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비번 날인 모양이네.」
친근하게 말을 걸며 물어오지만, 히데오는 선듯 대답 할 수가 없었다. 한계에 달한 흥분이 그의 이성을 갈아 먹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의 용태가 이상하다 싶은 그. 루이드는 머리를 갸웃거리며 히데오의 안색을 살폈다.
「저기.. 괜찮은 거야? 어째 광견병 걸린 표정인데...」
「크르르르...」
입에 거품까지 물고 있는 모습에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 루이드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난색을 표했다.
「괜찮은 게 아니구나. 어쩌지.. 눈이 완전 맛이 가 있는 것 같은데...」
「..스타킹.」
「응? 방금 뭐라고??」
「스... 타킹!」
조용하게 읊조린 목소리에 루이드는 무슨 소리인가 싶어 의아해 했지만, 곧 그 의미를 깨달게 되었다.
「스타키이이이잉-!」
아키하바라 거리 한 복판에서 울려 퍼지는 흥분한 백랑의 외침. 화들짝 놀란 루이드는 주변을 둘러보며 눈치를 살폈다. 주변의 시선이 히데오에게 모여든다. 이대로 있으면 자신까지 거리에서 당당하게 '스타킹'을 외친 ㅁㅊㄴ의 관계자가 될 지도 모른다.
엄밀하게 따지면 관계자가 맞긴 한데, 그래도 이런 별 이상한 놈 보는 시선에는 익숙치 않은 루이드에게는 상당히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역시, 이대로 타인인 척 무시하고 지나가는 게 정답이겠지?
꺼림칙한 얼굴로 히데오에게서 한 걸음 물러난 루이드는 작게 기침을 토해내고는 자연스럽게 그의 옆을 지나쳐 가려는 그때.
「루시퍼D!」
별안간 자신의 게임 닉네임을 외치며 등 뒤에서 와락 안겨드는 미친 광견이 있었다. 갑작스런 사태에 놀라는 것도 잠시, 냉정을 되찾은 루이드는 침착하게 자신의 가슴팍에 걸쳐져 있는 광견의 손을 짜증난다는 듯 난폭하게 치워냈다.
「아 쫌!」
하지만, 흥분으로 이성이 날아가 있는 그의 품을 벗어나기란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다. 치워내자마자, 다시 옥죄어 오는 양 팔에 루이드는 질색하며 다시 치워내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마치, 이제 두 번 다시 놓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그의 양 손에 깃들어 있는 듯 했다.
그렇게 반쯤 엎혀든 상태가 된 히데오는 근질근질한 고간을 루이드의 엉덩이에 비비며 「스타킹!」 하며 울부 짖었다.
루이드는 비명을 질렀다.
「끼야아아악-! 무.. 무슨 짓이야!! 엣찌, 헨타이, 스케베에에에에-!!!」
엉덩이에 느껴지는 끔찍한 감각에 참을 수 없다는 듯 날카로운 고음을 내지르며 몸을 털었지만, 찰거머리처럼 붙은 히데오를 떨쳐 내기란 어려웠다. 도대체 뭘 잘못 먹었길래 이러는 건지. 발기한 히데오의 그것이 엉덩이에 비벼질 때마다 루이드는 소름끼치는 불쾌감에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어댔다.
「으아아악! ㅆㅂ! 그만 하라고!! 이 똥개가 발정이 났나. 왜 이래!?」
히데오는 그야말로 발정 난 짐승이었다. 헥헥헥. 하얀 입김을 연신 뱉어내며 허리를 움직여 발기한 그것을 비벼대는 행위는 동물에게서 볼 수 있는 마운팅. 머리에 이성 대신 본능이 자리 잡은 히데오는 루이드를 상대로 마운팅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토막 지식]
마운팅이란?
과도한 흥분과 애착을 가진 상대를 만났을 때 행해지는 일종의 애정행각을 말한다. 성적인 흥분이 아닌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행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히데오가 마운팅을 하고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오랫동안 절제하며 부정해왔던 자신의 성적 취향이 스타킹을 계기로 다시금 눈을 뜨게 된 것과 그 반동으로 주체할 수없는 성적 욕구에 휩싸인 결과였고, 또 하나는 보름이나 보지 못한 게임 속 친구에 대한 반가움 때문이었다.
이상하게 보는 시선이 계속해서 늘어난다. 루이드는 그런 아픈 시선과 함께 엉덩이를 문질러 대는 역겨운 거시기의 감촉으로 괴로워 죽을 지경이었다. 어떻게든 이 발정난 개를 진정 시켜야 하는데,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말을 걸지 말았어야 했어!
용태가 이상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그랬을 텐데. 무의미한 후회를 하며 루이드는 히데오가 업혀진 상태로 발을 끌며 이동했다. 보다 시선이 적은 곳을 향해 히데오를 질질 끌다시피 걸음을 옮긴다.
「헥헥헥헥! 스..스타킹!」
「아.. 젭라... 으아...!」
그러는 동안에도 마운팅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발정이 나도 그렇지 왜 하필 같은 남자인 나한테 이런 짓을 하는 건지. 자신의 딱딱한 거시기를 아래위로 끊임없이 비벼대는 히데오가 혹시, 동성애자가 아닌지 하는 무서운 의혹까지 생길 지경이었다.
그리고
푸욱!
「으아아아악-!」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고야 말았다. 연신 비벼대던 히데오의 그것이 우연하게도 루이드의 뒷구멍에 홀인원 해버린 것이었다. 기분 나쁜 이물감에 루이드의 정신이 광란 상태에 빠져드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확률적으로 너무도 낮은 상황. 수많은 우연이 겹쳐진 가운데 일어난 참사였다.
*
「설마, 그런 일이 되리라고는...」
「그래서. 갑자기 발정이 난 이유가 유년 시절부터 잠재되어 있던 성욕이 폭발했다는 거잖아. 그 탓에 내 엉덩이가 아주 안녕하지 못하게 되었고.」
「미안하다. 그땐 제 정신이 아니었다.」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쳐버린 것에 대해 히데오는 미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 그를 다그치고 있는 자는 루이드. 아직도 강렬한 이물감이 남아 있는 엉덩이를 매만지며 쓴 소리를 내뱉는다.
「제 정신이 아니었다는 말로 얼버무릴 일이 아니라고. 진짜 똥이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았다니까! 저기.. 히데오 씨. 이런 말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결코, 웃고 넘길 만한 일이 아니었던 관계로 루이드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거두지 않았다.
「진심으로 중성화 수술을 시켜버리고 싶다니까.」
「윽!」
심한 소리였지만,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면목이 없는 히데오는 반박을 하지 못하고 침음성을 흘리며 난색을 표했다.
「하아-..」
속으로 화를 삼키며 깊은 한숨을 뱉어낸 루이드가 말했다.
「뭐든지 참는 건 좋지 않아. 그게 쌓이고 쌓여서 결국은 안 좋은 형태로 발산될 뿐이지. 무슨 말인지 알고 있어?」
「으응..」
「그러니까,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평소에도 그 성욕을 발산하라는 소리야. 이상적인 모습을 연기하는 것도 좋지만, 솔직한 자신과 마주하지 않으면 안 돼.」
「.. 으음. 알았다..」
「스타킹이 좋다고 했지? 그럼, 스타킹으로 해소하면 되네! 어차피 여기에 아는 지인도 없잖아. 스타킹 정도는 내가 직접 구해 줄 수도 있어. 사용 후인 거라도 말이야.」
노기서린 질책으로 주눅이 든 히데오는 그가 한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고, 제시한 해결책 또한 명료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이상 성 취향을 감추고 부정하려 들어봤자, 욕구만 쌓일 뿐이었다. 그렇게 욕구 불만 상태가 된 자신이 이번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리라는 보장 따윈 없었다.
그렇게 될 바에야 변태 같아 보이더라도 욕구에 솔직해 지는 수밖에.
루이드의 말 따라 어차피 바깥세계에선 자신을 아는 자가 없다. 이번 같이 폭주할 리스크를 짊어지는 것 보다는 지인이 없는(루이드는 예외) 이 세계에서 변태가 되어 버리는 게 났다.
「부탁은 하지 않겠다. 스타킹 정도야 나 혼자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니까.」
「그래. 바로 그 자세야!」
결심을 굳힌 히데오를 검지로 가리키며, 루이드는 함박 미소를 지었다.
「진실 된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야 말로 바람직한 자세지.」
이로서 결론이 났다.
자신의 사촌 여동생인 모미지처럼 폭주하기 쉬운 체질인 그. 이누바시리 히데오는 금일부로 자신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변태가 될 것을 굳게 다짐했다. 스스로에게 좀 더 솔직해 진 그의 모습은 루이드의 눈에 매우 바람직하게 비쳐졌다.
그렇게 아키하바라 남쪽, 칸다 강 너머에 위치한 오가와마치에 있는 루이드의 골방에서 백랑 경비대의 부대장, 이누바시리 히데오가 한 번 더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두 번째 신생(新生).
이젠 흠집 하나 없는 완벽한 부대장으로서의 모습이 편린도 보이지 않게 된 히데오가 문득, 지저분하게 어질러져 있는 그의 방안에 있는 한 소설책을 집어 들었다. 일반적인 책보다는 조금 작은, 만화책만한 크기의 소설책.
표지에는 얇은 책으로 익숙한 망가 스타일의 일러스트가 그러져 있었다.
「관심 있어?」
그것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는 히데오를 보며 루이드가 물었고, 히데오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긍정했다. 후훗, 그렇단 말이지. 루이드의 얼굴에 수상쩍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거 라노벨이란 건데. 무료할 때 읽을 만 해.」
설명은 그것뿐이었지만, 호기심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히데오는 책 상단에 위치한 제목을 소리내어 읽어 보았다.
「동자승인 내가 이세계 전생하여 두부딸로 최강이 된 건에 대하여.」
무슨 의미인지 모를 독특한 문장형 제목이었다. 허나, 그렇기에 책의 내용이 궁금해진다. 그는 첫 장을 넘겨 라노벨을 빠르게 속독해나갔고, 10장 정도 넘겼을 때 매우 흥미롭다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이세계라니. 뭔가 재밌군.」
「그렇지? 요즘 그런 게 유행이거든. 재밌으면 가져가도 돼. 다른 것도 있으니까, 읽고 싶으면 말 해. 얼마든지 빌러줄 테니까.」
「... 그럼, 호의를 받아들여 먼저 이 한권부터 빌리지.」
그렇게 이누바시리 히데오의 변질은 지금 막 제 3페이즈를 향해 나아갈 따름이었다.
그가 입고 있는 바지의 중앙. 고간 부분에는 미세하지만 루이드의 성분이 분명하게 남아 있었다. 인간의 수십 배에 달하는 후각을 자랑하는 그의 코가 그 분뇨 냄새를 놓칠 리가 없었다. 히데오는 그 지저분한 흔적을 실수에 대한 교훈 삼아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끔 반성했다.
그리고 루이드의 엉덩이에는 그 보다 훨씬 더 선명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팬티에 이르러선 갈색의 대참사가 나 있었지만
'여기서 갈아 입을 수도 없고.'
비록 제 정신이 아니었다곤 하나 자신을 상대로 마운팅을 했던 상대 앞에서 맨 엉덩이를 드려내기란 여간 무서운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만약이지만, 진짜 그 쪽 성향이라고 하면 갈색의 빼빼로 정도가 아니라 선홍빛의 떡볶이가 히데오의 고간에 강림할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타인이라기엔 가깝고, 그렇다고 친구라 하기엔 아직인 그에게 단 둘 뿐인 공간에서 생식기를 드려내는 것 자체가 저항감이 생기는 일이었다.
어차피 돌아가고 난 뒤에 갈아 입어도 될 일이고. 이젠 딱딱하게 굳어서 그렇게 까진 기분 나쁘지도 않으니까. 그리 생각하니 대수롭게 느껴지진 않는 루이드였다.
*
오랜만에 만난 온라인 친구와 헤어진 히데오는 그에게 빌린 라노벨 몇 권을 품속에 넣어 둔 채 환상향으로 돌아왔다. 입산과 동시에 초계 임무를 수행 중이던 부하를 만났지만, 수고한다는 격려와 함께 너무 요령 피우지 말라는 주의만 주고는 집으로 곧장 향했다.
집 주변에서 만난 모미지가 그를 수상하다는 눈으로 쳐다봤지만, 대충 얼버무리며 집안으로 들어선 히데오는 자신의 방에 들어서서야 간신히 안심할 수 있었다. 다행히 누구에게도 발각 당하지 않은 바깥세계의 서적은 그의 품에서 다다미 위로 후두둑 떨어진다.
방바닥에 뒹구는 라노벨은 그가 처음 집었던 속칭 이세계물이었다. 하이 템플러로 전생한 동자승이 이전 세계에서부터 행했었던 두부딸을 칠 때 마다 고속 레벨업을 해서 최강자가 된다는 매우 작위적인 대리만족물.
세간에서는 땔감으로까지 비하되는 소설이었지만, 무쌍물을 좋아하는 지친 직장인들에겐 호응이 좋아 애니화까지 되어 내년 1분기에 방영이 예정되어 있는 킬링 타임물이 그가 가져온 라노벨의 정체였다.
1권을 집어 든 히데오는 문단속을 한 뒤, 그 내용을 재빨리 읽어나갔다. 환상향에 나도는 소설 부류의 서적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개념들이 그에게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게임과 같은 레벨업이라던가, 스킬을 이용한 이능 배틀. 그리고 초장부터 최강자 반열에 드는 시원시원한 전개까지.
한마디로 현재 일본에서 유행중인 이세계물은 히데오의 취향을 적중하는 물건이었다.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기질이 아니더라도 정신없이 빠져드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단숨에 빌러왔던 라노벨 전부를 읽어 버린 히데오는 인터넷을 이용해 또 다른 이세계물을 물색했다.
이후, 그가 인터넷 웹 소설 사이트인 '소설가가 되자' 일명 '나로우'를 발견하여 그곳의 수많은 이세계물을 섭렵하게 된 것은 어찌보면 필연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직접 소설을 집필하여 투고까지 하게 되는데, 그것은 좀 더 훗날의 일이었다.
그렇게 3페이즈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완전한 변질을 마친 이누바시리 히데오는 두 번 다시 돌아 갈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었으니. 이때의 그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