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며칠 간은 찾아오지 못할 거야."
사구메는 그런 말을 남기고 뒤돌았다. 양반다리를 한 채 듣고있던 세이자는 그게 조만간 올 거라는 암시인지, 아니면 정말로 찾아오지 못한다는 건지 도무지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궁금한 걸 참지 못하는 세이자는 곧 난간에 팔을 걸치고 멀어져가는 사구메를 불렀다. 이별이 아쉬운지 아직도 뒤를 기웃거리고 있어서, 사구메는 그 반응에 번개같이도 반응했다.
"어~이 댁. 댁은 말하는 게 반대로 되잖아. 그러면 그거 곧 올 거라는 말? 아니면 못 온다는 말?"
"그, 그건……."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은 사구메는 얼굴을 잔뜩 붉히다,
"반드시… 올 거란."
중얼임일 뿐이었지만 세이자는 어떻게 듣고 태연하게 고개나 끄덕였다. 그렇지만 사구메는 더 이상 부끄러움을 참지 못했는지, 고개를 홱 돌리며 저 멀리 뛰쳐나가듯 사라져버렸다. 세이자는 알기 쉬운 녀석이란 비웃음을 피식 지으며 사라지는 사구메의 모습을 보다 뒤돌았다. 그런 세이자의 모습이 모녀 사이간의 사이로 보면 꽤나 정감있는 것이었는지, 바로 뒤에서 주지인 히지리가 넉살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세이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음씨 좋은 분이시네요."
"허, 어디가."
세이자는 난간에 팔을 기대고 다시 헛웃었다. 히지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했다.
"아닌가요? 저와 이야기하면서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줄곧 하셨는데."
"그야 날 여기에 맡기는 입장이니 이야기야 잔뜩 하겠지."
"믿고 있지 않나요?"
"날 버려뒀다 이제야 찾으러 왔다는 녀석을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믿어야 하나. 킥."
세이자는 정말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세이자에게 있어 사구메는, 어떤 속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수상쩍게 어미임을 칭하는 녀석에 불과했다. 정을 붙일 생각도, 믿을 생각도 추호도 없는. 그렇기에 묘렌사에도 끌려온 것일 뿐이고.
"아아…, 그런 거로군요."
"그런 거?"
삐뚤어져있는 세이자의 눈을 본 히지리는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 나직히 중얼거렸다.
"어떤 일을 계기로 삐뚤어져버린 사이라는 거로군요. 가여워라…. 당신이 왜 저희에게 당신이 맡겨졌는지 이제야 이해가 갈 거 같습니다."
"무녀 말대로는 갱생이라던데."
"그게 아니에요. 숨겨진, 그런 의도가 있던 거였지요."
어쩐지 히지리는 자신만만해하고 있었다. 요즘따라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는 세이자는 도무지 대꾸할 기력도 없어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굳이 지적하지 않더라도 무녀가 의도를 숨긴다는 귀찮은 짓을 할 거라곤 누구도 생각하지 않을 게 뻔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히지리만은 눈치채지 못했는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있었다.
"장애물에 가로막혀 서로 다가가는 법을 까먹어버린 모녀 사이를 되돌리라는, 그런 의도가……. 어쩐지, 단순한 갱생으로는 이곳에 올 리가 없었겠죠."
"……야, 잠시만. 뭔 소리야."
"비록 어머니의 마음으로 보살피는 건 부족하겠습니다만… 노력해봐야겠죠. 이 히지리 뱌쿠렌, 주지의 명예를 걸고, 동생 묘렌의 이름을 걸고. 당신들의 그 사이를 완화시켜보이겠어요."
세이자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식으로 히지리를 봤지만, 히지리는 그런 시선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이미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버려 있었다. 오히려 격려하겠다는 듯이 세이자의 어깨를 꽉 잡고,
"우선은 사람 간의 정을 붙이는 게 중요하겠어요!!"
라며, 그대로 끌고 어딘가로 데려갔다.
"……."
바닥에 질질 끌려가는 세이자는 이제 모든 게 귀찮았다.
"…이하의 이유로 오늘부터 같이 수련을 하게 된 세이자 양이랍니다. 모두 따뜻한 마음으로 환영해주세요."
결국 뺑뺑 돌아다니며 동료를 모아 기어이 환영식을 열어버릴 정도로 히지리는 고집있었다. 열 명에 가까운 박수소리조차 듣지 못할 정도로 지쳐있는 세이자에 비해 절의 일원들은 이런 일에 다소 익숙한 건지 그럭저럭 생기넘치는 모습이었다. 아까 난간에서 봤던 갈색 롤빵머리를 빼고는.
세이자는 서로를 바라보다 표현못할 동질감을 느껴 함께 무거운 고개를 주억거렸다.
"…또, 맡겨진 건가요."
"이젠 절이라기보다는 탁아소네."
"……그만큼 신뢰가 간다는 뜻이니 좋은 걸지도요."
"적어도 눈을 보고 말해줘 쇼."
쇼는 이치린의 딴지에 입꼬리를 힘없이 올렸지만, 스스로도 설득력이 없다는 건 알아서인지 얼굴을 마주하고 있지도 않았다. 쇼는 하도 정직해 거짓말이 얼굴에 쉽게 새어나오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아이를 맡기면서 우리한테 얼굴도 안 비추고 가다니 괘씸한걸요."
"무라사, 그 말을 하면 우리가 진짜 탁아소인 거 같잖아."
"아무래도 신이셨으니까요. 바빠보이기도 했고, 어쩔 수 없지 않을까요?"
히지리가 뺨에 손을 대며 싱긋 웃었다. 탁아소가 되어버렸단 이치린의 주장은 그렇게 그 누구도 반박하지 않은 채로 묻혀져갔다. 그러다 딴죽을 걸던 이치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응? 근데, 신?"
"예, 신이었답니다."
"새로 왔다는 이 녀석, 아마노자쿠 아니야?"
"그렇죠?"
"이변을 벌였던 악동."
"네."
"근데 신이 맡기고 갔다고?"
"그런데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이치린?"
"아니아니, 그런 건 아닌데, 어떤 사이길래 신이 직접 맡기고 가나 해서."
"모녀지간이요."
"???"
설명을 들어도 이치린은 전혀 알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더 자세한 설명을 바라는 이치린이었지만, 히지리가 더 이상 얘기해줄 필요도 없다는 듯이 개인적인 감상만 쭈욱 내뱉을 뿐이라서 오늘도 그냥 수긍하고 넘어가야겠다는 걸 깨닫게 되었을 뿐이었다. 언니가 그렇지 뭐… 라면서.
"무척 예의바르고, 딸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걸 드러내고 있어서, 되게 보람있더라고요. 이러다가 재미들릴 거 같아요."
"히지리까지 그러면 정말로 탁아소가 되어버릴 테니까 그만둬주세요…."
"맞아. 히지리 원장님~ 이라 불릴지도 모른다고 언니."
"어머, 나쁘진 않은데."
입을 가리고 웃던 히지리는 쇼에게 "히지리는 장난이 진담같으니까 정말로 그만둬주세요" 라는 말을 듣고서야 입가에서 손을 떼며 농담을 그만뒀다. 쇼는 이제 비사문천 대리가 아니라 원장 대리로 불릴지에 대한 미래를 잠시 걱정해봐야 됐다.
세이자는 그녀들의 대화를 줄곧 지켜보며 자신이 어떤 곳에 놓였는지 대충 깨달을 수 있었다. 딱 봐도 귀찮은 일이 다분할 것 같은, 그런 분위기. 어울리는 데 힘을 모조리 써버리게 될 것 같은 예감이랄까. 떠도는 데 익숙한 자신에겐 정말로 천적인 곳인 것 같다.
동질감이 드는 녀석이 왜 저렇게 죽을 상의 얼굴을 하고 있는지가, 자신과 마찬가지의 이유였을 거란 사실을 느껴 세이자는 벌써부터 어깨에 힘이 쭉 빠져있었다. 히지리는 줄곧 한 쪽을 향해있는 세이자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그 방향 쪽 인물의 어깨를 잡곤 소개했다.
"죠온 양도 세이자 양과 비슷한 이유로 왔으니까,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거에요. 죠온 양도 친하게 지내줄 거죠?"
"…어, 으응."
"좋아요. 그러면 같이 수행할 동료들끼리 앞으로도 잘 지내봐요. 자, 화이팅!"
주먹 쥐고 외치는 히지리는 정말 원장이라도 된 듯한 말투여서, 세이자는 여기가 진짜 탁아소인가, 절인가를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뭐, 절이건 탁아소건. 중요한 건 앞으로 얼마나 더 귀찮아지겠느냐 였다만.
그런데 단순한 귀찮음이라면 죠온이라는 녀석은 왜 저렇게까지 죽을 상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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