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을 하는 사람들의 기분을 알 것 같다. 의지할 수 있는 존재의 고마움. 나는 인자한 신인 카나코님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단순히 성전환만 된 것이 아니라 원래의 모습이 특징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는, 다시 말해 미소녀로 모에화 되어버린 나를 한 눈에 알아본 카나코님이 무엇보다 대단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저인걸 알아 보신 건가요?」
나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도대체 어떻게 알아보신 건지. 내 물음에 카나코님은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담담하게 그 이유를 말씀해 주셨다.
「겉모습이 아무리 바뀌었다고 한들 혼백은 그대로이니까요.」
「영혼이요?」
「그렇습니다. 혼백의 모습은 혼이 가진 기억에 기인하고 있지요.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이 곧 혼백의 모습인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나라고 받아들인 모습이 내 영혼의 모습이라는 얘기였다. 그런 거라면 겉모습이 어떻든 나라는 걸 바로 알아볼 수 있겠다. 하지만, 그건 내 영혼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하에서다.
「카나코님은 혼백을 볼 수 있으신 거군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신이라면 육신에 깃든 영혼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혼백의 모습까지 알아보는 건 제 정도 되는 신이여야 하지만요.」
은근히 자기 과시가 있지만, 중요한 건 신은 산 자의 영혼을 볼 수 있고, 카나코님 수준의 신은 그 혼백의 모습까지 알아본다는 것이다. 나는 이해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카나코님은 「헌데,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하고 모습이 변하게 된 이유를 물어왔다. 나는 이때다 하고 오늘 겪었던 일들에 대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내 사정을 들은 카나코님은 표정을 굳이더니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 복잡한 심경을 드려낸 얼굴로 말했다.
「보통의 주술이 아닌듯 합니다. 이건 자신 있는 분야가 아니라 큰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할 것 같군요.」
유감이라는 듯 말씀하셨지만,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카나코님이라면 반드시 해결해 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고, 쉽게 해결될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다만, 이 상황 속에 내 사정을 알아주는 버팀목이 필요했을 뿐이다.
나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하는 카나코님은 훌륭한 버팀목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심란하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괜찮아요. 이 모습으로도 크게 불편하지 않고, 언젠가는 원래대로 돌아올 테니까요. 곤란하다면... 지낼 데가 마땅찮다는 것 정도?」
「그거라면 원래대로 돌아갈 때까지 제 신사에서 지내는 것이 어떻습니까?」
혹시나 해서 돌려 말했더니, 기대한 대로의 대답이 돌아왔다. 자는 카나코님의 자비를 망설임 없이 받아 들였다.
*
「그런 이유로 당분간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별채 안방에 모인 모리야 신사의 가족들을 향해 그렇게 한동안 같이 지내게 되었다는 것을 선언했다. 따가운 시선을 각오한 내게 신기한 생물을 보는 듯한 시선이 꽂혔다.
스와코님과 사나에가 서로 바라보며 무어라 속닥거리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둘 중 스와코님이 먼저 입을 열고 말했다.
「미소녀가 된 심정은 어때?」
미소녀로 TS가 되었으니, 당연히 그런 질문을 들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듣게 되니까 어쩐지 굉장히 낯간지러웠다. 뭐라고 말해야 될지 몰라 머뭇거리는 나를 스와코님이 짓궂은 미소로 응시한다. 빨리 말하라는 무언의 시선에 나는 지금의 심정을 얘기했다.
「그.. 굉장히 부끄럽습니다.」
그 직후였다.
「모.. 모에에에에에에───!!」
하고 사나에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폭주했다.
「오빠가 이렇게 귀여워 지다니! 역시, TS미소녀는 진리란 말인가! 헉헉.. 보추도 좋지만 전통적인 TS도 좋아!!」
너 무섭게 왜 그러니?
알고 싶지 않은 취향이었다. 여자도 좋아 하는 구나. 오토코노코 같은 거.
자제심을 잃은 사나에가 순식간에 나와의 거리를 좁혔다. 거의 손 한 뼘 정도 까지 다가온 사나에가 위험한 얼굴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지간히 흥분 했는지 뜨거운 콧김이 얼굴에 닿는다.
여자가 된 나는 사나에보다 작구나.
「어쩜, 너무 귀여워! 하악하악..」
상기된 얼굴로 그런 말을 내뱉는 사나에가 변질자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변질자가 된 사나에가 고개를 스와코에게 돌렸다.
「이 귀여운 생물 평생 길려도 되는 거죠?」
「물론이다. 앞으로 잘 보살펴 주거라!」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스와코님은 재밌다는 듯 흔쾌히 허락했다. 내 의사는 중요하지 않다는 거야? 날 완전 애완동물취급하고 있잖아!
「구헤헤헤... 앞으로 이 언니랑 잘 지내보자~.」
「누가 언니라는 거야. 그리고 장난도 정도껏 쳐!」
나는 위험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변질자의 어깨를 잡고 뒤로 밀쳐냈다. 그러나 이정도로는 물러나지 않겠다는 듯 몸에 힘을 주며 버티는 사나에. 빨갛게 상기된 얼굴이 갈수록 음흉하다.
여자 상태인 내가 같은 여자에게 정조의 위기를 느낀다. 내 유일한 버팀목인 카나코님에게 도움의 시선을 보내자, 그제야 방관의 태도를 푸셨다.
「그쯤 하 거라. 무서워하지 않느냐.」
「에에? 저는 미소녀가 된 오빠를 조금 귀여워 해줬을 뿐인데요?」
사나에는 납득이 가지 않는지 아쉽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면서 바짝 붙은 상태로 날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묻는다.
「오빠. 제가 무서웠나요?」
제발 부정해달라는 눈이었다. 나는 아주 조금 망설였지만, 솔직하게 말했다.
「완전 변태 같았거든. 그러니까 좀 떨어져.」
내 말에 쇼크를 받았는지, 사나에는 시무룩해하며 두 발 뒤로 물러났다. 겨우 해방된 나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설마, 그런 식으로 폭주할 줄이야. 나는 사나에의 새로운 일면이 전혀 달갑지 않았다.
그런 광경을 재밌게 구경한 스와코님이 키득 웃으면서 카나코님의 무릎을 쳤다.
「저것 봐! 진짜 웃기지 않아? 오빠오빠 하고 따르던 녀석을 귀여워 졌다고 덮치다니. 마치, 소싯적의 날 보는 것 같아.」
그거 과거의 자신이 방금의 사나에처럼 귀엽다면 일단, 덮치고 봤다는 건가요? 그거 참 굉장한 집안 내력이네.
나를 변질자의 눈으로 쳐다보는 사나에와 그걸 재밌어 하는 스와코님. 그리고 어지간한 일에는 별 간섭 없는 방관주의자이신 카나코님.
내가 이런 환경 속에서 제대로 지낼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든다.
머리가 지끈해지는 찰나였다. 못된 손이 기습적으로 내 한 쪽 가슴을 움켜쥐었다. 범인은 두 말 할 것 없이 사나에다.
「우와.. 키는 작은데 가슴은 꽤... C컵인가요?」
「너 진짜 한 대 맞는 수가 있어.」
내가 그렇게 으름장을 놓고 나서야 사나에의 변태 행각이 중단 되었다.
*
오늘부터 신세를 지게 된 기념으로 저녁상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화려했다. 점심도 맛있게 먹었지만, 저녁은 한층 더 각별하다. 특히 산채로 끓인 된장국이 일품이다. 저번에 있었던 제 1회 텐구배 도시락 대회에서도 느낀 거지만, 사나에의 가정식은 일류의 영역에 달했다고 생각한다. 얼핏 보면 소박해 보이지만, 제한된 재료로 상을 가득 채울 정도의 가짓수를 만드는 건 아무나 못 하는 거다.
무엇보다 평소에도 사나에의 밥을 드시는 신님이 맛있게 밥공기를 뚝닥 비우는 것이 그 증거다. 이런 걸 보면 역시, 가정식을 잘 만드는 것이야 말로 신부의 최고 소양이다.
딱 한 가지, 중증의 오타쿠라는 점이 사나에의 단점이긴 하지만.
식사를 마치고, 부엌에서 사나에의 설거지를 거든 나는 안방에 옹기종기 모인 두 신님과 함께 TV를 시청했다.
환상향에서 TV시청이라니, 처음에는 놀랐지만 PC로 인터넷 게임까지 하는 부대장을 보고 나니 이젠 별로 놀랍지 않다. 지금도 생각하는 건데, 도대체 인터넷 렌선은 어디서 끌어 온 거야?
여태까지 텐구 사회. 환상향이 외부와 완벽히 단절된 세상인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순 허점투성이였다. 똑바로 일해라! 유카리.
뭐, 덕분에 부대장도 회복되었고(게임 폐인이 되었지만) 지금 이렇게 환상향에선 불가능하다 여겼던 TV시청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허술한 걸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나.
그런 잡다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부엌에서 돌아온 사나에가 내 옆에 다소곳하게 자리 잡았다.
「오늘부터 한 집에 같이 지내는 거네요.」
「어.」
「으헤헤헤헤..」
「갑자기 왜 그래?」
「귀여운 짐승 귀 미소녀랑 같이 지낸다고 생각하니 즐겨워서 웃음이 멈추지 않아요.」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닐 텐데?」
「왜요?」
「이래 보여도 알맹이는 남자니까. 오히려 경계해야 하는 게 정상 아니야?」
「왜 그래야 하는데요?」
위기감이 없어도 이렇게 없어서야.
나는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 사나에에게 나 자신이 남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른다고. 남자는 늑대란 말 들어 봤을 거 아냐?」
「그게 뭐 어때서요?」
「어때서라니.. 너?!」
「늑대라도 귀여운 미소녀 늑대라면 이쪽에선 완전 괜찮거든요. 덮치러 온다면 환영이에요!」
와 씨바 존나 강적이네.
바란다면 이쪽에서 덮쳐주겠다는 듯 혀까지 날름거리는 것이 소름이 다 돋을 지경이었다. 방금 대화로 명백해 졌다. 위험한 쪽은 사나에가 아니라 속 알맹이가 남자인 나다.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는 여름의 저녁에 한기가 들기 시작한 내 어깨에 사나에의 팔이 둘러졌다. 내 몸에 밀착한 사나에는 검지로 내 볼을 콕콕 찌르면서 내 귀에 달콤하게 속삭였다.
「오빠. 미소녀가 된 김에 제가 여자의 기쁨을 알려 드릴게요.」
「뭐..뭐어!?!?」
내가 지금 방금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사나에를 쳐다봤다. 그렇게 놀라서 눈을 크게 뜬 나를 사나에는 그저 의미심장한 미소로 바라볼 뿐이었다.
이.. 이년. 요오오오오망한 것 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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