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히, 말씀드리고픈 것이 있습니다. 사토리 요괴와 칠흑간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사토리 요괴에게 있어서 암흑이란, 여타 인간들이나 요괴들이 가질법한 감정과는 크나큰 차이가 있으니까요. 우선 대화를 나눠보고 싶군요. 생각을 들을 수 있을까요?
……생각을 듣고싶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전적 의미에서의 내용을 토론하자는 게 아닙니다. 그건 답습에 불과하니까요. ……그렇지만 어쩔 수 없으려나요. 보통 암흑이란 한 단어만을 말했을 때, 경험이나 무의식적인 단어의 반복만을 할 뿐이긴 할테니깐요. 그렇다면 제가 어떤 답을 원하는 지 일단은 잠시 알려드리겠습니다.
제가 이야기하고싶은 것은, 실재하기에 저희들을 엄습하고, 없던 질량조차도 창조해내어 형태없는 저희들의 자의식을 짓누르는 대신, 무엇이든 될 기회를 주는 전능한 어둠에 관한 관념입니다. 이렇게 말하니 무슨 미신을 믿는 광신도의 찬양같이 들리겠지만, 저에게 어둠이란 진실로 그렇습니다. 단지 의사만 없을 뿐이지 신과 비슷합니다. 그것을 등진 저는 그 누구이든지 될 수 있습니다.
존재의 자의식을 이루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육체와 기억과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도 육체가 제일이라고 봅니다. 존재하는 육체로 경험하기에 기억과 관계의 축적이 성립된다고 보기 때문이죠. 육체없는 유령은 그다지 뜬구름잡는 소리만을 하니 아마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어라? 뜬금없이 왜 이런 소리를 하는지 궁금하다뇨. 왜겠나요. 어둠과 이것들의 관계에서 제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은 주제가 있기 때문이죠.
눈으로 구별되지 않는 암흑에서 육체는 의미를 소실합니다. 그렇다면 존재의 자의식은 그것을 담아두는 껍질을 잃는 셈입니다. 인간들이 어둠속에 갇히고나서 미쳐가는 이유가 전 그것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본능적으로 가두어놓았던 자의식의 심연 속 괴물들이, 껍질을 잃은 자의식 안에서 잉태하며 그나마의 형체가 유지되고 있던 의식마저 집어삼켜버릴테니까 말이죠.
사실 미치지만 않는다면, 그건 타인이 될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특히 저에게는 더더욱. …왜냐고요? 음, 하나 질문을 하죠. 자의식의 심연 속 괴물들이란 무엇일까요? 트라우마나, 악몽 등에서 비롯된 탓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표할 그런 잔존물들이겠죠. 기억하고 싶지는 않지만 뇌리에 남아, 가끔씩 떠올릴 때마다 자신을 괴롭히는 무구들이겠지요. 육체라는 껍질이 있을때마저도 치를 떨게 만들 그런 것들. 두려워하고 있기에 다른 그 어떤 기억들보다도 확연한 윤곽을 가진 괴물들. 그러니까- 육체를 소실하였을 때 기억과 관계로 맺어져있던 자의식을 한없이 망가트릴 것들...
그 어떤것보다 확연한 윤곽이라면, 그것은 형태를 가진 것. 그렇기에 육체를 잃어버렸을 때 그 육체의 대체제가 될 것. 사람들은 그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겁니다. 그래서 미쳐버리는 겁니다. 소실된 육체가,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던 것의 윤곽으로 변해버릴까봐.
하지만 타인이 되는 겁니다! 육체라는 감옥을 벗어나,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겁니다! 그것이 자신이 두려워하던 존재이기에 대부분은 미쳐버리는 것이지만, 그것만 극복할 수 있다면! 당신은, 당신이 두려워하던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겁니다!
어떤가요? 행복한 이야기이지 않나요? 두려워하던 존재가 되기에 그것에서 비롯되던 압박이라는 감옥을 깨트려낼 수 있다니. 생각만해도 황홀하지 않나요?
어라? 또 이야기가 샜었나요. 흠, 불만이 많으시군요. 그래서 저와 암흑의 관계가 무어냐니. 대놓고 하는 질문은 나쁘지는 않지만 다소 대화의 흥을 떨어트린답니다. 그렇게 자신의 생각에만 열중하고 계시니 제가 얘기하고픈 것의 중점조차 모르면서.
안다고요? 그래요. 뭐, 그렇다면야. 말하죠.
"사토리 요괴가 자신을 확신할 수 없는 존재에게 느끼는 감정은 도대체 어떨지 감이 오십니까? 그건, 거울입니다. 수없이 마주놓인 거울입니다. 인간의 자의식을 담당하는 부분에서 육체라는 인식이 결여되었을 때, 남은 기억과 관계의 부분을 사토리 요괴는 공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지의 공포에 사로잡혀 자의식을 잃은, 경계가 허물어진 존재가 바로 저로 되는 겁니다. 경계가 허물어져 있으니까. 그래서 저는 남들이 공포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겁니다. 주위에 몇이 있든! 누가 있든!"
사토리는 단언한다.
"그 때 저는 신조차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소유할 수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그런 끝없는 권능을 얻습니다. 저는 절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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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끄적여봤습니다...
사토리는 미치지 않은 게 기적일 거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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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라뇨... 그렇다기엔 너무 급조해서 만든 글이라 | 18.10.17 14: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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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 속에서 일어나는 감각의 무력화, 그렇게 생겨난 미지에 갇힌 인간이 겪는 공포의 해석, 그리고 그 극복책까지... 너무나 짜임새 있게 구성된 하나의 멋진 철학적 사유인걸요! 정말 다시 봐도 굉장해요! 이런거 종종 써 주시면 저는 정말로 좋을 것 같아요! | 18.10.17 19:4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