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였을까?
몇 번을 자문해도 나오지 않는 해답에 모리야 스와코는 가슴 한편이 답답하기만 했다.
처음엔 사나에가 환상향에서 처음으로 친해진 요괴 정도로만 인식 했었다. 그래서 원한다면 배필로 맞이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서 둘의 관계를 진전 시키려고 까지 했었다. 그가 신사를 찾을 때마다 농이나 치면서 속마음을 떠봤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힘들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녀석에겐 만만치 않은 경쟁자가 있었으니까.
솔직하게 말해 사나에에겐 승산이 적었다. 그 만큼, 녀석과 경쟁자 사이에는 사나에로서는 감히 넘보기 힘들 정도로 강한 유대로 이어져 있었다. 그런데도 스와코는 녀석을 사나에와 이어주려고 했었다.
왜 일까?
어째서 자신은 그렇게까지 둘 사이를 연결해 주고 싶었던 걸까? 지금 생각하면 스스로도 이해가지 않는 행동이었다. 어쩌면 마음에 들어서 일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말이다.
눈치 채는 게 너무 늦었다.
이미 녀석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어버린 지금에서는 때늦은 깨달음이 그저 원망스럽기만 하다. 겉으로는 사나에를 위한답시고 한 행동들이 실은 자기 자신을 위한 이기였다니. 이리도 못난 신이 어디 있단 말인가.
스와코는 그런 자신이 부끄러웠다. 사나에를 볼 낯이 없다. 그래서 무심코 숨어 버린 거지만. 지금도 자신을 찾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근처에 있는 줄도 모르고. 정말이지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게 진짜구나.
이런 한심한 신님을 찾아다니는 사나에에게 미안한 기분만 든다. 동시에 사랑스러웠다. 자신의 기분을 배신했는데도 싫어하지 않고 지금도 좋아한다 말해주는 사나에를. 스와코는 독점욕으로 가득 찬 추악한 자신과는 달리 그녀야 말로 진정한 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이라 해도 나는 그저 일그러진 재앙신. 모두에게 떠받들어지는 현인신인 사나에와 다른 게 당연한가?
자신의 본질을 깨달고 나니,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요괴의 산이 장관이라고 생각하면서 스와코는 의미 없는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신물에게 발견되었다.
「여기에 있었던 건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짙은 푸른 색 단발의 여인. 모리야 신사의 신으로 모셔지는 야사카 카나코가 스와코를 이해 가지 않는 다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스와코는 쳐다보지도 않고 툴툴대는 투로 내뱉는다.
「냅 둬.」
「냅두긴. 사나에가 널 그렇게 찾고 있는데? 궁상맞게 그러고 있지만 말고, 얼른 내려와.」
카나코가 그렇게 까지 말하는데도 스와코는 고집불통이었다. 대꾸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 스와코에게 카나코는 한숨을 내뱉고는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뗐다.
「사나에를 볼 낯이 없는 거지? 알 아. 그래도 마주 하지 않으면 안 돼.」
「뭐야? 다 알고 있었던 거야?」
고개를 돌려 찌푸린 얼굴로 묻는 말에 카나코는 잘난 체하는 얼굴로 피식, 웃었다.
「나 정도로 오래 살면, 대강 눈치 채게 되어있지.」
「칫. 재수 없어.」
「그러니까, 숨길 필요 없어. 넌 그저 사나에의 호의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돼.」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그것이야 말로 스와코가 지붕 위에서 오랜 시간 앓던 문제였다. 그걸 받아 들였다간 난 그 아이의 마음을 짓밟는 게 되는 데. 그래도 된다고?
역시, 그럴 수는 없다.
나는 사나에를 슬프게 하면서 까지 행복해지고 싶지 않다.
스와코는 고개를 저었다.
「다 아는 척 말하지 마.」
그런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그리 따지는 눈빛에 카나코는 난처한 듯 관자놀이를 주무른다.
「이런 점이 닮았다니까.」
쓴 웃음을 지으면서 「먼 선조 아니랄까봐. 아끼는 마음은 비등하네.」하고 혼잣말처럼 내뱉는다.
「무슨 말이야?」
그렇게 묻는 스와코에게 카나코는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사나에도 너 못지않다는 거야. 네가 사나에를 생각하는 것만큼, 사나에 역시 널 생각하고 있다는 거지.」
「난 아냐. 사나에와 달리 난 나 밖에 모르는 신이거든.」
「네가 진짜 그런 신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일로 고민하진 않았겠지.」
카나코는 단언하듯 얘기했다. 그러나 스와코는 그 말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표정은 여전히 어둡기만 했다. 그때, 선선한 바람이 불어 닥쳤고, 기척이 하나 더 늘어났다.
「자. 둘이서 속 털어 놓고 얘기해 보는 게 어때?」
카나코는 합류한 사나에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중재에 사나에가 무릎을 끌어 안고 있는 스와코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
「저 스와코님이 좋아요.」
고백 같은 말에 스와코의 눈이 크게 떠졌다. 놀란 듯 쳐다본 사나에의 얼굴은 살짝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여태 자신을 찾느라 넓은 신사를 구석구석 찾아다닌 탓이리라. 스와코는 볼 낯이 없었지만, 땀에 흠뻑 젖을 만큼 찾아다닌 노고를 봐서라도 똑바로 마주해야만 했다. 도망쳐서는 안 된다.
「나도 사나에가 좋아.」
똑같이 마음을 전한 스와코는 갑자기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얼마나 낯 뜨거운지 얼굴은 단풍잎처럼 붉었고, 동공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런 스와코에게 사나에는 진실된 미소로 말했다.
「그러니까. 저는 스와코님이 행복해 졌으면 좋겠어요. 정말이에요. 절 위한다고 울적해 하는 스와코님은 보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너도 그 녀석을 좋아 하잖아.」
「그렇긴 한데...」
사나에는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짓더니 싱긋이 웃으면서 하나의 사실을 입에 담았다.
「오빠가 선택한 건 제가 아니라, 스와코님이니까요.」
사나에는 단순히 양보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결과에 승복했을 뿐. 그렇기에 승자인 스와코가 그 특권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어딜 보나 타당한 논리였다. 공정하게 경쟁해서 이긴 쪽이 차지하는 것이야 말로 바람직하다고.
따라서 사나에는 아무런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아니, 제기 하지 않았다. 자기 나름대로 납득한 결과였고, 승자가 좋아하는 신님이었기에.
「그리고 스와코님이라면 오빠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걸요.」
솔직하게 털어 놓은 사나에의 말에 스와코는 불현듯 눈시울을 붉힐 것만 같았다. 자신을 저렇게 까지 믿어 주는데, 어째서 자신은 도망치려고만 한 것인지. 스스로 생각해도 못 미더운 자신이지만, 사나에는 그런 자신을 믿고 맡길 수 있다고 말했다. 자격이 있다고 말해 준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기대에 부응해야 되지 않겠는가.
신이라면 응당 그래야만 한다.
「알았어. 소우지는 내가 책임지고 맡겠어!」
결심이 섰는지, 스와코는 어느새 두 다리로 서서 자신 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각오에 카나코가 흡족한 미소를 짓는다.
「음. 좋아. 그래야 모리야 스와코지! 스와국을 놓고 싸우던 시절이 생각나는 패기야.」
무리수에 가까운 비유에 싸늘한 시선이 꽂혔지만, 카나코는 개의치 않고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마치, 한 건 해결 했다는 듯한 태도에 스와코와 사나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나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완전 부활한 스와코는 언제 그랬냐는 듯 거만한 얼굴로 「오랜 만에 누가 더 강한지 붙어 볼까?」하고 도발했고, 카나코는 「1승을 더 적립하는 것도 좋지!」하면서 응했다.
기운 찬 두 신님 때문에 언제나 골치 아픈 건 모시는 입장인 사나에다. 하지만, 이때 만큼은 그녀도 두 신과 동류. 잠깐 두통이 이는 듯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내 활기찬 얼굴로 끼어 드는 사나에였다.
「저도 끼겠어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삼파전으로 가보죠!」
피는 못 속인다더니, 호전적인 면도 스와코랑 판박이네. 카나코는 그렇게 생각하며 한층 더 큰 소리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