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저 녀석 어떻게 단련 시킨거냐?"
몇 달 전에 봤을 때보다 월등히 성장한 코우의 모습은 유기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그리고 그런 호기심의 이면에는 타고난 강자인 슈텐이 미숙했던 자를 이렇게까지 잘 지도했을 리 없다는 의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슈텐은 유기를 한 번 곁눈질로 쳐다보더니 입을 찢어 올리며 능글능글한 미소로 답했다.
"그건 말이지. 저 녀석이 불사력 만큼은 상당해서 주구장창 실전만 갖게 했지."
"그 말은 즉, 넌 딱히 한 일이 없다는 거군?"
"한 일이 없기는! 그 실전 상대들은 전부 날 노리고 온 놈들이거든!"
결국은 한 일 없이 자신을 노리고 온 자들을 대신 싸우게 한 것뿐이면서 잘났다고 우쭐대는 꼴이 영 눈꼴사납기만 한 유기는 시선을 돌려 아우를 상대로 팽팽하게 싸우고 있는 코우를 쳐다봤다. 비록, 슈텐이 있기에 수많은 실전을 쌓을 수 있었던 코우였지만, 그럼에도 저만치 갈고 닦은 것은 그 본인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저 노련함은 단 1년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얻어질 만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많은 실전과 노력을 해왔다 해도 말이다. 그럼에도 저 정도의 노련함을 갖추었다는 것은 재능 말고는 달리 설명할 말이 없으리라.
싸움에 통달한 유기의 눈에는 그 재능이라는 것이 확실하게 보였다. 파상적인 것 같으면서도 변칙을 섞는 구마의 공격을 빠짐없이 간파하여 간발의 차로 피해내는 것은 그의 형인 토라구마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저 연약해 보이는 오니는 아직까지 단 한 대도 맞지 않고 피해내고 있지 않은가.
물론, 압도적인 체력의 차로 언젠가는 공격을 허용하고 말겠지만, 그걸 감안하고도 코우의 감은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기척을 예지에 가까운 수준으로 읽어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느덧 일각(약 15분)의 시간 동안 유지 되었던 교착 상태가 깨어질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틈을 노려 내지른 코우의 주먹을 몸으로 받아내며 그대로 튕겨낸 구마가 땅을 박차고 다섯 발걸음 정도 뒤로 물러난 것이다. 지금까지와 다른 그의 행동에 불길함을 느낀 코우는 곧바로 구마를 추격했고, 바로 그 순간 땅이 지진이 난 것처럼 울리더니 그의 눈앞에 토사물이 솟구쳐 올랐다. 갑작스런 사태에 코우는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눈앞의 상황을 침착하게 분석했다. 그리고 바로 그 원인을 알아냈다.
토사물이 솟아 오른 방향의 끝엔 검은 색의 물체가 하늘 높이 떠 있었다. 그것의 정체는 구마의 쇠방망이로 허공에 잠시 정체하는가 싶더니 맹렬한 기세로 회전하며 구마를 향해 쇄도했다.
탁, 이윽고 쇠방망이의 손잡이 부분이 구마의 손에 쥐어졌다. 지금까지는 장난이었다는 듯 코우를 노려보는 구마의 눈동자가 형형한 붉은 빛을 띠었다. 그의 전신으로부터 아까까지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요력이 휘몰아쳤다. 자신을 압도하는 패력에 본능이 도망치라고 경고했지만, 코우는 무시하고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점차 자신을 옥죄어오는 공포를 걷어내면서.
그리고 땅을 박차 대각선으로 뛰어 오르면서 자신의 모든 힘을 활시위처럼 당긴 주먹에 모든 집중시켰다. 상대는 단순히 싸움의 경험만으로는 절대 뛰어 넘을 수 없는 강자. 육체의 강함도 요력의 크기도 압도적으로 차이 난다. 실전 경험에서도 자신은 한참이나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 일격을 박아 넣을 수만 있다면, 이기지 못하더라도 한 방 먹이는 것은 가능하다면.
하지만, 코우의 그런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각에서부터 휘둘려진 쇠방망이에 관자놀이를 가격 당해버린 것이었다. 빠악! 두개골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 힘이 가해진 방향으로 날아간 코우는 그대로 바위에 부딪혔고, 그 충격에 콰쾅! 굉음을 내던 바위에 금이 가더니 이내 수많은 조각으로 부셔져 내렸다.
조각난 바위가 코우를 깔아 뭉갰다. 구마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며 ‘우호오오!’ 포효했고 지켜보고 있던 슈텐이 역시나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유기가 고개를 절래 흔들며 말했다.
“아우놈이 흥분한 탓에 힘 조절을 못한 것 같아. 네 제자를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아우를 대신해 내가 대신 사과하지.”
“괜찮아. 저놈 이 정도로는 죽지 않거든.”
잔해에 깔려 죽은 듯 침묵하고 있는 코우에게로 다가간 슈텐이 땅을 헤집듯 돌덩이들을 치워냈다. 그리고 이내 그 속에서 코우를 끄집어내고는 그 모습을 훑어본 뒤 유기에게 던졌다. 정신을 잃어 시체같이 축 쳐진 코우가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유기의 발치에 툭 떨어졌다. 유기는 아래에 놓인 코우를 내려다보다가 놀란 듯 눈썹을 들썩였다.
“박살난 머리가 벌써 이만치 회복되어 있다니. 이거 놀라운데?”
“그치?”
슈텐이 배시시 웃으면서 유기의 말에 공감했다. 바로 저런 불사력을 가졌기에 자신보다 강한 자를 상대로 매일 같이 실전을 치루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거기에 포기를 모르는 정신력도 한몫했다. 그리하여 최근에는 도전자를 상대로 꾸준히 승률을 올려가고 있었는데, 오늘 상대는 나빠도 너무 나빴던 것뿐이었다.
그래도 자신을 포함해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강자를 상대로 나름 선전한 편이었다. 슈텐은 아직 깨어나질 못하고 있는 코우에게 오늘은 그만 푹 쉬라는 시선을 던졌다.
승리에 도취해 연신 '우호우호' 거리던 구마가 유기에게로 달려왔다. 그는 칭찬해주길 바라는 듯 유기에게 뜨거운 눈길로 바라보다가 불시에 가해진 충격에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칭찬 대신 딱밤을 받은 것이었다.
"너 보다 한참 아래인 녀석을 상대를 이겨놓고 뭐가 잘났다는 듯 구는 거야."
"우호오오오..."
거기다 질책까지 이어지자, 구마는 이마의 통증과 서운함에 서글픈 목소리로 울었다. 그 딱해 보이는 모습에 토라구마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고, 그 둘에게서 슈텐으로 시선을 옮긴 유기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이제 우리 차례군."
슈텐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둘은 약속이나 했던 것처럼 넓은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싸움이 시작 되었다.
*
어디선가 날아온 돌 파편이 코우의 얼굴을 연신 두들겼다. 그 탓에 결국,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게 된 코우는 눈꺼풀을 몇 번이나 끔뻑였고, 그러는 도중에도 돌 파편이 날아와 그의 몸을 때려댔다. 코우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파악하기 위해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 나서는 자신이 한 동안 정신을 잃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유효타 하나 먹이지 못한 채 패배하고만 코우는 그 결과에 대해 자신의 미숙함으로 돌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상대가 너무 강했긴 했지만, 그 또한 변명. 다시 한 번 맞붙게 되었을 때, 그때야말로 제대로 된 일격을 먹일 수 있도록 더욱 정진하기로 마음먹고서 시선을 돌파편이 날아오고 있는 진원지로 옮겼다.
거기엔 맨주먹을 나누며 육탄전을 벌이고 있는 두 명의 오니가 있었다. 두 말 할것 없이 슈텐과 유기였다. 단순히 주먹과 주먹이 얽히는데도 파공음과 함께 광풍이 몰아 닥쳤다. 돌 파편은 그 광풍에 의한 부산물이었다.
어떠한 오의나 요술 없이 오로지 주먹다짐만으로 주변이 깎여나가는 광경은 슈텐과 유기가 얼마나 괴물인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유기가 주먹을 내지르면 슈텐이 다리를 휘둘려 정강이로 막아냈고, 그때 발생한 충격에 두 오니가 서 있는 지면이 깨지면서 깎여 나갔다. 그리고 육체가 만들어낸 광풍이 그 깨어진 지면을 사방으로 비산하게 만들었다. 이어서 주먹을 회수한 유기가 반대편 주먹을 내질렸다. 이번엔 슈텐의 턱에 정확히 꽂혀들었지만, 고개만 옆으로 돌아갔을 뿐, 별 다른 피해를 입지 않은 슈텐의 반격에 의해 유기 역시 턱을 강타 당해 머리가 옆으로 홱 돌아갔다. 슈텐과 달리 하얀 이가 섞인 검붉은 피를 토해낸 유기는 몇 발짝 뒤로 물러나더니 손목으로 입가에 흘려 내리는 피를 닦아냈다.
아무리 단련한 육체로도 타고난 괴물한테는 안 되는 것인가? 유기는 자조적인 웃음을 머금으면서 슈텐을 노려봤다. 자신 보다 작은 체구에 근육 없이 날렵한 몸인데도 유기의 눈에는 슈텐이 올려다보기 힘든 거대한 철웅성처럼 보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닿지 않는 벽. 싸울 때 마다 실감하지만, 유기는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결코, 닿지 않는다 해도 도전 정신만은 잃지 않는 것이 바로 호시구마 유기. 그녀의 불굴의 정신이었다.
그 포기를 모르는 정신이 깃든 눈이 사나운 붉은 빛을 내뿜는다. 일각(약 15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된 육탄전으로 몸에 새겨진 피해와 피로는 상당했지만, 유기는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거만한 얼굴로 고개를 뚜둑, 하고 풀었다.
"역시, 주먹질만으로는 안 되는 건가."
"주먹질 만이라니? 너 그거 빼면 시체잖아? 아님, 다른 뾰족한 수라도 있어?"
슈텐의 비아냥 소리에도 유기는 피식, 웃어넘기면서 말했다.
"그래서 오의라는 걸 준비하는 거잖아."
그에 슈텐은 한층 더 비아냥거렸다.
"그게 그거지."
그녀의 말처럼 오의라고 해도 결국은 주먹질의 연장선에 불과했다. 거기에 요력을 담아 조화를 부린다 해도 주먹질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본질에서부터 밀리는 녀석이 오의라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과연 그럴까?"
하지만, 그 사실을 부정하듯 유기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이를 으득 깨물었다. 그리고는 양 팔을 허리춤이 붙이고 자세를 낮춰 전신의 힘을 끌어 몰았다. 유기의 얼굴에 수많은 혈관들이 불거져 나왔다. 이어 목과 쇄골, 팔과 다리 등, 전신에 혈관이 불거져 나오면서 당장이라도 터져나갈 듯한 흉흉한 모습이 되었다. 이어 대지가 진동하며 작게 쪼개져 있던 파편들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공기마저 떨려오는 심상치 않은 광경에 지켜보던 이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숨을 죽였다. 단, 마주하고 있는 슈텐만 예외인 채.
앞으로 쭉 뻗은 왼손은 엄지와 검지, 그리고 중지가 맹금류의 발톱처럼 굽어져 있었고 나머지 손가락은 말아져 있었다. 그 외손을 상대를 향해 조준하고 있던 유기는 이윽고, 동공이 사라져 흰자위만 가득한 눈으로 고함을 내질렀다.
"으아아아-!"
그리고 발해지는 그녀의 오의.
뻗었던 왼손을 회수하는 것과 동시에 말아 쥔 반대편 주먹이 뻗어졌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충돌했다. 그것은 주먹이 최대로 뻗어지는 그 지점에 위치한 요력으로 생성된 불가시의 벽이었다. 그 벽과 주먹이 서로 맞닿자, 그 순간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굉음과 함께 엄청난 충격파가 전방을 향해 물결처럼 방사되어 나갔다.
최대의 힘으로 가해진 충격은 요력의 벽에 의해 강렬한 파동으로 변환되어 슈텐을 덮쳤다. 그 직후, 위험을 감지한 슈텐익 순간적으로 팔을 교차 시켜 방어했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방사형의 파동이 슈텐을 삼키고 그 뒤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밀물처럼 쓸어갔다. 나무, 돌 할 것 없이 산산히 부셔져 나갔으며 운 없이 휘말려버린 짐승들 역시, 그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찢겨져 나갔다.
유기가 일으킨 파동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그 위력을 짐작케 하는 파인 자국을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위력인데, 산의 일부분을 방사형으로 깎아 버린 범위. 상상을 초월하는 흉악한 오의에 코우는 눈을 끔뻑이는 것도 잊고 놀란 표정으로 굳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 보다 놀라운 것은 그런 흉악한 오의를 정통으로 맞고도 태연히 서있는 슈텐이었다.
코우와 같이 놀란 얼굴로 굳어져 있던 토라구마가 얼른 제정신을 차리고는 그런 상황에 대한 설명을 쏟아냈다.
"역시, 형님이라고 해야 할지. 엄청난 위력이었소. 저걸 정통으로 맞고 멀쩡할 자가 과연 존재할지 의문이지만, 딱 한명 존재하는 구려. 바로 슈텐도지. 저 자 말이오. 형님의 혼심의 일격을 여유있게 버텨낸 저 튼튼함. 보통의 오니가 바위라고 한다면 슈텐은 그야말로 금강. 그 어떤 창으로도 뚫을 수 없는 몸을 지닌 최강의 요괴다운 자태요."
코우의 인상이 약간이지만 찌푸려졌다. 아무리 성격 좋은 코우여도 흥분하여 열띤 목소리로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설명에는 짜증이 일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에 반해 아우인 구마는 익숙한 듯 무덤덤했다. 가끔 '우호우호' 거리며 울었지만, 불만을 호소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도 그럴 것이 토라구마와 구마의 인연은 그들이 섬기는 형님인 유기 보다 훨씬 더 길었던 탓이었다.
"유기 형님이 새롭게 선보인 저 오의에 이름을 붙이자면 파동폭풍. 파동의 형태를 띤 충격파가 폭풍처럼 전방을 휩쓸고 지나간 것에 기인한 명이오. 그 이름대로 엄청난 오의를 만들어내다니. 소인은 진심으로 감탄했소. 그런 형님의 아우인 것이 자랑스럽소."
이젠 자신의 형님인 유기에 대한 찬사를 아낌없이 쏟아내는 토라구마. 참다 못 한 코우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째려봤지만, 그의 주둥이는 쉴 줄 모르고 끊임없이 나불거릴 뿐이었다.
얼핏 보기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슈텐이었지만, 실은 안면을 보호하기 위해 교차 시켰던 양팔이 저릿저릿했다. 동식물을 포함해 돌 등의 무기물까지 모조리 흔적도 없이 지워버린 오의인 것을 감안해 볼 때, 그 정도로 그친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슈텐 본인은 달랐다.
팔이 이렇게나 저리다니. 만약, 막지 않고 안면을 그대로 허용했다면 얼마나 아플까. 슈텐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렇고 제법 괜찮은 오의가 아닌가.
"큰 소리 칠만 하네."
예사롭다는 투였지만, 그녀 나름 인정했기에 내뱉은 말이었다. 그리고 그걸 잘 알고 있기는 유기는 그녀의 칭찬에 솔직하게 기뻐했다.
"당연하지. 그 날부터 몇 달을 고안하고 수련해서 익힌 오의인데."
"그래. 엄청 열심히 노력했구나! 수고했어."
마치,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는 말을 한 슈텐은 다음 순간 눈빛을 바꿔 아까까지와 명백히 다른 분위기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차례가 되었다는 선언이었다. 유기는 긴장한 기색으로 자세를 다듬었다. 이제 곧 슈텐의 용서 없는 공격이 들어온다. 남아있는 요력을 끌어올려 방어를 굳힌 유기는 눈꺼풀이 한 번 닫혔다가 열리는 순간에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온 슈텐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아래에서부터 올라온 주먹이 유기의 턱을 가격해 그녀의 몸을 하늘 높이 솟구치게 만들었다. 공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턱이 산산조각 나는 통증 속에서도 정신을 잃지 않은 유기는 다음을 대비하기 위해 슈텐의 움직임을 눈으로 쫒았지만, 그녀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하고 고개를 위로 쳐드는 순간, 위에서부터 내려찍는 충격에 유기는 머리부터 땅으로 낙하했다. 그리고 땅바닥에 처박히기 직전이었다. 유기는 복부를 가격 당해 힘이 가해진 방향으로 날아갔다.
포탄처럼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유기의 반대편에는 어느새 땅에 내려와 주먹을 뻗고 있는 슈텐의 모습이 있었다. 유기는 나무를 몇 개나 부러뜨리고 도중에 바위와 부딪히기를 십 수번. 그럼에도 날려지는 기세는 전혀 죽지 않고 10리는 더 떨어진 위치인 건너편 산등선에 처박히고 나서야 겨우 멈춰 섰다.
그 충격은 유기의 주변을 말 그대로 초토화 시켜 놓기에 충분했다. 거대한 구덩이가 생긴 것은 물론이고, 주변에는 뿌리 채 뽑혀진 거목과 조각난 돌 더미들이 산재해 있었다. 그 중심지에는 충격의 여파로 너덜너덜하게 된 유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유기는 그 꼴이 되었어도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불굴의 정신력으로 걸레짝이 된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보지만, 더 이상 싸움을 속행하기란 무리에 가까웠다.
"이걸로 몇 번째더라.."
이젠 세는 것도 포기한 패배. 이번 역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완패였다. 그래도 이번에 새로 익힌 오의가 좀 통할 줄 알았는데, 결과적으로 전의 오의 보다 못한 결과에 절로 자조의 웃음이 새어나오고 만다.
자신의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한 유기는 주변을 둘려보며 꽤 멀리까지 날려 왔다는 감상을 가졌다. 아직 움직일 수 있으니, 머뭇거리고 있으면 안 되겠지. 요력이 거의 바닥난 상태지만, 여기서 조금만 더 회복한다면 아우와 슈텐이 기다리는 곳까지 한 달음이리라.
엉망진창으로 깨지고 나니 오히려 후련한 기분이 든 유기는 성한 구석이 없는 몸을 이끌고 엉기적거리는 걸음으로 그 자리를 벗어났다. 정신이 아찔해질 듯한 통증이지만, 기분 좋은 아픔이다. 산을 내려가는 유기의 얼굴엔 어느새 싱거운 웃음이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