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소가 밀집된 곳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코우는 홀로 칼을 휘둘렸다. 오랫동안 반복해왔다는 것을 증명하듯 그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고, 몸에서 발산되는 열기에 전신에서 땀이 수증기처럼 솟아올랐다. 선선한 바람이 달아오른 그의 몸을 조금이나마 식힌다.
유기의 아우, 구마와의 첫 일전에서 애용하던 칼이 부러졌던 일로 줄곧 두 주먹에 의존해 왔던 코우가 다시금 칼을 휘두르게 된 것은 며칠 전 있었던 반 오니 연합의 텐구들과의 싸움 때문이었다. 그는 카라스텐구와의 격전에서 칼의 유용함을 깨달고, 지금은 예전처럼 이른 아침 마다 칼을 휘두르는 일과를 가지게 된 것이었다.
칼은 코우와 상성이 좋은 무구였다. 구마와 같은 강자에게 쉽게 부러지는 유약함을 지녔다곤 해도 그걸 상쇄하고도 남을 예리함이 있었다. 맨주먹과 비교하면 당연 칼을 든 편이 낫다는 것이다. 거기다 알아차리는 능력으로 상대의 기척을 쉽게 읽어낼 수 있으니, 구마 때처럼 더는 쉽게 부서질 일은 없다.
그래도 부셔진다면 그땐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 자책하면 그만이었다.
그런 이유로 다시 칼을 들고 기초적인 휘두르기 수행에 전념하고 있던 그에게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이익-! 이.. 이봐! 나... 나.. 날 좀 구해줘!!"
자신을 향해 도움을 요청하며 허겁지겁 달려오고 있는 인영은 반 오니 연합의 습격이 있던 날, 자신과 싸웠던 카라스텐구였다. 공포에 질려있는 그는 절박한 어조로 외쳤다.
"부탁이니까. 날 저 괴물로부터 지켜줘!! 나 너 검술 스승이잖아?"
두려운 기색으로 뒤를 힐끔 쳐다보는 그는 비록, 슈텐의 명이긴 했으나 그날 이후로 자신의 검을 가르키는 스승이기는 했다. 그런 그가 저토록 공포에 질려 구원을 바라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코우가 의아한 시선을 보내는 것도 잠시, 멀리서부터 지축을 울리는 쿵쾅 소리가 커져오고 있었다.
쿵쾅쿵쾅.
소리와 함께 땅의 흔들림도 커져간다.
무언가가 이리로 가까워질수록 카라스텐구의 안색은 창백해졌으며, 코우의 의문은 점차 확신으로 바뀌어갔다.
쿵쾅쿵쾅쿵쾅-!
드디 땅을 뒤흔들어 놓는 무언가의 정체가 그 모습을 드려냈다. '히익!'하고 카라스텐구가 새된 비명을 내뱉었고, 코우는 그것을 질렸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쿵쾅거리며 카라스텐구를 뒤 쫒아온 것은 7척에 가까운 거대한 키를 가진 오니 여성이었다. 거구의 그녀가 뛸 때마다 쿵쾅 소리를 내며 가벼운 지진이 인다. 단순히 뛸 때마다 굉음을 내며 땅이 흔들리는 것은 그녀가 키만 큰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옆으로도 앞뒤로도 넓어서 흡사 커다란 바위를 연상케 하는 그녀의 체구는 거구가 많은 오니들 중에서도 최상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너부데데하면서 고약한 인상은 뿔 달린 흉악한 두꺼비 괴인을 보는 듯하다. 움직일 때마다 땅이 흔들릴 정도의 과체중을 자랑하는 그녀가 그 커다랗고 두꺼운 입술을 열었다.
"까마귀남이 어딜 도망가고 지랄이노. 귀남 뒤로 숨지 말고 얌전히 내 밑에 깔려야 이기!"
고약한 인상에 걸맞게 추악한 욕망으로 물든 시선이 카라스텐구를 똑바로 직시했다. 카라스텐구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사색이었으며, 극심한 공포로 이미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코우의 옷자락을 붙들고 제발 저 괴물로부터 자신을 지켜달라며 애원했다. 코우는 작게 한숨을 뱉어내며 그와 두꺼비 괴인 사이를 막아섰다.
"아이 씨, 이제 그만 그 버릇 좀 고치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이 씨라니? 아이쨩이라고 불러라 이기! 그리고 귀남 주제에 와 까마귀남을 숨기고 지랄이노? 까마귀남의 야들야들 실잦 맛 좀 볼려는데 방해하지 말라노 이기야데스웅차!"
두꺼비 면상이 일그러졌다. 안 그래도 추한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지니 해양 생물인 아귀와 같아졌다. 코우는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피폐해지는 그녀에게 말했다.
"이 분은 한때 적이었긴 했지만, 지금은 제 검술 스승이기도 합니다. 아이 씨 맘대로 해도 좋을 요괴가 아니라고요."
"이기이기 곱상한 실잦 귀남이 대드는 거 보소. 귀녀대장부가 까마귀남 ㅁㅁ는다는데 질투하노? 오니 주제에 속 좁게 굴지 말고 차례를 기다리라노 이기!"
눈앞의 두꺼비 괴인은 제대로 된 대화가 성립되지 않는 존재였다. 무슨 말을 해도 자기 좋을 때로 곡해하여 알아듣는 통에 설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코우는 그녀의 자그마한 움직임에도 주의하며 주시했다.
자신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노려보는 흉악한 거체의 여자 오니는 당장이라도 거목 같은 팔을 휘둘려 올 것 같아 조마조마했다. 이윽고, 손이라기보다 족발에 가까운 뭉퉁한 주먹이 바람을 가르며 휘둘려졌다.
불시에 날아든 주먹은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빨랐다. 둔중해 보이는 것과 달리 빠르게 다가온 주먹에 코우는 피하지 못하고 양팔을 교차시켜 방어를 굳혔다. 그리고 그 직후, 그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양팔에 꽂힌 주먹의 충격으로 하늘 높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코우는 그대로 등부터 지면에 추락했다. 그것으로는 기세를 완전히 죽이지 못했는지 몇 번인가 땅에 튕겨져 나간 코우는 그 엎어진 상태로 침묵했다.
겉모습만큼이나 어마 무시한 힘이었다. 그 위력을 눈앞에서 목격한 카라스텐구는 저항의 의지가 꺾여 울먹이는 얼굴로 엉덩이를 끌었다. 그런 그의 팔을 두꺼비 괴인이 덥석 붙잡는다.
"한치 실↗이면서 도망쳤겠다? 좋다 이기. 벌로 나련 특제 요술 방망이로 ㅁㅁ 쑤컹쑤컹 허벌창 만들겠다노 이기. 까마귀처럼 앙앙 울라노!"
추잡한 욕정을 드려내는 두꺼비 괴인, 아야에게 무력하게 끌려가는 카라스텐구. 참담함 미래를 암시하는 그녀의 말에 그는 구원이 없는 현실에 깊은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이제 자신은 이 괴물 같은 여자에게 범해져 더 이상 지금의 자신으로 있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추잡한 욕망에 장난감처럼 다뤄지는 성노예.
날개 꺾인 까마귀는 더는 저 푸른 하늘을 날 수 없겠지.
눈물샘이 고장난 것처럼 그의 두 눈에서는 슬픔과 공포. 그리고 절망감에 찬 눈물이 하염없이 흘려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