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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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에, 그러니까 아가씨가 찾는 남자의 이름이 ‘유타’라고?”
“네, 유타!”
토시조는 동그란 무테안경을 고쳐 쓰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앤틱 기어 타운의 외래인 가이드를 맡은 이래로 가장 어려운 미션이었다.
“그렇게 흔한 이름 하나만으로는 찾을 수가 없겠는걸, 아가씨. 이 마을에 유타라는 이름만 38명이라고. 성씨는 몰라?”
“거기까진…….”
유카는 잘 손질된 연분홍빛 생머리 왼손 검지로 배배 꼬면서 머리를 굴렸다.
사네히데의 협력 하에 간신히 찾은 정보라곤 고작 이름뿐인데다, 하필이면 흔하기로 손에 꼽는 이름이다보니 큰 도움이 못 됐다.
“혹시 기억나는 특징은 없어? 외모라든지.”
“외모? 아아! 있어요, 있어!”
유카는 머리 위로 전구를 번쩍이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머리는 연한 하늘색이고, 눈은 짙은 사파이어처럼 빛나고, 피부는 온통 새하얬어요! 얼굴은 좀 미남형이었나? 유카 취향인지는 모르겠지만, 후후.”
“연한 하늘색 머리에, 새파란 눈에 하얀 피부……?”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토시조는 무언가 알겠다는 듯이 무릎을 쳤다.
“그래, 누굴 말하는지 알 거 같군.”
“정말요, 정말요? 다행이다! 유카가 여기까지 발품을 판 보람이 있었어!”
하지만 천진한 얼굴로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도 잠시, 토시조가 짧은 말 한 마디로 찬물을 끼얹었다.
“그런데 그리 기뻐할 건 아닌데, 아가씨.”
“왜요?”
“그 청년 말이야, 아무도 안 만나준다고.”
중년 남성 특유의 주름이 잔뜩 진 토시조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집에서 지내고 있는데, 혹시 죽을까봐 걱정하는 사람들이 가끔 구멍으로 넣어주는 음식 말고는 쳐다보지도 않는걸. 예전에 다이스 타운에서 있었던 화재 사건의 생존자라는 거 같던데, 거기서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는지 원. 젊은 나이에 안타까워.”
“걱정 마세요. 걔 눈을 번쩍 뜨게 만들 비장의 카드가 유카한테 있거든요!”
“비장의 카드?”
“그건 비~밀!”
유카는 입술에 검지를 갖다 대며 발랄하게 윙크를 하고,
“그럼 유타가 어디 있는지 가르쳐주실래요?”
“여기 진입해서 세 블록쯤 가다가 동쪽으로 방향을 틀면 작은 골목이 나오거든. 거기서 한참 걷다보면 보일 거야.”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아가씨,”
토시조는 유카의 전신을 눈으로 훑다가 살짝 미묘한 톤으로,
“듀얼리스트지?”
“으헥? 들켰네! 어떻게 알았어요? 헤어스타일? 아니면 복장? 이 동네 여자 듀얼리스트들은 전부 유카처럼 가디건에 스패츠 차림인가?”
“……아니, 듀얼 디스크가 있잖아.”
“아, 아하하. 그렇네요. 눈썰미도 좋으셔라.”
유카는 디스크를 착용한 오른손으로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토시조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목소리를 낮췄다.
“솔직히 조언하자면, 거기 안 가는 게 좋아.”
“왜요?”
유카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왜냐하면 거기엔…….”
“우와, 엄청 앤티크한 마을이네?”
토시조의 나름대로 진지한 조언을 쿨하게 무시하고 마을에 들어선 유카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스팀펑크 소설의 세계관 속에나 나올 법한 분위기의 건물들이었다.
갈색과 탁한 푸른색의 거대한 고철 건물들이 자아내는 광경은 묘하게 장엄한 느낌을 풍겼다.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 또한 고전미가 넘치는 차림이 인상적이었다.
“아차, 정신 팔릴 때가 아니지! 저기요, 거기 멋진 아저씨이~!”
“엥?”
지긋한 연배의 중년 남자 한 명이 유카의 부름에 발걸음을 잠시 멈췄다.
“이 마을에 ‘팀 새티스팩션’이라는 깡패단이 있다면서요? 안티 룰로 듀얼리스트들의 레어 카드를 뺏고 다닌다고 들었는데!”
“엥? 갑자기 그 사람들은 왜…… 흐이익?”
그 남자는 유카의 듀얼 디스크를 보자마자 기겁해서 줄행랑을 쳤다.
“으아아아아악! 새티스팩션이다아아아아-!!!”
“응?”
졸지에 오해를 산 유카가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데, 등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이보세요, 거기 젊은 처자.”
일흔은 족히 넘어보여도 깨끗하고 정정한 풍채의 할머니였다. 그 할머니는 사람 좋은 미소를 내보이며 손짓을 했다.
“잠깐 나 좀 따라오실라우?”
“실례하겠습니다.”
유카는 할머니의 인도를 받아 조심스레 오두막집에 들어섰다. 창문도 없고, 다 떨어져가는 문을 제외하면 음식 하나 넣고 받을 구멍밖에 공기가 통할 장소가 없었다.
오래 돼서 밴 눅눅한 냄새와 여기저기 집을 친 거미줄은 덤.
‘으왁, 이런 데서 사람이 살 수는 있는 거야?’
유카는 질색을 하면서 할머니의 뒤를 따르는데,
“큰 배낭이랑 질긴 복장을 보니 여행길에 오른 분 같은데, 처자는 어디서 왔수?”
“다이스 타운이요!”
유카는 살짝 불쾌한 감정을 숨기고 발랄하게 대답했다.
“오호, 다이스 타운이라. 혹시 성함을 여쭤 봐도 될까유?”
“니시하마 유카입니다!”
“유카, 유카라…….”
할머니는 이름을 듣자 무언가 생각이 나는 것처럼 여러 차례 곱씹다가,
“처자 혹시 누구 찾으러 온 거 아니우?”
“얼레, 어떻게 아셨죠?”
“이 다 늙어 죽어가는 몸한테 모든 걸 내맡기고 병자처럼 퍼질러진 사내가 한 명 있거든. 거의 5년 동안 다른 말은 한 마디도 없이, 마치 주문이라도 걸린 것처럼 계속 똑같은 말만 반복하는 거요. ‘미안합니다, 유카 양.’, ‘미안하다, 푸른 눈.’”
“!!!!!”
유카의 머리 위로 커다란 느낌표가 5개 나타나면서,
“혹시 그 남자 이름, 유타 아니에요?”
“그건 모르겠수. 이름을 말해준 적이 없어서. 대신 피부는 분바른 것처럼 창백하고 눈은 시퍼런 것이 여간 신기한 생김새가 아니라우. 그 총각은 여기에…….”
할머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카는 할머니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의 문을 부술 기세로 열어젖혔다. 그러자 유카의 눈에는 오랜 여정동안 찾아 헤맨 그 문제의 남자가 초점을 잃은 눈으로 천장을 바라본 채 멍하니 앉아있는 모습이 비쳤다.
“유타!”
유카는 반가워서 척수 반사적으로 목청을 높였다.
“유타, 맞지?”
“……!”
손질이 되지 않아 덥수룩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본래의 광택을 잃지 않은 은발, 사파이어처럼 깊고 푸른 눈의 청년, 미나모토 유타의 시야에 유카의 전신이 들어왔다. 그러자 유타는 천적을 만난 개구리처럼 뒤로 펄쩍 뛰어 그녀와 거리를 두었다.
“다, 다, 당신은…….”
“어머, 그때 목소리랑 하나도 안 변했네! 변성기도 안 온 거야? 신기하다, 하하!”
유카가 해처럼 환한 미소를 보이며 한 걸음씩 다가왔다. 그러나 유타는 그녀를 반갑게 맞이하기는커녕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만 칠뿐이었다.
“오, 오, 오지 마세요!”
“왜 그래?”
유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유카가 너 만나려고 얼마나 먼 길을 온 지 알아? 약간 섭하네~”
“저는, 저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헐, 마음의 준비?”
유카는 잠깐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기더니 음흉한 미소를 뗬다.
“이 사람 보게, 인상만 봐선 순수 그 자체인데 은근히 요상한 생각도 품을 줄 아네?”
“네?”
“우후후, 걱정 마. 유카는 대화도 제대로 못 나눈 남자랑 진도 뺄 만큼 쉬운 여자 아니니까.”
유카는 알 수 없는 소리만 혼자 한가득 늘어놓더니 품에서 카드 1장을 꺼냈다.
“잃어버린 물건 돌려주러 왔어.”
“설마…….”
유타는 덜덜 떨리는 손을 억지로 내밀어 그 카드를 받아들었다. 거기엔 이미 헤어진 지 5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눈에 익은 그 몬스터의 위엄 넘치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푸른 눈의 백룡]…….”
“날이면 날마다 원래 주인을 찾고 싶다고 울어대서 버틸 수가 있어야지, 하하.”
“당신은 몬스터의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응. 듀얼몬스터즈를 처음 안 7살 때부터인가? 어느덧 12년이나 됐네. 남들이 괴짜 취급하기에, 유카만이 갖고 태어난 보물 같은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대신 인간형 몬스터가 아니면 언어는 알아들을 수가 없고, 대충 기뻐하거나 슬퍼하거나 그런 것만 유추하는 정도지.”
그 말을 듣자 유타는 [푸른 눈의 백룡]을 유카에게 다시 건넸다.
“그럼 저는 이 카드를 못 받아요.”
“아니, 왜?”
“이만한 레어 카드의 주인은 저보다 당신이 훨씬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이상한 목소리의 꾐에 넘어가서 무고한 사람을 수백 명이나 죽인 제게 너무 과분한 카드예요.”
그러자 유카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유타는 몰라.”
“네?”
“이 카드가 얼마나 유타의 품안으로 돌아가길 바라는지 모른다고.”
유타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우물쭈물하자, 유카는 목청을 한층 더 높였다.
“이 카드는 유타의 곁에 있고 싶어서 안달이 난 나머지, 유카가 듀얼 디스크의 몬스터 존에 올려놓아도 소환이 되지 않아. 다른 사람들한테 역시 마찬가지고! 어디 한 번 보겠어?”
유카는 보란 듯이 자신의 듀얼 디스크 몬스터 존에 [푸른 눈의 백룡]을 앞면 표시로 올려놓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디스크의 솔리드 비전은 일절 반응하지 않았다. 시스템 오류 메시지가 뜬 것도 아니었다. 디스크는 마치 죽은 듯이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진정한 주인을 알아보는 건 카드 자신이야! 유타도 듀얼리스트 아냐? 왜 듀얼리스트가 카드의 마음을 외면하는 거야?”
“저, 저는……. 그런 레어 카드의 소지자로서 어울리지 않는 죄인일 뿐이…….”
그때였다.
“어이, 미즈치 할멈!”
오두막집 밖에서 웬 짓궂은 목소리를 가진 남자의 외침이 들려왔다.
“여기 방금 여자 듀얼리스트 한 명이 들어왔다는 말을 들었는데, 진짜야? 먹잇감이 왔으면 얼른 보고를 해야지!”
“저는 그런 사람 몰라요.”
할머니는 시치미를 잡아뗐다. 그러나 유카는 생쥐마냥 방구석에 숨어있을 생각은 없었다.
“팀 새티스팩션. 안티 룰로 듀얼리스트들의 레어 카드를 강탈하고 다니는 도적단. 이 녀석들 때문에 이 마을엔 듀얼리스트의 씨가 말라서, 듀얼 디스크만 봐도 팀 새티스팩션의 멤버인 줄 알고 사람들이 줄행랑을 친다지?”
유카는 할머니에게 들은 말을 곰곰이 되새겨보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유타! 일어나!”
“뭘 하시려고요?”
“뭐긴 뭐야, 듀얼이지!”
유카는 허리춤의 벨트에 부착된 덱 케이스에서 덱을 꺼냈다. 그리고 유타가 쥐고 있는 [푸른 눈의 백룡]을 빼앗듯이 잡아채서 덱에 넣고, 듀얼 디스크에 장착해서 셔플 했다.
“이 마을의 듀얼리스트들에게 고통을 안긴 놈들에게 혼쭐을 내줘야하지 않겠어? 그리고 녀석들에게 이기려면 아무래도 이 카드의 힘이 필요할 테니까 말이야.”
“방금 [푸른 눈의 백룡]은 디스크가 인식하지 못하는 카드라고 하셨잖아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유카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는 카드야.”
유카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내보이며 유타의 손을 잡았다.
“유타의 목소리라면 반응할 거야.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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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모토 유타와 니시하마 유카 커플의 기묘한 모험이 시작되는 첫 장입니다.
모 유희왕 시리즈의 듀엣☆단이 생각난다면 당신은 이미 훌륭한 유덕.
스스로 쓰면서도 즐거운지라 금방 2화 연이어 올릴 겁니다.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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