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바람이 어느샌가 매서운 한기를 띄고 여름부터 가을까지 끈질기게 살아남았던 온기를 완전히 없애버릴 기세로 강하게 불어올때쯤, 앨리스는 인형을 데리고 약간의 작은 탐사를 나섰다. 일전에 레이무며 마리사가 꽤나 애먹은 상대들의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서이다.
레밀리아 스칼렛, 레티 화이트락, 루미아까지. 앨리스의 손길이 안닿은 결계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분명히 오랜 기간동안 마력을 공급받지 못해 부숴져버렸어야 할 결계들이 아직까지 그나마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한동안은 인형들이 주변을 분주하게 날아다니면서 자료를 갈무리 해왔고, 앨리스는 그 자료들을 토대로 나름의 공통점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다. 마치 퍼즐의 한 조각이 맞지 않는듯한 느낌이 들었기에 앨리스가 직접 인형들을 대동하여 이전의 결계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몇몇 요괴들의 결계는 접근조차 할 수가 없었다.
사이교우지 유유코의 결계는 명계에 존재하였기에 완전히 죽은 유령이나 반인반령인 요우무를 제외한 다른 사람이 억지로 비집고 들어갈 수가 없다. 일전에 레이무와 마리사가 들어간 적은 있었지만 큰 위험부담을 안고 들어간 만큼 앨리스도 명계의 출입은 자제하기로 했다.
리글 나이트버그의 결계는 완전히 무너져내려 출입 자체가 불가능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어머니인 신키가 세운 결계. 하지만 어디까지나 급조한 결계이기에, 금방 사라지는것도 문제가 아니었다. 아니나다를까 앨리스가 직접 그 장소를 찾아갔을때 결계의 흔적은 물론 마력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몇몇 중요한 결계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었기에, 필요한 정보조차 얻는것이 불가능했다.
앨리스는 약간의 답답함을 느끼며 마지막 남은 결계를 찾아갔다. 코치야 사나에의 결계. 요괴도 아닌 그녀가 '환상'을 만들어 결계까지 칠 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인가.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아니다. 사나에의 마력이 얼마나 대단할지는 모르겠지만, 한낱 인간으로서 '환상'까지 만들어 낼 정도의 마력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다. 설령 그정도의 마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나에의 실력이 레이무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기에 완전히 불가능한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어떻게? 가짜신이 되었을때 그녀가 만들었던걸까? 아니다. 그녀가 가짜신의 힘을 얻기 전부터 만들어져 있던 결계다.
어쩌면 누군가 도와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앨리스는 사나에의 결계로 다가갔다.
손을 뻗자 주변의 공기가 물결치듯 일렁이다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결계의 틈이 사람 한명이 충분히 들어갈 정도의 크기가 되었고, 앨리스는 거리낌 없이 결계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
"역시나 별반 다를건 없네...괜히 헛걸음질만 한걸까?"
앨리스가 결계에 첫 발을 내딛자마자 중얼거렸다. 인형들은 결계 안에 들어가자마자 부산스럽게 주변을 돌아다니며 무언가 도움이 될만한 물건들을 수집해오고 있었다. 사나에의 마력이 깃들어 있던 돌조각이라던가 신사의 울타리 파편같은걸 앨리스의 발 밑에 마구잡이로 내려놓고 있었다.
이래저래 쓸모 없는 물건들이었기에 앨리스는 성큼성큼 신사로 걸어갔다. 주변에 랜스와 방패를 든 인형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기에 요괴에게 공격받을 걱정은 없을것이다. 설령 큰 피해를 입는다 하더라도 인형들이 알아서 앨리스를 집까지 데려가주게 입력 되어있어 죽을 확률은 지극히 낮다.
"음...이 신사...원래 이렇게 깨끗했나?"
화면으로 보던 신사와는 이미지가 많이 달랐다. 빛이 바래고, 나무가 다 삭아가던 신사의 모습과는 달리 방금 지은듯 깨끗하고 정갈했다. 지금 당장 자리를 잡고 산다고 하더라도 이상할것이 없었다.
"코이시의 말에 의하면 제단 앞에 두 개의 조각상을 보았다고 했어..."
사나에의 결계에 들어가기 전, 병원에 아직 입원중에 있던 코이시에게 사전조사를 했다. 사나에의 이야기가 나오자 코이시는 격하게 몸을 떨다 이내 말을 꺼냈다. 코이시는 아직도 그때의 트라우마가 남아있는듯한 모양이었지만, 사실 앨리스에게 사나에를 죽여버린것이 자신인것을 숨기고 싶었음에 나오는 반응이었을 것이며 앨리스또한 그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앨리스는 제단 앞쪽으로 다가가 주변을 살펴보았다. 인형이 밝기를 감지해 눈에 라이트를 켜고 주변을 밝혔기에 더더욱 잘못 볼 일이 없었다. 하지만 앨리스는 자신이 잘못 보았거나, 코이시가 착각했길 바랬다.
제단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있을까 하여 걸음을 옮기려던 와중에 발에 무언가 걸려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이...이건..."
발 아래에 나무 파편이 한가득 널려있었다. 마치 안쪽서부터 폭발한듯이 산산조각이 난 형태였다. 코이시는 그 조각상의 홈에다 구슬을 끼워 넣었다고 했다. 만약 코이시가 건드린 그 조각상이 무언가를 봉인하고 있었던 물건이라면?
"손님이네? 이리 와봐!"
바로 앞쪽에서 들린 낮선 목소리에 앨리스는 마치 뿌리라도 내린듯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살의 없는 목소리, 하지만 그와 반대로 신사 안쪽부터 느껴지는 머리가 아득해질 정도로 짙은 살기.
왜 일찍이 눈치채지 못했던걸까. 이정도의 짙은 살기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자신이 둔해져 버린걸까. 앨리스는 자신을 책망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순식간에 날아오는 차륜을 보고 인형들이 재빨리 방패를 들었지만 차륜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두동강이 나서 추락해버렸다. 차륜은 인형들의 방어에도 불구하고 속도를 줄이지 않고 앨리스에게 날아왔고, 앨리스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크...방심을...할줄이야......"
앨리스는 뜨뜻미지근한 피가 자신의 옷에 천천히 배여가는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누군가가 저벅저벅 걸어오는 소리를 들었지만, 죽어가는 자신이 착각한것이라 생각했다.
------------------------------------------------------------------------------------------------
뭔가 이번 에피소드 이름은 다크소울에서나 나올법한 지명이름이네요
거짓된 신들의 땅. 안돌페라. 뭐 이런거같아요.
하여튼 새 에피소드 시작합니다.
그리고 겨울 챕터도 시작합니다.
전과 다르게 유래없이 어두운 스토리를 보장합니다!
까지는 아니지만
완결이 나서도 찝찝함을 유지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