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렀니?」
허공에 생겨난 스키마에서 사뿐히 땅으로 내려 온 유카리님. 부르긴 했는데, 등장이 너무 빨랐다. 마치,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다가 타이밍에 맞춰 나온 것 같았다. 나는 내 손 위에 놓인 소형 음양옥과 유카리님을 번갈아 보다가 그녀에게 물었다.
「저기, 유카리님.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겁니까?」
「어머 들켰나? 후훗. 네가 집에서 나올 때부터 보고 있었어.」
한 번 떠본 거였는데, 정답이었나 보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날 여자로 성전환 시키는 것을 사주한 장본인이 그 성공 여부를 확인하지 않을 리 없으니 말이다.
스키마 같은 편리한 힘이 있는 유카리님이라면 처음부터 보고 있었을 테고, 그 썩을 놈도 직접 데려왔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능청을 떠는 유카리님을 보니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얘기해 주시지 않겠어요?」
왜? 어째서 성전환을 시킨 것인지.
내가 납득할 만한 이유가 필요했다.
그러나 유카리님은 그런 내 의문에 답해주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지금 당장 알려주기 싫은데?」
그러기는커녕 장난스런 어조로 지금의 내 외모를 평가했다.
「그런데 소우지 군. 정말로 귀여워졌어.」
「그게 뭐 어쨌다고요. 장난 그만 하시고 무슨 속셈인지 알려 달라고요!」
「우훗. 화내는 것도 귀여워. 저기, 소우지 군. 이왕 이렇게 된 거 귀여운 여자의 몸을 즐겨보는 게 어떠니?」
「유카리님!」
간절하게 부탁해 봐도 소용이 없었다. 유카리님은 여자가 된 나를 놀려먹으며 웃기만 할 뿐. 궁금한 것들을 일체 알려주지 않았다. 이건 의도적인 엿이다. 유카리님이 무슨 의도로 이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내겐 지나친 장난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화가난 내게 유카리님이 얄밉게 웃었다.
「냇가에서 여자가 된 자기 몸에 심취해 있었으면서.」
「보.. 보고 계셨던 겁니까!?」
「당연하잖니.」
화나서 화끈했던 얼굴이 다른 의미로 화끈 거리기 시작했다. 그야 그렇겠지. 처음부터 보고 있었다면 냇가에서 변태 같이 자기 가슴을 주물럭거리던 모습까지 봤을 테지. 그것도 꽤 오랫동안. 누가 봐도 이상한 변태 같은 행동을..
막심한 후회와 함께 죽고 싶을 만치 창피했다.
「아..아앗!」
그런 민망한 모습을 보이다니.
이제 장가 다 갔다. 차라리 알몸을 보이는 편이 나을 정도로 여자 몸에 심취했던 모습은 치명적이었다. 이전에도 앞으로도 없을 흑역사로 인해 나의 머릿속은 혼돈 그 자체가 되었다.
제대로 망신을 당한 나는 그 충격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내게 유카리님이 따뜻한 시선을 보냈다.
「너무 그렇게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 나르시즘은 누구나 조금씩 가지고 있는 거니까. 딱히 이상한 게 아니야. 나도 자기애가 꽤 강한 편이거든.」
위로랍시고 한 말이겠지만, 내겐 오히려 비수처럼 날아든다. 이 이상 정신적인 데미지를 입었다간 위험할 지경이었지만, 유카리님의 정신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하물며 이성의 몸이 되다니. 이성애와 자기애가 합쳐지면 심취하게 되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인걸. 소우지, 너는 스스로 최고의 이성이 된 거야.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자랑스러워 해야 할 일이라고.」
「그만 놀리세요.」
「어머? 내가 놀리는 걸로 보이니? 난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야.」
아니. 본인이 그렇게 느낀다는데 왜 아니라고 잡아떼시나. 쪽팔려서 어쩔 줄 모르는 내 반응을 재밌어 하는 게 뻔히 보이는데 말이야. 그게 아니라면 저 실실 쪼개는 얼굴은 대체 뭐냐고!
「두 번 없을지도 모를 기회니까, 이 참에 즐기는 게 좋을 거야.」
그렇게 실컷 놀려 놓고, 유카리님은 스키마를 열고 사라졌다. 나는 언제 돌아 오냐고 외쳤지만, 돌아오는 건 공허한 메아리뿐이었다.
설마, 평생 이 모습인 건 아니겠지?
만약이지만 정말로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다 해도 지금 당장이 문제였다. 이대로는 영락없이 신원미상의 요괴다. 폐쇄적이고 배척이 강한 텐구사회가 그런 요괴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겠지. 물론, 부대장이 증언을 해준다면 최악의 상황까지는 안 가겠지만, 의심을 사기엔 충분한 상태였다.
내가 성전환 된 본인이라는 것을 안 동료들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기 보다는 두려움이 먼저 앞선다.
「나라는 걸 알면서도 들이댈 ㅁㅊㄴ이 수두룩하겠지.」
몹쓸 생각을 하는 녀석이라면 널리고 널렸다. 그만큼 백랑경비대는 여자에 굶주려 있는 집단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문제는 여자들의 반응이었다.
자의가 아니라곤 하나 원래 남자였던 나는 여성들로부터 경멸을 받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내게 실망하는 여자도 나올 테지. 몸만 여성이지, 정신은 남자인데 그런 트랜스젠더 같은 텐구를 반길 여자가 있을 턱이 없다.
생각할수록 우울해지기만 하네.
왠지 정신적으로 지처 버린 나는 오늘 경비는 째고, 집에 얌전히 짱 박히기로 했다. 신원미상인 이상 함부로 돌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야.
*
아아.. 가슴이 출렁거린다. 가슴 큰 여자들이 왜 어깨가 결린다고 하소연하는지 이제야 알겠다. 노브라 상태라서 그런지 걸을 때마다 가슴이 상하 운동을 하고, 중력에 의해 어깨에도 부하가 걸리는 구나. 제자리 뛰기를 해보니 무게가 확실히 느껴진다.
가슴이 좋기만 한 게 아니구나.
하지만, 촉감 좋은 부드러움을 공짜로 만끽 할 수 있다는 메리트가 너무 컸다. 눈을 아래로 내렸을 때 보이는 골짜기라던가 여자로서의 스타일이 좋아진다는 점이 모든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그것도 어느 정도. F컵 이상의 거유가 되면 그로인한 불편함과 고충은 이 정도 수준이 아니겠지.
일단, 집에 가서 차근하게 알아보자.(뭔가 엉큼해 보이겠지만, 절대 그런 게 아니다. 이건 남자로서의 건전한 탐구인 것이다.)
달라진 몸에 서서히 적응해 이젠 걸을 때마다 느껴지는 위화감도 옅어질 무렵이었다. 운 좋게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집 앞까지 당도한 나의 시야에 누군가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내 집 정문을 열고 나오는 낯선 백랑텐구 한 명.
어째서 처음 보는 녀석이 내 집에서 나오는 건지는 모르나, 어딘지 익숙한 낯짝을 하고 있었다. 뭐야 저 새끼는?
남의 집에 무단침입까지한 수상한 녀석이었기에 나는 당장 그에게 달려갔다.
「이봐. 당신 누군데, 남의 집에서 나오는 거야?」
멱살이라도 붙잡는 기세로 따지는 내게 그는 의아한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어 그가 나를 살짝 밀쳐내며 말했다.
「남의 집이라니? 저기, 아가씨. 다른 집이랑 착각 한 거 아니야?」
「뭐? 그럴 리가. 여긴 내 집이 분명한데!」
이 새끼가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내가 착각 하긴 뭘 착각해? 눈을 비비고 봐도 내 집이구만. 나는 이 뻔뻔한 무단침입자 멱살을 잡아들었다.
「내가 지금 여자라고 얕보는 모양인데. 이래 뵈도 백랑경비대 고참이라고!」
그렇게 겁박하며 사납게 노려보는 나를 녀석은 콧방귀를 뀌며 비웃었다. 그리고는 내 양 손을 잡더니 강제로 멱살을 풀며 반박한다.
「이 아가씨, 한 잔 했구먼. 취했으면 얌전히 잘 것이지. 어디 행패를 부려!」
나는 다시 멱살을 잡아 보려 했지만, 녀석의 힘에 의해 양 팔과 함께 상체가 점점 뒤로 꺾여갔다. 남녀의 힘 차이가 이 정도로 심했었나? 힘으로는 녀석에게 대항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여자의 무력함을 절감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녀석의 얼굴을 가까이서 본 덕분에 알아 버린 것이다.
처음 본 녀석이면서 어째서 익숙하다 느낀 것인지.
저 얼굴, 내가 잘 알고 있다. 왜냐면 매일 아침 보는 얼굴이니까.
「너 인마.. 설마?!」
그럴 리가 없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부정할 수 없었다. 저 얼굴은. 아니, 저 녀석은 원래의 나다. 내가 둘이 된 것이었다.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나는 다시금 혼란에 빠져 들었다. 여자가 된 것 이상의 비상사태였다.
「왜 내가 둘이 된 거지?」
「아가씨. 아까부터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걸 보니, 꽤 많이 취한 거 같네.」
그래. 녀석 말대로 난 지금 취했을 지도 모른다. 아니고서야 이런 말도 안 돼는 일이 연속으로 일어날 리가 없지. 손목을 붙잡고 있는 녀석의 손에서 힘이 빠진다. 그 기회를 틈타 얼른 손을 뿌리친 나는 녀석과 거리를 벌리며 비틀거렸다.
「괜찮아?」
날 쏙 빼닮은 녀석이 그런 나를 걱정스럽다는 듯 바라본다. 전혀 괜찮지 않은 나는 살짝 풀려버린 다리에 힘을 빼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그리고 텅 빈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여자로 바꾼 것도 모질라 내 보금자리마저 빼앗냐고..」
장난이던 뭐가 됐든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나는 이런 상황을 초래한 유카리님이 원망스러웠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는 건지. 또 자신에게 무슨 득이 된다고 이런 괴롭힘 자행하는 건지.
황당함에 못이겨 잠시, 정신이 나가버린 내 귓가에 또 다른 내가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차는 목소리가 맴돌았다.
「어휴~ 이거 완전 꽐라네. 아침부터 낮술을 얼마나 마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