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앨리스?!"
나와 레이무는 등 뒤에서 나타난 앨리스의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 앨리스를 향해 달려갔다. 앨리스는 금방이라도 죽을것같은 얼굴을 한 상태로 이쪽을 향해 비틀비틀 걸어왔다. 그리고 힘이 풀렸는지 레이무의 품 안으로 쓰러지듯 안겼다.
"괜찮은거야? 아아...상처봐..."
레이무가 망연자실하여 말했다. 앨리스의 상태는 매우 좋지 못했다. 얇은 속옷 안쪽으로 언뜻언뜻 비치는 붕대에는 아직도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상처는 깊게 도려내진듯 붕대로 감을수 없던 부위가 움푹움푹 패여있었다.
가슴께부터 배까지 대각선으로 길게 그어진 상처를 보고 앨리스가 어떻게 공격을 당했는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예리한 날붙이로 힘껏 베어버린건지, 아니면 날카로운 손톱으로 갈기갈기 찢어발긴건지 상상하는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 상처였다.
"괜찮아...이딴 상처, 집으로 돌아가면 금방 치료할 수 있을거야...그건 그렇고. 이쪽이 나를 도와준 사람들...아니 신이라고 해야하나..."
앨리스가 힘겹게 말하며 두 사람을 가리켰다. 한명의 어린 여자아이와 성숙미가 물씬 느껴지는 한 여인이었다. 두 사람은 앨리스의 소개를 받고 간략히 고개만 숙이며 인사를 했다.
"반갑군. 나는 야사카 카나코...그리고 이쪽은 모리야 스와코라고 한다."
"카나코...스와코...라고?!"
나는 두 사람의 이름을 천천히 되짚어본다음 화들짝 놀라 팔괘로를 꺼내들었다. 맙소사. 두 이름의 주인은 사나에가 강림시키려 했던 그 신들이 아닌가! 지체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을까. 하필이면 가장 든든한 조력자가 빈사상태일때 우려하던 일이 터져버렸으니.
"기어코 일이 일어나버렸어 레이무...하지만 우리가 죽기살기로라면 이길수 있을거야!"
"동감이야 마리사. 각오는 됬지?"
우리가 전투태세를 취하자, 야사카 카나코가 손을 들어올려 우리를 제지했다.
"그만. 거기까지. 너희가 우리를 적대하는 이유는 아마 코치야 사나에 때문이겠지?"
"그래. 어떻게 사나에가 너희를 불러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존재조차 하지않던 거짓된 신들 주제에 감히...!"
카나코는 한숨을 쉬더니 손짓을 했다. 카나코의 손을 따라 강한 바람이 몰아치더니, 레이무를 공중에 띄워 올렸다. 레이무는 마치 공중에 결박 당한 사람처럼 이리저리 공중을 멤돌다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어서야 바닥에 내려올 수 있었다.
"일단 진정하도록. 우리는 너희와 싸울 의향이 없다. 그리고, 사나에가 우리를 불렀다는건 얼토당토 않은 말이다"
"무슨 소리를...!"
레이무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우리는 사나에가 불러내서 봉인이 풀린 신이 아니다. 그리고, 사나에는 우리와는 절대 맞지 않는 인간이다. 우리를 불러내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아이었지"
"그렇다면 어떻게...?"
"설명은 저 아이에게 모두 설명했으니 나중에 시간이 나면 들을수 있도록 하여라."
그때 스와코가 옆에서 비죽 튀어나와 레이무에게 말했다.
"만약에 사나에가 우리를 불러낸거라면 카나코가 직접 갱생시켜줄 수 있었을거야."
"말도 안돼. 그 악마같은 녀석이 쉽게 갱생될리가 없다고...만약에 너희 말도 통하지 않을 아이였다면?"
"그렇다면...어쩔수 없이 죽였겠지. 어쨋거나 우리와는 전혀 맞지 않는 아이니까 말이야"
카나코가 눈을 날카롭게 뜨며 말했다. 아까의 인자해 보이는 모습과는 또 다른 냉정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모습에 마른침을 삼키고 카나코에게 말했다.
"그럼 너희는 애당초 우리를 공격할 의향이 없던거지?"
"물론이다. 그뿐이 아니라 우리는 너희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다"
"도움...?"
카나코는 스와코를 흘낏 쳐다보더니 무거운 입을 열었다.
"너희에겐 힘이 느껴진다...수많은 존재를 이겨낸 강력한 힘이...그렇기에 너희는 우리를 도와줄 수 있을거라고 믿는다."
"어서 말해. 서두가 길어지면 있던 마음도 사라지니까"
레이무가 쏘아붙이자 스와코가 째릿하고 레이무를 노려보았다. 손에 들린 굴렁쇠가 위협스럽게 번뜩이고 있었다.
"그래. 더 이상의 사족은 붙이지 않겠다. 내가 하고싶은 말은 단 하나..."
카나코는 우리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스와코의 기억을 되찾아주길 바란다."
"기...억?"
레이무가 예상치도 못한 말에 조금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갑작스레 기억을 찾아달라는게 조금은 당황스러울법도 했다.
"그래. 사나에가 모으고 다녔던 신앙 조각이 스와코의 기억의 파편이다. 옛날부터 재앙신을 대동하고 다니던 스와코였기에, 그들에게 남은 원초적인 공포가, 절망이, 좌절이 잘게 쪼개지고 쪼개져 지금의 인간들에게 깃들게 되었다. 그리고 사나에는 그 기억을 신앙이라고 생각하여 모으고 다녔지...다른 이들은 그것이 원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또 어떤이들은 그것이 신이 인간에게 내리는 경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틀리다. 그 신앙 조각들은 스와코가 소멸하지 못하게 쪼개어버린 자기 자신의 파편..."
카나코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다만 스와코를 애처롭게 바라볼 뿐이었다.
"한때 전장에서 서로의 목숨을 노리던 앙숙에서, 서로에게 등을 내어주는 유일한 친우가 된 자다...이 이상 무너져가는 꼴을 보고 싶지는 않다."
카나코는 우리의 손을 잡고 이어 말했다.
"부탁한다. 이렇게 부탁한다. 이제 우리는 현세에 육체를 얻어 강림하였으니 더 이상의 존재의 소멸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그러니...그러니...부디 스와코를 원래대로 돌아올수 있게 해주겠는가?"
레이무는 카나코의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얼떨떨하면서도 당황스러운 표정이 섞인 얼굴로 계속해서 카나코를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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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가 전역을 했다!
이젠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사회의 향기야 반갑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