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인지,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눈이 하나 둘 씩 늘어나는 가운데, 유카리님이 자신의 육감적인 몸을 과시하듯 팔짱으로 가슴 밑을 받쳐 올렸다. 그러면서 자신을 적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마리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부러우면 거유로 만들어 줄 수도 있는데. 내 능력이라면 간단한 일이거든.」
「피..필요 없어!」
꽤 달콤한 제안인데도 불구하고 마리사는 큰 소리로 거절했다. 그 안쓰러워 보이는 자신의 가슴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 아니면 거유가 되는 게 싫었던 걸까? 마리사는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며 양 손으로 보이지 않는 가슴. 거유를 만지는 듯한 손동작으로 허공을 만지작거렸다.
아쉬워하는 표정이 옅보였지만, 번복은 없었다. 사나에가 그 모습을 보며 손으로 입을 가리고 키득 거렸다.
그리고 레이무도 자신을 가슴을 내려다 보며 마리사와 비슷한 손동작을 취한다. 연령을 생각하면 아직 성장의 여지가 많을 텐데, 그게 그렇게도 신경 쓰이는 걸까?
「소우지 씨.」
가슴에 신경 쓰는 소녀의 모습을 감상하고 있던 내게 기자양반이 불쑥 물어왔다. 고개를 돌려 쳐다본 기자양반의 얼굴엔 재미있는 것을 떠올린 악동 같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소우지 씨는 어떤 가슴이 취향인가요?」
「뭐야 그 질문..」
실로 기자양반다운 질문이었다. 나는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다는 눈초리로 쳐다봤지만, 저 까마귀가 그런 걸 신경 쓸 정도로 섬세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묵비권도 소용없다는 듯 속사포 같은 질문이 쏟아졌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 컵이 좋냐는 겁니다. a컵? b컵? c컵? 역시, 유카리님같은 빵빵한 거유가 좋은 겁니까? 아니면 저처럼 모양 예쁜 c컵이 좋은가요? 그것도 아니면 레이무처럼 A컵?? 설마... AA컵 절벽이 좋은 건 아니겠죠?? 빨리 대답해 주세요!」
「내가 왜 대답해 줘야 하는데?」
「그야 다들 궁금해 하니까요!」
누가? 하고 맞받아치려다 깨달았다.
내게 뜨거운 시선들이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설마, 이곳에 있는 전원 내가 어떤 가슴을 좋아하는지 궁금하다는 거야?
그게 왜 궁금한지는 모르겠지만, 저 시선들로부터 도망갈 수 없는 이상 나는 솔직하게 내 취향을 말 할 수밖에 없었다.
「한 손으로 잡았을 때 적당한 중량감이 느껴지는 크기라고 해야 할까?」
윽. 말하고 나니 엄청 부끄럽다. 수영복 차림의 여자들이 보는 앞에서 가슴에 대한 취향을 밝히다니, 이게 무슨 수치 플레이야. 화끈해진 얼굴을 보이기 싫어 아무도 없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렇다는데요? 여러분.」
소녀들을 향해 어떻냐는 식으로 묻는 기자양반. 미묘한 정적이 흐르더니 돌연, 자신만만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후후후.. 소우지 씨는 날 선택한 게 틀림없어. 제 가슴이야말로 한 손으로 잡았을 때, 적당한 중량감을 가졌으니 말이다!」
모미지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그야말로 승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기, 왜 혼자 지례짐작을 하는 거야? 이어서 그런 모미지에 대항하듯 사나에가 검지로 삿대질하며 이의를 제기했다.
「이의있소!」
역전재판...
대사나 동작이 완전 나루호도다.
「모미지 씨의 가슴은 어림잡아 D컵! 확실히 중량감이 느껴지는 크기이긴 하지만, 과연 적당하다고 할 수 있을 까요?」
모미지 D컵이었구나. 사나에 덕분에 좋은 걸 알아간다. 오타쿠답게 과장된 동작으로 역전재판 흉내내던 사나에는 갑자기 자신의 양 가슴을 움켜쥐더니 음미하듯 주물러대기 시작했다.
나는 사나에의 돌발적인 행동에 낯이 뜨거워졌다. 남자인 나도 있는데, 민망하게 뭐하는 거야! 조신하지 못한 행동이었기에 조금 주의를 주려 했는데, 누군가가 내 눈을 가리며 방해했다.
「소우지 씨는 보면 안 돼요!」
등에 밀착된 두 개의 부드러운 덩어리. 손으로 만진 게 아니라 적당한지 까지는 모르겠으나 중량감만큼은 확실했다. 모미지, 좋은 가슴을 가지고 있구나.
「이 똥개가 뭐하는 거야! 아저씨에게서 당장 떨어져!」
이어 뒤에서 몸을 밀착한 체 내 눈을 가리고 있는 모미지를 규탄하는 레이무의 호통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모미지는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내 등에 더 밀착시켜 가슴의 파괴력을 증가 시켰다.
등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움과 코에 은은하게 퍼지는 달콤한 암컷의 냄새 때문에 그만 정신이 아찔해진다. 자칫 방심했다간 내 아랫도리가 큰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모미지.. 좀 떨어져 주지 않을래?」
「안 돼요! 제가 떨어지면 저 볼품없는 무녀의 몸을 음흉한 눈으로 쳐다볼 거잖아요!」
「아니.. 그게 위험하다니까!」
내 하반신이!
그러니까, 제발 떨어져 줘!
내 등에서 한사코 떨어지려 하지 않는 모미지에게서 나는 몸을 틀어가며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간단히는 벗어날 수 없다는 듯 모미지의 양 가슴이 끈덕지게 따라 붙는다. 그로 인해 부드러운 덩어리가 이리저리 쓸리면서 내 등을 간지럽혔다.
윽! 이젠 한계다.
하반신에 피가 쏠리기 시작했다.
힘으로 벗어나려 했던 것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줄이야. 이대로 추태를 드려내게 되는 걸까. 그것도 레이무들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소우지 씨에게 죽고 싶을 만치 부끄러운 흑역사를 만들어주고 싶은 건가요?」
기자양반의 일침과 함께 컴컴했던 시야가 한 순간에 밝아졌다. 갑작스런 광량에 눈을 몇 번 깜빡인 나는 가벼워진 몸을 확인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모미지가 송구스럽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피한다.
기자양반이 히죽거리는 얼굴로 내게 물어왔다.
「그래서 어땠습니까? 모미지의 가슴 말입니다.」
어처구니없는 질문에 얼떨떨해진 나에게 흥미롭다는 시선이 모여든다. 이 여자들이 왜 같은 여자의 가슴에 관심을 가지는 걸까? 궁금하면 자기 꺼 만지면 될 것을.
「기다리다 지치게 하지 말고 빨리 들려주시죠?」
이 빌어먹을 기자양반이 소악마 같은 얼굴로 재촉한다. 나는 유카리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시선을 보냈지만, 그대로 무시당하고 말았다. 유카리님 역시 내 감상이 듣고 싶은 모양이다. 결국, 내키지 않지만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부드러웠어.」
「네? 뭐라고요?」
「부드러웠다고! 두 번이나 말하게 만들지 마!」
짓궂은 기자양반에게 볼멘소리를 낸 나는 조금 두려운 눈으로 모두의 반응을 살폈다. 모두가 무표정하게 입을 다물고 있는 가운데, 사나에만이 혼자 싱글벙글한 얼굴이었다.
「부드러웠다고요? 헤에~!」
마치, 한창 때의 남학생을 보는 듯 사나에는 갑자기 음흉한 표정으로 거친 숨을 내뱉기 시작했다.
「부드럽다라... 하아..하아...」
그리고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갑작스런 변모에 당황해 하는 나를 지나친 사나에는 그대로 모미지를 덥쳤다. 이어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꺅! 뭐하는 겁니까!」
「구헤헤헤! 좋지 아니한가!」
굳어진 표정으로 돌아보자, 한데 뒤엉켜 난폭하게 모미지의 가슴을 주무르고 있는 사나에가 보였다. 그러면서 보인 표정은 도저히 10대 소녀라고 볼 수 없는 꺼림칙한 변태 중년 그 자체였다.
침까지 흘리며 희롱하는 사나에의 머리에 철권제제가 가해졌다.
「그만해 변태!」
보다 못한 레이무가 언제 들었는지 모를 불제봉으로 사나에의 정수리를 내려친 것이었다. 딱!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사나에의 몸이 딱딱한 돌바닥 위를 구른다. 얼마나 세게 쳤는지, 혹이 다 보였고 안쓰러울 정도로 아파보였다.
불제봉을 멋지게 어깨에 걸친 레이무가 한숨을 크게 내쉬며 말했다.
「아저씨도 이런 바보들이랑 어울려 줄 필요 없다고.」
그러면서 원흉인 기자양반을 날카롭게 노려본다. 도망치듯 고개를 돌린 기자양반의 얼굴에 땀방울이 송골 맺혀 있었다. 그때 잠자코 구경만 하던 유카리님이 입을 열었다.
「어머. 그렇게 말한 것치고 가장 관심을 보인 게 누굴까?」
유카리님은 굳어진 레이무를 의미심장한 눈으로 바라봤다.
「오히려 욕먹을 각오하고 총대를 맨 까마귀가 기특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난처해진 기자양반을 변호하듯 그렇게 말하는 유카리님. 기자양반의 표정이 환해졌다.
「역시, 요괴의 현자님이십니다. 제 진의를 알아주시는 군요!」
「나도 엄청 궁금했거든.」
이때다 싶어 아부를 떠는 기자양반에게 유카리님은 옅은 웃음을 내뱉으며 그리 말했다. 그리고 돌연 시선을 내게로 돌리며 뒷말을 이었다.
「소우지 군이 누구에게 관심이 있는지 말이야.」
「예?」
설마 했던 발언.
누구를 좋아하는지 묻는 질문에 나는 머릿속이 엉망이 된 체 얼어붙었다. 누굴 좋아 하냐니? 그야... 레이무. 아니, 모미지도 좋아하고 사나에도 좋아하지. 연애 감정을 묻는 거라면 대답할 수 없다. 아직 거기까진 생각 한 적 없으니까.
확실히 정하지 않은 나는 어색한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글쎄요? 아직 누구랑 사귀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은 없는데..」
그렇게 말한 직후였다. 등골이 얼어붙을 정도로 오싹한 시선이 내게 향해졌다. 레이무가 모미지가 마리사가, 그리고 기자양반이 그런 시선으로 날 바라본다. 유카리님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실망스런 발언이었어. 설마 이 정도로 등신일 줄이야.」
내가 그렇게 잘못 말한 거야?
여름인데도 싸늘하게 느껴질 정도로 냉각된 분위기 속에서 나는 내가 뭘 잘못 말한 건지 되짚어 봤다. 난 그저 아직 솔로이고 싶다고 했을 뿐인데.
하지만, 유카리님은 확실히 내가 잘못했다는 듯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혹시, 일부러 저러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