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서 뭐가 터졌는데 앞을 방어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얼굴과 몸을 감싸면 필연적으로 등이 빌 수 밖에 없었다. 마루는 충돌에 대비할 새도 없이 그대로 아름드리 나무에 부딪쳤다. 등을 부딪친 충격으로 인해 몸은 잠시 숨 쉬는 법을 잊어버렸다. 숨도 못 쉴 만큼 아프다는 게 이런 거구나.
당연하지만 앞쪽도 상태가 좋지는 않았다. 사람을 날려버릴 정도의 폭발력과 열기를 받아냈는데 멀쩡할 수가 있을까. 하지만 운이 좋았는지, 마루의 반사 신경은 할 일을 해주었다. 호흡이 나아지자 마루는 몸을 추스렸다. 온몸에서 하얀 연기가 풀풀 피어오르는 것치고는 멀쩡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건 연기가 아니었다.
자신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것들이 뜨거운 수증기라는 사실에 마루 자신도 놀랐다. 열기를 뒤집어쓰기 직전에 수증기로 온몸을 덮었다는 걸 깨닫는데는 한참이 걸렸다. 놀라움은 잠시, 힘겹게 나무에 기대어 앉은 마루는 앞을 바라보면서 방금 찰나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재구성해보았다. 방금 화톳불이 있던 자리 주변은 말 그대로 엉망이었다. 돗자리는 수풀 너머로 멀리도 날아가 있었고, 재와 돌멩이, 방금 주워왔던 불쏘시개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거 하나. 마루는 그 하나 때문에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아팠지만 기어코 기어간 마루는 책을 집어들었다. 정신이 덜 들었는지 손길이 엉성했지만, 책이 상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였다.
"하...다행이다..."
재와 흙먼지가 잔뜩 묻어서 꽤 더러워졌지만 불이 붙지는 않았다. 재를 털어낸 마루는 책 다음으로 중요한 것에 집중했다. 마루는 큼지막한 물방울을 하나 만들어내고는 그걸 방패 삼아 폭심지로 다가갔다. 또 터질까 불안한 탓에 속도는 거북이 기어가는 수준이었다. 별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거리가 가까워지자 마루는 냅다 물방울을 꽂아넣었다. 흙탕물이 튀겨댔고, 재와 흙먼지가 섞이면서 물웅덩이는 보기 흉한 색으로 변했다.
이대로 혼탁한 흙탕물만 남고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흙탕물 속에서 불빛이 빛나고 있었다. 불씨는 물 속에서도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물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불? 오래 생각할 틈도 없이 작은 폭발이 일어나자 마루는 놀라 뒷걸음질쳤다. 흙탕물은 순식간에 끓어 증발해버렸고, 맨땅이 불타기 시작했다. 불타는 걸 넘어 하늘로 솟아나는 게, 물이 솟아나는 샘 같았다. 이번엔 부자연스럽고 기분나쁜 바람이 사방에 흩어졌던 불쏘시개를 끌어모았다. 연료까지 집어삼킨 불꽃은 순식간에 마루의 키의 2배쯤의 크기가 됐지만, 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불덩이는 사방으로 내보낼 열기마저 아끼면서 크기를 키웠다. 뜨겁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마루는 그걸 건드릴 엄두도 못 냈다. 아니지, 지금은 당장 도망쳐야 할 상황인데 건드리고 자시고 할 상황이 아닌데. 하지만 저 불길은 연이어서 마루의 이성을 불태우고 냉정함을 날려버렸다.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다리가 굳어버렸다. 충분히 커졌다는 듯이 불꽃은 잠시 동안 크기 변화도 없었고, 크기에 비해 잔잔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풀뿌리처럼 여러 방향, 수 갈래로 갈라지고 이어붙기를 반복하면서 형태를 갖추어갔다. 그건 마루한테도 아주 익숙한 형태였다.
땅으로부터 솟아오른 두 불길은 사람의 다리로 보였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저건 허리, 양팔, 머리겠네. 사지가 달려 있는 사람의 형태였다. 형태가 갖추어지자 불길이 잔잔해졌고 그 내부가 슬쩍 보였다. 방금 빨아들였던 장작더미가 불 속에서 흐르고 있었다. 키가 3미터쯤 되는 불타는 거인이 마루의 눈앞에 섰다.
마루는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어처구니 없었지만 대화를 시도해야 하나 고민했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였다. 저게 요괴거나 그것과 비슷한 거라면 말은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하다못해 동정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마루에게 두 번째로 좋은 경우는 말로 잘 해결해서 넘어가는 것이었다. 당연히 가장 좋은 경우는 아무 일 없이 저 불덩이가 사라지는 쪽이고. 우선은 두 번째로 좋은 것부터.
"저기, 혹시 말할 수 있어요...?"
이목구비는 없었지만 거인은 마루를 내려다보듯이 고개를 살짝 내리고 있었다. 대답 대신 거인의 오른팔이 슬쩍 올라갔다. 많은 요괴들이 사람의 모습을 하는 건 속임수의 일환이다.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모습을 보고 무의식으로 안심하게 되고, 쉽게 속아넘어가고 만다.
거인의 팔에서 나오는 열기를 받은 수증기가 불 붙은 날벌레마냥 사방으로 발광하는 것이 마루의 눈에 보였다. 그걸 볼 수 있었던 덕에 마루의 회피는 꽤 빨랐다.
거인의 팔이 길게 신축하면서 방금 마루가 있던 자리를 후려쳤다. 굵은 채찍 다발로 땅을 내리치는 듯한 소리가 났고, 흙먼지와 불씨가 튀겨댔다. 불덩어리 거인은 팔을 추스리고는 이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상황 파악을 한 마루는 마음을 단단히 먹으려고 애썼다. 심장이 마구 뛰어대자 눈의 혈관까지 떨리는 것 같았다. 방금 전에 불씨가 물로는 꺼지지 않는다는 걸 똑똑히 봤지만 그렇다고 낙담할 수는 없었다. 폭발을 반사적으로 받아냈던 걸 떠올랐고, 주변의 수증기들이 마루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책을 자신의 뒷편으로 던졌다. 지금은 양손이 자유로워야 하고, 종이에 불씨가 튀기는 건 절대 사양이었다. 방금 돗자리가 날아갔던 곳으로 던졌으니까 책이 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말... 에이, 못하거나 안하거나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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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지경의 경지는 어쩌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할 여유가 있었더라면 마루는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만나자마자 인사 대신 내려쳤던 느릿한 일격은 봐주는 정도에 불과했다. 거인은 실로 조종하는 꼭두각시 인형마냥 날렵하게 움직이면서 마루에게 불꽃을 휘둘러댔다. 피하는 것보다는 막아서 흘려내는 게 더 많았다. 그나마의 위안이라면 마루는 공격이 오는 족족 잘 받아내고 있었다. 간신히 화상을 면하는 정도였지만, 물은 확실히 불보다 우위에 있었다.
거인의 왼발 짓밟기는 수박만한 물방울과 부딪치면서 기세가 꺾였다. 물방울의 반절이 수증기가 되어 마루를 덮었다. 뜨거워하는 신음이 새어나오고 뜨거운 증기가 눈앞이 가렸지만 눈을 돌리지 않았다. 곧바로 튕겨넀던 발이 연막을 뚫으면서 다시 쇄도해왔다. 마루는 몸을 비틀면서 반절 남은 물방울을 쐈다. 한번 튕겨낸 탓에 조준이 엉성해진 발길질은 마루를 지나 애먼 땅을 강타했고, 발사된 물방울은 팽창하면서 구름으로 변했다. 구름은 거인의 얼굴을 감싸고는 정신없게 흔들어댔다. 거인이 균형을 못 잡고 휘청거리자 금쪽 같은 빈틈이 생겼다. 마루는 주변의 땅바닥을 슬쩍 살펴 보고는 간절하게 마음을 모았다.
"빨리빨리빨리빨리빨리...!"
지금 준비된 요소들은 조악하기 짝이 없었다. 술자는 당장이라도 말라죽을 것처럼 조급하게 혼잣말을 해댔고, 사이사이에는 주문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소리도 섞여 있었다. 상징물이라고는 땅에 그려놓은 그림들이 전부였다. 이마저도 공방이 오가는 와중에 지워지거나 망가진 것들이 많았다. 어찌 됐든 술자와 신앙심과 상징물이 있으니까 필요한 건 다 모였다. 포갰던 양손 사이에서 익숙한 감각이 느껴지자 마루는 주저하지 않고 왼손을 내질렀다.
거인이 팔다리와 몸통을 만들어낼때 여러 갈래의 불꽃이 서로를 엮어댔던 게 힌트가 됐다. 마루가 쏜 불꽃은 단단하게 엮여 있는 공의 형태였다. 불덩이가 거인의 머리와 부딪쳐 터지자 마루는 강렬한 손맛을 느꼈다. 저걸 사람이 맞았다면 코가 깨졌을지도 모른다. 폭발의 섬광이 걷히고 드러난 몰골은 마루에게 은근한 만족감을 줬다. 거인은 머리의 절반 윗부분이 박살난 채 뒤로 넘어져 있었다. 좀 더 진짜 사람과 비슷했다면 굉장히 역겨운 기분이 들었을 테지만 불꽃으로만 이루어져 있어서 그런 기분은 들지 않았다.
마루가 위, 거인이 아래. 큰 쪽은 넘어져 있고, 작은 쪽이 서서 내려다보고 있는 기묘한 구도가 됐다. 윗쪽에 서 있는 입장이 되자 마루는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머리까지 박살났는데 많이 아프진 않을까? 내가 무서울까? 스스로 생각해도 참 신기하게도 동정심이 생겼다. 물론 생각이 좀 더 이어지자 동정심이 싹 가셨다. 마루는 폭발에 날아가 뒹굴고, 놈이 뿜어내는 뜨거운 열기가 떠올랐다. 열이 단단히 오른 머리가 찬 공기와 닿으면서 지끈거렸다. 오른손에 있던 불꽃이 더 단단하게 뭉쳐졌다. 뜨겁지는 않겠지만, 엄청 단단할 것이다.
한번 더 묵직하게 터지는 소리가 나자 숲에서 불꽃이 완전히 사라졌다. 거인은 머리통이 날아가는 동시에 온몸이 사그라들었다. 새까맣게 탄 가지와 잿가루가 사지 모양으로 퍼져 있는 게 사람의 뼈가 연상됐다. 이건 묘한 혐오감이 들었다. 마루가 뻐근한 손목을 풀면서 주위를 둘러보자 땅의 그림들 대부분이 지워지고 망가져버렸다. 이것들 덕분에 무사히 몸도 지켰는데, 며칠 동안 신경써서 그렸는데 도로아미타불이 되어버리자 짜증이 밀려왔다.
분이 가라앉자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손등으로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아낸 마루는 이제 뭘 해야 할지 생각했다. 온몸을 지치게 만드는 열을 식히고, 나뒹굴고 있는 돗자리랑 책도 주워야 한다. 놈은 완전히 사라졌지만 혹시 모르니까 불씨도 찾아내서 꺼야 하나.
머리가 띵 아파오자 마루는 눈을 질끈 감고는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더 해야 할 일은 있고, 몸은 지쳤고.
다시 불이 피어오르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거인이 쓰러졌던 그 흔적에서 불길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잠깐 사이에 머리를 제외한 온몸이 다시 생겨난 거인은 상체를 일으켰다. 팔다리의 근육이 긴장으로 수축되는 찰나에 마루는 황금빛을 보았다. 거인의 머리는 찬란한 황금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빛깔만 보면 꽤 예쁘긴 하다만 지금 그런 감상이 느껴질 리는 없었고, 무엇보다도 마루는 화려함에 매료되지 않았는데, 그는 저 불빛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곧이어 마루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거인은 여유롭게 다시 일어났다. 이 조그만한 어린애한테 겪은 굴욕을 갚아주겠다는 듯이 오른주먹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팽창했다. 맹렬한 열기가 얼굴을 따갑게 했지만, 마루는 백치와 같은 눈으로 멍하니 황금빛을 바라볼 뿐이었다. 자신의 몸집만큼이나 큰 불덩이가 코앞까지 와서야 마루는 정신을 차렸다. 왜 지금까지 멍하니 있었는지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마루는 목숨의 경각을 느끼면서 지금까지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수증기를 끌어모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얇디 얇은 물의 막은 거대한 불주먹과 만나면서 터졌다.
한참을 구르다가 나무에 부딪친 마루는 열기 때문에 숨도 제대로 못 쉬면서 엄청나게 뜨거워진 온몸을 털어댔다. 그리고 남은 건 낙담뿐이었다. 자신은 지쳤고, 저 망할 불덩이는 머리를 날려버려서 끝난 줄 알았는데 멀쩡하게 다시 나타났다. 상징물 역할을 해주던 그림들도 다 망가져서 주술도 못 쓸 텐데. 또다시 황금빛이 두 눈에 스며들었다. 보면 안된다는 본능적인 기억이 떠오를 때였다.
"저게 뭐야, 마루야!"
"누가 날 부르네...?"
목소리다. 거인이 말을 한 건가? 지금 같은 상황에 마루의 이름도 모를 터인 거인이 할 말은 아닐 텐데. 당연히 저건 거인의 목소리가 아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마루는 정신이 들었다. 고개를 돌리자 저 멀찍이서 뛰어오고 있는 레이무가 보였다. 거인도 레이무의 목소리를 듣고는 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인은 팔을 휘둘러 레이무를 가로막는 불의 울타리를 세우고는, 마루에게 더욱 더 가까이 붙었다. 마루는 열기 때문에 괴로워하면서 얼굴을 가렸다.
마루와 레이무 모두 아차 싶었다. 울타리는 장애물이라기보다는 의사표현이었다. 가까이 오지 말 것, 그 외에도 허튼짓 하지 말 것. 안 그러면 마루를 해치겠다는 의사가 느껴졌다. 순식간에 인질극이 벌어지자, 레이무는 왼손에 들고 있는 물건을 슬쩍 내려다봤다. 그리고 아주 미묘한 눈짓을 했다. 다행스럽게도 마루는 인질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거인의 시선이 레이무에게 집중되어 있어서 레이무의 눈짓 전달은 애매할 수밖에 없었다. 인질범의 의심이 점점 커져가고, 고착 상태가 깨지기 직전 레이무는 정확한 전달에 성공했다.
'머리 위, 위.'
'위라고요?'
찰나의 순간은 참 재미있는 시간이다. 이렇게 짧은 순간 안에 수많은 일들이 동시에 일어날 수 있으니까. 거인의 시선은 마루에게 돌아갔고, 레이무는 조그만한 아공혈을 열고는 왼손에 있던 물건을 던졌다. 마루는 시선이 분산된 사이 만들어뒀던 물방울을 거인의 상체에 쳐박아 날려보냈다. 그리고 뜨거운 증기 속에서 숨을 헐떡이면서 위를 올려다봤다.
머리 위에 열린 아공혈에서 떨어진 무언가가 마루의 손에 잡혔다. 마리사와 레이무가 만들고 손봤던 나무패 부적이었다. 처음 보는 물건을 갑자기 넘겨받았으니 마루가 혼란해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지만, 문양들을 보고는 이게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눈치챘다. 책은 겉멋으로 읽은 게 아니었다.
곧바로 마루가 오른손에서 피워낸 불꽃은 조금 색다른 모양새였다. 불꽃으로 만들어진 네 개의 밧줄이 그의 손에서 뻗어나와 거인의 왼팔을 휘감았다. 현장으로 뛰어온 레이무는 마루의 주술을 보고 놀라워할 틈도 없이 참신하면서도 충격적인 모습을 목격하게 됐다.
그대로 있는 힘껏 잡아당기자 거인의 어깨가 뚝 하고 떨어졌다. 마루의 손에 들어온 거인의 왼팔은 불로 만들어진 고무 둔기 느낌이었다. 마루는 그걸 양손에 쥐고는 거인의 머리를 후려갈겨버렸다. 충격이 컸는지 거인은 뒤로 엎어져버렸다.
또 다시 마루가 서 있고, 거인이 누워 있는 구도가 되나 싶었지만 그 이상이었다. 마루는 장작을 패듯이 팔로 거인의 상체를 내리쳤다. 손에 든 불꽃 둔기만큼이나 마루는 맹렬했다. 저항도 못한 채 3번이나 도끼질을 당한 거인은 또다시 박살이 나면서 사그라들었다.
"마루, 잠깐만 있어봐."
마루는 의심 그 자체가 담긴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레이무 또한 뭔가를 눈치채고는 거인이 박살났던 그 자리를 살펴봤다. 그러고는 날벌레 내쫓듯이 손을 저었다.
희멀건 것들이 땅 속에서 튀어나왔다. 척 봐도 유령이었다. 못 볼 거라도 본 것마냥 유령들은 부리나케 달아났다. 어디로 날아갔나 했더니 근처에 있던 커다란 나무 위였다.
"안돼! 여기로 오지 마! 들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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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무와 마리사 모두 마루의 행동에 신선한 놀라움을 느꼈다. 마루는 이 모든 일의 범인을 붙잡아 불의 밧줄로 묶어버리고는 직접 신사로 끌고 왔다. 그 모습을 본 레이무는 맹수를 상대로 온몸으로 사투를 벌인 사냥꾼이 떠올랐다.
사냥의 결과물은 곤충의 것과 비슷한 날개가 달려 있었고, 기묘하게 생긴 횃불을 가지고 있었으며, 체격은 마루와 비슷했다. 심지어는 말도 할 줄 알았다. 요정이었다. '클라운피스'는 두들겨맞은 곳이 아직도 아픈지 몸 여기저기를 주무르면서 불평을 늘어놓았다.
"장난 좀 친 건데 그렇게 때리고 묶는 게 어딨어!"
"욘석아, 장난에도 정도가 있지. 당하는 사람은 타죽을 뻔했다면서?"
마리사는 가볍게 반박해주고는 피스의 정수리를 쥐어박았다. 마루는 피스의 투정은 듣는 둥 마는 둥, 달아오른 머리를 물수건으로 식히면서 누워 있었다.
'자신의 횃불과 유령들을 이용해서 만든 커다란 불덩이 인형을 조종해서 저 인간 어린애를 골려준다'는 게 원래 피스의 계획이었다고 한다. 마루의 저항이 하도 심해서 좀 더 세게 나갔다고 하는데. 조금 센 게 광기의 횃불로 정신을 홀리고, '조금 센' 열기로 골려주는 거라니. 요정은 죽음이라는 관념이 정말 하나도 없는 걸까?
"방금 꺼는 2 대 1이었으니까 다시 해! 정정당당하게!"
"...그게 2대 1이었어?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너는 정정당당했어?"
마루는 하도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처음으로 피스의 말을 받아쳤다. 피스는 정정당당함에 대한 논리를 늘어놓다가 이마를 붙잡고 아파했다.
"으으, 아파라..."
"엄청 능숙해졌네. 네가 실전으로 훈련시켜줘서 그런가 봐?"
레이무는 누워 있는 상태에서 피스의 이마를 적중시키는 솜씨에 감탄했다. 마루는 귤만한 크기의 불덩이를 한번 더 던지려다가 도로 꺼뜨렸다. 마루는 더 이상 피스와 다투는 거고 뭐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몸이 너무 뜨거워져서 무기력한데, 왠 괴물딱지한테 불타 죽을 뻔한 사람한테 장난이었다느니 하는 투정까지 받아주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지금은 그냥 이대로 편하게 쉬고 싶었다. 오늘은 할 만큼 했으니까 나머지는 나중으로 미뤄도 괜찮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