼 존 : □[EM 기터틀] + □(#)[PB-Ya]
마법 / 함정 : □[성상의 펜듈럼 그래프] + □[시공의 펜듈럼 그래프] + □[펜듈럼 스위치]
패 ■
--- --- ---
"내 턴이다! 드로!"
섬뜩한 차례였다. 한 턴만에 두 마리의 링커를 소환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소환했던 그것은, 양이 [레드 데몬즈 드래곤 타이란트]를 소환할 때와 같은 말을 했었다.
"타이란트랑 같은 부류. 그런 몬스터인가."
- 저녀석이 양에게 실험체들을 잡으라고 타이란트를 쥐어줬다면…… 이상한 점은 없겠네.
"저번턴에 지령신이 파괴된 덕에 이번 턴은 배틀 페이즈를 실행하질 못 해. 수비에 전념한다."
- 그래야겠네.
"그럼 우선 성가시는 녀석을 치우자고!"
가온은 지금 뽑아낸 주황색 카드를 곧장 듀얼 웨펀에 올려놓았다.
"튜너 몬스터 [초중무사 타마-C]( LV 2 ) 소환! 효과를 발동한다!"
농구공처럼 생긴 갈색의 로봇을 불러내는 가온. 가온은 타마-C의 뒷목을 잡고 허공에서 몇 바퀴를 돌리고는 냅다 던져버렸다. 저 멀리 날아가서 혜르를 감싸고있던 검은 광대와 적중하였고 새하얀 빛을 토해냈다.
"레벨7 조커에 레벨2 타마-C를 튜닝!"
즈아크의 아래에 미약한 불빛이 반짝인다. 새빨간 불꽃의 기둥이 화산이 폭발하듯 터져나왔고, 그 중심에서 꼬리 아홉달린 새하얀 구미호가 나타났다.
"싱크로 소환! [초중마수 큐우-B]( LV 9 / DEF 2500 → 3400 )!"
백은의 몸을 가진 둔중한 마수. 어깨 아래로 달린 두 팔을 뻗어 창을 잡고, 4개의 다리 끝에서는 9개의 불꽃이 꼬리처럼 풍성하게 피어올랐다.
"오호. 조커를 사용해서 몬스터를 싱크로 몬스터를 불러냈나."
"이걸로 걸리적거리던 묘지 봉쇄 효과는 끝이다!"
"하지만 그게 끝일텐데? 너에게 무엇이 더 가능하다는 거지?"
"칫. 나도 알고있다!"
"자 턴을 넘기거라."
"턴 엔드다!"
--- 가온 ( LP : 2000 ) ---
몬스터 : [초중마수 큐우-B]
마법 / 함정 :
패 ■■
--- --- ---
--- 혜르 위미르 ( LP : 1500 ) ---
몬스터 : □[패왕룡 즈아크]
펜듈럼 존 : □[EM 기터틀] + □(#)[PB-Ya]
마법 / 함정 : □[성상의 펜듈럼 그래프] + □[시공의 펜듈럼 그래프] + □[펜듈럼 스위치]
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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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턴. 드로."
분홍빛 카드를 뽑아드는 혜르. 새까만 악의 화신 즈아크를 자신의 수하로 두고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배틀이다. 짓뭉개거라."
펜듈럼 소환을 할 수 있음에도 그것을 모조리 생략해버리고서 혜르는 공격을 명령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용이 빛을 삼켰다. 새까맣게 변질되어 검붉은 태양의 형상을 한 것이 용의 입 앞으로 모여든다. 어둠을 토해내는 즈아크. 검은 태양이 지상으로 떨어진다.
"패에서 [초중무사소울 파이어 아머]를 버리고 효과 발동! [초중마수 큐우-B]( LV 9 / DEF 3400 → 2600 )의 수비력을 낮추고 파괴를 무효화시킨다!"
검은 태양에 맞서는 또다른 불빛. 주황색으로 불타오르는 홍염이 구미호의 앞을 지켜준다. 창을 신목의 뿌리에 꽂아 뒤로 밀려나지 않으려 힘을 주는 큐우-B. 화염과 화염이 맞부딪히게 하여 힘을 상쇄시키고 있음에도 타버릴듯이 뜨거운 열풍이 가온을 덮쳤다.
"크윽. 크아아아악!"
데미지는 입지 않았음에도 저 멀리로 가온은 튕겨나갔다. 뜨거운 화염에 피부는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듯 하고, 신목에 등을 기대고 겨우 균형을 유지하게 되었다.
"커헉."
- 뭐야 저건. 타이란트랑은 비교도 안 되잖아!
통증을 호소하기는 소울 이터도 마찬가지였다.
"그럴테지. 지금의 나는 너를 제외한 모든 실험체 그리고 포피리아의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말야."
- 아까부터 굉장히 거슬리는 말투구만!
"그딴건 내 알바 아니다. 카드를 하나 세트하고 턴 엔드다."
"크으윽."
"일어서라. 그렇게 비틀대서야 카드는 뽑을 수 있겠나?"
"시끄러워……."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뒤에 신목이라도 없었더라면 일어나는 척도 못 했을 것이다. 가온과 마찬가지로 화상을 입은 자그마한 소녀 소울 이터가 자기 팔로 그를 밀어올려준 덕에 그나마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 가온 ( LP : 2000 ) ---
몬스터 : [초중마수 큐우-B]
마법 / 함정 :
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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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르 위미르 ( LP : 1500 ) ---
몬스터 : □[패왕룡 즈아크]
펜듈럼 존 : □[EM 기터틀] + □(#)[PB-Ya]
마법 / 함정 : □[성상의 펜듈럼 그래프] + □[시공의 펜듈럼 그래프] + □[펜듈럼 스위치] + ■
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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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상태는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길어야 두 턴. 그마저도 혜르의 몬스터에게서 방금과 같은 공격을 당했다가는 멀쩡하게 버티지 못 할 것이다.
"이터."
- 그래.
"가자."
오른손을 덱 위로 옮긴다. 손끝으로는 카드의 끝을 잡았고, 아마 마지막일지도 모를 드로를 한다.
"드로!"
뽑아낸 것은 소녀의 그림이 그려진, 새까만 불꽃이 피어오르는 카드.
"큐우-B를 릴리스!"
검은 태양에 맞선 새하얀 거신, 불꽃의 마수가 더욱 큰 불길을 솟구치게 한다. 검은 태양을 치우고 저 하늘에, 신목이 가리고있는 하늘에 떠오른 태양의 색을 되찾으려고 마수는 자신의 몸을 불태웠다.
"살을 찢는 발톱.
먹이를 무는 엄니.
새빨갛게 피어올라라!"
가온을 부축하던 소녀가 큐우-B의 불꽃을 비단으로 하여 자신의 몸에 두른다. 주황빛 베일이 그녀의 몸을 태우자, 새까맣게 그을린 피부가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눈 앞에 거대한 적을 마주하고서, 10년만에 재회한 악연을 두고서 소녀는 투지를 불태운다.
"어드밴스 소환! 나의 화염. (#)[쇠약의 소울 이터]( LV 6 / ATK 2000 )!"
화염의 베일을 치우자, 소녀의 평상시 모습이 드러났다. 가느다란 팔과 다리, 그에 비해서 짐승의 것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굵게 불타오르는 주먹과 발. 소울 이터를 불러낸 가온은 그녀의 효과로 즉시 묘지에서 새하얀 카드 한 장을 들어올렸다.
"(#)[쇠약의 소울 이터]( LV 6 / ATK 2000 → 5800 )의 효과로 묘지에 있는 [초중황신 스사노-O]를 장착해 수비력을 흡수한다!"
"공격력은 즈아크를 뛰어넘었군. 하지만 그정도로는 소용없다. 지속 함정 [펜듈럼 스위치]의 효과로 펜듈럼 존의 [EM 기터틀]( LV 1 / DEF 400 )을 특수 소환."
"이 타이밍에 기터틀을 소환한다고?"
"그리고 이어서 함정 발동. [패왕의 역린]!"
듀얼디스크에 꽂아둔 카드를 뽑아서 가온에게 들춰내는 혜르. 그가 카드를 뽑아내자, 기타 모양의 푸른 거북이 목이 졸려 괴로워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자신의 몬스터를 제물삼아서 악룡은 포효한다. 그러자 왕의 포효에 그의 권속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내 필드의 즈아크 이외의 몬스터를 모두 파괴하고 덱 / 엑스트라 덱에서 원하는 만큼 "패왕권룡" 몬스터를 소환 조건을 무시해 특수 소환하지."
"원하는 만큼 소환이라니. 그게 무슨……."
"자 나오너라. 권속들이여."
가온의 턴임에도 불구하고, 혜르는 그딴것은 신경조차 쓰지않은 채 엑스트라 덱에서 세 장, 메인덱에서 한 장의 카드를 뽑아냈다.
"덱에서 [패왕권룡 오드아이즈]( LV 7 / DEF 2000 ) 그리고 엑스트라 덱에서 [패왕권룡 스타브 베놈]( LV 8 / DEF 2000 ), [패왕권룡 클리어윙]( LV 8 / DEF 2000 ), [패왕권룡 다크 리벨리온]( Rank 4 / DEF 2000 )을 특수 소환!"
순식간에 거대한 용 네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즈아크처럼 녹색을 품고있는 어둠이 흐르는 빛깔의 용. 서로 다른 이름과 모습을 가지고 있음에도 공통된, 하나처럼 느껴지는 오묘한 기운이 풍겼다.
"그래봤자 수비 표시! 상관할 바 아니지! 배틀이다. 소울 이터로 즈아크를 공격!"
수하들이 몇이나 나오건 상관없다. 소울 이터의 공격력은 5800 그리고 즈아크의 공격력은 4000. 혜르의 1500밖에 남지 않은 라이프는 이 공격이 통한다면 끝장이다.
- 트라이!
그런 일념을 담아서 소녀는 나아간다. 지면을 박차고서, 새빨간 불꽃을 휘감은 소녀는 녹색의 거대한 용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 봄버!!!
소녀의 등뒤로 주황빛의 날개가 펼쳐진다. 불꽃의 창이 용의 몸을 꿰뚫었고 새하얗게 서려있던 수분이 모두 공기중에 산란되어 사라진다. 새빨간 섬광이 어둠을 잠재운다.
"공격이 통한다면 말이지."
"끝이다!"
"패에서 [EM 베리어 벌룬 바쿠]를 버리고 효과 발동. 데미지를 0으로 한다."
"뭣. 그럴수가……."
새빨간 화염이 똬리를 틀며 혜르를 집어삼키려 했다. 하지만 그는 품속에 숨겨놓은 보라색 풍선을 꺼냈고, 이미 부풀려질대로 부풀려진 대기속에 그것을 풀어놓자 풍선은 알아서 팽창하기 시작했다. 불꽃의 창에 찔린 풍선은 강한 역풍으로 주인을 튕겨냈고, 그 결과 혜르는 아무런 데미지 없이 즈아크의 권속들을 부리며 멀쩡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나의 턴."
--- 가온 ( LP : 2000 ) ---
몬스터 : (#)[쇠약의 소울 이터]
마법 / 함정 :
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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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르 위미르 ( LP : 1500 ) ---
몬스터 : □[패왕권룡 오드아이즈] + □[패왕권룡 스타브 베놈] + □[패왕권룡 클리어윙] + □[패왕권룡 다크 리벨리온]
펜듈럼 존 : □(#)[PB-Ya]
마법 / 함정 : □[성상의 펜듈럼 그래프] + □[시공의 펜듈럼 그래프] + □[펜듈럼 스위치]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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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힐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는다. 호수의 수면위로 맺힌 달은 손을 뻗어 물에 잠그기만 하면 손에 들어올 듯 하다. 하지만 수면은 흔들리고 달의 형상은 깨진다. 손에서 물을 털고 난 다음에야 깨닫는다. 애초에 저기 있던 달은 만질 수 없던 것이라고.
"드로. [어리석은 매장]을 발동해 덱에서 [패왕권룡 다크블룸]을 묘지로 보낸다."
가온은 정신이 아득해진다. 지금 그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묘지에 있던 [빛의 봉인영검]은 지난턴에 사용했다. 패에 쥐고있는 것은 여태까지 라이프가 간단간당해 사용하지 못 하고, 또 지금으로서도 쓸 방법이 없는 카드인 [깨지않는 악몽]. 혜르의 공격을 막을 수단이라고는 꺼내봤자 금방 부서질 것이 뻔한 묘지의 [페어리테일-백설]뿐.
"날개를 펼치거라."
그의 명령에 수비를 하려고 웅크렸던 즈아크의 권속들이 일제히 몸을 펼쳤다.
"스타브 베놈의 효과 발동. 내 묘지에 있는 (#)[일루전 조커]의 효과를 카피한다."
묘지가 봉인되었다. 그를 지킬 수 있던 마지막 수단마저 사라졌다. 그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은 그나마 필드위에서 공격력이 가장 높은 소울 이터뿐. 하지만 혜르가 자신의 몬스터들을 공격 표시로 돌린 것을 보면 공격력 차이쯤은 쉽사리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이다.
"리벨리온으로 소울 이터를 공격."
- 내가 공격력은 더 높아!
"그리고 공격 선언과 동시에 묘지에 있는 [패왕의 역린]을 제외해 효과를 발동한다. 엑스트라 덱에서 즈아크를, 묘지에서 다크블룸을 [패왕권룡 다크 리벨리온]( Rank 4 / ORU : 0 → 2 )의 오버레이 유닛으로 하지."
- !? 이 타이밍에 오버레이 유닛 충전이라니.
"이번에는 리벨리온의 효과. 오버레이 유닛을 하나 사용해 상대 몬스터의 공격력을 0으로 하고 원래 공격력을 흡수하지."
- !!!
소울 이터의 압도적인 공격력 5800은 순식간에 0으로 떨어지고, 반대로 리벨리온의 공격력은 4500까지 올라간다. 가온이 원래 가지고있던 라이프보다도 높은 수치. 이 일격을 허용했다간 그대로 패배한다.
"끝이다."
새까만 번개가 내리쳤다. 불꽃의 뜨거움보다도 더욱 강렬한 뇌광과 진동이 화염을 형상화한 소녀를 꿰뚫었다. 수십, 수백다발의 번개가 일제히 소울 이터를 찔렀고 급기야는 신목마저도 일부 불태우기 시작했다.
"졌다……."
- 윽. 뭐하는 거냐 ㅂㅅ아. 피해!
그리고 마침내 붉은 피빛의 번개가 내리쳤고, 소녀와 청년을 동시에 불태우려 했다.
- 아아악!
"컥……. ( LP : 2000 → 0 ) "
그것은 가온도 마찬가지. 암녹색의 전광이 신목이 구성하는 공간을 가득 채웠고, 청년도 소녀도 구분할 것 없이 새까맣게 불타버렸다.
새하얀 머리 위로 새까만 빛이 흘렀다. 피냄새와 탄내가 진동하는 끔찍한 공간은 청년과 소녀를 잡아먹고서는 다시금 꿈틀대며 원래의 형상으로 되돌아왔다. 시간, 공간, 열, 전기. 시간과 시간에 종속된 모든 이치들이 원래의 형상을 되찾고 가온이 문을 열기 전과 똑같은 상태가 되었다.
"영혼 흡수는 이걸로 끝입니다."
혜르는 어둠속에서 가온이 가지고있던 모든 영혼을 빨아들였다. 실험체 1호부터 10호까지 그리고 포피리아까지. 그가 계획했던 기나긴 여정이 끝났다. 그리고 그 여정이 끝을 맞이했다고 생각한 순간, 불청객이 찾아왔다.
……
"역시 당신이 찾아오는 걸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나 보군요."
혜르는 다시금 열린 거대한 문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맞은 편에 서있는 것은 탁한 백발의 중년 남성. 그리고 수염이 조금 난 검은 머리의 남자였다.
"!!! 이 피는!"
신목의 뿌리, 바닥에 묻어나오는 짙은 피냄새를 맡고서 마크는 당황한다.
"가온을 죽인거냐."
"방금 끝났습니다. 이것으로 프로젝트 클리파는 끝."
"뭐가 끝이라는 거지."
"이제 더이상 누가 죽을 필요는 없습니다."
상황은 모두 정리되었다고 말하는 혜르. 초아는 저것이 자기가 알던 그 혜르가 맞나 의아해한다.
"그 애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너한테 죽어야 하는거지?"
"이 세상을 위해서."
"그 세상에는 가온도 그리고 다른 희생된 아이들도 없는거냐."
"예."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가버렸군."
초아가 듀얼 웨펀을 든 팔을 내뽑았다. 혜르는 그것을 가소롭게 쳐다볼 뿐이다.
"나와 듀얼해라."
"제가 어째서 그래야 하죠?"
"그 이유는 네가 더 잘 알고 있을텐데."
"저는 모든 일을 끝마쳤습니다. 이제 저의 적은 엑시즈 차원뿐."
"너는 지금 트리가 됬다."
그 말을 듣고서 혜르는 움찔한다.
"나와 싸워라. 트리."
"호오."
"10년 전의 그날처럼, 나는 다시 널 쓰러트리겠다."
"저와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말인가요? 아니면 트리를 쓰러트리던 그때처럼 말인가요?"
"……."
"아무래도 좋습니다. 저도 사실은 원하고 있었어요."
신목이 꿈틀댄다. 혜르의 의지대로, 혜르를 자신의 주인으로서 인정하고 그의 팔처럼 움직이기 시작한다.
"윽! 이게 무슨!"
가장 먼저 한 것은 마크를 격리시킨 것. 마치 초아와의 싸움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듯이 굵은 나무뿌리로 만든 감옥에 마크를 가둬놓는다.
"마크!"
"저희 둘의 우열을 가릴 땝니다."
"우열같은 건 상관없다."
"아니. 나는 알고싶어. 10년동안 나는 끊임없이 변해왔으니까."
"겉치례는 필요없다. 그저 나와 듀얼해라."
"그러지."
두 사람은 왼팔을 들어올렸다. 듀얼리스트로서 10년 전 과거를 재현하기 위해.
……
일루전 조커
LV 7 / 어둠 속성 / 마법사족 / 효과 / ATK 2500 / DEF 2000
① : 이 카드의 소환에 성공한 턴에, 상대는 몬스터의 효과를 발동할 수 없다.
② : 이 카드가 몬스터 존에 존재하는 한, 상대는 묘지에서 카드의 효과를 발동할 수 없다.
PB-Ya
LV 4 / 빛 속성 / 천사족 / 효과 / Pscale 1 / ATK 0 / DEF 0
P 효과 - 없음
[몬스터 효과]
"PB-Ya"의 ① 효과는 1턴에 1번만 발동할 수 있다.
① : 자신 필드의 앞면 표시 카드 한 장을 선택하고 발동할 수 있다. 선택한 카드를 파괴하고 덱에서 몬스터를 한 장 골라 특수 소환한다.
쇠약의 소울 이터
LV 6 / 어둠 속성 / 악마족 / ATK 2000 / DEF 1400
① : 이 카드가 어드밴스 소환에 성공했을 경우에 자신 묘지의 몬스터 1장을 선택하고 발동할 수 있다. 그 몬스터를 장착 카드로 취급하고 이 카드에 장착한다
② : 이 카드의 공격력은 이 카드의 효과로 장착한 몬스터의 수비력만큼 상승한다.
③ : 묘지의 이 카드를 제외하고 발동할 수 있다. 덱에서 카드를 2장 드로한다. 그 후, 패에서 카드를 1장 버린다.
가온 죽다
그리고 나도 과제로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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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룰3에서 역린을 썼다 저지! | 17.04.15 23:5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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