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의지와 무관하게 흔들리는 꼬리를 겨우 자중 시키고 나니, 유카리님이 어느 사이에 내 옆에 앉아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미인이 저렇게 쳐다보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긴장되는 일이라 나는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말없이 발만 내려다 봤다. 어쩐지 무척 어색한 기분이 든다.
어색하고 긴장되서 안절부절 못한 채 쭈뻣쭈뻣하고 있는데, 유카리님이 불쑥 물어왔다.
「그래서 마음의 준비는 다 된 거야?」
「네..네?」
「내가 되도록 빨리 화해하라고 했는데도 줄곧 머뭇거리고 있었잖아. 그런 녀석이 웬일로 찾아왔나 싶어서. 설마, 여기까지 와서 도망칠 생각은 아니겠지?」
「설마요. 그리고 사실 여기온 목적은 그게 아니라..」
「그 정도는 알아. 그 시답잖은 서신이나 전해주러 온 거잖아.」
「알고 계셨군요..」
무표정한 얼굴로 앞만 바라보던 유카리님이 답답하다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눈동자만 돌려 날 곁눈질로 쳐다봤다.
「그딴 서신 딱히 네가 아니라도 상관 없는 거 아니야? 명령이라도 네가 싫다고 딱 잘라 거절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맡았다는 건 너 나름대로 미루던 일을 해결하려는 마음이 있어 서지 않아?」
「그럴지도요.」
「그런 식으로 애매하게 얼버무린다 해도 내 눈엔 다 보여. 막다른 길에 몰렸다고 적당히 해결할 생각은 않는 게 좋아. 어디까지나 네 솔직한 본심을 드려내지 않으면 레이무와의 골은 절대 좁혀지지 않을 거니까. 내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확한 충고니까 새겨들어.」
「알겠습니다.」
이마에서 진땀이 다 난다. 몰골은 엉망이지만, 진지한 유카리님은 카리스마가 대단하시다. 그녀의 충고처럼 어중간한 각오로는 레이무와 화해는커녕 실망만 안겨 줄 뿐이다. 깊어져 가는 골은 좁혀지지 않고 더 깊어지겠지.
그러니까, 진심이어야 한다.
어중간하게 얼버무리거나 변명을 입에 담지 말고.
「어머. 부재중인 무녀를 찾는 손님이 또 한명 찾아 왔네?」
유카리님이 하늘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하늘에 떠 있는 검은 점을 쳐다봤다. 그 검은 점은 점점 커지더니 이윽고, 사람의 형상이 되었다. 눈을 얇게 떠서 시선을 집중하니 어디서 본 것 같은 마녀 비슷 무리한 여자가 빗자루를 타고 날아오고 있었다.
그 마녀 비슷무리한 것이 좀 더 가까이 다가오고 나서야 그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마리사인가?」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유카리님이 살짝 놀란 눈치로 물었다.
「너 그 애랑 아는 사이야?」
「아는 사이라기 보다는 조금 안면이 있는 정도입니다.」
「흐응~. 그렇구나. 저 애가 발이 넓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너까지 알고 있을 줄이야.」
그렇게 유카리님과 대화를 나누던 사이에 마녀 모자에 메이드복이라는 희한한 조합의 소녀가 사뿐이 마당에 안착했다. 마리사는 무녀복 차림의 별난 이부키님의 모습에 놀라 하면서 무어라 떠들어대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둘이서 몇 마디 대화를 나누더니 이부키님이 손가락으로 이쪽을 가리키자, 마리사는 여길 향해 시선을 보내다가 이내 손을 흔들어댔다.
뭐가 반가워서 그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도 반사적으로 손을 살짝 흔들어 주었다. 그러다 슬쩍 옆에 앉아 있는 유카리님을 훔쳐보니, 그녀도 나와 똑같이 마리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무에게나 허물없이 대하는 커뮤니티 스테이터스가 높은 소녀가 곧장 이리로 달려오더니 나를 흥미롭다는 듯이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전에 산에서 만났던 아저씨지?」
「어. 맞아.」
갑작스런 물음에 답하자, 마리사의 얼굴에 활짝, 밝은 웃음꽃이 피었다.
「이야~. 이런 곳에 또 만나다니. 엄청난 우연이네!」
「그건 내가 할 말이야.」
「그런데, 아저씨는 왜 여기에 있는 거야? 그것도 유카리하고 같이.」
내 옆에 있는 유카리님에게 시선을 옮기며 묻는 물음에 나는 선듯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혹시나, 이상한 오해라도 하고 있으면 곤란한데.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유카리님이 나대신 설명 했다.
「너 처럼 우연히 만난 것 뿐이야.」
그에 마리사는 바로 납득했다는 듯이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 '오-.'하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카리님은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우리 셋 모두 레이무에게 용무가 있다는 것도 같고.」
「음. 그렇군. 근데─」
마리사에게서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내 얼굴을 아주 유심히 살펴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심스러운 투로 물었다.
「아저씨. 역시, 레이무와 그런 관계인 거지?」
저번의 물음의 연장이었다. 그런데 그 때 보다 더 노골적으로 변했다. 텐구가 레이무를 만나러 하쿠레이 신사까지 찾아왔으니 어찌 보면 그렇게 오해 할만 했다.
나는 즉답했다.
「아마 네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는 아니야.」
「수상한데? 레이무도 산에 새로 온 신과 잘 해결하고 온 것 치곤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거든. 그것도 혹시 아저씨와 관계가 있는 게 아닐까하는 의심마저 든다고.」
「그거야말로 지나친 억측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리사의 의견은 너무 정확해 뜨끔했던 건 비밀이다. 하지만, 사실이라고 해도 긍정 했다간 괜한 오해만 살 게 분명하니 나는 부정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엄지와 중지로 턱을 잡고 의심의 눈빛을 보내는 마리사에게 유카리가 끼어들었다.
「네가 말한 추측은 대부분 맞아.」
「그렇지!? 봐봐, 유카리도 저렇게 말하잖아.」
「유카리님!」
나는 일을 복잡하게 만들려는 유카리님을 항의의 시선으로 쳐다봤다. 그때 마주친 유카리님의 눈은 장난기 어린 빛을 띠고 있었다. 나는 할 말을 잃고 다시 마리사를 쳐다봤다. 마리사는 아까보다 한층 더 흥미진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레이무도 꽤 하는 걸. 그런 쪽으로 전혀 관심 없는 척 하더니만.」
「이봐. 그러니까, 레이무와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저기, 유카리님도 한마디 해주셔야 되지 않아요? 저 같은 텐구가 무녀와 그런 사이라니. 보호자 입장에서는 인정해 줄 만한 상황이 아니잖습니까!」
답답한 심정에 유카리님에게 오해를 정정해 줄 것을 요구하며 호소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기대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별로. 레이무가 바란다면 딱히 반대할 생각이 없는 걸.」
그래도 되는 겁니까!?
아무리 그래도 하쿠레이 무녀와 요괴의 산의 텐구인데, 조금은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아무리 요괴와 친하게 지내도 괜찮아졌다고 해도 남녀 사이가 되면 문제가 달라진다. 그걸 알면서도 그러는 건지, 유카리님은 상관이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저 사귀는 사이 아니라고요!」
이 여자들은 왜 자꾸 나랑 레이무가 사귀는 걸로 아는 걸까. 이거 놀리는 거지? 응 맞아. 놀리는 게 분명할 거야.
억울해서 내지른 나의 외침에도 유카리님은 쿡쿡, 낮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 사귀는 사이가 될지도 모르니까.」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글쎄?」
먼 산을 쳐다보며 모른척 하는 유카리님. 짜증이 일은 나는 불현듯 마리사를 쳐다봤다. 그런데,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는 듯한 얼굴은 뭐란 말이지? 입을 가리고 숨까지 참는 듯 했다.
그리고 「푸하하하하-!」하고 예정대로 터져 나온 폭소.
심하게 웃은 탓에 마리사는 배를 부여잡고 콜록, 하는 기침 소리까지 뱉어냈다.
「이게 무슨 꽁트야-!」
나와 유카리님의 대화가 이 년에게는 우스운 촌극으로만 비쳐졌나.
「아하핫. 아이고 배 아파. 진짜 아저씨는 지루하지가 않네. 레이무랑 진짜 그런 사이라고 해도 제법 어울릴 것 같아.」
「뭐가 어울린다는 거야?」
히죽대고 있는 마리사에게 나는 짜증스레 물었다. 내가 레이무와?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릴 턱이 없었다. 도대체 어떤 점이 어울린다는 걸까. 마리사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검지를 볼에 갖다 대면서 말했다.
「레이무는 겉으로만 봤을 땐, 뭔가 감정이 옅어 보인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초연해 보이는 그런 녀석이거든. 그런데, 알고 보면 나사 빠진 구석이 많아. 이변이나 사건 관련으론 빈틈이 없으면서 일상에서는 허점투성이고.」
「그래서?」
내가 그렇게 본론을 재촉하자, 설명을 이어간 것은 마리사가 아닌, 갑자기 끼여든 이부키님이었다.
「완벽하지 않고 단점도 많다는 거야.」
「그야, 누구라도 단점 한 두 개 정도는.」
「그런 일반론적인 얘기가 아니라고. 너 바보야? 하여간 똥개는 이래서 안 돼.」
내 반론에 이부키님이 한심하다는 눈으로 혀를 쯧쯧, 찼다. 유카리님과 마리사까지 같은 눈을 하고 있어 내가 혹시, 이상한 소리를 한 건가 싶어 동공을 위로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유카리님이 흠, 하고 작게 기침을 하고는 이부키님 다음으로 말을 받아 설명했다.
「레이무에게 너 같이 우유부단하고 속내가 잘 드려나는 쪽이 편하지 않겠어? 게다가 예전부터 알던 사이라서 쉽게 기댈 수 있잖아. 걘 대외적으로 이상적인 무녀로 활동하지만, 마리사 말처럼 일상에서까지 그런 건 아니니까.」
「정리하나 끝내주네. 키야~~! 역시 현자님 클라스는 달라도 뭔가 다르구만.」
이부키님이 무릎을 탁 치고, 공중제비 한 바퀴 돌 기세로 유카리님을 칭찬했다. 그리고 나는 유카리님의 그 설명으로 이제야 마리사가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이해되었다. 그렇게 따지면, 어울리지 않다고 딱 잡아 뗄 수 없지만.
「네가 뭐 때문에 고민하는지 다 알아.」
불쑥, 그런 얘기를 꺼집어 내는 이부키님.
「야 인마. 그깟 입장 차이 따윈 서로 배꼽 비벼서 빼도 박도 못하는 결실을 똭! 만들어 놓으면 그만이야. 서로 사랑하는데, 누가 흉을 봐? 그런 놈 있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정신머리를 뜯어 고쳐 놓을 테니까!」
「어머. 오니라고 못 하는 말이 없네. 여기 미성년자도 있으니까, 상스런 소리 자중하지 그래?」
기세 좋게 저급한 농 같은 소리를 하는 이부키님에게 유카리님이 날카로운 눈으로 째려보며 주의를 줬다. 이부키님 나름 덕담이라고 한 말이지만, 저질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무엇보다 유카리님의 지적처럼 마리사도 있고.
마음은 감사하나, 아직 내가 레이무와 그런 사이가 될 거라고 확정된 것이 아니었다. 최소한 지금의 나는 레이무에게 그런 감정은 없으니까.
「근데 말이야.」
갑자기 이부키님이 불현듯 다른 화제를 꺼내들었다.
「유카리. 너 왜 아직도 그 꼬라지야?」
레이무에게 문답무용으로 공격당해 너덜너덜해진 몰골에 대한 물음이었다. 그 지적에 유카리님은 살짝 연 입으로 「어머.」하고 작게 외쳤다. 그리고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고양이처럼 말아 쥔 손으로 제 머리를 살짜쿵 치며, 「내 정신 좀 봐.」하고 말하면서 혀를 조금 내밀었다.
그 일련의 귀여움을 강조한 행동에 속에서 무언가 올라올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것을 겉으로 드려내지 않았지만, 나를 제외한 오니 한명과 마법사 한명은 참지 못하고 벌써 구토감을 드려내며 역겨움이 가득한 얼굴로 「우웩!」하고 올려댔다.
그런 노골적인 혐오에도 불구하고 유카리님은 「데헷☆」하는 나이를 망각한 주접을 떨며 스키마에 삼켜져 순식간에 이 장소에서 퇴장했다. 나를 포함해 남은 셋은 유카리님의 그 의미불명의 행동에 역겨움을 느끼며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말끔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보라색이 주를 이루는 드레스 차림에 눈을 뗄 수 없었으나, 다시 이어진 귀여운척 주접에 나는 시선을 떨구고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