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군."
"야,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하냐? 오글거린다니까~ 그냥 편하게 가론이라고 부르래도?"
붉은 갑주를 몸에 걸친 검은 털의 늑대와 푸른 갑옷을 두른 흰 털의 늑대. 울창한 숲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받는 거대한 두 늑대의 모습은 그야말로 영화의 한 장면이라도 되는 듯한 멋을 풍기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친근한 듯 가볍게 말을 하는 가론과 달리, 검은 늑대는 잔뜩 무게를 잡고 진지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 앞으로 얼마나 이런 생활을 더 하실 생각인지요."
"이런 생활이라 함은, 다른 녀석들을 정화하지 않는 걸 말하는 건가?"
가론보다도 더욱 큰 덩치에 무서운 인상을 가진 검은 늑대의 물음에 가론은 싱긋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이에 말 없이 바라보는 그를 향해, 가론은 작은 미소를 지어보인다. 그들의 뒤에 있던, 수많은 늑대 무리들을 보며.
"... 난 지금 이대로,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말야."
그의 그 말에 검은 늑대를 포함한 다른 늑대들의 얼굴에 변화가 생긴다.
"나 혼자만의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대로, 이 지역을 지배하며 우리끼리 낭만적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물론 우리의 업을 덜어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미소를 짓고 있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그의 얼굴. 이런 그를 바라보는 늑대들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 적어도 지금만큼은 즐겁게 지내보자."
가론의 제의에 검은 늑대는 대표로, 싱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주군의 뜻대로."
그를 따라 뒤에 있던 다른 늑대들의 얼굴에도 절로 웃음이 그려졌다. 아쉬움이나 원망이 아닌, 그를 진정으로 믿는 굳건한 미소들이었다.
그렇게, 늑대들은 숲을 누비고 지배했다. 강한 결속력은 그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는 힘이었고, 그들에게 두려움은 없었다. 그야말로 숲의 모든 것을 발 아래에 두고 있었던 그들이었지만...
Yu-Gi-Oh! KARMA
Chapter.95
『에스파다의 힘』
"내 차례다, 드로우!"
가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시간이 많지 않음을 느낀 동찬은 카드를 드로우하며 자신의 턴을 가져갔다. 사실 승부를 서두를 필요까진 없었지만... 무언가 마음을 죄어오는 불안감이 가만히 있지를 못하게 하고 있었다. 동찬은 듀얼 디스크의 버튼을 누르며 카드 효과를 발동하려는데...
"우선 [메키아]의 효과를 발동하겠어. 묘지에서 [도둑고양이 페로]를 제외한 뒤 효과를 발ㄷ..."
"어디 감히 내 허가없이 효과를 발동하려 드느냐!!!"
제이더의 고함과 함께 거대한 백곰의 포효가 이어졌다. 엄청난 음압으로 동찬을 밀쳐내는 것 같은 포효에 동찬은 물론 메키아마저 기겁을 하여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세 번째 효과가 남아있다! 한 턴에 한 번, 소울이나 레벨이 8보다 낮은 몬스터의 효과 발동을 무효로 해 봉쇄 할 수 있지. 감히 폭군 앞에서 경거망동을 하려했단 말이냐!"
"그, 그런..!"
포효가 그쳤음에도 메키아는 두려움을 느끼는 듯 다리를 심하게 떨고 있었다. 이에 동찬은 이를 빠드득 갈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비록 몬스터 하나를 아무 의미 없이 제외시키고 말았지만, 이대로 끝나면 천하의 동찬이 아니리라.
"그렇다면 마법 카드를 발동하겠어! [고 투 레스큐]! 덱에서 야수족 레스큐 몬스터를 하나 패로 추가할 수 있는 카드다! [레스큐 캣]을 서치하고, 곧바로 소환!!"
동찬의 부름에 노란 안전모를 쓴 귀여운 고양이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간드러지는 울음 소리와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가진 고양이는 목에 호루라기를 맨 채, 잽싼 몸놀림으로 필드에 나타나 나름대로 멋진 포즈를 잡아보인다.
*레스큐 캣. 땅 속성. ★4. 야수족. ATK/ 300 DEF/ 100.
"한 턴에 한 번이면 상대하기 쉬운 편이지! [레스큐 캣]을 묘지로 보내고 효과 발동! 덱에서 레벨 3 이하의 야수족 몬스터를 두 장 특수 소환할 수 있다! [데스 웜뱃]과 [실버 팽]!"
메키아 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불길한 기운을 풍겨내는 웜뱃 한 마리와 반짝반짝 빛나는 은빛의 털을 가진 비무장 늑대 한 마리. 어디가 가려운 듯 박박 긁어대는 데스 웜뱃과 달리, 실버 팽은 거대한 백곰을 앞에 두고도 으르렁거리며 전의를 한창 불태우고 있었다.
*데스 웜뱃. 땅 속성. ★3. 야수족. ATK/1600 DEF/ 300.
*실버 팽. 땅 속성. ★3. 야수족. ATK/1200 DEF/ 800.
"가론, 일단은 싸우는 거야! 알았지?"
<......>
사뭇 불안해하는 신음을 냈지만, 가론은 별 다른 부정을 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면 피할 수도 없을 테니까...
"공격력 1600인 [데스 웜뱃]과 공격력 1200인 [실버 팽]의 힘을 해방! Vindictus!!"
두 몬스터는 푸른 기류가 되어 하늘로 솟구친다. 하늘을 유영하다 땅으로 내려와 커다란 이중원을 그리고, 그 안으로 룬 문자 KARMA REALIZE를 빠르게 써내어 소환진을 만들어낸다.
<... 간다...!>
무언가 결심한 듯한 가론의 중얼거림과 함께 동찬이 입을 열어 영창을 시작한다.
"바람을 가르는 성난 이빨과 강철의 발톱이여! 그 강인한 힘으로, 진정한 왕의 길을 걸어라! 릴리즈 소환!"
동찬의 두 눈동자가 늑대의 황금빛 눈동자로 바뀌었고, 소환진에서 가론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처럼 날렵한 움직임이 아닌 가만히 있는 모습에 동찬은 점점 더 의아해하는 얼굴로 변하고만 있었지만.
*타이란트 데스가론. 바람 속성. ★7. 야수족. ATK/2800 DEF/2200.
그래서 가론을 부르지도 못한 채, 그렇게 그냥 소환되고 말았다. 그렇게 나타난 가론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제이더를 응시할 뿐이었다.
"이제사 모습을 드러냈군. 그때 이후로 처음 보는 건가?"
"......"
"가론.."
그렇게 이뤄지게 된 삼자대면. 잠시 주변을 감싸던 침묵은, 모든 걸 내려놓은 듯한 가론의 담담한 목소리로 깨졌다.
"주군, 혼자 가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다니까 그러네. 왁자지껄 몰려다니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혼자서 산책도 하고 싶을 뿐이라고."
"그렇다면야..."
검은 늑대의 배웅을 받으며, 가론은 숲을 내달렸다. 숲을 달릴 때마다, 그 숲의 다른 존재들은 그를 피해 숨고 도망치며 머리를 조아린다. 그야말로 절대 강자라는 증거. 그런 짜릿한 기분이 싫지만은 않았다. 다른 누구보다 강하다는 건... 그런 거였으니까.
"오늘은 이쪽으로 가볼까? 이 숲을 지배한 뒤로 가본 적이 거의 없는 곳이니."
숲에서 상대할 자가 없다곤 해도 그들의 무리는 그렇게 큰 것은 아니었다. 숲 전체에 퍼져있을 순 없는 노릇이니, 자주 가지 못하는 곳도 있는 것. 그곳으로 가론은 달려갔다. 커다란 업과 함께 강인한 힘을 가진 가론이 지나갈 때마다, 약하고 작은 제노사이더들은 몸을 피하기 급급하다. 그런 모습들을 흘겨보며 미소를 짓는 가론은...
어느 순간,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 넌 뭐냐?"
그의 눈 앞에 나타난 존재. 거대한 나무들이 즐비한 울창한 숲에서, 그 나무들에 걸맞는 것처럼 보이는 매우 거대한... 하얀 곰을 만났다. 그 곰은 가론을 지그시 내려보고는... 씨익 미소를 지어보였다.
"만나서 반갑다. 네 녀석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에스파다 타이란트 제이더]다!"
"그때 만났던 녀석이었어. 저 제이더란 녀석이..."
"구면이었다니... 도대체 왜 찾아온 거야..?"
"......"
그때 느꼈던 것들을 절대로 잊을 수 없다.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한 존재. 그 거대한 덩치만큼이나, 짊어지고 있는 업의 무게도 굉장했던 그 곰의 눈빛. 제이더의 그 무시무시한 위압감 때문에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던 자신을 잊을 수가 없었다.
"에스.. 파다...? 대체 뭐하는 놈인데 내 영역에 발을 들여놓은 거냐!"
"어지간히도 촌구석인 모양이군. 소문은 퍼졌을 거라 보건만..."
조금은 씁쓸한 어투로 혼자 중얼거리는 제이더는 육중하게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가론에게 다가갔다. 그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가론도 뒤로 한 걸음 물러서긴 했지만, 그 덩치의 차이에서 오는 보폭의 차이 때문에 둘의 사이는 금세 좁혀졌다. 제이더의 머리 길이만큼의 거리가 서로의 사이에 남게 됐을 때, 제이더의 입에 씨익 미소가 걸리며, 날카로운 송곳니가 드러났다.
"어쨌든, 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다. 직접 만나보니, 꽤나 쓸만한 인재로군."
"... 그건 또 뭔 소리냐."
"너, 내 부하가 돼라."
기가 찼다. 그의 말 한 마디에 가론은 대놓고 코웃음을 치며, 제이더를 향해 눈을 흘긴다.
"하! 정말이지... 별 실 없는 소릴 다 듣겠군. 내가 뭣때문에?"
누가 들어도 얼토당토 않을 법한 요구에 가론은 자존심을 한껏 내세운 오기를 부려보지만...
쿠웅!!
자신의 옆으로 거대한 앞발이 들어오자, 작은 진동에 온 몸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 떨림은 비단 물리적인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위협. 나 따위는 얼마든지 눌러버릴 수 있다는 힘의 증명. 일부러 옆의 맨땅을 두드린 것도 가론에게 확실하게 뜻을 전달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의도는 가론에게 너무나도 잘 전달되고 말았다...
"선택지따윈 없다. 승낙하면 승낙하는 거고, 거절한다면 그대로 끝이다. 너뿐만이 아닌, 이 숲에 사는 다른 놈들까지 전부..."
"......"
한껏 낮게 깔리는 무거운 제이더의 목소리로 들려오는 그 으름장과 협박은, 나름 강하다고 자부하던 가론 본인을 한없이 낮은 곳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 미안하지만... 그건 정말로 곤란한데 말이야."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절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나는 이 숲을 지배하는 지배자다. 모두가 나를 따르고 두려워하며, 나 역시 그 누구보다 강인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의외로 가론이 목소릴 높이며 대들자, 제이더도 조금은 놀랐는지 옆에 내려둔 앞발을 움찔거리며 다시 뒤로 물렸다.
"여기는 나와 모두가 함께 사는 숲이다. 내가 지켜야할 곳이야! 그러니 내가 그따위 으름장 하나 듣고 순순히 따라줄 성 싶으냐!"
"... 호오."
제이더는 상당히 흥미를 가진 얼굴이 되었다. 가론의 밑도 끝도 없는 이 패기가 나름 마음에 들었던 걸까. 제이더는 가론에게 얼굴을 더욱 가까이 들이 밀었다.
"패기는 쓸만하군. 업의 무게가 압도적이라고 하기도 힘들만큼 차이가 나는데도 그런 말을 지껄이다니..."
눈이라도 할퀴지 않을까, 위험이 충분한 상황이었음에도 제이더는 가론의 얼굴 가까이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댄다. 그 이글거리는 눈동자에, 조금 떨고 있지만 물러서지 않고 있는 가론이 비치고 있었다. 제이더는 작은 웃음을 내며,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내일 이곳으로 다시 찾아올 거다. 내 부하들을 이끌고, 너와 이 숲에 있는 네 녀석의 동료들까지 모조리 끝장내러."
"...!"
"기회를 주겠다. 동료들에게 알려 함께 힘을 합쳐 싸우건 도망치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건 모조리 해봐라. 그럼 내일... 이 장소로 다시 오겠다."
그렇게 멀어져가는 제이더를... 가론은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덤벼보거나 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그 자리에 굳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공격을 했더라면.....
이야기를 가만히 듣기만 하는 동찬은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리며, 가론의 이야기를 자신의 일인 것마냥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가론이 있다는 점까지 생각하며, 뭔가 불안한 일이 기다리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제이더는 어두워지기만 하는 가론의 표정을 보며 그저 씨익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 녀석, 이곳으로 다시 온다고 했었지.'
가론은 홀로, 다시 그 장소에 왔다. 다른 그 누구도 함께 하지 않은 홀로... 가론은 오늘도 자신을 걱정하며 따라 붙으려는 동료 늑대들을 물리치고, 혼자 이곳으로 왔다.
'나 하나의 욕심으로 다른 녀석들의 업을 지워주려는 목적을 사실상 막아버렸지... 그에 대한 사죄를 위해서라도, 이런 위험한 일에 다른 녀석들을 엮이게 할 순 없어.'
이것은 책임감이다. 그래도 다른 이들을 이끄는 자리에 앉아있으니, 이런 위험한 일은 본인이 책임지고 맡아야 하지 않겠는가. 어떻게든 물고 늘어진다면 시간을 벌거나, 물러가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여 질 것 같아도 하울링을 이용해 동료들에게 위험을 알리고 피하라고 하면 될 테니...
'그래... 내 역할은 이런 거야. 난 이렇게 하면 되는 거라고.'
모두를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놓을 각오가 되어있었다.
...... 그렇게 생각했었다.
"음!?"
아주 멀리서 가론의 귀에 들려오는 소리. 아주 희미했지만, 동료 늑대들의 하울링이었다. 게다가 그 하울링에 담긴 의미는...
"다급한 하울링이야... 설마...!"
가론은 황급히 자신의 무리가 주로 거주하는 곳까지 달려갔다. 바람보다도 빠른 것처럼, 황급하게 달려갔다. 무리에 가까워질 수록, 애절한 비명과 하울링은 점점 선명하게 들려왔다.
'설마... 설마! 안 돼, 제발 그것만은...!'
최대한 빠른 발놀림으로 도착한 그곳에는...
"오, 이제야 온 건가?"
전날 봤던 거대한 곰, 제이더가 있었다. 그의 곁에는 검은 털에 붉은 갑옷을 입은 곰을 비롯해 덩치도 크고 흉악한 곰들과 더불어 무수한 맹수들이 잔뜩 있었다. 그리고 검은 곰의 앞발 밑에는... 가론의 친구였던, 검은 늑대가 눌려있었다.
"... 이게 무슨...!"
"크윽... 주군..."
검은 곰의 발 밑에서, 힘겹게 고개를 들어 가론을 바라보는 그는... 처절하디 처절한 모습으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도망... 치십시오..."
하지만 그가 뭐라 하건, 제이더는 여유롭게 걸어오며 가론에게 다가간다.
"동료들에게 우리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았더군. 우리를 전혀 몰랐으니 말이야."
"이 자식...!!"
증오와 분노가 솟구쳐 오르고, 이마와 눈에 핏줄이 돋아 오른다. 그 거대한 분노로 이를 갈며 으름장을 놓는 와중에도, 제이더는 말을 이어갔다.
"네가 동료들에게 우리에 대해 이야기했더라면 이렇게까진 되지 않았겠지. 네 녀석때문에 모두 죽은 거다. 네놈이 꼴에 군주라는 이름에 자존심을 내세운 것 때문에 모두가 죽어가는 거다!"
"주군... 도망을..!"
그런 말을 하는 와중에도 가론을 걱정하는 그였다. 하지만 가론은 이미 분노에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냉정하게 상대해도 모자랄 판에 이런 상황이니 어떻게 그를 포함해 무수한 맹수들을 상대할 것인가. 그것도 혼자서... 지금 싸운다면 가론도 명백히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걸 알고서 그러는 것일까, 제이더는 계속해서 그를 비난하고 있었다.
"동료들을 개죽음으로 몰고간 넌 왕이라는 이름을 내걸 자격이 없다!!"
"...!!!"
제이더에게 덤빌 마음까지 먹었다. 어차피 모두 죽었는데 어쩌란 말인가 싶은 심정으로. 하지만... 한 가닥의 이성이 그와 연결되는 순간이 있었다...
"도망쳐, 가론!!!"
퍼뜩, 정신이 들었다. 정신을 들어 시선을 돌렸을 땐, 이미 검은 곰의 발톱에 간신히 붙어있던 숨통이 끊어지는 친구의 모습이 보일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가론은 오만가지 생각과 마음이 교차하는 것을 느꼈다. 그의 마지막 말이 의미하는 것...
"...... 큭...!"
결국... 가론은 그들에게서 등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덩치 큰 곰들은 울창한 숲에서 가론을 추격하기 힘들 것이었다.
"제이더 님, 어떡할까요?"
예의 그 검은 곰이 제이더에게 묻자, 제이더는 그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냥 내버려 둬라. 어차피 그저 그런 놈이었을 뿐이다. 동료들의 죽음도 저버리는 놈을 내가 눈여겨봤다니... 나도 참 한심하군."
제이더와 맹수 군단은 그렇게... 적막만이 감돌게 된 숲을 뒤로한 채, 왔던 길을 따라 돌아가버렸다.
그리고, 가론은 하염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눈 앞에서 죽어있었고, 죽어가던 동료들을 떠올리며... 슬픔 속에서 계속 달렸다. 제이더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는 것 같았기에, 그것을 잊기 위해 달렸다.
"젠장... 젠장!!!"
동료들에게 미리 알리지 않은 것이 후회됐다. 왕의 책임이라고 했지만 결국 동료들을 믿지 못했던 것 아닌가. 그런 자신이 비참해 지쳐 쓰러질 때까지 계속 달렸다. 숲을 벗어나고, 들판과 평야를 계속해서 달리다가... 결국 쓰러졌다. 심장은 터질 것 같았고 숨은 가쁘다 못해 끊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상태가 되자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자신을 맹 비난하던 제이더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마음을 후벼파 괴롭게 만드는 끔찍한 말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자신을 향해 도망치라고 외쳤던 그 친구의 목소리도...
'... 가론... 이라고.. 불러준 건가...'
어떤 설득을 해도 자신을 주군이라고 철칙처럼 불러주던 그였다. 그런 그의 마지막 말에 담긴 의미를 떠올리던 가론은... 숨을 고르며 휴식을 취하고는 일어섰다. 그리고... 정처없이 터벅터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후로 그냥저냥 대충대충 살다 이곳으로 온 거야. 어느 순간, 이 세계에 제노사이더들이 모여들고, 업을 쉽게 지워낼 수 있다고... 난 그 친구의 마지막 말을 떠올리며 업의 세계에서 도망치듯 이곳으로 온 거지..."
"그러다 날 만나 계약을 했다는 거구나."
굳은 표정으로 가론의 이야기를 듣던 동찬의 말에 가론은 대꾸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동찬도 말 없이 굳은 표정 그대로 가론을 바라보았고...
"... 카드 한 장을 세트하고 턴 종료."
동찬은 별 다른 말 없이, 그저 듀얼을 재개할 뿐이었다. 참담한 표정이 된 가론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고, 이런 둘을 향해 제이더가 입을 연다.
"그 소년의 모습을 보고 네 녀석은 변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까지 동료를 믿지 못하고, 혼자서 마음으로 담아두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 텐데도 그랬단 말이냐!"
"난 그저..."
위험한 일에 소중한 이가 엮이지 않았으면 했을 뿐이었지만... 지금에 와서 말해봤자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 어찌됐건 지금 이 상황이 되도록, 이번에도 역시 잘못된 길을 택한 것이 문제였을 뿐.
"나조차도 내 부하들과의 신뢰는 두텁다. 그런데 네 녀석은 동료를 믿지 못해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그런 네 녀석이 죽어간 동포들을 대신해 이렇게 살아갈 자격이 있다고 보는 건가?"
"......"
"동료를 믿지도 못하는 자가 또 다시 동료를 받아들이다니, 언어도단도 따로 없지! 지금 네 녀석의 행태가 웃겨 죽겠구나!!"
아니라고 말을 해야했는데,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었다. 지금껏 친구들을 위험에 빠뜨리고만 자신이... 지금 이 순간, 살아도 되는 걸까. 동찬에게 자신은 이제 믿을 수 없는 존재로 낙인이 찍힐 테고, 더 이상 이전처럼 될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가론이 아무런 말도 못하고, 제이더의 미소 앞에 정적이 흐르는 그 순간, 공격이 이어진다.
"그럼 간다! 나의 분신이여, 저 어리석은 늑대를 없애버려라!"
제이더의 분신인 타이란트 제이더가 그 육중한 몸을 이끌고 달려들었다. 거대한 앞발이 들리고 가론은 그저 참담한 얼굴로 두 눈을 질끈 감은 그때였다.
"지속 함정, [숲의 오솔길]을 발동! 상대 몬스터가 공격 선언을 하거나 카드 효과를 발동 했을 때 발동해, 지정한 대상 몬스터 이외의 몬스터를 지정해야만 하지! 지금은 가론을 제외하면 [메키아]만 남아있으니, [메키아]가 자동으로 지정되고, 그 효과에 의해 공격력과 수비력은 1000이 낮아지게 돼!"
"뭣이?"
"돈쨩?"
숲의 수호자 메키아 ATK/1800 → 800 DEF/3000 → 2000
스으윽! 퍼어억!!!
그리고, 그 거대한 앞발이 향하는 곳에는 숲의 수호자 메키아가 있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공격 대상이 바뀌었고, 메키아는 그 흉악한 앞발 공격에 그대로 사지가 흐물거리듯 날아가버리며 파괴되고 말았다.
동찬 LP 2400 → 900
"크으윽!!"
관통 효과에 의해 강력한 대미지까지 받고 또 다시 휘청거리는 동찬. 하지만 심호흡 몇 번을 하더니 금세 괜찮아진 듯, 다시 자세를 잡고 섰다.
"돈쨩... 나를...?"
대미지를 최소화하기 위함이었을 수도 있었지만, 지금 이건 누가 봐도 명백히 가론을 지켜준 것이었다. 이 상황이 조금 놀라운지, 제이더는 손가락으로 동찬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소년, 지금 그 녀석을 지켜준 건가? 그가 너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알고서도? 지금 소년은 그 녀석에게 신뢰받지 못한 거다! 널 믿지 못하는 제노사이더와 함께 해도 된다고 생각하나? 계약에는 신뢰가 있어야하는 건 누구나가 아는 사실이지만, 그 녀석은 소년을 배신한 거나 다름없다! 소년도 그 녀석에게 믿지 못하는 존재일 뿐이었다는 것인데도 그러는 건가?!"
또 다시 이어지는 제이더의 강력한 비난에 가론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지만... 그 이야기를 들으며 굳은 얼굴로 있던 동찬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
제이더의 웃음이 사라지며 당혹감이 서렸고, 가론도 깜짝 놀란 얼굴로 뒤돌아 동찬을 바라봤다. 동찬은 어떠한 동요도 없는 표정으로 가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가론과 마주치는 순간, 가론은 흠칫 놀랐다.
"누구나 말 못 할 고민 몇 개 정도는 가지고 있는 거 아냐?"
"!"
아무렇지 않은 그 말 한 마디에 가론과 제이더마저도 얼굴에 황당과 당혹의 감정이 함께 서렸다.
"그리고 가론! 그런 심각한 고민이 있었으면 나한테 털어놓지 그랬냐! 얘기 들어보니까 장난 아니구만!!"
"아, 그... 그런가...? 미안..."
갑자기 목소리 톤이 높아지며 땍땍거리는 동찬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사과부터 하는 가론. 동찬은 뾰로통해져선 입술을 비죽 내밀고 투덜거리기까지 한다.
"정말이지... 내가 해답은 못 줘도 고민 들어주는 건 잘 한다구. 고민은 털어놓기만 해도 한결 편해진다는 거 몰라? 그러니까 앞으로는 그런 일 있으면 괜히 혼자 끙끙 앓지 말구 이 형님에게 털어놓으라 이말이야~"
"......"
투덜거리다가도 이전의 동찬처럼 밝은 분위기로 급 반전되더니, 가슴을 탕탕 치며 씨익 미소까지 지어준다. 이런 동찬을 멍하니 바라보던 가론은... 마찬가지로, 피식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옛날, 자신을 향해 마지막으로 소리치던 그 친구를 떠올리며...
'그래... 이거였나...'
"이봐, 소년. 꽤나 엄청난 소릴 들은 것 같은데."
그리고, 제이더의 험악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동찬과 가론의 눈매가 다시 날카로워지며 제이더를 노려보았고, 제이더는 목소리만큼이나 흉악해진 얼굴로 둘을 노려보며 말을 이어간다.
"앞으로라는 게 있을 것 같으냐? 소년, 너는 그 녀석의 신뢰를 받지 못해 이 상황에 처한 거다. 지금 상태에서 이 나를 이길 거라고 보는 거냐? 설령 이긴다 해도, 그가 너를 믿을 수 있다고 보는 거냐?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한 어리석은 늑대에게서 무얼 바라는 거냐!"
"말했잖아, 누구든지 말 못 할 고민은 있는 법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이는 동찬에게 제이더는 또 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마음 속에 담긴 말을 한다는 건 굉장히 힘든 거야. 아저씨가 그걸 알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겐 그렇단 말이지. 그걸 못해 끙끙 앓는 것도 이해할 수 있어. 나 역시 그랬으니까.."
"......"
다시금 동찬의 말을 귀담아 듣는 가론. 그의 입가에는 다시금, 미소가 걸릴 수 있었다.
"누군가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어. 오히려 그만큼 믿고 있기 때문에 말을 못하는 것도 알고 있어! 괜히 말했다간 나를 돕기 위해 뭘 할지 모른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러는 거라고!"
"너 이녀석...!"
제이더가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것마저 잘라버리며 동찬의 큰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리고 뒤늦게라도 알았으니까 된 거야! 알게 됐으니 이제 거리낄 것 없이 도와줄 수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그걸 이해해주면서... 친구가 되어가는 거니까!!"
「도망쳐, 가론!!!」
그 한 마디는 동찬의 말 뜻을 담고 있었다. 내 상황을 이해했고, 내 바람을 이해해주었기에 마지막으로 줄 수 있는 도움을 줬던 그 친구. 그렇기에, 지금 자신이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거겠지. 자신 또한 그 친구의 그 마음을 받아주었기에...
'그래... 이제야 마음의 응어리가 떨어져나가는 것 같구나...'
욱씬.
동찬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마지막으로 목소리에 큰 힘을 실어 외친다!
"숨겨뒀던 서로의 마음을 이어가면서, 과거의 아픔을 서로 달래주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진정한 친구가 되는 과정이라는 거니까!!"
동찬도 가론을 만난 이후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그의 인도 덕분에 한국에서 있었던 과거의 아픔을 달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더 많은 친구들을 만들고 즐거울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찾아오는 아픔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 동찬은 종이꽃을 만들어줬던 그 여자아이를 다시 한 번 떠올리고... 자신의 가슴을 강하게 쳤다.
"그러기 위해서, 가론의 아픈 과거인 널! 절대로 가만두지 않아!! 반드시, 반드시 베어 넘겨주겠다 이거야!!!!"
욱씬!
가슴이 칼로 베이는 것 같은 아픔이 있었지만, 동찬도 가론도 그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다. 이 아픔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줄 것이라 믿었기에. 앞으로도... 함께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기에. 이런 동찬의 선언에, 제이더의 얼굴에 흉악한 미소가 그려졌다.
'이거, 생각도 못한 상황에서 월척을 낚은 기분이군!'
이에 감탄이라도 한 듯, 제이더는 육중하게 발을 굴렀다. 그 발구르기에 주변에 작은 진동이 일어났고, 그의 목과 이마에 핏대가 두툼하게 올라왔다.
"제법이군, 소년! 패기는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면 어디, 둘이 힘을 합쳐 나를 상대해봐라!! 턴 종료!!"
"그럼 내 차례다! 드로우!!"
가론의 것과 같은, 날카로운 늑대의 눈동자가 빛나며 동찬은 카드를 드로우했다. 주변 일대에 풍압이 얕게 일렁거렸고, 드로우한 카드를 확인한 순간, 동찬의 머리가 여느때보다도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가론, 간다!"
"... 오케이!"
욱씬!
지금, 둘의 마음속 통증이 다시금 도지기 시작한다. 지금껏 함께 해오며 숨겨왔던 마음이 하나가 되면서, 삐져나온 응어리들이... 날카로운 칼에 의해 베여나간다.
"마법 카드 발동! [야생의 패]! 패에서 야수족 몬스터, [베이비 울프]와 [숲의 파수꾼 그린 바분]을 묘지에 보낸 뒤, 카드를 세 장 드로우한다!!"
서로 고민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며 서로의 아픈 과거를 치료해나가기 위해, 곯은 살을 베어낸다. 그 아픔이 둘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 효과로 드로우한 카드 중에 야수족 몬스터가 없으면 이 턴, 몬스터를 전혀 불러낼 수 없지만, 난 뽑았다구! 이 녀석을!!"
지금 이 순간, 동찬은 가론의 아픔을 치유해주기 위해. 그리고 가론은 동찬의 곁에 남기 위해... 그들의 앞에 선 벽을...
"패에서 [숲의 성수 카란토사]를 소환!"
*숲의 성수 카란토사. 땅 속성. ★2. 야수족. ATK/ 200 DEF/1400.
베어 넘기리라!
"이어서 묘지에서 [베이비 울프]를 제외해 효과 발동!"
"어리석은 소년이여, 절대자인 이 몸 앞에서 경거망동하지 마라! 이몸의 효과로, 한 턴에 한 번 레벨이나 소울이 8보다 낮은 몬스터의 효과 발동을 무효로 해, 봉쇄한다!"
다시 한 번, 거대 곰이 입을 쩍 벌려 커다란 포효를 내지만, 동찬과 가론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쪽도 그걸 무효로 해주겠다! 가론의 효과 역시, 라이프를 700 지불하고, 한 턴에 한 번 카드 효과의 발동을 무효로 해 파괴할 수 있으니까!"
"뭣이?"
동찬 LP 900 → 200
"간다! 하울링 피어(Howling Fear)!"
동찬과 가론이 동시에 외치고, 가론도 강력한 포효를 외치며 제이더의 포효에 맞선다. 두 포효는 그대로 중앙에서 터져오르듯 상쇄됐고, 비록 효과는 무효화됐지만 자신의 효과 때문에 파괴되지는 않은 타이란트 제이더는 그 기백에 당황한 듯 뒷걸음질을 친다. 자신의 분신이 당황하는 모습에 본체인 제이더 역시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었다.
"이럴 수가...!"
"그럼 효과는 계속된다! [베이비 울프]를 제외하고, 덱에서 레벨은 4, 공격력은 1500 이하인 야수족 몬스터를 특수 소환한다! [불킬러]를 특수 소환!"
*불킬러. 땅 속성. ★4. 야수족. ATK/ 300 DEF/2000.
그때와 같았다. 덩치 큰 불독과 등에 풀들이 자라는 신비한 흰 토끼, 그리고 가론. 이 필드의 모습에 동찬은 다시 그때의 그를 떠올린다.
'정말로 미웠던 상대... 내 친구들을 괴롭혀서 어떻게든 없애버리고 싶었던 상대.'
트라팔가르. 그의 사악한 미소와 함께, 자신들의 파트너를 잃어 슬퍼하던 소녀들도 떠올렸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현 상태에 오버랩된다. 가론의 원수인 제이더로. 그리고, 그때 느꼈던 가슴의 아픔이... 지금도 느껴진다.
"가론... 이거였어, 그 때의 아픔이."
"그래.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기분이야."
칼로 에는 듯 아픈 가슴. 하지만 그때와는 또 다른 느낌의 이 통증. 지금, 그 해답을 깨닳았다. 뒤돌아보는 가론과 눈을 마주친 동찬. 둘의 눈빛을 통해 서로의 마음이 통한 순간, 둘의 업이 그 어느때보다도 절실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한 계단을 오른다.
[BGM Start]
『Bird Against the Storm』
from.라테일
"공격력 200인 [숲의 성수 카란토사]와 공격력 300인 [불킬러], 공격력 2800인 [타이란트 데스가론]의 힘을 해방! Vindictus!!!"
동찬의 외침과 함께 가론의 몸 주변에 강력한 기류가 생성되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이 광경에 제이더는... 이가 드러날 정도로 큰 미소를 지었다.
"바람을 가르는 절대적인 힘!"
그 강력한 기류는 가론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커다란 이중원을 그렸고, 원 안에 빠르게 KARMA REALIZE 룬 문자를 써냈다. 그리고 기류에 감싸여 보이지 않게 된 가론.
"그 힘이 향하는 길은 패자도 폭군도 아닌, 진정한 군주의 자리일지니!!"
영창을 이어가는 동찬도... 그 모습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반투명한 형상으로 머리에 돋아나는 흰 늑대의 귀와 허리춤에 나타난 흰 늑대의 꼬리 둘, 그리고 얼굴에 늑대의 수염처럼 날카롭게 그려지는 헤나. 그리고 반투명한 형상으로 양 팔과 허리춤에 파르스름한 갑옷이 걸쳐진다!
그리고, 마음 속에 떠오르는 외침을 그대로 목소리로 표현한다!!
"에스파다 카르마 리얼라이즈(ESPADA KARMA REALIZE)!!!!"
가론을 감싸던 기류가 폭풍으로 변해 사방으로 휘몰아쳤고, 그 거대한 몸집을 가진 곰을 뒤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제이더도 식은땀을 흘리며 지켜보는 그 자리에는, 갈기가 더욱 풍성해지고 꼬리도 하나 늘어나 둘이 된 가론이 있었다. 은빛 세공이 더욱 화려해진 파란 갑옷은 거의 온 몸을 두를 정도로 단단해졌고, 앞다리에 붙은 칼날은 더욱 크고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허공에 떠있는 사슬칼날까지. 흔들림 없는 가론의 눈빛이 반짝이는 순간, 그가 고개를 치켜들며 날카롭고도 우아한 하울링을 뿜어낸다.
"아우우우우!!!"
그리고 하울링이 끝나고, 동찬이 그 이름을 나지막이 내뱉는다.
"[에스파다 타이란트 데스가론]!"
*에스파다 타이란트 데스가론. 바람 속성. ★8. 야수족. ATK/3300 DEF/3000.
그 아름다우면서도 강인한 모습에, 제이더는 절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 훌륭하군."
동찬과 가론의 금빛 늑대의 눈동자가 빛을 발한다.
"이제야 너와 대등한 위치에 설 수 있게 됐군. 이제야... 그때 네 녀석의 말대로 해줄 수 있게 됐어."
지금 이 순간, 동찬과 함께 힘을 합쳐 제이더에게 대적하게 됐으니 말이다. 가론의 말에 제이더는 그저 가만히 상황을 주시하고만 있었다.
"그럼 간다! 배틀 페이즈 진입!"
"네 녀석을 공격하겠다!"
동찬과 가론은 하나가 된 것처럼, 서로 호흡을 맞춰가며 듀얼을 이어갔다. 동찬이 앞으로 달려나갈 것처럼 자세를 잡자 가론은 그대로 달려나가며 거대 곰, 타이란트 제이더를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그리고 속공 마법, [야성의 포효]를 발동! 내 필드의 야수족 몬스터 한 장의 공격력은 500 올리고, 그 턴동안 효과 파괴에 대한 내성을 부여하지!"
"크허어엉!!"
에스파다 타이란트 데스가론 ATK/3300 → 3800
강력한 포효와 함께 가론의 공격력이 제이더를 넘어서고 말았다! 하지만 제이더는 당황한 기색 없이, 듀얼 디스크를 눌러 리버스 카드를 공개한다.
"그렇다면 리버스 카드 오픈! [모래 먼지의 베리어 -더스트 포스-]! 상대 몬스터의 공격 선언시, 상대 공격 표시 몬스터를 전부 뒷면 수비표시로 하고, 표시 형식 변경을 봉인한다!"
제이더의 필드로 달려나가던 가론의 앞에, 거대한 모래 폭풍이 일면서 둥근 방어막을 형성했다. 휘몰아치는 모래 폭풍의 방어막을 앞세운 제이더는 다시금, 미소와 함께 지금 상황을 지켜본다.
'어디, 뚫을 수 있으면 뚫어봐라!'
"가론의 효과 발동!"
그리고, 동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 턴에 한 번, 카드 효과의 발동을 무효로하고 가론의 공격력을 800 올린다!!"
동찬의 외침에 가론은 그대로 돌진을 하더니, 모래 먼지의 방어막을 단숨에 꿰뚫어 와해시키고 말았다.
에스파다 타이란트 데스가론 ATK/3800 → 4600
게다가 공격력은 더욱 높아져 4000을 돌파하기까지. 이제 더는 막을 수 없는 상황에 처했지만, 그럼에도 제이더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일격으론 날 쓰러뜨리지 못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타앗!
거대한 곰의 시선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움직이던 가론이 빠르게 도약하며, 곁을 떠다니던 사슬칼날을 뾰족하게 앞세웠다. 그렇게 돌진해가는 와중에, 동찬의 말이 이어진다.
"가론이 전투로 상대 몬스터를 파괴하면, 파괴한 몬스터의 공격력의 배의 수치만큼 상대에게 효과 대미지를 줄 수 있거든!"
"뭣이!?"
"이제 이 지긋지긋한 악연도 끝이다!!"
가론의 공격 궤도를 예측한 타이란트 제이더가 날카로운 발톱이 솟은 앞발을 휘둘러 가론을 공격하려 했다. 그러나... 돌진해오는 가론이 만들어내는 진공의 칼날에 그 발톱은 형편없이 깨져버리고, 발에도 커다란 상처가 생기며 피와 고깃조각이 흩날렸다.
"우리의 마음에 품은 칼날로, 과거의 아픔을 베어내겠어!"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나아가겠다!"
그리고, 둘이 동시에 입을 모아 외친다!
"정화되어라! 울븐 쓰러스트(Wolven Thrust)!!!"
쿠쾅!!!!
육중한 굉음과 함께 타이란트 제이더의 가슴에 그대로 박혀들어간 가론의 칼날. 그 강한 여파로 타이란트 제이더의 등을 감싸던 비취색 갑주가 산산조각나버렸고, 그대로 소멸했다. 그리고 가론의 공격의 여파가 거대한 폭풍이 되어 그대로 남아있던 듀얼리스트 제이더를 덮쳤다.
"크어어어어억!!!"
제이더 LP 4000 → 0
[Dongchan WIN!!]
동찬의 승리가 결정되고, 제이더는...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런 식의 단호함도 통용되는군...'
마지막까지 무언가를 깨닳은 듯한 모습으로... 소멸하고 말았다.
"하아... 하아..."
솔리드 비전이 사라지며 가론도 그 모습이 사라졌고, 숨을 몰아쉬는 동찬의 몸에 붙어있던 반투명한 늑대 부위와 갑옷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두 눈동자도 눈을 깜빡이면서 원래대로 돌아왔고.
"하아.... 이, 이긴 거지...? 그치??"
<굉장히 힘들었지만... 이겼다...>
가론의 말에 동찬은 가볍게 헛웃음을 내고는, 그대로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돈쨩! 괜찮아?>
"어엉... 그냥 긴장이 풀리니 힘이 쭉 빠져버려서..."
그러면서도 동찬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그나저나 그거... 엄청난 힘..."
<... 설마, 우리가 에스파다의 힘을...>
둘은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뭔가 떨떠름하면서도 의문 투성이일 뿐이었다.
<일단 친구들에게 알려야하지 않겠어?>
"그렇긴 하지만... 일단 좀 쉬고 싶어... 무지하게 피곤하다구..!"
진짜 엄청나게 탈진한 게 꼴이 말이 아닌 동찬의 말에는 강한 설득력이 있었다. 에스파다를 상대하며 큰 대미지를 받고, 무언가 알 수 없는 강한 힘까지 다뤘으니... 업의 부담감이 굉장히 컸을 터. 그것이 실제 몸의 피로로까지 나타나게 된 것일 터였다.
<그래, 일단 좀 쉬어.>
"그보다도, 이거 정말 굉장한 능력을 얻은 거 아냐? 이제 내가 아키야마보다도 더 대단해졌다는 거지? 으흐흐흐..."
기분이 좋긴 한지 음침한 웃음까지 짓는 동찬을 보며 가론은 그저 픽, 웃어줄 뿐이었다.
<하긴, 유메와 아키야마의 사이가 그렇고 그렇다보니 많이 신경 쓰였겠지. 그게 말 못 할 고민이었어?>
"엣? 그, 그걸 어떻게... 난 말 한 적 없는데??"
<숨길 것도 없겠더만.>
그동안 어둡고 우울했던 둘의 사이에 오래간만에 화목한 만담이 이어졌다. 그렇게 아주 잠깐, 웃고 떠들던 도중...
<돈쨩, 고맙다...>
갑작스런 가론의 인사에 동찬은 조금 놀랐지만, 이내 씨익 웃음을 지었다. 동찬다운 밝은 웃음이었다.
"별 말씀을!"
그렇게, 동찬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오늘의 다짐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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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카드
*에스파다 타이란트 데스가론. 바람 속성. ★8.
[야수족 / 릴리즈 / 효과]
"타이란트 데스가론"을 포함하는 몬스터 3장 이상
①: 이 카드의 특수 소환 / 공격 / 효과는 무효화되지 않는다. ②: 1턴에 1번, 카드 효과가 발동했을 경우에 발동할 수 있다. 그 효과를 무효로 하고, 이 카드의 공격력을 800 올린다. ③: 이 카드가 전투로 상대 몬스터를 파괴했을 경우에 발동할 수 있다. 파괴한 몬스터의 공격력의 배의 수치만큼, 상대에게 대미지를 준다.
ATK/3300 DEF/3000
안녕하세요? 정말... 아주 오랜만에 KARMA로 찾아온 스트로베리 시드입니다.
그동안 오랫동안 잠들어있던 이야기를 다시 꺼내왔습니다. 그리고 결착이 지어진 동찬의 듀얼까지.
한동안 슬럼프로 고생했으니... 이제 다시금, 정신 차리고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새로운 작품도 구상하는 중이기도 하니 말이죠! (?)
그럼 오늘도 즐겁게 감상해주시길 바랍니다!
-추가 오리카 목록-
*에스파다 타이란트 제이더. 물 속성. ★8.
[야수족 / 릴리즈 / 효과]
야수족 몬스터 3장 이상
①: 이 카드가 몬스터 존에 존재하는 한, 자신 필드의 야수족 몬스터가 수비 표시 몬스터를 공격했을 경우, 그 수비력을 공격력이 넘은 만큼 전투 대미지를 준다. ②: 이 카드가 몬스터 존에 존재하는 한, 자신 필드의 야수족 몬스터는 상대 카드 효과로는 파괴되지 않는다. ③: 1턴에 1번, 레벨 / 소울이 8보다 낮은 몬스터의 효과가 발동했을 경우에 발동한다. 그 카드의 효과는 무효화되고, 그 턴동안 그 카드는 효과 발동을 할 수 없다.
ATK/3500 DEF/3000
*고 투 레스큐. 통상 마법.
①: 덱에서 야수족 "레스큐" 몬스터 1장을 패에 넣는다.
-[레스큐 래빗]이 상처 입은 사람을 향해 열심히 뛰어가는 모습입니다.
*숲의 오솔길. 지속 함정.
①: 상대가 전투 및 카드 효과로 자신 필드의 몬스터를 대상으로 지정했을 경우에 발동할 수 있다. 상대는 지정한 몬스터 이외의 다른 몬스터를 대상으로 지정해야 한다. 이 효과로 지정된 몬스터의 공격력 / 수비력은 1000 내린다. ②: 이 카드가 파괴됐을 경우, 그 턴동안, 자신 필드의 몬스터는 카드 효과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울창한 숲에 난 작은 오솔길을 걸어가는 [플라워 디어]의 모습입니다.
(IP보기클릭)111.118.***.***
(IP보기클릭)14.37.***.***
저도 돈쨩이랑 가론이랑 나름 애착이 가는 콤비라, 좋아합니다 ㅎㅎ | 17.03.01 00:44 | |
(IP보기클릭)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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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까진 폭군이었겠지만, 더욱 강한자를 만나고 새로운 깨닳음을 얻었기에, 사실상 이제 폭군이라고 부르긴 무리가 되긴 하겠죠 ㅋㅎ 어찌보면 과거의 자신을 투영해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주는 칭호일 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ㅇㅅㅇ | 17.03.02 23:5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