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얗게 맺힌 눈꽃
새벽하늘 져문 눈꽃
……
Selected One - 40
극혹
……
눈을 뜨자 그곳은 새하얀 풍경이 끝없이 펼쳐진 설원이었다. 불구덩이에 내던져진 기억이 떠오름과 동시에 온몸을 짓누르는 한기가 느껴졌다. 보라색으로 살이 얼어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창백하게 얼어버린 시체와도 같은 그를 움직인 것은 또다른 남자였다. 그가 다가오자 다리와 허리에 힘이 돌아왔고 그 다음으로 어깨까지 비교적 가볍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둘은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았지만 눈밭에 쓰려져있던 그는 상황을 어느정도 이해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은 움직이지만 혈색은 아직도 창백하다.
두 남자가 새하얀 눈길을 걸어간다. 한 명은 갈색머리가 특징적인 청년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얼굴만 겨우 드러나도록 로브를 입은 남자. 묵묵히 길을 걷던 중에 청년은 의문을 표한다.
"저번에 봤던 것보다 설원이 넓어진 것 같은데."
"그래. 그때는 네 영혼의 한편에 불꽃이 남아있었지."
"그 불구덩이?"
"그래. 지금은 완전히 꺼져버려서 다시는 볼 수 없을거다."
"그게 다 꺼져버렸다고?"
"지금쯤이면 그 불꽃이 타던 곳에는 눈밖에 없을 거다."
"그 불꽃은 소울 이터의 영향이라고 했었잖아. 그녀석이 사라지지도 않았는데 그게 왜 사라졌다는 거야."
"아직도 모르겠나?"
검은 머리의 남자는 등을 돌리고 가온을 바라보았다.
"불꽃과 함께 사라져버린 거다."
"그녀석이 사라졌다고?"
"그래. 이제 네 영혼속에 남아있는 것은 이 끝이없는 설원뿐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포피리아에게 파괴되었었지. 너와 그녀는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나도 죽었다고……?"
"그래. 그 공격을 받고 살아있을 거라 생각하는게냐?"
"……."
"안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등을 돌리는 검은 머리 남자. 등을 가온에게 향한채로 자신은 어디론가 걸어간다. 발을 딛고있는 곳이 땅이라면 분명히 하늘일 천정으로 뻗은 새하얀 나무를 향하여 그는 걸어간다.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은 그를 따라 가온은 달려갔다. 몸이 얼어붙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가벼운 걸음이었다.
"이제 주저없이 달리는 것이 가능해졌군."
"그래. 처음 여기서 눈을 떴을때는 일어서지도 못 했지."
"그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 뭘 말하는 거야."
"네가 두려워하던 곳에 이제는 뜀박질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두려워하던 곳……?"
"네 영혼이 무의식적으로 발을 빼어, 스스로 물러났던 저 곳말이다."
검은 머리 남자가 새하얀 나무를 가리키고 말한다. 그가 몇 번이나 영혼의 중심이라 불렀던 장소. 나무의 뿌리와 굵은 줄기를 향하여 걸음을 내딛는다.
"나는 왜 저기에 가는 걸 꺼려했던 거지?"
"흐흐."
가온의 말을 듣고서 멍청한 질문이라도 들은듯 웃는 남자.
"저기에는 너의 이름이 쓰여져있거든."
"내 이름? 그게 왜."
"너는 네 이름이 뭐라고 생각하지?"
"가온이다."
"그렇겠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가온. 남자는 당연하겠거니 받아들인다.
"하지만말이다. 그렇지 않아."
"내 이름이 가온이 아니라고?"
"그보다 일찍이 너를 위해 지어진 이름이 있다."
몸이 가볍다. 세상 끝에 놓여있는 것만 같던 나무는 어느덧 거리를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을정도로 가까워졌다.
"본디 이 세상이 눈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럼 뭐로 이루어졌었지?"
"그것까지는 나도 모르겠군."
"뭘 말하려는 거냐. 그러면."
"이곳이 원래부터 눈밭이었던 건 아니다. 그런 뜻이다."
"정말 아무런 말이나 하는군."
더더욱 가까워졌다. 멀리서 보았을때 그저 새하얗기만 하던 나무는 눈에 비친 빛이 그려낸 그림이었다. 실제로는 그것 외에도 다양한 색과 그림에 가까운 것들을 품고 있었다.
"앗."
하지만 그것을 온전하게 알아보는 일은 없었다. 나무 아래에 쓰여져있는 글자를 확인하기 전에 차가운 바람이 그의 머리를 꿰뚫고 지나갔다.
……
피가 쏟아져 나왔다. 살이 베여 뚝뚝 떨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파이프 한 칸이 사라진 수도관처럼 핏물이 쏟아져나온다.
"커억."
양 팔이 잘려나간 상태에서 쓰러지는 갈색 머리 청년. 제 자리에서 엎어진 가온을 보고서 거인은 조소한다.
"아직 라이프가 남아있지?"
거인의 공격으로 가온은 대부분을 잃었다. 라이프도 카드도. 지금 그에게 남은 것은 고작 200이라는 바람 불면 꺼지는 라이프. 그리고 카드 한 장 없는 패와 필드. 야트막하게 숨을 내쉴뿐이다.
"듀얼은 계속해야겠어."
"크어어."
"메인페이즈2."
가온이 숨을 꺽꺽 내쉬는 모습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 하는 거인. 전투를 끝낸다고 선언하며 그가 턴을 시작하며 뽑았던 거대한 카드 한 장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카드를 하나 세트."
거대한 판자같은 것이 그의 앞에 덮힌다.
"턴 엔드."
--- 포피리아 ( LP : 4300 ) ---
몬스터 : □(#)[흡혈기도 - 블러디아블로]
마법 / 함정 : ■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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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온 ( LP : 200 ) ---
몬스터 :
마법 / 함정 :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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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너의 턴이야."
가온을 내려다보는 거인. 한없이 거대한 존재가 자그마한 인간을, 몸을 구부리고 바닥을 기는 청년을 쳐다본다.
"어서 드로해."
빙그레 웃는 거인. 가온은 고통을 호소하며 제대로 말조차 하지 못 한다.
"드로하지 않는다. 듀얼을 포기할 생각인가?"
가온에게서 1m. 팔을 길게 뻗는다면 닿는 위치에 그의 듀얼 웨펀과 덱이 있다. 하지만 가온은 그것을 줍지 못 한다. 그것을 주워야 할 팔도 그것과 동시에 떨어져있기 때문에.
"후후후. 서렌더는 없어. 네가 턴을 마친 거라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하지."
가온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을 즐겁게 지켜본 거인은 느릿느릿 팔을 움직인다. 거인의 키에 맞춰진 거대한 카드를 향하여.
"나의……."
"턴……!"
"?"
거인의 손이 멈칫한다. 무어라 잘 안들릴정도로 까마득하게 아래에 있는 청년이 입을 연 것이다. 고통을 호소하며 비명을 지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 너의 턴이야. 그래서 드로는 어떻게 할 거지?"
가온은 이제 더이상 팔이 없다. 카드를 드로할 방법이 없다.
"팔이 있는 곳까지 기어가서 이빨로 당기기라도 할 거야?"
가온을 비웃는 거인. 벌레만도 못 한 미물을 바라보며 실실 웃는다. 그러는 사이, 가온의 어깨에선 더이상 피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너무나도 차가운 바람이 그의 몸을 얼려, 혈관마저 얼어붙은 것이다.
"허억……."
숨을 거칠게 내쉰다. 새하얀 입김이 그의 입을 통해 빠져나온다. 입김은 곧 얼음 조각으로 바뀌었다. 액체로조차 남아있을 수 없는 것들이 새하얗게 얼어간다. 까드득 소리를 내며 수축한다.
"음?"
조금 이상하다. 거인은 기묘한 기시감에 지면을 짚는다.
"차가워……."
거인의 두꺼운 가죽을 꿰뚫고 서리가 피는 듯 하다.
"내 턴……."
어깨가 얼어붙은 청년이 비틀비틀 일어선다. 새하얀, 투명함에 가까운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고 청년은 일어난다. 깊은 한숨을 내쉬자 얼음 알갱이들이 타닥타닥 땅바닥으로 떨어진다.
"어떻게 된 일이냐."
거인이 미간을 찌푸린다.
"어째서 팔이 달려있는거지?"
청년의 머리에서 유별나게 눈에 띄던 커다란 세 줄기의 주황색 머리칼이 사라졌다. 그것을 대신하는 것일까, 새까맣고 뾰족한 얼음 덩어리가 그의 머리 위에 맺혀있다. 까득거리는 소리를 내며 가온은 몸이 얼어붙은 채로 움직였다.
가온은 앞으로 몇 발자국 걸어갔다. 그의 어깨 아래에 붙어있던 왼팔과 오른팔. 그중에서 그는 왼팔에 들려있는 듀얼웨펀을 빼내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어깨 아래로 자라난 새하얗고 투명한 얼음덩어리에 끼워넣는다.
"그 검은 것은 설마……."
"내 턴이다. 드로……!"
그에게 주어진 것은 지금 뽑은 카드 단 한 장.
"마법 카드 [어리석은 매장] 발동."
"마법 카드라고? 묘지에 마법도 함정도 없어야 몬스터 효과를 발동할 수 있으면서 잘도 그런 카드를 쓰는구나?"
"덱에서 [페어리테일-백설]을 묘지로 보내겠다."
가온이 발동시킨 것은 초록색 프레임의 카드. 그가 잘 사용하지 않던 카드 한 장이 덱에서 주황색 동료 한 장을 이끌고는 묘지로 들어간다.
"턴 엔드다."
"그게 끝이야? 겨우겨우 잡아낸 카드 한 장. 그런데 고작 그걸로 턴 엔드라고?"
"다시 말해줘야하나? 턴 엔드라고 했다. 그토록 카드를 뽑길 바란 네가 왜 우물쭈물거리는 거지?"
"기적적으로 팔이 자라났다고 자만하는구나. 좋아. 네가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그렇게 해줄게."
--- 포피리아 ( LP : 4300 ) ---
몬스터 : □(#)[흡혈기도 - 블러디아블로]
마법 / 함정 : ■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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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온 ( LP : 200 ) ---
몬스터 :
마법 / 함정 :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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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적으로 카드를 뽑아 턴을 진행했지만 상황은 무엇 하나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절망적으로 변했다. 블러디아블로를 파괴할 카드를 기적적으로 뽑는다는 희망도 있었지만, 가온 자신의 덱에 어울리지 않는 마법 카드를 뽑아버렸다. 가온은 자신의 턴을 던지고 거인에게 헌납한 것이나 다름 없다.
'뭐. 벽몬스터를 세워놓아도 나 자신의 효과로 파괴할 수 있지만.'
거인은 설령 몬스터를 드로했다고 하더라도 가온의 상황이 별반 다를 것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드로."
카드 한 장을 끌어당긴다. 거대한 석판처럼 보이는 카드의 뒷면. 포피리아의 안중에도 들어오지 않는다.
"배틀이야."
그 말을 외치고서 거인은 주먹을 내질렀다.
"공격 선언시, 묘지에서 카드 7장을 제외하고 [페어리테일-백설]의 효과를 발동한다."
"이 타이밍에 효과를?"
"그래. 묘지에서 [페어리테일-백설]( LV 4 / ATK 1850 )을 특수 소환."
일곱 장의 카드가 차례로 가온의 묘지에서 빠져나온다. [어리석은 매장], [유령토끼], [전광-설화-], [초중무사 빅와라-G], [초중무사소울 츄우사이], [초중무사소울 버스터 건틀릿] 그리고 [백만먹기의 그랏톤]. 일곱 난쟁이의 보살핌으로 잠에 빠져든 공주가 꿈에서 깨어났다. 새하얀 눈처럼 깨끗한 빛을 내는 자그마한 소녀가 눈을 떴다.
"벽몬스터를 뒤늦게 세워봤자 네 라이프는 200. 이걸로 끝이다."
"서두르지 마라. 백설의 효과 발동."
독이 묻은 사과 한 송이를 드는 백설. 주먹을 내지르는 거인을 향해 힘차게 집어던졌다.
"상대 필드의 앞면 표시 몬스터 하나를 세트시킨다."
"뭣."
"네놈을 뒷면 수비 표시로 돌리겠다."
주먹에 닿자마자 살얼음판처럼 깨져버리는 사과. 그 안에 스며든 독이 폭죽이 터지듯 터졌다. 보랏빛의 음침한 액체가 퀴퀴한 냄새를 내며 거인의 팔에 스며든다. 그 독에 신경이 마비된 거인은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쓰러진다.
"크윽. 메인페이즈2."
"공격 선언시에 뒷면 수비 표시가 된 몬스터는 그 턴에는 반전 소환할 수 없다."
"아아. 나도 알고 있어."
관절을 삐그덕거리며 목을 올리는 거인. 거인의 턱이 드높게 올라간다.
"턴 엔드."
마침내 거인은 그 말을 뱉어낸다.
--- 포피리아 ( LP : 4300 ) ---
몬스터 : ■(#)[흡혈기도 - 블러디아블로]
마법 / 함정 : ■
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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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온 ( LP : 200 ) ---
몬스터 : □[페어리테일-백설]
마법 / 함정 :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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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턴이다. 드로!"
카드를 뽑아드는 가온. 손끝에 차가운 김이 서린다.
"묘지에서 (#)[쇠약의 소울 이터]를 제외하고 효과 발동."
"묘지에서 효과 발동이라."
"카드를 2장 드로하고 패를 1장 버린다."
"이 타미잉에 패 교환 효과? 저번 턴에 쓰지 않고서 지금까지 기다렸다고?"
묘지에서 주황색 카드를 한 장 뽑아들고 설명하는 가온. 검은색 불꽃이 그의 손에 엉겨붙었다.
"드로!"
카드를 2장 새롭게 뽑아드는 가온. 새까만 용이 그려진 카드 두 장이 그의 손에 들어온다.
"패를 한 장 버리겠다."
주황색 일색인 패에서 카드 한 장을 골라 묘지에 꽂아넣는 가온. 눈을 감은 뒤, 숨을 고르고서 다시금 몸에 힘을 준다. 저릿한 손가락 끝으로, 삐걱대는 얼음 꼬챙이 끝에 놓인 카드 하나를 뒤집어 거인에게 보여준다.
"필드에서 [페어리테일-백설]을, 패에서 [파멸룡 간드라X]를 묘지로 보내겠다."
새까만 불길이 치솟는다. 가온을 잡아먹을 듯이 활활타오르는 검정 불꽃. 보라색 세계가 검게 그을려간다. 새하얀 눈꽃같은 공주와 한 마리 사악한 마룡. 수천의 눈이 달린 검붉은 용이 불꽃의 중심에서 날개를 펼친다.
"특수 소환! [파괴룡 간드라-기가 레이즈]( LV 8 / ATK 0 )!"
새까만 마룡이 날개를 휘젓자 불꽃이 춤을 춘다. 높다랗게 치솟은 불길은 양옆으로 갈라지며 화염의 호수를 만들어냈다. 차가운 눈길 그리고 얼어붙으며 얼음 알갱이가 무수히 맺힌 대기, 보라색으로 물든 하늘 그 모든것이 검은 빛으로 변색된다. 새까만 화염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붉은 빛. 하늘을 찢고 용의 포효가 울려퍼진다.
"카드 두 장을 묻어서 소환한 몬스터가 공격력 0. 뭘 숨기고 있는거냐."
"간드라의 공격력은 제외되어 있는 카드 하나당 300이 상승한다."
"제외된 카드의 숫자에 따라 결정된다고?"
그 말을 들은 순간, 거인의 정신이 아찔해진다. 듀얼의 후반에 이른 지금, 12턴이나 지나며 두 남자가 제외한 카드는 이미 두 손으로 셀 수 있는 범위를 지났기 때문이다.
"내가 제외시킨 카드 12장. 그리고 네가 제외시킨 카드 7장. 합쳐서 19장이다."
"그렇다면 간드라의 공격력은……."
"[파괴룡 간드라-기가 레이즈]( LV 8 / ATK 0 → 5700 )이 된다."
"공격력 5700!"
거인의 공격력을 가볍게 상회하는, 2배가 넘는 공격력에 거인이 경악한다. 백설이 집어던진 독사과 탓에 아직도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무엇인가 반격을 하려 하지만 그에게는 마땅한 수단이 없다.
"하. 하하. 후후후. 그래도 상관없어. 나는 부숴지더라도 다시금 살아난다. 공격력이 아무리 높아봐야……."
"과연 그럴까?"
"나는 몇 번이고 되살아난다. 그리고 그때마다 내 라이프는 끝을 모르고 치솟을테니!"
"간드라의 효과 발동. 자신 이외의 필드의 모든 카드를 파괴한다."
거인의 말을 일축하며, 가온은 팔을 뻗었다. 청년의 명령에 따라 마룡 간드라는 눈을 떳다. 목이며 어깨, 팔, 꼬리까지 돋아난 붉은 구슬들. 그 새빨간 눈들이 일제히 뜨이며 새빨간 빛을 내기 시작한다. 뜨겁게 타오르며, 세상을 자신의 색으로 물들인다.
"파괴되더라도 나는!"
"뒷면 수비에서 파괴된 몬스터는 파괴되었을 때 발동하는 효과를 쓸 수 없다."
"뭐라고……?"
그 순간이었다. 붉은 광선 하나가 거인의 가슴을 꿰뚫고 거기서 더 나아가 자색의 하늘을 뚫어버렸다. 총성이 울리지 않건만, 거인의 몸에 무수한 총상이 새겨진다. 그리고 그 때마다 굉음과 고열, 열풍을 동반하며 하늘을 옆으로 벌려간다. 잃어버린 검정빛이 새벽의 차가움이 담긴 푸른색이 섞여 머리 위로 내려온다.
"크으윽!"
거인의 몸이 완전히 와해된다. 풍선이 터지듯 보라색 피를 흩뿌리며 그 안에 들어있던 자그마한 청년이 지상으로 떨어졌다. 남성미가 느껴지는 근육들은 어디로 가고, 말라 비틀어진 새하얀 남자만이 누추하게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다.
"이걸 노린거구나. 날 부숴트리기 위해 일부러 한 턴을 넘겼던거구나."
"……."
"아냐 이상해. 그렇다면 저번 턴에 그렇게 하지 못 할 이유가 없어."
포피리아는 중얼거린다.
"너. 보이는 거구나?"
간드라의 힘에 의한 것인가, 청년의 얼굴을 가린 가면이 깨졌다. 그 아래에 있는 얄상한 얼굴이 드러난다. 포피리아는 마치 무엇인가에 취한것처럼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머리위에 떠있는 그거. 왕관이구나."
"왕관? 네가 말했던 그거냐."
"그래. 내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거."
"그게 왜 나한테 있는거지?"
"그래. 나도 모르겠어. 대체 어째서일까."
청년이 손톱 끝을 씹더니 이내 손가락을 물어뜯는다.
"대체 어째서? 왜 네가? 내가 아니라 왜 네가 그걸 쓰고 있는거지?"
강박스러움. 자신의 손가락을,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손을 뿌리채 뽑아서 삼켜버린다.
"……괴물."
"그 왕관은 가짜. 아냐. 가짜라면 앞을 볼 수 없을텐데."
"헛소리는 거기까지. 배틀이다!"
정신적으로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포피리아를 향해 가온이 소리친다. 그제서야 포피리아는 중얼거리는 것을 멈춘다.
"간드라. 직접 공격!"
청년이 공격을 지시하자 다시금 마룡이 불을 뿜는다. 새빨간 안광을 불태우며 검은 하늘 아래에 새하얀 것들마저 모두 불태우려 한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강렬하고 뜨거운 불길에 포피리아는 먹어치우지 않은 다른 손을 내밀었다.
"패를 한 장 묘지로 보내고 묘지에서 (#)[흡혈기도]를 제외해 효과 발동."
새빨간 피의 장막이 포피리아를 지킨다.
"묘지에서 튜너 몬스터 [부유벚꽃]과 (#)[흡혈기도 - 블러디아블로]를 제외하고 싱크로 소환을 이행한다."
"속공 싱크로!"
"레벨의 합계는 10."
피의 장막이 저물어들며, 청년의 몸 위에 쏟아진다. 붉은 천을 몸에 휘감고서 청년은 눈을 감는다.
"누추한 나의 몸이여, 지금 버려지고 사치로움으로 대체되거라.
내 정신을 천착하고 비틀어, 쾌락으로 번지거라."
하얀색이 모두 빨간색으로 변질된다. 청년의 팔이, 가슴이 녹아내리고 빨간 늪 위로 눈 몇개가 떠오른다. 등 뒤로 날개가 돋아난다. 어깨와 날개죽지를 일자로 그으며 새빨간 손 하나가 그의 등을 찢어버리고 제 모습을 드러낸다. 청년의 등 뒤로 터져나오는 핏줄기. 늪의 수위가 높아지며 그의 몸을 좀먹어간다.
"비를 내리듯, 피를 내리게끔 하여라.
저들로하여 제 스스로 경탄하게끔 하여라."
넘실거리는 붉은 파도. 새빨간 호수 위로 거대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은 한 마리 거대한 박쥐. 한 명의 거대한 남성. 그리고 신성스러운 분위기를 뿜어내는 아름다운 몸매의 조각상. 누구나 그를 우러러보며 말을 잃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것은 한 마리 커다란 마룡과 자그마한 청년 하나뿐. 둘밖에 없는 보는 이 앞에서 포피리아는 마침내 피의 허물을 벗어내며 붉음 이외의 색을 스스로에게 입혀간다.
"싱크로 소환. (#)[크림즌 노바]( LV 10 / ATK 4000 )."
핏물을 씻어내며, 곤충의 날개처럼 반투명하고 넓은 날개가 펼쳐진다. 허리를 세우고서는 어깨를 뒤로 뺀다. 그의 머리 위로 다섯 갈래로 나뉘어진 부드러운 깃털이 오른다. 그것은 흡사 눈동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왕관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그토록 노래를 부르던 왕관을 스스로 만들어 쓴 것일까.
가온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긴장감에 침을 삼켰다. 목을 타고 침이 흘러가는 소리에 스스로 놀랐다. 링커를 다시금 소환했다고 하더라도 그 공격력은 간드라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런데 어째서지?'
이상할 정도로 위축된다. 얼어붙은 혈관이 다시금 따뜻해져 이상이 일어난 것일까. 심장이 요동치는 소리가 숨을 참으면 명확하게 들려온다. 이 긴장의 근원지는 어디일까.
'아냐.'
고개를 젓고서 긴장을 떨쳐낸다. 저 거대한 몸체는 허상에 불과하다. 입김불면 쓰러지는 종이와도 같은 것이다.
"카드가 제외된 것으로 [파괴룡 간드라-기가 레이즈]( LV 8 / ATK 5700 → 6600 )의 공격력은 상승한다. 간드라 가라!"
새빨간 안광이 불탄다. 검푸른 비늘위로 새겨진 수많은 구슬들이 불길을 뿜어내자, 눈 앞의 거대한 존재도 검게 그슬린다. 하지만 그 이상의 피해는 입지않는다.
"내가 파괴되었을 때, 효과를 발동한다. ( LP : 4300 →1700 ) "
검게 그을린 날개를 흔든다. 새까만 검정을 털어내며 짙은 핏물이 배어 나온다. 새빨갛게 적셔진 날개를 뒤로 길게 펼치고 간드라를 향해 손가락을 내민다. 손끝을 따라서 붉은 길이 펼쳐진다. 손바닥을 위로하여 빙글빙글 돌리니 그의 손 위로 새빨간 원반이 펼쳐진다. 끊임없이 빠르게 회전하는 피빛의 톱날. 그는 그것을 붉은 길이 펼쳐진 곳을 향하여 던졌다.
"너의 몬스터를 모두 파괴하고 너의 라이프를 절반으로 한다."
"!!!"
핏빛으로 물들여지는 시야. 마룡의 몸체를 가로로 양단하는 새빨간 날. 붉은 궤적이 선명하게 허공에 새겨진다. 검은 하늘이 붉은 잇몸을 드러낸 듯 하다.
양단된 용의 뒤로 세찬 바람이 일었다. 발 아래의 눈들은 모두 얼음으로 변하였다. 새까만 하늘을 반사하는 빙판은 붉게 변질되어 가시가 돋친다. 가시들은 중력을 거슬러, 로켓을 쏘아올리듯 위로 튀어올랐다. 이 모든 것은 갈색 머리 청년을 노린 것. 용의 시체를 관통하고, 청년을 찌르려 한다.
"크으윽! ( LP : 200 → 100 ) "
붉은 피를 토해내는 가온. 하지만 그의 피는 이내 얼음 알갱이로 변하여 부스러진다.
"이걸로 정말 끝이구나."
다시금 우위를 점하며, 한 때 자신을 쓰러트릴 것 같았던 청년을 내려다본다.
"이번에는 정말로 위험했어."
팔을 유연하게 움직이며 손가락이 하늘을 헤엄치도록 한다.
"하지만 그덕에 왕관이 성공적으로 완성되었지. 저기 저 새하얀 녀석과 듀얼하는 동안에는 왕관이 완벽하게 만들어지지 않았거든."
가온은 옆을 바라보았다. 새하얀 눈 위에 널부러진 청년, 하얀머리. 자신의 목숨을 두 번이나 노린 괴물 양. 지금은 초라하게 땅위에 죽은 것처럼 드러누웠다.
"본래 나한테 왔어야했던 영혼들은 신목을 가지고 있는 혜르에게로 돌아갔지. 그덕에 이렇게 중간에 힘을 가로채야만 했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지?"
"저기있는 녀석이 끝이 아니야. 스트로리라는 링커도 흡수했지. 빼앗긴 다른 링커들보다 월등한 영혼을 품고있던 링커말야."
"소울 이터가 링커의 왕이라 부르던 그녀석인가."
"이제 그 목숨줄을 끊고 소울 이터를 흡수하면 드디어 염원하던 혜르와 싸울 수 있겠지."
"호오."
"그를 죽이고 온전한 왕관을 성취한다. 그러면 나는 트리님을 완벽하게 계승하는 거야."
"그렇단말이지."
아무것도 쥐고있지 않은 텅 빈 손이 둘.
"턴 엔드다."
가온은 총의 방아쇠를 자신의 손에서 포피리아의 손아귀로 던진다.
--- 포피리아 ( LP : 1700 ) ---
몬스터 : □(#)[크림즌 노바]
마법 / 함정 :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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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온 ( LP : 100 ) ---
몬스터 :
마법 / 함정 :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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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턴."
카드를 슬쩍 뽑는 포피리아. 그에게 있어서 카드를 드로한다는 것에는 더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저 해야만 하는 일이기에 하는 것이다.
"자 끝을 내자."
그렇기 때문일까 그는 드로한 카드를 확인조차 하지 않고서 바로 배틀을 선언한다.
포피리아가 팔을 펼치고 손가락을 앞으로 향한다. 그의 손끝을 따라 보랏빛 그리고 빨간빛이 흘러나온다. 별을 뿌리는 검은 하늘처럼 그의 손 아래로 장대한 커튼이 펼쳐진다. 바람결에 사르르 흔들리는 웅장한 장막이 청년을 겨냥한다. 취할듯한 빛이 흘러나온다. 차가운 대지가 붉은빛으로 불타기라도 하는 듯, 뜨겁게 끓어오른다. 아지랑이가 피어난다.
"묘지에서 [클리어크리보]를 제외하고 효과 발동."
가온의 왼팔, 차가운 얼음 위에 매달린 듀얼웨펀이 주황색 카드 한 장을 뱉어냈다. 가온을 덮치는 무수한 별빛과 뜨거운 열풍이 사그라든다. 고요하고 낮은 바람 소리가 술렁인다.
"카드를 한 장 드로하고 그것이 몬스터라면 특수 소환한다."
"이제와서 뭘 부르더라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아."
포피리아가 말한대로다. 지금 어떤 카드를 뽑는다고 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벽을 세워두어 공격을 막는 것이 최선.
'정말 만에 하나, 마법이나 함정이라도 뽑는 날에는 정말 끝장이다.'
가온의 덱에는 몬스터 카드가 아닌 것이 몇 장 들어있다. 얼마 안 되는 확률이지만, 이 듀얼에서 사용한 마법 카드는 단 한 장. 덱 아래에 쌓여있던 카드를 운 나쁘게 뽑을 수도 있는 일이다.
'아냐. 지금은 몬스터다. 몬스터를 뽑을 생각만 해라.'
포피리아의 공격을 막아줄 몬스터를 소환할 기회를 얻어놓고서는 카드조차 당기지 못 하고 망설이고 있다. 생과 사가 결정되는 순간. 가온의 초조함이 손끝에서 떨린다.
"……!"
효과를 발동한 이상 수행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카드를 드로하려는 그 순간, 손끝에 전류가 흐른다.
다시 포피리아는 팔을 들어올렸다. 가온이 몬스터를 드로하건 아니건, 그의 공격이 멈추는 일은 없다. 전투는 강제되어 다시금 청년을 향해 붉은 심판을 내리기로 한다. 손바닥에 모여드는 혹한의 한기. 꽁꽁 얼어붙은 피가 한 점에 모여들어 길쭉한 창이 된다.
"카드를 드로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신경쓰지 않아."
일갈하는 포피리아. 그의 손 위로 모여든 핏줄기를 지상으로 내던진다. 청년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드는 장창. 손끝을 떠나 아주 찰나의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도 벌써 청년의 머리를 꿰뚫으려 한다.
"기다렸다."
카드에 손가락을 올리는 가온. 얼음으로 이루어진 팔이 차갑게 얼어붙은 카드 한 장을 당겼다. 그리고 동시에 새빨간 피의 폭발이 일어난다. 허공에서 산란하는 새빨간 빛. 그 순간 모든 것이 정지했다. 앞으로 나아가던 것은 방향성을 상실한 채 공중에 맺혀버렸고 대기에 흐르던 유체는 모두 새하얗게 얼어버렸다.
"꽃 가지 아래에 멈추어라. 만개하는 눈꽃."
발끝에서부터 시작하여 포피리아의 몸이 새하얗게 얼어붙는다. 몸을 타고 올라오는 뼈가 시린 한기에 그가 당황한다.
"이게 무슨!"
원인이라고 한다면 눈 앞에 있는 자그마한 청년. 카드를 당긴 가온이다.
포피리아는 몸의 절반이 얼어붙은 상태로 팔을 길게 뻗었다. 지상에 내지르는 거신의 일격. 그의 손가락 끝이 청년을 관통하려 한다.
"피어라. (#)[극혹의 소울 이터]( LV 7 / ATK 2500 )!"
멈춰버린다. 가온과 포피리아, 둘을 중심으로 한 세상의 모든것이 창백하게 얼어붙고 움직임이 정지한다. 새하얗게 얼어버린 세상이 청년과 자그마한 소녀 앞에 놓여있다.
- 후우.
소녀가 입을 열었다. 새하얀 입김이 빠져나온다.
- 이런 느낌은 처음인데.
"춥다고 난리치더니."
- 신기한 기분이야. 하나도 안 추워.
새까맣던 소녀의 머리가 그녀를 둘러싼 세상과 같은 하얀빛으로, 새하얗게 얼어붙었다. 길게 늘어트린 아름다운 눈꽃같은 머리칼 그리고 그것을 기점으로, 연한 살갗은 모두 검은 타이즈에 가려지고 거추장스러운 옷가지가 모두 사라졌다. 불꽃이 불타는 모습 그대로 얼어버린 것처럼 새하얗게 일렁이는 얼음조각으로 이루어진 팔 끝에는 소녀의 키보다 큰 창이 쥐어져있다.
"가자."
- 그래.
청년과 소녀는 짧게 한마디씩 주고 받았다. 카드를 쥐었던 손에서 힘이 풀려버린 청년. 그리고 그와는 반대로 창을 쥔 오른손에 힘을 불끈 쥐는 소녀.
- 트라이!
도약하는 소녀. 핏빛의 괴물에게 겨냥하고서 소녀는 새하얀 궤적을 그린다.
- 봄버!
……
하늘의 색에서 핏기가 가신다. 핏기가 빠진 하늘은 새까만 검정. 넓은 도화지에 밝은 하늘색이 촉촉하게 적셔진다. 어느덧 새벽은 아침으로 이어지고 있다.
"후우."
숨을 길게 들이쉬고서 다시 내뱉는다. 새하얀 김이 뿌옇게 흐린다.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반쪽으로 나뉘어 부숴진다. 거대한 파편이 눈의 해일을 일으켰다. 새하얀 머리의 소년과 청년은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이겼어."
- 그래.
의외로 허망한 끝이었다. 가온은 그렇게 생각했다.
"읏츠."
승리를 확신한 그 순간 다리에서 힘이 풀렸다. 털썩 쓰러져버리는 가온을 소녀는 한심하게 쳐다봤다.
- 어떻게 듀얼만 끝나면 그렇게 되냐. 듀얼리스트 맞아?
"그러게말이다. 양이랑 듀얼할때도 이랬던 거 같은데."
- 뭐. 나는 힘이 펄펄 끓는 것 같지만.
"저녀석도 이겼겠다. 이제 힘 쓸 구석은 없을텐데?"
- 칫. 그런가.
"저녀석. 링커의 왕을 흡수했다고 했지."
- 걱정한 거에 비해서는 의외로 약한 놈이었어.
"파괴됬던 주제에."
- 효과도 모르고 돌격하게 시킨 놈이 누구더라?
"너도 몰랐잖냐."
- 그렇긴 허지.
실없이 웃기 시작하는 가온.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귓속으로 소리가 들려왔다. 신을 조각한 거대한 얼음이 무너지는 웅장한 소리는 아니었다. 신발 밑창이 눈을 짓눌러나는 뽀득거리는 소리. 주변이 조용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벌레의 날개 소리처럼 미약한 소리었다.
"……. 누군가 오고있어."
- 누구냐.
둘이 입을 열자, 발소리가 멈췄다. 말로 대답하는 대신, 새까만 그림자가 늘어졌다.
"윽 뭐야!"
- 쳇. 이건!
바닥을 타고 흐르는 검정색을 보고는 다짜고자 창을 휘두르는 소울 이터. 그녀의 창끝에 검정색이 꿰뚫린다. 그림자가 영역을 늘리기를 멈추자 둘의 맞은편에, 모자를 쓴 남자가 나타났다.
"포피리아를 쓰러트렸군요."
"너는 누구냐."
"저는 혜르입니다."
"혜르? 시장?"
"네."
- 오호라. 얼마만이냐.
"10년만이군요."
혜르의 이름을 듣자 반응하는 소녀. 창에서 손을 놓고, 깍지를 끼며 뼈를 우득거린다.
- 뒤질라고 나타나셨어.
"제가요? 그럴리가."
듀얼웨펀을 기동시키며, 단숨에 몇 장의 카드를 뽑아드는 혜르. 소울 이터는 그것을 보자마자 바로 달려간다. 허튼 수작을 부리기전에 한 방 먹여놓으려는 소녀의 의도와는 달리, 혜르의 행동이 조금 더 빨랐다.
"카드 가드너."
단숨에 날아간 소녀의 발길질을 막은 것은 거대한 트럼프 카드 한 장. 그녀의 일격에 얼굴이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카드가 뒤로 벌러덩 넘어진다.
- 뒤져라 그냥!
"소용없어요."
"그윽!"
- !?
혜르에게 주먹을 내지르려는 그 순간, 가온의 외침에 뒤를 돌아보는 소녀. 창끝에 막혀 멈추었던 그림자가 가온을 휘감고있다.
- 쳐 자빠져가지곤!
창을 다시 빼드는 소울 이터. 하얀빛으로 반짝이는 창의 궤적이 그림자를 가른다.
- 야!
한 손으로 그림자에서 청년을 빼내고는 얼굴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소울 이터. 하지만 가온은 대답이 없다.
- 큭.
"자 그러면."
두 사람이 다시 서로를 노려보던 그 때, 경적 소리가 들려왔다. 굉음을 토해내며 눈길을 달린 D휠 여러 대가 그들을 둘러쌌다.
"고요우 디펜더!"
그둘 중 한 사람이 카드를 꺼내들자, 옆에있던 이들도 차례로 새하얀 몬스터를 소환했다. 원형으로 방벽을 세우는 중무장 차림의 듀얼리스트들. 혜르는 그들을 흘깃 보고서는 고개를 젓는다.
"어떻게 제시간에 도착했네요."
- 뭐야 이놈들은.
"뭐. 저는 몇 명이 늘어나던……. 음?"
"꺼억……."
상반신만 남은 사내가 혜르의 그림자에서 기어나와 그의 다리를 붙잡는다. 절단부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다가오는 그것은 머리가 새하얗고 박쥐귀를 닮은 것이 달린 남자였다.
"오호라. 그렇지요."
절반으로 쪼개진 사내를 들어올리는 혜르. 반절로 잘린 괴물의 숨쉬는 시체를 들고서 소울 이터에게만 들리도록 조용히 말한다.
"신목이 있는 곳으로 오십시요. 그곳에서 기다릴테니."
- 도망치는거냐.
"후후."
새까만 그림자에 삼켜지는 혜르. 두 남자가 있던 자리에는 더이상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 윽. 뭐야.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새하얀 머리의 소녀도 손에서 창을 놓쳤다. 점점 흐릿해지는 시야. 형상이 흐릿해지며 모호해지자, 그녀를 둘러쌌던 이들이 와서 가온을 일으켜세운다.
"얘가 가온인가?"
"어떻게 맨몸으로 나와있는거지?"
"아직 숨은 쉬고있어."
"스쿨에 들여보내놓자."
무장한 요원들은 가온을 이끌고는 스쿨의 건물로 들어갔다. 한없이 쌓인 눈을 녹일 수 없는 차가운 햇살이 검푸른 하늘로 고개를 올렸다.
……
흡혈기도 - 블러디아블로
LV 7 / 어둠 / 언데드 / 효과 / ATK 2500 / DEF 2000
"흡혈기도 - 블러디아블로"의 ①, ② 효과는 어느쪽이든 1턴에 1번만 사용할 수 있다.
① : 자신 메인 페이즈에 발동할 수 있다. 상대 필드의 몬스터를 모두 파괴한다. 그 후, 파괴한 수 X 500 라이프를 회복한다.
② : 이 카드가 상대에 의해 파괴되어 묘지로 보내졌을 경우에 발동할 수 있다. 이 카드를 묘지에서 특수 소환한다. 그 후, 이 카드의 공격력만큼 라이프를 회복한다.
흡혈기도
일반 함정
① : 패를 한 장 묘지로 보내고 자신의 묘지에서 이 카드를 제외하는 것으로 발동할 수 있다. 레벨의 합계가 10 이하가 되도록, 자신의 묘지에서 언데드족 튜너 1장과 튜너 이외의 언데드족 몬스터를 임의의 수만큼 고르고 제외하여, 제외한 몬스터의 레벨의 합계의 수의 레벨을 가진 싱크로 몬스터 1장을 엑스트라 덱에서 싱크로 소환 취급으로 하여 특수 소환한다.
크림즌 노바
LV10 / 어둠 속성 / 언데드족 / 싱크로 / 효과 / ATK 4000 / DEF 4000
언데드족 튜너 + 튜너 이외의 언데드족 몬스터 1장 이상
① : 이 카드가 상대에 의해 파괴되어 묘지로 보내졌을 경우에 발동할 수 있다. 이 카드를 묘지에서 특수 소환한다. 그 후, 상대 필드의 카드를 모두 파괴하고 상대의 라이프를 절반으로 한다.
쇠약의 소울 이터
LV 6 / 어둠 속성 / 악마족 / ATK 2000 / DEF 1400
① : 이 카드가 어드밴스 소환에 성공했을 경우에 자신 묘지의 몬스터 1장을 선택하고 발동할 수 있다. 그 몬스터를 장착 카드로 취급하고 이 카드에 장착한다
② : 이 카드의 공격력은 이 카드의 효과로 장착한 몬스터의 수비력만큼 상승한다.
③ : 묘지의 이 카드를 제외하고 발동할 수 있다. 덱에서 카드를 2장 드로한다. 그 후, 패에서 카드를 1장 버린다.
극혹의 소울 이터
LV 7 / 어둠 속성 / 악마족 / ATK 2500 / DEF 2000
① : 이 카드가 상대 몬스터와 전투를 실행한 데미지 계산시에 발동한다. 상대 몬스터의 공격력과 수비력은 그 데미지 계산시에만 0이 된다.
②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