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은 우중충한 주변답지 않게 깨끗한 감정을 묵히지 않고 내보내는 참신함을 지닌 이들이었다. 항상 짜증에 물들어 술이나 물처럼 삼켜대는 오니들에 비해선 그녀들이 지닌 악동성은 활기로마저 비쳐보일 지경이었다. 그녀들은 항상 서로끼리 치근덕대며 이야기를 하곤 했었는데, 그것은 오니들의 거창한 썰풀이나 허풍같은 종류가 아닌, 한 때 밝았거나 어두웠던 과거의 일편들이었다. 그녀들은 그런 과거의 고통이든 행복이든 무엇이든 나눠서 감정을 함께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머뭇거렸다. 허나 밤의 모닥불 앞이라는 감성적 환경은 그녀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어서, 한 때의 고통이나 혹은 지금까지 자신을 괴롭혀오는 상처였음에도 불구하고 풍류같이 느껴지게 만들어, 남에게 꽁꽁 숨기고 묵히고 있던 것마저도 말하게 되었다.
이야기가 한창인 밤중에 모닥불이 타는 소리는 희한하게도 쌀랑했다. 아직 태어난지 얼마 안 된 어수룩한 불이 바람에게 생명을 위협받아서일지도 모른다. 관리가 필요한 희미한 불꽃에 세이자는 피곤어린 표정으로 땔감을 보충하며 쌀랑함이란 배경 위에 그려지는 그녀들의 음표를 바라본다. 항상 바라보기만 한다. 그녀는 이야기를 하려 고개를 치켜드는 일이 없었다.
신묘마루는 기쁘다는 듯이 웃는다. 그녀는 이야기를 들으면 고통과 행복과 뭐든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오늘도 그렇다. 이야기를 나누면 항상 나오는 감성적인 사연이 돌출되니 그녀는 그 작디작은 손으로 이야기를 하는 녀석의 큼지막한 손을 꽉 움켜잡아 헐레벌떡 흔들어대며 허심탄회한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선 꼭 구해주겠다고, 다짐한다.
"반드시 구해줄게! 응! 그곳이 어디인지는 잘은 모르겠지만, 꼭 언니를 찾을 수 있을 거야!"
"…고마워요."
"이야기 끝났으면 얼른 자기나 해. 다음 불침번은 너니까."
괜히 감동을 받아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려는 이치린을 보며 세이자는 친히 분위기을 깨줬다. 신묘마루는 아직 이야기가 안 끝났다며 아우성이지만, '얼른 자.' 라는 세이자의 엄포같은 말에 뾰루퉁한 표정을 지으면서 투덜대다 눈을 감았다. 세이자는 구름이나 빛같은 건 보이지 않을 하늘이나 괜히 바라보며 짙은 숨을 내쉬었다. 주변은 더워서 입김따위는 나오지 않았지만 나오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 훈훈한 공간에서 자신만이 서릿빛을 머금고 있어서 그런 착각을 했다.
세이자는 이치린을 깨우지 않고 그저 모닥불 바라보기만을 계속해댔다. 가만히 있자니 아침은 밝았는데, 기온은 오히려 밤보다도 서늘했다. 지상은 이런 현상을 햇빛이 완전히 띄워지기 전의 변덕 탓이라고 일컫는다면, 지저는 그저 곯아떨어진 오니들이 활동을 멈췄기에 덩달아 기온까지도 식어버린 것이었다. 지저는 모든 일이 변덕처럼 발생하는 장소였다. 낮과 밤조차 일정치 않고, 천재지변을 일으키는 오니들의 뒤죽박죽한 돌발행동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세이자는 그런 지저가 싫었다. 모든 것에 긍정을 표하는 그 공주마저도 지저의 그런 점은 딱히 내키지 않아하는 듯했다. 이곳에서 나가고 싶다는 말을 수어 번 들었으니 그 점만은 확실할 거다.
"돌겠구만…."
아침에서 낮까지, 걷기만을 반복하던 세이자는 위엣 말을 돌연 읊었다. 매번 반복되는 이 길은 어딘가가 잘못되었음이 분명했다. 계속 걷고 있자니 환각에 빠진 듯한 망상까지 들 정도였다. 그런 이상을 느끼는 건 자신만이 아닌지, 주위도 지쳐있는 기색이 강했다. 물컹거리는 바닥에, 짚을 수도 없어 지지대 없는 걸음에는 이제 처짐밖에 없었다. 도중에 길잡이였던 나즈린이 걸음을 멈추자 모두도 이 때가 틈이다 싶은지 덜컥 멈추는 것을 택했다.
"다우징이 방향을 못 잡고 있어. 이상해."
"지금까지도 그랬으면서 새삼스럽게?"
"지금까지랑은 어딘가 달라. 도달은 했는데 방향이 계속 헛돌고 있어."
목적지에 도달을 했는데 헛돌고 있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인지. 도달하면 끝 아니던가 하고, 세이자는 눈을 찡그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아무런 특이점도 없는 이곳이 종착점이라는데, 누군가 봉인되어있다기엔 너무나도 황량한 장소였다. 나즈린은 계속해서 헛돌고있는 다우징을 친히 보여줬다. 그녀가 앞으로 향하니 다우징은 왼쪽을 향하고 뒤로 향하니 오른쪽을 향하고 왼쪽을 향하니 앞을 향하고 왼쪽을 향하니 뒤를 향하는 알 수 없는 구석의 움직임이 계속하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헛도는 것을 계속하는 것을 보아 그저 망가진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어느덧 멈춰선 다우징과 함께 주변 바닥이 물결마냥 일렁거리면서 밑으로 궁전이 잠시 드러났어서 모두의 이목을 앗아갔다. 그 중 한 명은 알아챈듯이 짝! 박수치며 외쳤다.
"이 공간 자체가 봉인이었네요! 아마도, 봉인이 풀려가면서 이 주위까지도 누에의 능력에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뭐야, 그게 말이 돼? 아니, 잠시만. 그러면 봉인은 어떻게 풀라고?"
"글…쎄요? 아까 전에 아래에 봉인 장소가 드러난 걸 보면 땅에 팔이라도 한 번 꽂아보시는 게…."
"그걸 말이라고 하냐?"
"한 번 해보기라도 해봐 세이자! 믿져야 본전이잖아!"
"네 일 아니라고 그렇게 멋대로 수락하는 거 아니다?"
"에이 아무튼 해봐!"
동경어린 신묘마루의 시선과 '이 중에 네가 적격이다'라는 무리의 시선이 무수히 꽂히자 세이자는 입술을 비죽거리면서 팔을 땅에 내리꽂았다. 물컹거리던 땅은 어느샌가 딱딱하게 굳어있어서 콰직! 하고, 이명이 들렸고, 당연히 세이자는 비명을 질렀다.
"야 이 미친 인간들아아악!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괘, 괜찮아 세이자?!"
"네 눈엔 이게 괜찮아 보이냐! 지금 기괴한 방향으로 꺾인 내 손가락들 안 보여?!"
계속해서 성질이 뒤바뀌는 기괴한 장소인 것을 깨달은 쇼는 천천히 바닥을 응시하면서 때를 기다린다. 무기한적인 대기는 그 수많은 성질 중 누에의 봉인장소라는 특이점이 나타날 때까지 계속됐다. 쇼는 다시 물결같이 일렁거리는 성질이 된 땅을 향해 세이자의 손을 잡고 몸을 내던졌다. 위에서 몸은 가라앉았으나 오히려 방향이 위로 솟구치는 이질감이 그녀들의 몸을 덮쳤다. 그래도 다행인 점이라면 위로 향하는 덕인지 수면이 보인다는 것이고, 나쁜 점이라면 이곳이 그런 형질조차도 금세 바뀔 장소라는 점이었다. 쇼는 그래서 수면이 보이자마자 세이자를 위를 향해 내던졌다. 땅에서 솟구쳐오른 세이자는 흙투성이가 된 몸을 굽히며 괴로운 기침을 내뱉었다. 따라나온 쇼를 향한 욕은 덤이었다.
"…콜록! 미친 놈…아!"
"죄송해요. 하지만 일행중에서 봉인을 풀 수 있는 건 당신밖에 없으니까…."
"이게, 죄송하단 말 하나로 끝날 정도냐…고! …콜록!"
이를 빠득거리던 세이자는 기침을 하다가도 주먹을 꽉 쥐어 쇼에게 외친다. 기도에 걸린 흙먼지가 완전히 걸러져 기침이 멎을 때까지 불평은 계속됐다. 주위는 그러는 동안에 형질이 뒤바뀌지 않는 특이함을 보였다. 쇼는 세이자의 불만을 들어주는 척하면서도 둘러보던 주위가 이제 완전히 안정되었음에 안도했다. 세이자는 그런 그녀를 보며 일말의 걱정조차 하지 않는 시답잖은 태도에 물림을 느꼈다. 하지만 억세게 쥔 주먹만을 부들거릴 뿐이고 세이자는 불평하지 않았다. 쇼는 위엄있게 펼쳐져있는 한 붉은 궁전의 정문을 향해서 걸으며 말했다.
"여기…일 거예요."
"……."
정문까지 굳이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궁전 앞에는 금줄로 뒤덮이다 못해 상자의 윤곽까지 갖추고 있는 한 정육면체가 있어서 세이자는 그곳으로 손을 내밀었다. 원래, 요괴라면 거부감에 거들떠보지도 못할 것이나 세이자에겐 무용지물의 무구들이었다. 세이자는 상처투성이인데도 아직 여린 그 손으로 수많은 금줄들을 풀어간다. 희고 밝은 그 금줄들이 풀리면서 아래에서 썩어가는 갈색 나무상자가 드러난다. 상자의 덮개 정중앙에는 마찬가지로 썩어가는 듯한 짙은 갈색의 화살이 꽂혀있다. 잔존하지도 않는 깃 부분이 그나마 화살이었다는 흔적을 남기는 용도였다. 수많은 봉인들의 집합점이나 다름 없을 터인 그 화살을 세이자는 머뭇거림 없이 잡고 뽑았다.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화살을 품에 집어넣은 그녀는 다시 이질감을 가지기 시작하는 공간을 휙 둘러보곤 쇼에게 다급히 외친다.
"야 상자 챙겨! 갖고 튀어와!"
"ㅇ, 예!"
쇼는 대답했으나 금줄투성이였던 상자가 내키지 않는지 쉽사리 다가가질 못했다. 답답함에 세이자는 그녀를 밀치며 다시 버럭했다.
"챙기라고! 봉인 다 풀었으니까!"
"…네!"
"빨리 와! 놓치면 죽여버릴 거니까! 잘 잡고 있어!"
무너지는 공간에서 그녀는 진을 펼쳤다. 쇼는 그것을 떨떠름하면서도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바라본다. 도대체 어떤 요괴가 아무런 부작용도 없이 요괴들을 봉인하는 주술들을 풀고, 또 퇴마에나 사용할 법한 주술을 사용한단 말인가.
궁전 비스무리했던 그 공간이 무너지는 것을 무덤덤히 바라보며 쇼는 숨조차 쉬는 것을 살짝 잊고있었다. 독립되었던 그녀들의 공간만이 원래의 장소로 돌아왔을 때 반기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쇼는 동료들의 품에 돌아온 것부터 감사해야할지언데, 그런 마음은 품고있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그녀의 마음속에는 협조적인 그녀들에 대한 의심부터 싹터있었다.
같은 목적을 공유한다는 것 이외에 자신들을 도울 이유는 전혀 없을 터인데, 그녀는 너무나도 협조적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