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말 어디서 들은 거야?」
레이무가 홍마관 당주를 쏘아보며 그렇게 물었다. 시선을 나에게서 레이무에게 옮긴 흡혈귀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저기 망령 공주와 수다를 떨고 있는 주책스런 현자님이 그렇게 알려 주던걸?」
그녀가 곁눈질로 쳐다본 것은 한참 흥이 올라있는 야쿠모 유카리님. 사실이긴 하나 유카리님을 '주책스럽다'고 말한 패기는 과연, 신흥세력의 우두머리답다고 해야 할까. 레이무가 납득했다는 듯 '흐응~'하고 콧소리를 내며 명계의 공주와 대작을 즐기고 있는 유카리님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노려봤다.
시선을 느꼈는지, 유카리님이 돌연 이쪽을 쳐다본다. 그러다 레이무와 눈을 마주친 유카리님이 싱긋 웃으면서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분명, 한심하다는 시선이었을 텐데, 괘념치 않고 살갑게 구는 유카리님의 행동에 레이무가 보라는 듯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주책스럽다는 걸 알면, 설렁설렁 믿지 말라고.」
「진심으로 믿은 건 아니지만, 조금 흥미가 생겨서 말이야.」
홍마관 당주의 시선이 다시 나에게로 향했다. 분홍빛의 나이트캡을 쓴 흡혈귀의 머리카락은 창백한 달빛을 받아 옅은 푸른빛으로 찰랑거리고 있었다. 그 아래로 보이는 고혹적인 이목구비가 그 표정으로 흥미가 있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있었다. 이제 막 10살을 넘겼을 듯한 어린 외모이면서도 매혹적인 그녀의 얼굴에 나는 무심코 숨이 머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너무 뚫어져라 쳐다보는 거 아니야?」
옆에서 불평을 표하는 레이무의 시선에 나는 얼른 정신을 차려 눈을 내리 깔았다. 그리고 달음박질치는 가슴을 천천히 심호흡해서 가라 앉혔다. 어휴, 하마터면 어린 흡혈귀에게 빠져들 뻔 했어. 혹시, 저게 그 흡혈귀의 매혹이란 게 아닐까?
이번엔 매혹에 걸리지 않겠노라고 마음을 다잡으면서 고개를 시선을 올려 홍마관 당주의 얼굴을 다시 쳐다봤다. 그녀는 새하얀 송곳니를 드려내며 키득, 웃고 있었다.
「그렇군. 그 주책스런 현자도 완전히 틀린 말을 한 건 아니구나.」
그러면서 레이무를 슬쩍 쳐다보는 흡혈귀. 레이무가 째릿, 날카로운 눈으로 응수했다. 그에 그녀는 한층 더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하핫! 이렇게 감정적인 레이무를 보게 되다니. 오늘은 정말이지 즐거운 걸.」
「적당히 놀리지 않으면 바늘집으로 만들어 버릴 수가 있어.」
「이거 실례. 술기운에 조금 들떠버린 걸지도. 그럼.」
별로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은 사과를 한 홍마과 당주나 나를 바라보며 살며시 눈웃음 지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고혹적이라 다시 마음을 뺏겨버릴 듯 할 때, 그녀가 양손을 살포시 자신의 평평한 가슴 위에 모으고서 자신을 소개했다.
「내 소개를 하도록 하지. 내 이름은 레밀리아 스칼렛. 알다시피 홍마관의 당주를 맡고 있지. 자네는 카자네 소우지지? 유카리에게 들어서 대충은 알고 있어. 그 레이무가 격한 감정을 보이며 신경 쓰는 걸 보니 더 흥미가 솟는 걸.」
홍마관의 당주, 레밀리아 스칼렛을 보는 레이무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그러나 고혹적인 작은 흡혈귀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뒷말을 덧붙였다.
「검증해 보고 싶어 졌어.」
그 순간이었다. 레이무의 눈이 활활 불타오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레밀리아를 향해 불제봉을 겨누었다.
「검증이라니? 무슨 짓을 할 생각이야?」
「저 텐구가 나한테 넘어왔을 때, 네가 어떻게 행동할지 말이야.」
「지금, 시비거는 거지?」
당장이라도 퇴치해버릴 듯한 태세로 레이무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언제 싸움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측촉발의 상황 속에 둘 사이에 끼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분노를 드려내며 레밀리아를 적대하고 있는 레이무를 말려야 할지, 아니면 레밀리아에게 간청해 방금 내뱉은 발언을 물리도록 만들어야 할지.
내겐 둘 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험악해진 분위기를 내버려두고 관망하는 태도가 되어버렸지만.
레밀리아가 후후후, 하고 낮은 웃음을 흘렸다.
「농담이야. 그렇게까지 화내는 걸 보니, 저 텐구가 어지간히 소중한 모양이네.」
눈을 내려 곁눈질로 날 슬쩍 쳐다본 그녀는 다시 레이무를 바라보며 이어 말했다.
「괜찮아. 네가 걱정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 하지. 난 내 것이 아닌 것엔 관심 없으니까. 단순히 흥미가 동해 살짝 떠봤을 뿐이야.」
「살짝 떠본 게 그거야?」
「덕분에 좋은 표정을 보게 되었으니까.」
끝까지 속을 뒤집어 놓는 발언에 레이무는 더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자리에 앉더니 고개를 돌렸다. 홍마관의 당주라는 분이 하쿠레이 무녀를 약 올리는 것에 재미를 붙은 모양이었다.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마치, 좋아하는 여자애를 괴롭히는 남자애 같아서.
갑자기 차가운 시선이 나에게 향해졌다. 레밀리아가 내 생각을 읽은 듯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보는 것이었다. 등줄기가 으스스해진 나는 회피하듯 시선을 피했다. 그래도 계속 느껴지는 시선에 살짝 얼굴을 봤더니, 한쪽 입가를 올려 씨익, 하고 웃고 있었다.
그리고 레이무는
「이놈이고 저놈이고..」
아무래도 나와 회포를 풀며 관계를 회복했을 당시를 떠올린 듯했다. 그때도 세 명의 레이무 지인들이 남녀 관계를 핑계로 놀려댔었지. 지금은 홍마관의 당주가 그러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즐거운 연회 중이라 실력 행사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달랐다.
레밀리아가 어딘가를 향해 눈짓하자, 갑자기 아무것도 없는 곳에 한 명의 여성이 아무런 전조도 없이 나타나 있었다. 목덜미 까지 오는 짧은 은빛 머리에 차가우면서도 기품이 느껴지는 외모의 메이드였다. 여기서 메이드라는 것은 입고 있는 옷이 메이드복에 가까워서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활동성을 중시한 짧은 스커트의 메이드복. 그래서인지 늘씬한 다리가 적나라하게 드려나 있었다.
시선이 자동으로 그쪽에 박힌다. 나의 노골적인 시선에도 메이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반응하는 것은 불만의 눈빛을 보내는 레이무뿐. 그리고 그런 레이무의 일거투일수족을 재밌다는 듯 바라보는 홍마관 당주가 있었다.
레밀리아는 몸을 뒤로 빙글 돌리더니, 고개를 뒤로하고 말했다.
「나는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하지. 오늘 연회는 정말 즐거웠어. 특히, 레이무의 그 표정은 한 동안 잊혀 지지 않을 것 같아.」
어서 가버리라는 듯 쏘아보는 레이무의 얼굴을 흥미롭게 쳐다본 레밀리아는 이어 날 바라보며 요사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 핏빛 시선이 끈적하게 달라붙어 마음이 살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허나, 바로 정신을 차린다.
도대체 몇 번이나 레이무의 눈총을 받는 건지. 이건 본능적인 문제라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자중하지 않으면 정말로 미움 받아 버릴지도 모르겠다. 이윽고, 자리를 떠나 그대로 신사 위를 날아오른 레밀리아가 멀어져가자, 눈총을 보내던 레이무가 칫, 하고 짧게 혀를 찼다.
「망할 박쥐 꼬맹이 주제에.」
불만을 담아 비속어를 뱉어낸 레이무는 짜증난다는 눈으로 술잔을 노려보았다. 나는 그런 레이무에게 위로할 겸 솔직한 감상을 내뱉었다.
「레밀리아 스칼렛이란 흡혈귀, 상당히 제멋대로인 것 같아. 네 주변 지인들처럼 말이야.」
「아저씨 말대로야. 날 뭘로 보는 건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레이무의 말에 공감했다. 아무리 거물급 인사라 해도 하쿠레이 무녀를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많았으니까. 심지어 마리사 같은 애까지 그런 식이니 보통 심각한 게 아니구나. 하쿠레이 무녀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런데, 아까부터 레이무의 시선이 영 탐탁지 않아 보였다. 내가 뭐 잘못 말했나? 그렇게 내가 뭘 잘못한 건지 스스로의 행동을 되돌아보던 참이었다. 레이무가 검지로 내 엉덩이 부근을 가리키며 말했다.
「입으로는 제멋대로라고 말하면서, 실은 상당히 좋았던 거네.」
「에? 설마!?」
하고 고개를 돌려 꼬리를 쳐다봤더니.
'나 불렀어?'하고 열심히 좌우로 휘젓고 있는 못난 녀석이 있었다. 이 망할 꼬리. 또 내 의사와 관계없이 움직이는 구나!
어차피 변명이라고 여기겠지만, 이 현상에 대해 설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이건 말이지, 내 의지완 상관없이 흔들린다니까. 정말이야!」
「진짜?」
미심쩍은 눈으로 묻는 레이무.
나는 당당하게 단언했다.
「그래. 하늘에 맹세코 사실이야.」
찔리거나 걸리는 구석이 없으니 한 점 부끄럼 없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이건 내 의지가 아니라고.
「알았어. 믿어 줄 게.」
그렇게 마지못해 수긍해주는 레이무였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아직도 거두지 않고 있었다.
*
연회의 밤은 깊어지자, 참석자들이 하나 둘 씩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지 않은 자들은 그 자리에서 골아 떨어져 있었고, 아직 제정신을 유지하는 자는 나를 포함해 레이무와 곯아떨어진 자신의 주인을 대신해 뒷정리에 힘쓰는 하얀 머리의 반인반령 소녀와 란 씨 정도였다. 나도 너무 늦게까지 있으면 곤란한 관계로 그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럼, 이만 집에 돌아갈까 하는데.」
「아 응. 그러네. 계속 붙잡고 있기도 미안하고.」
「외간 남자니까. 조심해야지.」
레이무는 많이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내가 같은 성별이었다면 딱히, 하룻밤 머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내일은 비번날이기도 하고. 하지만, 남자가 어떻게 여자 홀로 지내는 집에 하룻밤을 보낸단 말인가. 이렇게 밤늦게까지 머무는 것도 상당히 위험한데.
그리고 연회 또한 끝을 고한 상태였다. 명계의 공주와 유카리님의 두 시종만이 정리를 한다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가능하면 나도 일손을 조금 돕고 싶었지만, 두 시종은 오히려 손님의 손을 번거롭게 할 수 없다며 빈 접시에 손도 못 대게 했다. 대접 받는 입장이긴 해도 뼈속까지 말단인 탓에 가만히 보고 있는 쪽이 되러 불편한데.
나는 뒷정리에 한창인 그녀들을 속으로 격려하며 신사를 뒤로 했다. 산문을 지나 돌계단을 내려 가는 동안 레이무와 얽힌 그동안의 일들이 영상 필름처럼 떠올랐다. 나로 인해 무녀가 된 애한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이런 식으로 자주 얼굴을 비춰 가능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란 결론이 나온다. 시원한 밤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며 마지막 돌계단을 내려왔을 때였다.
「이제 가는 거야?」
그곳에서 홀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꽃의 요괴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그렇게 물어왔다. 나는 「네.」하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더니 붉은 빛을 내는 두 눈으로 날 똑바로 응시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어 살짝 앞으로 내민 그녀의 손바닥 위에 자그마한 붉은 꽃이 피어났다.
카자미 유카는 그 꽃을 나에게 내밀었다.
「딸기꽃이야. 네 얼굴을 보고 있었더니 문득, 떠올라서 말이지.」
후후, 하고 불길한 웃음을 흘리며 내게 그 꽃을 건네주었다. 엉겁결에 꽃을 받아든 나는 다소 어리둥절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물었다.
「이 꽃을 왜 저한테 주시는 건가요?」
「네 얼굴상이 완전 그거라서.」
「그거라뇨?」
카자미 유카가 어째서 나에게 딸기꽃을 건네주었는지. 그것이 내 얼굴상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었지만 그 보다 내게 형편 좋은 얘기가 아닐 것 같았다. 그런 불길한 예감 속에 나는 조용히 침을 삼키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윽고, 그녀가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여난의 상.」
「여난!?」
그렇다면 이 꽃은?
카자미 유카가 불쑥 물었다.
「그거 꽃말이 뭔 지 알아?」
「글쎄요?」
후후, 웃으면서 그녀가 말하길.
「질투, 시기.」
요염하면서도 본능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눈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니까,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흰 늑대 씨.」
뜻 모를 충고를 남기고 유유히 사라지는 유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그녀가 한 말의 의미를 곰곰히 되씹어 보았다. 짐작 가는 데가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모미지는 레이무에 대해 못 마땅하게 보는 눈치였고, 그것이 질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 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거랑 내가 조심해야 된다는 거랑 무슨 연관인 거지?
혹, 모미지가 얀데레로 각성이라도 한다는 말인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괜스레 의식하고 마는 내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불안의 씨앗을 심어주고 간 유카가 조금 원망스러웠다.
*
현관문을 열었을 때는 이미 야심한 시각이었다. 깨어있는 텐구라곤 나 정도밖에 없을 정도로. 그런데 게다를 벗고 들어서려고 하는데, 내 게다가 아닌 다른 게다가 거기에 놓여 있었다. 사이즈로 봤을 땐 게다의 주인이 여성이라는 것이 쉽게 짐작이 되었다. 대체 누구일까? 그런 의문을 가지며 복도 안쪽으로 걸어가는데, 어둠 너머로 끼익, 끽. 하는 쇠 긁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나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한 발 한 발 천천히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향해 다가갔다. 분명, 부엌이 있는 방향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소리가 나는 근원에 다다를 때였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요괴의 눈이 나를 응시했다. 순간, 놀라서 새된 소리를 낼 뻔 했다가 그 정체가 모미지라는 것을 알고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작게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다.
그리고 불도 안 켜고 부엌에 있는 모미지에게 뭐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입가를 끌어 올려 눈만 동그랗게 뜬 어딘지 모르게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소우지 씨. 오늘 많이 늦으셨네요? 오랜만에 저녁이라도 해주고 싶어 찾아 왔는데, 소우지 씨가 안 보여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
라며 아무런 감정도 묻어 나오지 않는 투로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의 모미지가 왠지 무섭게 느껴져서 나는 긴장된 기색으로 변명했다.
「그.. 동료들 끼리 모임이 있었거든.」
「모임요? 혹시나 싶어 소우지 씨 친구들을 찾아 갔더니, 근무 마치자마자 산을 집으로 돌아갔다고 들었거든요. 저 화 안 낼 테니까 사실대로 얘기해 주지 않겠어요?」
「그...」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압박에 나는 더 이상 어설픈 변명을 늘어놓을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하는 즉시, 거짓말이라는 것이 발각 당할 것이다. 그러니 솔직하게 이실직고 하는 수밖에.
「미안. 실은 하쿠레이 신사에서 열리는 연회에 참석하고 왔어.」
「그렇구나..」
다시 끼익, 끽. 하는 쇠 긁는 소리가 났다. 그와 동시에 모미지가 국자로 커다란 냄비를 젓고 있는 것이 보였다. 소리는 냄비 안에서 나고 있었다. 혹시, 날 위해 국을 끓이고 있었던 걸까? 그렇다고 해도 국물을 젓는데 왜 그런 소리가 나는 것인지 신경이 쓰였다.
모미지가 크게 굳어진 얼굴로 계속 냄비를 휘저으며 말했다.
「거긴 하쿠레이 무녀도 있으니까. 소우지 씨 즐거웠겠네?」
끼익, 끽.
안 그래도 소름끼치는 소리가 모미지의 초점 없는 두 눈과 어울려져 더욱 소름끼치는 상황을 연출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게 되었다. 저 날카로운 쇠 긁는 소리는 국을 휘저으면서 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애당초 냄비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저 끼익, 끽 하는 소리는 빈 냄비를 긁으면서 나는 소리인 것이었다.
「이제 곧 식사 준비가 끝나가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줘요. 연회에 나오는 음식에 비하면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저 소우지 씨를 위해 정성을 다했으니까 분명 입맛에 맞을 거예요.」
끼기기긱-!
고막을 찢는 듯한 소음.
나는 생전 처음 보는 모미지의 모습이 너무나 섬뜩하게 느껴져 그 자리에 다가가지도, 그렇다고 도망치지도 못한 채 굳어져 있었다.
카자미 유카의 충고가 들어맞았는지도 모른다. 설마 했던 얀데레 각성을 할 줄이야. 아니야! 아직, 섣불리 판단하긴 일러.
머릿속으론 신중하게 다가가기로 결정했으면서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세 게다도 안 신고 집밖으로 나와 있는 내 자신이 있었다.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모미지 무서워 진짜 무서워 장난 아니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죽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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