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안색의 코스즈를 본 레이무도 그와 유사한 반응을 내보이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것을 보이지 않고자 레이무는 아랫입술을 잘근 씹으며 동그랗게 떠졌던 눈을 다시 미간을 찌푸림으로써 가늘게 하였다. 애써 고개를 돌리고 마무리를 짓기 위해 주먹을 불끈 쥐며 아야에게 걸어나갔다. 코스즈는 당연히 레이무를 불렀다. 고함에 가까운 호소였지만 들리지도 않는다는 식으로 레이무는 대꾸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뒤에서 다가오는 또 다른 호소는 눈치채지 못했다. 자신의 팔뚝을 잡는 익숙한 가늘은 손에 이번에 레이무는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
유카리는 아무런 말 없이 식은땀을 흘리는 긴장투성이의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말없이 뿌리치지 않는 것을 보고 입술을 달싹였다. 레이무는 미적지근해서 기분나쁜 한숨을 단칼에 내보내며 바쁘게 말했다.
"또 뭐."
"잠시만 기다려줘. 아무래도 이건 좀, 많이, 어긋났어."
"또 뭐가! 도대체 뭐가! 항상 뭐가 그렇게 어긋난건데! 내가 이 자식을 죽이는 게? 뭐가!! 어디에서!!"
이때까지보다 격렬히, 목에 핏줄이 보이게까지 크게 고함쳤다. 왜 이렇게 막아서는 거냐고, 다음으로 고함친 레이무는 결국에 팔을 뿌리쳤다. 그런데 아직 아야에게 다가가지는 않았다. 이유는 변명을 들으려 함이었다. 유카리는 의도대로의 행위를 보였다. 그렇지만 완전하지는 않은 것이었다.
"그건…."
"이젠 진짜로 지긋지긋해! 도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 막아서는데! 나야말로 이해가 안 가! 잘못한 녀석을 벌주는 게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잘못된거야? 제발 말 좀 해줘봐!"
"다른 이유는 없어…!"
유카리가 잠시 숨을 돌리며 방금까지와는 다르게 조곤거리는 외침을 질렀다. 그녀가 내뱉는 말은 카센같이 이성에 호소하여 이것이 잘못된 일임을 깨우치도록 하는 부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저 감정과 감정의 맞대면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냥, 네가 누구를 죽이고, 화를 내는게 싫어…."
"…뭐?"
그것이 오히려 레이무를 당황케 했다. 유카리는 부드러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날이 서있지 않았다. 누구와 부딪히더라도 큰 충격을 받지 않고 오히려 반대편을 누그러트려 결국에는 품어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레이무가 느낀 당황에서는 그런 따뜻한 품에 안긴 듯한 착각이 함유되어있었다. 하지만 날 선 그녀는 단번에 보듬어지지 않고 튕겨나가려 했다. 유카리를 멍하니 바라보다 레이무는 처음 맛보는 지긋지긋함에 헛웃음을 내뱉었다.
"뭔데, 그게."
"그냥 싫은 거야. 네가 누군가를 죽이는 걸 보고 싶지 않은 거야. 네가 더 이상 화를 내면서 마음에 동요를 갖는 게 보기 싫은 거야. 나는 그냥, 서로 가끔씩 농담이나 하면서 같이 히죽히죽 웃는 바보같은 삶을 너랑 함께하고 싶어. 그냥 그것뿐이야."
논리없는 유카리의 말은 카센에 비해서는 더 내쳐내기가 힘들었다. 그것은 그녀와 지낸 추억에 감회되어서 행동에서조차 머뭇거림을 안게 된 탓이었다. 레이무는 한참을 침묵하더니 다시금 소리쳤다.
"그게 말이냐고! 웃기지 말라 그래! 겨우, 그것때문에 날 막아선다고? 그렇다면 피해받은 사람들은? 너도 똑똑히 봤을 거 아냐! 저 노가쿠사가 요마서를 부려서 감정을 다 뺏어버린 거를! 그럼 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보상받아야 하는데! 내가 벌주지 않고서야 어떻게 호소하는데!"
"벌을 꼭 네가 내릴 필요는 없잖아!"
"그럼 누가 해! 여기에서 도대체 누가! 인간을 위해주는 자는 단 한 명도 없는 이 환상향에서 도대체 어떻게? 내가 아니면 누가 하는데! 누가 벌을 내리는데!"
"……그건!"
"네가 할 거야? 아니잖아! 네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냥 날 말리는 것 뿐이야! 어느 것 하나 너는 제대로 처리한 적이 없어! 날 말리고 그 일을 유야무야 넘기려는 것 뿐이지! 레밀리아가 마리사를 죽이려 든 다음 네가 제대로 된 벌을 내린 적이 있어? 사이교우지 유유코가 환상향의 봄을 모아 아야카시를 피우려고 한 다음 네가 뭘 한 적이 있어? 없잖아!"
지금껏 완화되어왔던 갈등이 단숨에 폭발하여 입밖으로 튀어나왔다. 내뱉는 그녀조차도 지금 하고 있는 말이 의식이 원하여 튀어나오는 것인지 아닌지 흑백을 알지 못했다.
"너는 항상 피해자와 가해자를 붙여놓고 잔 한번만 나누면 쌓여왔떤 갈등이 해결될 거라고 믿는 거일 뿐이야! 그런데 그래서는 아무것도 안 돼! 몸에 남은 상흔은, 마음속에 남은 상처는 도대체 그러면 누가 해결해줘? 가해자는 쉽게 털어내겠지만 피해자는 절대 아니잖아! 언제까지나 상처를 품고 살아야 하잖아! 언제 또 피해자가 될 지 벌벌 떨면서 두려워해야 하잖아! 그러면 억울해질 뿐이야! 그런데 왜 넌 날 막아서는 건데!"
과연 하쿠레이를 대신할 심판자는 있을까? 없었다. 이곳은 요괴를 위한 낙원이었지 인간을 위한 낙원이 아니었다. 하쿠레이 레이무라는 존재는 인간의 편에 홀로 서서 유일한 구원자가 되어가는 인간이었다. 그녀가 가진 힘은 유아독존이었고, 그렇기에 지금까지 홀로 맞설 수 있었다. 그런 하쿠레이의 존재를 대신할 방법은 절대로 찾을 수 없었다. 어쭙잖은 힘을 가진 자가 요괴와 맞섰을 시에는 결과가 어떠할지 뻔했으니까.
유카리는 이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창백해진 안색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제발이라 호소하는게 고작이었다. 레이무는 감정의 호소를 끊어내기 힘들어했지만 끊어내려고만 했다. 꾹 다문 입 속으로 이를 아득 문 채 멸시하려는지 고개를 홱 돌렸다. 그녀는 미지근하여 기분나쁜 콧숨을 한 번 내쉬고 다시 심판을 하려 했다. 막아서려 하면 내쳐냈다. 유카리가 끝없이 팔을 잡고 외치더라도 뿌리치며 묵묵하게 걸어나갔다. 레이무라면 단숨에, 그리고 단칼에 아야의 목숨을 끊어낼 수 있었거늘 그러지는 못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막아주기를 원하는 바람이 어느샌가 마음속에서 현실로 형상화되어 발의 천근추가 되어 걸음을 계속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야리꾸리함은 도저히 떨쳐내기가 어려울 정도로 끈적였다. 그럴수록 그녀는 자신의 날을 세워 끊어내려고만 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막아주기를 원하는 바람과 동시에 내버려두기를 원하는 바람이 존재했다. 둘 다 하쿠레이 레이무가 해주기를, 혹은 하기를 원하는 행위였다. 모순된 두 감정의 발걸음은 끔찍할 정도로 시간의 경과를 느리게해서, 걸음 하나하나마다 엄청난 인내를 필요케 했다. 그녀는 그런 환상에서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