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실공히 야마토 최강이라 불리는 대요괴. 슈텐도지에게 도전하는 요괴들은 많았다. 그녀를 쓰러뜨려 그 명성을 가지겠다는 포부를 지닌 요괴들로 하루가 멀다 하고 오니 백귀야행을 찾아 온다.
하루에 한 명만 찾아오면 다행이고, 보통 두 세 명씩 찾아오거나 많으면 열 명이 넘게 찾아 오기도 했다. 아직 오니로서의 힘을 온전히 쓰지 못하는데다, 실전 경험이 부족한 코우는 당연하게도 매일 망신창이가 되는 것을 피하지 못하는 사투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니 백귀야행은 거처를 옮겨 하리마의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산에 처소를 짓고 머물게 되었다. 대나무가 많이 자생하여 타케야마라 불리는 그 산은 원래 텐구들이 살고 있던 영역이었지만, 슈텐을 비롯한 백여 명이 넘는 오니들의 입산에 지금은 어디론가 피신해 숨을 죽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 중 오니들 앞에 모습을 들어낸 것은 가장 말단에 위치한 구힌. 이리의 귀와 꼬리를 지닌 요수와 같은 모습을 한 그들은 높은 직책의 텐구들을 대신해 오니의 시중을 들었다. 오니들은 그들을 보낸 텐구들을 겁쟁이라고 욕하는 한편,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시중을 들게 된 구힌들을 귀여워 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러나 귀여워하는 것과 별개로 그러한 그들의 처지를 동정하지 않는 것이 오니. 따라서 마음껏 부려 먹히고 있는 관계로 구힌의 신세가 나아지는 일은 없었다.
이처럼 언뜻 보면 백랑텐구와 비슷하지만, 털이 갈색인 것과 직위가 더 낮아 심부름꾼 같은 위치에 있는 이 구힌도 텐구이긴 하다. 텐구이기에 자신보다 약한 자에겐 거만하고, 오니 같은 강자에게는 찍 소리도 내뱉지 못한다.
그렇게 텐구들의 심부름꾼에서 오니들의 심부름꾼으로 전략한 구힌들에게서 슈텐도지에 대한 이야기는 당연히 화제였다. 그 무서운 오니들 중에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하는 슈텐은 무서움 이상으로 경외심을 갖게 하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 밑에서 제자로 수행하고 있는 코우도 종종 얘깃거리에 오르곤 했다.
아직 산에 자리를 잡은 지 열흘도 지나지 않았건만,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끊임없이 찾아오는 도전자들을 슈텐을 대신해 상대하는 오니가 화제가 되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런데, 그와 함께 그들 사이에 이상한 얘기가 돌았는데, 그것은 바로 코우가 슈텐의 친자가 아닐까 하는 추측이었다.
당연하게도 억측에 불과한 헛소리였지만, 날이 갈수록 그 엉뚱한 소문은 살을 부풀리며 신빙성을 더해갔다. 소문은 워낙 빨리 퍼져 나간 탓에 슈텐의 귀에 들어가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야. 내가 너 어미래."
작은 폭포가 떨어지는 깊은 골짜기. 그 아래 납작한 돌 위에 앉아 있던 슈텐이 맞은편에 서있던 코우에게 대뜸 그런 말을 내뱉었다.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소문이지만, 정작 소문의 장본인은 그리 기분나빠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재밌다는 듯 입가를 올리며 킥킥 대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장본인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 말도 안 되는 헛소문. 누가 퍼트린 겁니까?"
"몰라. 그냥 누군가가 우리 관계를 착각한 거겠지."
코우는 불쾌한 듯 미간을 좁히고 눈가를 살짝 찌푸렸다. 슈텐이 별 거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그는 여전히 짜증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대꾸했다.
"그러면 더욱 바로 잡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냥 착각하도록 냅두지."
"저와 두령이 부모자식 관계가 되는 데도 말입니까?"
"뭐, 어때?"
가만히 내버려 둬도 상관 없을 오해가 아닌데도, 대수롭지 않아하는 슈텐의 태도가 코우는 좀 처럼 납득할 수 없었다.
"두령이 상관 없다고 해도, 저는 아닙니다."
"흐응~.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야?"
슈텐이 떠 보려는 심산으로 반개한 눈으로 물었다. 그에 코우는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긴듯 있다가 다시 고개를 원래대로 하면서 대답했다.
"그 소문을 퍼트린 게 구힌들이라면 그들을 찾아가 사실대로 알려줄 수밖에요."
당장이라도 행동으로 옮길 듯한 눈빛에 슈텐에 하핫, 웃음을 터트렸다.
"난 이대로 네 어미가 되도 좋은데."
"그게 무슨!?"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발언에 코우가 놀라했다. 그러나 슈텐은 태연하게 천연스러운 미소로 받아쳤다.
"어차피 너 가족도 없잖아? 나쁠 것도 없지."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음.. 그건 그래. 내가 미혼모가 되는 거니까. 역시, 관둘까?"
제자와 부모자식 관계가 되는 것은 중대한 문제였다. 그런데 그것을 끼니를 뭘로 해결할지 고민하는 것과 같을 정도로 가볍게 취급하는 슈텐의 모습은 아무리 한 달이 넘게 곁에서 지켜봐왔던 코우라해도 어처구니없었다.
새삼 느끼지만, 저러고도 백여 명. 정확히는 백하고도 서른이 넘는 오니들의 두령을 하고 있다니. 기가 차지 않은가. 하지만, 그녀가 지닌 강함이 그 자신이 가진 모든 결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강대했다. 단지, 강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오니 백귀야행을 통솔하고 그들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권력을 슈텐이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요괴의 세계는 힘이 전부라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는 산 증인이 바로 슈텐이다.
비록, 혈연으로 맺어지진 않았지만, 그런 슈텐과 부모자식 관계가 된다는 것은 코우뿐만 아니라 오니 백귀야행. 더 나아가 인간들에게 있어서도 큰 사건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결코, 쉽게 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 도리가 없는 슈텐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생각에 잠긴 얼굴을 했다. 팔짱까지 끼고 골똘해져 있는 그녀에게 코우가 한숨을 뱉어내며 말했다.
"이 자리에서 정할 문제가 아니라고요."
그러나 눈동자를 움직여 코우를 전신만 훑을 뿐, 그의 의견을 들어 주는 일은 없었다.
*
최강의 대요괴가 제자를 자식으로 거둬들이느냐 마느냐하는 중대한 결정은 슈텐의 성격대로 금방 내려지지 않았다. 아직 생각의 여지를 남겨두기로 한 그녀는 이날도 어김없이 찾아온 도전자들을 발견하고는 코우에게 눈빛을 보냈다.
그날 이래로 단 한 번도 거르지 않았던 도전자와의 결투. 코우는 싸움에 임하기 위해 상대를 눈으로 훑었다. 그리고 조금 의외라는 듯 주춤 거렸다.
이번 상대는 요괴가 아니라 인간이었던 것이다. 슈텐 퇴치의 사명을 띤 퇴마사라 판단되는 인간은 술법 보다 육체를 이용한 근접전이 특기일 것 같은 모습이었다. 머리는 중처럼 실오라기 하나 없었으며, 얼굴은 험상궂은 5척 6촌 가량의 낡은 회색 장포를 걸친 사내였다. 그의 손에는 기다란 봉이 쥐어져 있었다.
오니 백귀야행에 합류한 이후, 처음 상대하는 인간. 그러나 망설임 따윈 없었다. 코우는 한 걸음 앞으로 나가 슈텐을 노리는 사내와 마주했다. 사내는 코우를 날카롭게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그 코도인가? 소문대로 슈텐을 상대하기 전에 네놈부터 쓰러뜨려야 하는가 보군."
곧 있을 목숨을 건 결투를 앞두고, 난데없이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범인은 두 말 할것 없이 슈텐이었다. 그녀는 큰 소리로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코.. 코도라니. 푸하하하! 코.. 코도. 코도오오 크캬캬캬!"
한 번 터져버린 웃음이 멈출 기세 없이 이어졌다. 이름 좀 틀렸다고, 분위기 파악 못하고 웃어재끼는 슈텐의 태도를 당연하게 그녀를 퇴치하러 온 사내의 눈에 곱게 비쳐질 리 없었다.
"이제부터 이 코도란 자와 정정당당한 승부를 하려는 참인데, 이 무슨 천박한 웃음이란 말인가!"
사내는 봉 끝으로 슈텐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러나 그의 말 따위 귀에 들어오지 않은 슈텐의 웃음소리는 머질 줄 몰랐고, 보다 못 한 코우가 사내를 거들고 나섰다.
"이제 좀 그만 웃으시면 안 됩니까? 두령."
"뭣이? 저 천박한 오니가 그 슈텐도지라고!?"
자신이 퇴치할 대상이 상상했던 것과 많이 달랐는지, 사내는 적잖이 놀라하며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거나 말거나, 슈텐은 끅끅 목을 울리며 간신히 웃음을 멈추더니 이를 크게 드려내며 조롱하는 어조로 내뱉었다.
"뭘 어떡하면 코우가 코도가 되냐? 간만에 크게 웃었으니, 배가 다 땡기네."
만족한 듯 배를 문지르는 슈텐의 모습에 코우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이고 절레절레 흔들었다. 평소엔 그렇게나 위엄 있어 보이고 싶어 하면서 왜 이럴 때는 체통을 지키지 않는 것인지. 코우는 무의미한 생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슈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면, 그냥 기분파일 뿐인 건가. 아마도 이쪽이 정답인 것 같기도 하다.
코우가 그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슈텐을 쏘아보던 사내가 다시 시선을 코우에게 돌리며 말했다.
"뭐, 슈텐이 어떻든 우선 너부터 처리해주마."
부웅-. 하고 봉이 완만한 호를 그리며 휘둘려진다. 그것을 신호로 어디서 대기하고 있었는지, 수풀 너머로부터 총 열 여섯 명의 병사가 튀어 나왔다. 그들 중에는 하얀 도복을 입은 술사도 몇 끼여 있었다.
다른 요괴도 아닌, 천하의 슈텐도지를 상대하는데 당연히 사내 혼자일 리는 없었다. 제 힘을 과시하는 요괴와는 달리 연약한 인간은 신중하며 또 철저하다. 순식간에 코우를 둘러싼 병사들이 그를 향해 칼을 겨누었다. 이어 술사가 만들어낸 불길이 뻗어 나가는 것으로 싸움은 시작 되었다.
*
싸움은 시종일관 코우에게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사내까지 합쳐 총 열 일곱 명의 인간들이 진형을 짜고 연계로 해오는 공격은 지금의 코우로서는 전부 피해 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고, 그 중에서도 틈을 노려 찔려오는 사내의 봉은 위협적이었다. 강한 영력을 내포한 사내의 봉에 타격 당한 부위는 어김없이 멍 자국이 나 있었고,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그래서 코우는 사내의 봉을 최우선으로 피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럴수록 형세는 점점 더 저쪽으로 기울여져 갔다.
사내의 봉을 조심한다는 코우의 움직임 전부가 그들의 의도였던 것이다. 그런 판단을 내리도록 유인 당한 줄도 모르는 코우는 점차 주문을 외는 술사들에게 소홀해져 갔다. 그리고 그런 소홀함이 곧 치명적인 실수로 돌아왔다. 갑자기 땅에서 뻗어 나온 흰 뱀 같은 줄기가 양 다리를 휘감고, 양 팔 마저 휘감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움직임이 둔해지는 수준이었지만, 술사들의 주문이 이어질수록 휘감은 줄기들이 강해지더니 결국은 몸의 자유를 앗아가기에 이르렀다.
낭패였다. 이젠 병사들의 칼부림조차 피할 수 없게된 코우의 몸에 수많은 생채기들이 새겨져갔다. 이어 곧게 뻗어온 사내의 봉에 명치를 허용한 코우는 검붉은 각혈을 토해내며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승패가 난 것이었다.
사내는 자신의 계산대로 된 것에 흡족해하며 한 쪽 입가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영력이 실리지 않은 봉으로 코우의 턱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구힌들이 말한 대로군. 슈텐의 자식 치고는 너무 형편없군."
슈텐의 자식이라는 헛소문을 빼더라도 모욕적인 말이었다. 자신이 두령의 제자 치고는 약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것이 구힌들에게 까지 퍼져 있었다니. 참담한 심정이었다. 그리고 연이은 결투로 이제 꽤 실전에 익숙해 졌다고 생각했었는데.
상대가 요괴에서 여럿이서 연계를 취하는 인간으로 바뀐 것만으로도 이 꼴이다. 이래서야 언제쯤이면 강해질 수 있단 말인가.
무릎 꿇은 자세로 사내를 노려보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코우는 이를 으득, 깨물며 분을 삼켰다. 자신이 패배가 확정되었으니, 이제 두령이 나설 차례인가. 그렇게 다음번을 기약하고 있을 때였다.
돌연 강한 영기를 품은 봉이 사내의 머리 위해서 차륜처럼 회전하더니, 뚝 멈춘 것과 동시에 앞으로 뻗어나가 코우의 가슴을 뚫어낸 것이었다. 이어서 가슴을 뚫고 나온 봉이 회수되었다. 그리고 가슴에 동그란 바람 구명이 난 코우는 즉시, 피를 토해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슈텐이 난감한 표정으로 야단났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차. 저 녀석들 퇴마사들이었지!"
승패만 나면 목숨의 여부 따위 상관 하지 않던 요괴와 달리, 위협적인 요괴라면 무조건 퇴치하고 보는 퇴마사와의 차이를 미처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대로 엎어져서 미동도 하지 않는 코우의 모습에 슈텐은 저거 정말로 죽은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씨/발 奀됐네.
속으로 육두문자를 뱉어낸 슈텐은 이제 코하루를 무슨 낯짝으로 봐야할지가 걱정이었다.
이제 와서 걱정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자리에서 일어선 슈텐은 퇴치 목표를 자신에게로 돌린 퇴마사 무리를 바라보며, 코우에 대한 문제는 일단, 저 녀석들부터 처리한 다음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