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밝았다. 기습해온 반 오니 연합을 격퇴한 시각이 이미 여명에 가까웠던 관계로 대부분의 오니가 뜬 눈으로 날을 샌 것이다. 슈텐의 통찰력으로 밝혀진 자신의 능력 탓에 코우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서서히 떠오르는 아침 해의 빛이 코우의 전신을 비춘다. 그 맞은 편에서 역광을 받고 있는 코우를 흥미롭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오니 백귀야행의 두령은 입을 다시며 옆에 두었던 술병을 집어 들었다. 병나발을 불며, 꿀꺽꿀꺽 술을 몇 모금 들이 마신 그녀는 금세 비워버린 술병을 옆으로 집어 던졌다.
"내가 여태 본 능력 중에선 손에 꼽힐 만큼 재밌어."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녀는 분명, 코우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다종다양한 능력을 봐왔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능력을 손에 꼽힐 만큼 재밌다고 평했다. 아까 설명을 들어서 알지만, 코우도 자신의 능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상대방의 행동을 읽고, 위협에 대해 감지한다니. 싸우는 데 있어 이것만큼 적절한 능력이 얼마나 될까?
수수하지만, 흠 잡을 데 없이 실용적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불기분방의 대요괴라 불리는 슈텐도지에게 인정받은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칭찬을 들어 다소 들떠 있었던 코우의 가슴이 순간 불을 지핀 듯 뜨거워졌다. 여태 선배의 힘을 반절 밖에 부리지 못해 초조해 있었던 그에게 이보다 희소식은 없었다. 자신은 그 슈텐도 인정한 능력을 개화한 것이었다.
몸 속 깊은 곳부터 기쁨이. 희열이 끓어 오른다. 방심하면 눈시울을 붉힐 것 같은 감정의 격류에 코우의 전신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슈텐은 그런 코우의 반응이 너무 풋풋해서 무심결에 푸핫!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꼭 사창가에서 동정 땐 숫총각 같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풋풋함이 귀여워서 견딜 수 없었다. 저 놈, 얼굴도 반반하겠다. 이 참에 확, 안아버려? 검고 탁한 흑심이 스멀스멀 올라오려는 찰나.
"안 좋은 짓을 꾸미고 있는 듯한 얼굴인데?"
아깝게도 불청객이 난입하고 말았다.
슈텐은 불만스런 얼굴로 짧게 혀를 차며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끼어든 유기를 반개한 눈으로 노려봤다.
"능력을 개화한 기념으로 동정 졸업이라도 시켜 줄까 하고, 생각하던 중이었어."
흑심을 솔직하게 다 털어놓은 슈텐의 시선은 왜 왔냐고 반문하는 듯 했다. 유기는 그런 응큼한 짓을 저지르려 한 슈텐을 짜게 식은 눈으로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 답다고 해야 하나. 참 변함없이 저질이군."
"흐흥~. 칭찬 고맙다."
바보 같이 배시시 웃는 얼굴에 유기는 졌다는 듯 이마를 짚으며 시선을 옮긴다. 아까부터 느껴지는 뜨거운 눈길에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한 오니가 보였다. 자신이 아무리 대선배라고 해도 그렇지. 자신을 향한 코우의 존경심은 이미 정상의 범주를 넘은지 오래였다.
도대체 센라 녀석은 후배 교육을 어떻게 했길래 얘가 저 지경까지 선배바라기가 된 것일까? 골치 아픈 문제가 눈앞에 있었다.
"그래. 능력을 개화했다지. 축하한다."
과도한 존경의 눈빛에 겸연쩍어하며 대충 내뱉은 축하의 말에 선배바라기가 눈을 반짝이며 대답한다.
"감사합니다! 전부 대선배님 덕분입니다!"
한층 더 빛을 발하는 존경의 눈빛이 너무 눈이 부셨다. 더는 견디지 못한 유기는 그의 시선을 피해 슈텐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 슈텐과 눈이 마주친 유기는 어색한 듯 쓴웃음을 지었다. 저 녀석 좀 어떻게 해보라는 신호였다.
천하의 투귀도 약한 게 다 있네.
불굴의 정신으로 어떠한 강자도 쓰러뜨리는 그 호시구마 유기가 자신이 보기엔 아직 병아리로 밖에 보이지 않는 오니에게 쩔쩔매며 자신에게 도움을 구하고 있다. 폭소를 터트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요행이리라.
대신, 슈텐의 얼굴엔 재미난 장난감을 발견한 듯한 악동 같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 불길한 미소에 유기는 후회했다. 도움을 청할 오니를 잘못 택한 것이었다. 슈텐이라면 오히려 이런 상황을 부추기고도 남을 테지. 자신의 어리석음을 곱씹으며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이 힘을 보다 잘 다룰 수 있게, 대선배님께서 제게 가르침을 주셨으면 합니다!"
으윽, 유기는 속으로 신음할 정도로 저 과도한 존경이 껄끄러웠다. 저런 대책 없는 선배바라기를 남겨 놓고 죽어버리다니. 지금은 저승에 있을 센라가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난감해하는 유기의 반응을 즐기는 듯 슈텐의 미소가 짙어졌다. 이제 아예 대놓고 낄낄 거리는 수준.
유기는 머리를 헤짚으며 사나운 눈으로 선배바라기, 코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근데 말이야. 아무리 내가 대선배라도 그렇지. 너무 의존하려고 드는 거 아니야?"
이참에 따끔하게 말해두지 않으면 안 되겠지. 험악한 인상으로 노려보며 위협해 보지만, 그의 두 눈의 반짝임 만은 이채를 잃지 않고 그대로였다. 그래도 효과가 아주 없진 않은지 코우가 조금 움츠려든 태도로 대답했다.
"그.. 그렇게 보였습니까?"
"그래. 누가봐도 지나쳐."
성가시다는 듯한 발언에 코우는 기분이 착 가라 앉았다. 자신은 그저 선배의 선배. 대선배라는 사실에 기뻐했을 뿐인데. 생각해보니, 그녀의 말처럼 너무 들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자신이 경솔했었다는 것을 깨달은 코우의 마음이 급속도로 냉각되어 갔다.
너무 성가시게 군 자신에게 질려 버리신 건 아니겠지.
그 가능성이 동요를 불러 일으켰다.
"자.. 잘못했습니다. 제가 너무 귀찮게 굴어서 그런 거죠? 그야 싫어지실 만도 합니다. 저 같아도 성가시게 구는 후배는 싫거든요. 앞으론 좋은 후배가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야 인마! 그게 아니라고!!"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으며 멋대로 폭주하던 코우를 호통으로 멈춰 세운 유기는 강한 두통을 느끼며 설명했다.
"뭘 착각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아냐. 딱히 네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너무 의존적이라 홀로서기도 제대로 못 할 것 같아 한 말이야."
행여나 또 엉뚱한 착각을 하지 않을까, 유기는 나름 필사적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슈텐은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배를 부여잡고 폭소하기 시작했다.
"크캬카칵! 쩔쩔매네. 아주 쩔쩔매!"
그런 슈텐이 얄밉기 그지없었으나, 지금은 선배바라기의 착각을 바로 잡는 것이 먼저였다. 유기는 작게 한숨을 뱉어낸 후, 코우를 사뭇 진지한 얼굴로 응시했다.
"너 강해지고 싶다고 했었지? 그러면 나한테 의지할 게 아니라 스스로 쟁취해야 하는 거야. 대선배라고 해도 널 책임질 만한 존재가 아니란 거지."
코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도한 존경심이 이럴 땐 도움이 되는 구나. 유기는 자신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코우를 보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곡해하여 받아들이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코우의 양 어깨에 손을 얹고 결정적인 대사를 입에 담는다.
"그래. 좋은 능력을 얻었겠다. 이제 슬슬 졸업해야 되지 않을까? 후배를 말이야."
시선을 옮겨 곁눈질로 슈텐을 쳐다보는 유기의 눈은 '동정 졸업 같은 게 아니라' 말하고 있었다. 순간 슈텐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정색한 그녀는 그런 유기의 시선을 '시비 거냐'는 눈으로 응수했다.
그것도 잠시 다시 해실거리며 웃는 슈텐.
유기는 코우의 어깨에 얹었던 손을 회수하고는 크흠, 헛기침을 했다.
"센라에게도 했던 말이지만, 너에게도 해주지."
그렇게 운을 띄우는 유기의 얼굴은 쑥스러움으로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이어 힘 있는 어조로 센라에게 했던 그 말이 코우에게 들려주었다.
"살아갈 이유 정도는 네 스스로 정해!"
그리고는 부연하듯 뒷말을 덧붙인다.
"의존하려는 습관을 버리고 스스로 생각해서 살아가라는 의미의 말이다."
"ㅆㅂ년, 후까시 존나 잡네. 크크큭."
옆에서 신경을 긁는 비아냥과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지만, 유기는 애써 무시한 채 대선배로서 훈계의 말을 이어갔다.
"너도 이제 어엿한 오니니까. 내가 한 말 잘 새겨듣고 자신감 있게, 당당하게 살아 가라고!"
"네.. 넵!"
정말 제대로 알아들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적어도 거짓을 고하는 눈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까부터 의존하지 말라는 말에도 저 과도한 존경심만은 여전했다. 이래서 골머리가 아프다니까. 유기는 다시금 전해져 오는 두통에 눈썹을 모았다. 애초에 코우의 의존은 존경심에 기인한 것이니 말이다.
지금 이 순간, 코우가 당당하게 살라는 말에 자신을 센라와 겹쳐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유기는 이 껄끄러운 후배를 슈텐에게 넘기기로 했다.
"네 제자잖아. 너도 좋은 말 좀 해줘."
"그랬지! 내 수제자인데, 너한테만 앵기는 꼴이 영 보기가 그렇긴 하지."
낄낄 대면서도 슈텐은 코우에게 무슨 말을 해줄지 입을 다물고 조용히 고민했다. 이미 좋은 소리는 유기의 입을 통해 다 나온 시점인데다 두령이자, 스승인 자신보다 유기에게 더 존경하는 녀석에게 뭔 말을 해봐야 거기서 거기.
그때, 슈텐의 뇌리에 한 가지 좋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렇지! 그게 있었지!!'
"나도 한 덕담 하지만, 그것 보다 더 좋은 걸 선물해 주도록 하지!"
자신만만한 미소를 띤 채, 슈텐은 앞으로 팔을 쭉 뻗고, 검지로 코우를 지목했다. 그러면서 말하길
"네 이름! 내가 직접 지어줄 생각인데, 어때?"
"이름이라면 이미 선배가 지어주신 '코우'가 있는데.."
"이름이 꼭 한 개여야 할 필요 있어? 나만 해도 이부키, 슈텐. 그리고 또 하나 더 있다고. 잔말 말고 받아들여!"
이미 코우라는 이름이 있다고 해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선배가 그렇게도 만나고 싶어 했던 불기분방의 요괴가 지어주는 이름 아닌가. 코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로부터 또 다른 이름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다.
"네 새로운 이름은─"
*
반 오니 연합의 습격이 있은지 닷새. 오니들은 다케야마를 떠나 거처를 옮겼다. 불타버린 집을 다시 짓기 귀찮은 것도 있었지만, 슬슬 다른 곳으로 이동할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전국을 누리는 그들의 목적지는 달리 정해져 있지 않았다. 그저 발이 닿는 대로 유랑하다 적당한 곳에 터를 잡을 뿐.
오니 백귀야행은 이와미를 벗어나 바다를 건너, 둔갑너구리들이 많이 산다는 시고쿠에 발을 들였다. 떠들썩하기 이를 데 없는 오니들이 시고쿠에서 가장 먼저 발을 들인 곳은 이오. 당연한 얘기지만, 그곳에 사는 둔갑너구리를 비롯한 모든 인요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천재지변 앞에서는 무력한 그들은 그 재앙이 자신에게 향하지 않길 바라며 숨죽이고 있는 것 외엔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조용히 숨어 지내던 둔갑너구리들에게 오니라는 재앙이 닥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