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쿠레이 신사를 향해 내달리는 두 다리는 무거운 족쇄를 단 것처럼 무거웠다. 아직 아무런 대답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리 갑작스럽게 레이무를 만나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무겁게 한다.
산을 내려가 평원을 지나 곧장 동쪽으로 향한다. 요력을 운용하면 누구라도 하늘을 나는 것이 가능한 곳이지만, 백랑인 나에겐 두 다리로 뛰는 것이 훨씬 빨랐다. 그림으로 그린 듯한 가을 풍경이 순식간에 뒤로 지나쳐가고 환상향의 인간들이 이륙해 놓은 마을도 뒤로 지나쳐간다.
이대로 쭉 가면 곧 짐승길에 당도하여 하쿠레이 신사로 이어지는 산문의 계단까지 금방. 그러나 나는 발을 멈춰 세웠다. 불끈 쥔 오른 손에는 꾸깃꾸깃해진 서신이 쥐어져 있다. 무슨 내용인지는 짐작되지 않으나 내 볼일은 비단, 이걸 전해주는 것만이 아닐 것이다.
부대장. 아니, 같이 생사를 함께 했던 동료들도 알고 있는 나와 레이무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일이 있다. 그 능글능글한 부대장은 그걸 알고 일부로 날 보낸 거겠지. 어쩌면 지금의 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모미지와 레이무, 두 여성에게 양 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 정도니까. 누가 퍼트린 건지 심증은 있는데, 증인이나 물증은 없다. 모미지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완전히 해방한 부대장의 악랄한 장난이 아니겠나.
짜증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억지로 참아내며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하아~ 이래선 안 되겠지. 아무런 말도 준비하지 못한 채 막상 대면하려고 하니, 망설임이 생긴다. 그래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노릇이고, 서신을 전달해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까지 생겼다.
상황은 이처럼 나를 레이무와 만나라고 보채고 있는데, 정작 장본인은 만나기 싫다고 떼쓰고 있는 모습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이런 겁 많은 내 자신이 질릴 정도다.
두려움에 떨리는 마음을 진정 시킨 나는 각오를 다지고 다시 하쿠레이 신사를 향해 뜀박질을 재개했다.
*
한창 모리야 신사에서 주최하는 축제 준비에 열을 올리던 도중, 부대장의 명으로 하쿠레이 신사에 서신을 전달하게 된 나는 몇 번의 망설임 끝에 결국, 신사 입구로 통하는 거대한 산문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저 산문만 지나면 하쿠레이 신사가. 레이무가 있다. 그 사실에 발이 또다시 무거워진다. 하지만, 그럴수록 자신에게 채찍질을 하며 억지로 한 발 한 발 띠었다. 그렇지. 나는 초식 동물이 아닌 늑대다. 곤란한 일이라도 도망치지 말고 정면에서 맞닥뜨려야 백랑인 것이다.
신사까지 이어진 계단의 수를 세어가며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불전함이 안치되어 있는 신사의 본당이 보여 왔다. 그리고 따분한 얼굴로 마당을 쓸고 있는 특징적인 무녀복을 입은..
「이부키님이 왜 거기서 나오는 겁니까!?」
레이무가 아닌, 이부키님이 있었다.
너무 엉뚱한 광경에 나는 잠시, 사고하는 걸 잊고 크게 뜬 눈으로 그 자리에서 굳어졌다. 이 오니는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거기다 하쿠레이 무녀복이라니, 안 어울리는 것도 정도가 있지.
머릿속이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있을 때, 이부키님에게서 날카로운 시선이 쏘아졌다.
「나오면 안 되는 거야?」
「아뇨. 그런 건 아니고..」
뭔가 비위에 거슬린 듯한 반응을 보인 것 같아 황급히 얼버무리는데, 이부키님이 돌연 표정을 바꿔 히죽거리면서 말했다.
「아항~. 그러고 보니, 남에게 이 모습을 보인 게 처음이네.」
그러더니, 해맑은 미소를 지으면서 가슴을 내밀며 당당한 자세로 물어왔다.
「어때? 잘 어울려?」
조금 아닌 것 같다는 솔직한 감상은 죽어도 말할 수 없었다. 그저 비위나 맞추면서 「신선해서 좋네요.」하고 영혼 없는 대답만 내놓았다. 마음에도 없는 아부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부키님은 킥, 웃으면서 「그지?」하고 내 의견에 동감이라는 듯이 말했다.
그런 이부키님에게 나는 당연하게도 신경쓰이는 것에 대해 물었다.
「그런데, 이부키님께서는 어째서 무녀복을 입고 마당을 쓸고 있는 겁니까?」
「어. 그게 말이야. 어제 일에 대한 사죄로 레이무가 신사를 비울 동안에 마당을 쓸어 주기로 했거든. 솔직히 내 능력이면 금방 끝날 일이지만, 기왕에 하는 거니까 일부로 옷까지 차려입고 무녀행세 좀 하는 중이지.」
「누가 봤다면, 무녀가 오니가 되었다면서 혼비백산 하겠습니다.」
「어차피 요괴밖에 오지 않는 신사라서 괜찮아.」
인간 보다 요괴가 찾는 신사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하쿠레이 신사. 붕붕마루 신문을 통해 최근 레이무가 이 일로 인해 골치를 안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부키님은 그걸 딱 잘라 말하다니. 만약, 레이무가 들었다면 여간 속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방금 들은 얘기대로라면 레이무는 현재 부재중이라는 게 된다.
「으음.. 그렇군요. 그럼 레이무는 언제쯤 돌아오는 걸까요?」
「마을의 의뢰다 보니, 언제가 될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죽치고 앉아 있으면 언젠가는 오겠지.」
참 태평한 소리였다. 이쪽은 축제 준비로 마냥 시간을 허비할 수 없는 몸이건만, 무작정 기다리다 보면 된다니. 하지만,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텐구인 내가 레이무를 찾으려 마을에 가봤자, 소란만 일으킬 우려가 크니 말이다. 사실, 내 볼일이 서신만 전해주는 것이라면 이대로 이부키님에게 서신을 맡기고 산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레이무와 만나지도 않고 돌아간다는 게 내키지 않았다. 아니, 이대로 돌아가면 그땐 정말로 겁쟁이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부키님도 계시는데 그런 선택을 취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런 사정으로 인해 선택지는 단 하나 뿐이다.
나는 푸념을 담아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하는 수 없네요. 기다려 보는 수밖에.」
「그래. 네가 레이무랑 제대로 화해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눈이 많으니까,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크크큭. 하면서 몹시도 사악하게 웃는 이부키님의 말이 너무나 걸렸다. 지켜보는 눈이 많다고? 그 말은 즉, 이곳엔 이부키님 말고도 다른 누군가도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런데, 지금으로서는 아무리 둘러봐도 다른 누군가의 기척은 일절 느껴지지 않았다.
긴장한 기색으로 신사 안으로 발을 들이는데, 이부키님이 검지로 본당 오른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으로 가면 별채가 나오니까, 적당한 곳에 앉아서 놀고 있어.」
「네에.」
나는 기운 없는 어조로 대답했다. 그리고는 이부키님이 가리켜 준대로 별채로 걸어가 마당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청마루에 걸터앉아 레이무를 기다리며 시간을 죽이기 시작했다.
*
얼마나 기다렸는지 감도 안 잡힌다. 대략 2시간 조금 안 되게 기다렸지 싶다. 그 동안 레이무에게 어떤 식으로 말을 걸어야 할지. 또 어떻게 해야 그것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을지에 대해 머릿속으로 수십 번은 시뮬레이션하며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렇게 고민한 끝에 나오는 것은 언제나 하나였다.
일단, 직접 만나고 나서 생각하자.
모든 문제를 미래의 나에게 돌리는 해결책이라고 볼 수 없는 자충수.
이런 내 자신이 너무나 한심에 무심코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런데, 그런 나의 행동을 몰래 지켜보면서 수상한 웃음을 흘리는 여자가 있었다.
「후후훗. 그렇게 고민해봐야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아.」
언젠가 들은 적 있는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 기분 나쁜 스키마로부터 상체만 내놓고 있는 요괴 대현자, 야쿠모 유카리가 있었다.
그런데.
음...
「저기 현자님.」
「응, 왜?」
「왜 그렇게 너덜너덜 하신 겁니까?」
나타날 때마다 품위 있는 모습을 보여주던 현자님이 말 그대로 너덜너덜한 모습인 것이었다. 머리에 쓴 나이트캡도 군데군데 찢겨져 있거나 거스름이 묻어 있었고, 도복 또한 나이트캡과 별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짙게 화장을 한 얼굴에도 거스름이 묻어 있었다.
한마디로 피츙~! 한 것 같은 몰골.
그런 당연한 의문에 유카리님은 시선을 살짝 피하고는 조금 부루퉁한 얼굴로 대답했다.
「어제, 저 바보가 한 실언 때문에 모든 일의 배후가 나라는 걸 들켜버렸거든. 그래서 오늘 아침에 다짜고짜 공격당해서 이 꼴이 되었지 뭐야.」
투덜 대면서 불만을 표하는 유카리님은 뭔가 평소답지 않게 귀여워 보여서 나도 모르게 실소를 터트릴 뻔 했다. 이제 딱 세 번 만난 유카리님이지만, 항상 무섭기만 했던 현자로서의 모습 보다 이쪽이 친근감이 들어 호감이 간다.
그런 내 생각이 들킨 걸까?
유키리님이 나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입을 열고 이렇게 툭 내뱉었다.
「뭔가, 괘씸한 생각을 하는 얼굴이네?」
「네? 제가요??」
「그래. 그리고 그거, 자중 안 하니?」
지적에 얼른 고개를 돌려 엉덩이 쪽을 봤더니.
아차차. 이놈의 안 좋은 버릇이 또 발동하고 말았나 보다.
혹시, 나 백랑텐구가 아니라 견텐구였던게 아닐까? 그런 의구심이 강하게 일 정도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흔들어대고 있는 꼬리가 보였다.
무언가 귀여운 걸 봐서 모에하다고 느낄 때 유독 이러더라. 차라리 발기를 하는 게 낫지. 늑대면서 발정기의 개 같은 반응을 보이는 내 자신이 창피해 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