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팍을 꿰뚤린 넝쿨무사는 한동안 가만히 서있었다. 검을 들고 달려오던 그 모습 그대로.
"하...하하..."
넝쿨 무사가 가볍게 웃었다. 손에 들린 검이 천천히 땅으로 떨어졌다. 몸을 휘감고 있던 넝쿨들은 말라비틀어져 가루가 되어 우수수 무너져 내렸다. 머지않아 넝쿨 무사의 몸이 화르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건가...결국은 그 배신자의 곁으로 돌아가야 하는것인가..."
"배신자...? 아까부터 전혀 알 수 없는 말만 골라서 하고 있지 않아?"
나의 질문에 넝쿨 무사는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곳은 그녀의 기억과, 나의 원념이 뭉쳐진 장소. 수천년이 지나도록 응어리진 원한이 만들어낸 허상...스와코. 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알고있는지..."
넝쿨 무사의 몸이 화르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불타는 몸이 서서히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기다려! 좀 더 자세한 말이 필요해! 조금만 더...!"
"아니. 늦었다. 이제 알고싶어도. 그녀가 모든 기억을 되찾은 후에야 대답을 들을 수 있을터...하지만 그 대답을 듣고 난 후에는 수많은 피를 흘릴 각오를 해야할 것이다..."
넝쿨 무사는 말을 마치고 두 눈을 감았다. 불길이 요란하게 치솟더니 언제 그랬냐는듯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넝쿨 무사가 있던 장소에는 온전히 비어있는 갑옷만이 남아있었다.
"왜...이놈들은 알 수 없는 말만 하는거야! 젠장! 좀 직설적으로 말하면 어디가 덧나냐고!"
레이무가 성질을 부리며 땅을 발끝으로 툭툭 걷어찼다.
"레이무. 저 무사가 있던 장소좀 봐"
레이무가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장소를 바라보았다. 갑옷의 사이에 무언가 반짝이는것이 자리하고 있었다. 레이무와 나는 갑옷을 뒤적거려보았다.
"이건..."
"스와코의 기억 파편이네. 근데 평소보다 조금 더 크지 않아?"
"어쩌면 그만큼 큰 파편이었기에, 자아를 가지고 활동했던걸지도 모르겠네"
레이무가 약간 큰 파편을 손에 들고 말했다.
"그 무사가 했던 말. 신경쓰이네..."
"수많은 피를 흘릴 각오...인가..."
레이무는 딱딱한 표정으로 파편을 바라보았다. 파편은 녹색빛으로 일렁이며 신비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괜찮아. 그때가 되면 또 다시 우리가 해결할 문제잖아? 이보다 더한 일도 수도 없이 헤쳐나아갔고"
레이무가 스쿨백 안에 들어있던 자그마한 유리 용기를 꺼내어 파편을 그 안에 집어넣었다. 파편은 바닥에 닿지 않고 용기의 한 가운데 둥둥 떠서 중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일단 큰 일중 하나는 일단락 됬으니까 우리도 좀 쉬자. 그건 그렇고 배고프지 않아? 피곤하기도 하고. 내가 잘 아는 카페가 있는데 말이지?"
"카페는 지루한데...여자애들이 우글우글한 장소잖아"
레이무가 나의 말에 조금은 당황한듯한 기색을 보였다.
"어? 아...그랬지. 넌 원래 남자애였으니까"
"그렇지. 그래도 네가 원한다면...갈까?"
"좋지! 난 화이트 초콜렛 모카!"
레이무가 금방 신이나서 말했다.
"어? 내가 사는거야?"
"물론이지! 난 늘 가난하다고. 혼자서 신사를 돌보는 일이 얼마나 큰 일인지 너도 잘 알잖아?"
"그...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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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레이무는 밤이 되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약간 걸어서 위치한 우리 집.
나는 방 안에 들어와 불을 켰다. 낡은 전등이 틱틱대며 전기를 흘렸고, 이윽고 방은 순식간에 밝아졌다. 집 안은 조용했다. 엄마는 벌써부터 방에 들어가 자고 있나보다.
나는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11시가 다 되가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까지 돌아다녀도 순찰에 안 걸린게 신기할 정도네'
나는 속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옷을 갈아입을때 거울을 보는것이 익숙하게 되었다. 고등학생 치고는 약간 작은 체구, 등을 덮을듯 복슬복슬한 금빛 곱슬머리, 밤에도 밝게 빛날듯한 노란 눈동자, 약간 봉긋한 가슴, 새하얀 살결.
'너무나도 이 몸에 익숙해져 있었어...'
사람의 감각이란 이토록 간사하다. 이젠 원래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잊어버릴 정도다.
'앞으로 3개월 정도만 더 버티면 될거야...조금만 더...'
가슴 한켠이 답답해진 나는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지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음의 낮은 목소리가 아닌 가늘고 얇은 한숨이 새어나온다.
'어쩌면 나는 내가 아니게 된걸까?'
갑자기 뭉클한 생각이 들었다. 여자의 모습으로 지내다보니 이 모습에 익숙해져서 내 자신을 잊어버린것은 아닌가 하고.
나는 키 150이 약간 넘어가는 여자애가 쓰기엔 너무나도 넓은 침대 위에서 발을 버둥거리거나, 몸을 배배 꼬거나, 매트리스에 온 몸을 비벼보거나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런 저런 감각이 느껴진다.
매트리스 모서리에 다리가 쓸리며 느껴지는 화끈함, 발을 버둥거리면서 공기가 발을 스치는 것이 느껴졌고, 몸을 배배꼬면서 온 몸에 경직됬던 근육이 차차 풀리는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확신이 들었다.
이렇게 감각을 느끼고, 천장을 보고있고, 숨을 쉬고 있으니까 모습이 변해도 나는 나라는 사실을.
'남자건 여자건...별 상관 없으려나?'
나는 조금은 가뿐해진 마음으로 몸을 일으키고 창문 너머 도심을 바라보았다. 도심의 야경이 밤 하늘의 별빛보다 밝게 눈 앞에 아른거리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땅에다 별 모양 탄막을 흩뿌린것같은 느낌이 들어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런거로 애먹을 필요는 없어. 여자가 됬건 남자가 됬건 나는 그냥 나 대로 지내면 되는걸테고, 앨리스가 몸을 만들어주면...그래서 원래의 나로 돌아가면..."
다시 앨리스와 레이무와는 이별일까?
이 1년간의 모든 일이 꿈이었던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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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에가 남기고 간 결계의 안에는 낡은 신사가 자리하고 있다.
카나코는 마루에서 나와 경내를 천천히 거닐었다. 낮선 느낌이 드는 장소를 보고 그곳에 손을 대어보았다. 결계 안에 새겨진 작은 기억 하나하나가 모여 하나의 작은 사념체를 만들어내었다.
작은 뱀처럼 생긴 사념체는 카나코의 손 위에 올라와 있었다.
"...그렇게 된거로구나."
뱀모양 사념체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카나코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웠겠지. 자신의 삶을 부정하고, 누군가에게 간절히 의지하고 싶을 정도로"
사념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내가 구해주겠다. 너와, 너의 잘못된 생각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카나코의 손 위의 사념체가 서서히 부숴져갔다.
"이제라도 잘못을 뉘우치니 다행이구나. 사나에. 우리는 네 덕분에 다시 한번 누군가에게 기억 될 수 있게 되었다. 그 은혜를 값는다고 생각하려무나"
"...감사합니다..."
사념체는 부숴져가기 직전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하늘로 사라져가는 사념체를 바라보며 카나코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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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스토리가 진전 될 기미가 없네요.
사실 큰 슬럼프에 빠진걸지도 모르겠네요.
이렇다할 내용은 없으니까요...
조금이라도 더 빨리 진도를 나가기 위해서 조금은 스토리를 생각해 둘 필요가 있을거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