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전 주인의 여동생인 코메이지 코이시는 종잡을 데가 없는 소녀이지만, 설마 자신의 손을 끌고 저택 밖으로 나가버릴 줄은 흰둥이는 꿈에도 상상 못했다.
「코이시님. 어딜 가는 거예요?」
「산책이야. 산책.」
기억은 돌아올 낌새를 보이지 않고, 애완동물생활에 익숙해져가는 이때에 갑작스레 맞이한 저택 밖의 광경은 희둥이에겐 무척이나 생소하면서도 두려운 것이었다. 동료 애완동물들에게 듣기로는 무시무시한 요괴들이 득실거린다던데. 하지만, 그런 것치곤 주인의 여동생은 아무렇지도 않은양 그저 즐거워 보인다.
어째서 자신을 밖으로 데리고 나간 것인지 모르지만, 즐거워 보이는 얼굴에 차마 뿌리치지 못한 흰둥이는 일단, 코이시에게 어울려 주기로 하고 정처없이 끌러다니면서 주변을 구경했다.
저택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지저마을에 처음 발을 딛으면서 흰둥이는 얼마 안가 위화감을 느끼게 되었다. 거리를 오가는 수많은 요괴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깨달지 못하는 것이다. 단순히 관심이 없는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까부터 몇 번인가 부딪쳤는데도(코이시가) 알아채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도 이상했다.
이쪽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어.
마치, 투명인간이라도 된듯한 기분이었다. 지저의 요괴들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신경하다면 모를까. 정면에서 부딪쳤는데도 주변을 두리번거릴 뿐. 바로 앞에 있는 코이시를 무시한다는 건 이쪽이 보이지 않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저.. 코이시님. 뭐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응. 뭐야뭐야?」
「저 요괴들 눈에 우리들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건..」
「에헤헤. 글쎄? 잘은 모르지만, 내가 무의식적으로 행동할 때, 잘 못 보는 것 같아.」
남의 일인 양 설명하는 코이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해 맞은 편에서 오는 행인과 부딪혀 뒤로 툭 밀려났다. 주변이 없어도 너무 없다. 갑자기 자신을 끌고 나온 것도 마을을 휘젖고 다니는 것도, 전부 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행해지는 것 같았다.
이런 목적없는 산책을 언제까지 이어가야 할지, 희둥이는 조금 지친 기색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까보다 확연히 좁아진 도로. 그 위로 붉은 등이 달린 줄들이 거물을 사이에 놓고 난잡하게 얽혀 있고, 가게로 보이는 문 앞에는 고혹적인 몸을 얇은 천 조각으로 가리고 있을 뿐인 미모의 여성이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흰둥이는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코이시님! 이런 데는 애가 올만한 곳이 아니에요.」
아직 어린 소녀로만 보이는 코이시님의 정서상 매우 좋지 못한 거리라는 것은 틀림없다. 흰둥이는 다급히 코이시의 팔을 끌어 당겨 그녀를 자신의 팔로 감싸고 남은 손으로 눈을 가렸다.
「빨리 나가도록 해요.」
「뭐하는 거야? 안 보여!」
발버둥치는 코이시를 억지로 붙들며 흰둥이는 이 교육상 영 좋지 않은 거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하지만,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대체 여긴 얼마나 많은 업소들이 밀집해 있는 거야.
그나마 다행인 것은 코이시의 힘으로 둘의 모습이 호객을 일삼는 여자들의 눈에 포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덕분에 붙들리는 일 없이 홍등가를 가로질러 가고 있지만
「안 보인다고 했잖아!」
그만 짜증을 낸 코이시가 흰둥이의 손을 뿌리치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혼자 남게 된 흰둥이는 눈앞에서 사라진 코이시의 모습을 쫒았지만, 어디로 갔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말 그대로 사라져버렸으니 말이다.
무의식의 힘으로 인지할 수 없게 된 코이시를 찾을 방도는 없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어머나! 귀여운 멍멍이가 여긴 어쩐 일이니?」
「어머, 아라. 이런 곳에 어울리지 않는 도련님이 있네에~.」
코이시의 힘의 영향에서 벗어난 흰둥이는 그대로 홍등가 한 복판에서 노출되어 버린 것이다. 가게 앞을 지키고 있는 수많은 업소 관계자들에게 포착되어 버린 흰둥이는 어쩔 줄 몰라 허둥댔다. 먹이를 노리는 듯한 수많은 시선에 위축되어 버린 흰둥이는 그야말로 가여운 초식동물.
「저.. 저기. 실수로 들어온 건데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항변하지만, 그녀들에게는 귀엽게만 들릴 뿐이다. 간만에 찾아온 순진한 초식동물을 육식동물인 그녀들이 가만히 놔둘 리가 없잖은가.
「우후훗. 순진한 애네. 요즘에도 이런 애가 있다니, 별일이야.」
「그러게. 꼭 호기심에 발을 들인 동정 같아!」
꺄르륵 웃으면서 점차 거리를 좁혀오는 그녀들은 이윽고, 흰둥이를 중심으로 원을 이루고 있었다. 위기에 봉착한 흰둥이는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저 그냥.. 가면 안 될까요? 찾아야 할 사람이 있어서.」
「안 돼!」
「여기까지 왔으면서 그냥 가려고?」
「누나들이랑 놀다가지 그래?」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해보지만, 홍등가의 터줏대감인 그녀들은 윤허하지 않는다. 이 순진한 멍멍이를 자신의 색으로 물들이고 싶다. 엉망진창으로 범하고 싶다. 남자로 만들어주고 싶다. 등등, 그녀들의 얼굴엔 불순한 의도가 가득한 음흉한 미소가 서려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그녀들에게 범해질지도 모른다. 더 이상 순수했던 자신이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
흰둥이는 이제 곧 닥칠 미래를 떠올리며 절망감에 휩싸였다.
누군가.. 누군가 도와줘!
그 간절한 바람이 통했을까.
의외의 인물이 흰둥이를 구원했다.
「어? 쟈 혹시 소우지 아니가?」
높은 음역대의 남성 목소리가 먹이를 노리는 포식동물들을 좌우로 갈라지게 한다. 그리고 사이를 걸어오는 한 오니남성.
「와 이런데 있노? 아.. 혹시 내 만나려고 온기가?!」
호남상의 얼굴에 기골이 장대한 그 모습은 그야말로 오니 그 자체. 어딜 봐도 무서운 오니이지만, 자신의 마음에 든 남자에 한해 상냥해지는 그는 텐바쿠였다. 검은 색의 쫄쫄이 팬티 한 장만 걸치고 자신의 육체미를 유감없이 뽐내는 그는 흰둥이를 보자마자 의아해 하면서도 반가운 기색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반가워하는 그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흰둥이의 얼굴은 점차 공포로 사색이 되어갔다. 텐바쿠가 실은 매우 친절한 동네 형같은 오니라는 것은 흰둥이가 되기 전에 알던 사실이지, 지금의 그에겐 그저 무섭게 보일 따름이다. 그야말로 설화에나 나올법한 오니의 외견이었으니까. 무엇보다 어째서 팬티 한 장만 걸치고 있는 것인지, 그 쪽이 더 무서웠다.
「으응? 와 이리 떨어샀노. 전에 같이 정답게 술 마셨던 텐바쿠다.」
「죄송합니다! 사.. 살려주세요!!」
자신을 보며 목숨 구걸을 하는 용태가 어딘지 이상한 텐바쿠는 고개를 갸웃 하더니 손을 휘휘 저어 주변을 둘러싼 여자들을 물렸다. 그리고 벌벌 떠는 흰둥이의 양 어깨에 손을 얹고 걱정스런 투로 물었다.
「뭔 일 있어나? 도와줄 낀게, 함 말해 봐봐라.」
「그... 그게..」
그의 친절함이 통했는지, 흰둥이는 경계심을 조금 누그러뜨렸다. 눈앞의 오니는 무섭게 생기긴 했지만, 그리 나쁜 요괴는 아닌 것 같았다. 어쩌면 자신의 얘기를 들어줄 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흰둥이는 입을 열고 자초지종을 말했다.
「.. 코이시님이랑 떨어져서 혼자가 되는 바람에.」
「흠.. 그렇게 된 기가..」
처음 주인에게 주워진 것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전부 털어놓은 흰둥이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텐바쿠는 '음음'하고 이해했다는 얼굴도 고개를 연신 끄덕이더니 연민의 눈으로 흰둥이를 바라봤다.
「거 힘들었겠네. 그래도 인자 개안타. 내가 다 알아서 해주꾸마!」
자신있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 흰둥이는 혹시나 하고 물었다.
「저기.. 그쪽 혹시, 저 알고 있어요?」
흰둥이가 그렇게 추측하는 것도 당연했다. 처음 봤을 터인 자신을 마치, 친구처럼 대해온 것이 그 이유였다. 지금의 자신은 그와 함께 술을 마신 기억이 없다. 분명 기억을 잃기 전의 지인일 것이다.
진지하게 물어오는 흰둥이에게 텐바쿠는 피식, 싱겁게 웃으면서 말했다.
「하믄! 내가 점찍어 놓은 남자인데, 모를 리가 있나!」
「점찍어 놓은..」
「마. 이런 곳에서 빈둥빈둥 서있으면 저 문디 가시나들에게 잡아 먹히뿐다. 일단, 내 가게로 가자!」
무언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어딘지 모르게 꺼림칙했지만, 달리 다른 방도가 없는 흰둥이는 하는 수없이 그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그건 그렇고, 점찍어 놓은 남자라니.
설마, 기억을 잃기 전의 내가 저 오니와 그렇고 그런 사이는 아니겠지.
몹쓸 상상에 흰둥이는 본능적으로 텐바쿠와 거리를 벌렸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거리를 좁혀오는 텐바쿠가 있었다.
이거 설마, 뱀을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건 아니겠지? 아니, 오니를 만난 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