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건물의 잔해들이 뒤섞인 구덩이의 한 가운데. 슈텐에게 등을 허용하고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한 유기가 충격으로 삐걱 거리는 몸을 일으켰다. 아까의 그 공격으로 척추가 산산조각 나 있었으나, 요력으로 순식간에 치유한 유기는 온전치 않았다. 척추 말고도 몸 전신이 심각한 타박상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단단하기로 유명한 오니들 중에서도 특히나 단단해 금강이라 불리는 몸이다. 그런 몸이 단 두 번의 공격으로 손상을 입어버렸다. 움직이는데엔 문제가 없었지만, 이 이상 공격을 허용했다간 위험했다. 싸움으로 인해 폐허가 된 땅 위로 슈텐이 착지했다. 마치, 가벼운 준비 운동을 끝낸 것 같은 태연한 모습에 유기는 이를 강하게 악 물었다.
어떻게 하면 저 괴물에게 피해를 줄 수 있을까. 전력의 일격을 정면으로 받아 내면서도 멀쩡했던 슈텐에게 어지간한 공격 따윈 통용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 자신이 가진 최강의 패로 승부를 보는 수 외엔 달리 생각할 게 없었다.
오로지 슈텐이라는 최강의 요괴를 쓰러뜨리기 위해 고안한 오의. 아니, 쓰러뜨리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에 대한 인식, 결코 얕볼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만 인식 시키면. 그것만으로 만족하는 유기였다.
그것이 가능할지 불가능 할지는 모든 것을 건 일격에 달려 있었다.
호시구마 오의 「진 일격멸살」
자신을 얕잡아보며 거들먹거리는 슈텐을 사납게 노려보면서 전신의 모든 요력을 해방한다.
그러자, 유기를 중심으로 주변 일대가 격렬한 태풍에 휩싸였다. 무수한 잔해들이 소용돌이치는 사나운 바람에 날려 하늘 위로 치솟았고, 중간 중간 번갯불이 번쩍이며 우레가 쳤다. 그리고 점점 기세를 더해가는 태풍의 안, 슈텐과 유기의 몸이 서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미칠듯 광포한 바람이 폭력이 되어 몰아닥친 것이다. 물론, 슈텐은 물론이고 유기도 그 폭력의 바람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단지, 그 둘의 무거운 몸을 공중으로 띄웠을 뿐. 그것만으로 몰아치는 바람이 얼마나 사납고 강한지 짐작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공중으로 떠버린 슈텐은 전신이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두 발이 지면에 닿아있지 않는 한 안정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 하지만, 맞은 편의 유기는 마치, 땅을 딛고 있는 듯한 자세로 힘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
모든 것을 분쇄하는 폭풍 속에서 유기의 기다란 금색의 머리카락이 어지럽게 휘날린다. 안면을 가린 머리칼 사이로 붉은 눈동자가 사나운 안광을 밝히며 적을 노려본다. 양 주먹을 허리춤에 붙인 채 부풀어 오를 데로 부풀어 오른 몸이 발광하듯 뿜어져 나오는 요기를 몸 안으로 갈무리하여 오의를 발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유기의 필살의 오의.
진 일격멸살이 발해져 나갔다.
그 자리에 힘을 모으던 유기의 인영이 돌연 사라지고, 사나운 붉은 안광이 두 개의 선이 되어 슈텐의 바로 코앞까지 이어졌다. 유관으로는 절대 인식할 수 없는 속도. 허리 뒤쪽으로 뺀 주먹이 슈텐의 복부를 향해 솟아올랐다. 미처 방어를 굳힐 시간도 주지 못한 섬광 같은 공격이었다. 결국, 유기의 주먹은 슈텐의 복부를 강타했다. 그리고 그 직후, 주먹이라는 한 점에 집중된 유기의 모든 전력이 단박에 폭발하듯 터져나갔다.
콰아아앙-!
천지를 찢는 듯한 굉음이 터져나갔다. 주먹이라는 일점에 집속된 유기의 전력이 슈텐의 복부를 관통하고 그 등을 뚫고 저 멀리 하늘 너머로 까지 뻗어갔다. 그것은 하나의 유성의 꼬리를 보는 듯한 검붉은 빛 줄기였다.
이어서 둘을 중심으로 넓게 감쌌던 폭풍이 흔적도 없이 흩어져 하늘을 원래의 맑게 게인 푸른색으로 돌려놓았다. 휘몰아치던 회오리바람도 자취를 감추었다. 거센 바람에 날려졌던 크고 작은 건물의 잔해들도 하나 둘 씩 하늘 위에서 그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두 오니는 아직 공중에 체공하고 있었다. 유기는 자신의 오의를 방어 없이 받은 슈텐의 표정을 살폈다. 손맛은 확실했다. 분명, 자신의 전력이 슈텐의 복부에 정확하게 작렬했다. 그런데, 그 전력을 받은 슈텐의 표정이 일그러짐 하나 없어 불길하기만 했다.
자신의 전력을 쏟아 부은 오의로도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못한 거란 말인가. 실망스런 결과에 유기는 절망감마저 들었다. 결국, 슈텐에게 있어 자신은 그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소로운 존재일 뿐.
그런 우울한 생각이 지배하고 있을 때였다. 슈텐이 유기의 가슴팍을 발로 차서 떨어진 것이었다. 그러더니 공중에서 뒤로 몇 바퀴 돌고 난 뒤, 지상으로 착지했다. 발에 차인 유기는 그대로 기세를 꺾지 못해 잔해 더미 위에 추락해 버렸다.
말 그대로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 부은 유기는 더 이상 일어설 힘조차 없었다. 잔해 속에 파묻힌 채 간신히 상체만 일으킨 그녀는 아직도 빛을 잃지 않은 눈으로 멀쩡해 보이는 슈텐을 쳐다보며 난색을 표했다.
역시 안 통했구나. 입안이 씁쓸해지는 것을 느끼며 한숨을 토해내려는 찰나. 슈텐이 한 손으로 자신의 배를 부여잡는 것이 보였다. 설마하고 미간을 좁히며 멀리 떨어져 있는 슈텐의 변화를 확인하려는 그때였다.
"아야야야야-! 제기랄 존나 아파-!!"
슈텐이 통증을 호소하며 괴성을 내질렀다. 그렇게 소리를 크게 질러대던 슈텐의 입가에 한 줄기 핏물이 흘려 내렸다. 그것을 확인한 유기는 한쪽 입가를 들어 올리며 썩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공격이 처음으로 통한 것이었다.
그것뿐인 일이었지만, 유기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어떠냐! 하는 얼굴로 슈텐을 노려본다. 먼 거리라 그 표정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슈텐은 복부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통증에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이윽고, 비틀거리다 뒤로 벌러덩 넘어진 슈텐이 '학학-'하고 거친 숨을 뱉어내더니 이를 악 물었다.
"아- 아팠다. 아팠어."
그런 감상을 뱉어내더니 몸을 튕겨 단숨에 벌떡 일어섰다. 슈텐은 이미 괜찮아진 듯 했다. 배를 몇번 쓰다듬다가 느릿한 걸음으로 유기에게로 걸어간다. 이미 움직일 힘도 없는 유기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슈텐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윽고, 몇 발자국 앞까지 온 슈텐을 향해 유기는 도발적인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때 내 오의는? 꽤 아프지?"
"그래. 존나게 아팠어."
그 대답에 유기는 큭큭, 낮은 소리로 웃었다. 그런데,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그녀를 엄습했다. 피부가 떨려오는 강대한 요력. 유기는 웃음을 뚝 그치고는 놀란 눈으로 슈텐을 쳐다봤다.
"응? 뭐하는 거야."
"네 오의를 받았으니. 이번엔 내가 오의를 선보일 차례지 않아?"
"자.. 잠만. 난 이제 일어설 힘도 없다고!"
이미 승패는 났건만, 복부에 가해진 장렬한 통증에 대한 앙심을 품었는지. 슈텐의 요력은 용서가 없었다. 다급해진 유기가 손을 저으며 그만두라고 만류했다.
하지만, 이미 그러기로 정한 슈텐의 행동을 막기란 역부족이었다. 아니,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으리라.
"좋아. 보여주지-."
더 없이 불길한 소리. 가볍게 내려친 손날도 자신의 전력의 지르기와 같은 위력이었던 슈텐이다. 그런 그녀의 오의라니. 튼튼함에 자신이 있는 유기라도 그런 미지의 공격을 받고 무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허나,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다면 전력으로 방어할 뿐.
얼마 남지 않은 요력을 억지로 끌어 모아 육체의 강도를 최대한 상승 시킨다. 남은 것은 이제 곧 발해진 슈텐의 오의를 견뎌내느냐 마느냐에 달려있었다.
섬뜩하게 달아오른 슈텐이 두 눈의 안광을 밝히며 사악한 미소로 중얼거렸다.
"아승지계 패귀발파(阿僧祗界 覇鬼発破)"
낭랑하게 울리는 오의.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잔해와 파편, 돌 등이 동시에 허공에 떠오른다. 그리고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 상태로 미동도 않던 무기물들이 조금씩 떨리더니 부셔지면서 가루가 되어갔다.
슈텐의 끝 모를 요력에 잠식당한 세계는 온통 붉게 물들었고, 모든 것을 제 손아귀에 있다는 듯 이 세계의 주인이 갈퀴처럼 펼친 양손을 좌우 대각선 위로 전개하고 어깨 넓이로 벌린 두 발을 지면에 단단히 박아 넣는다. 그것은 흡사 피포식자를 덮치는 포식자와 같은 자세였다.
유기를 온 몸이 찌릿찌릿하는 것을 느끼며 본능적으로 공포에 휩싸였다. 줄곧 잊고 있었던 감정이 되살아난 것이다. 저항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도 태연할 줄 알았던 자신이 떨고 있다니. 발해지는 오의를 앞에 두고 느낀 두려움. 유기는 아직 자신에게 나약한 면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에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건 결코 나약함 때문이 아니었다.
누구라도 세상이 부셔지는 듯한 슈텐의 오의를 눈앞에 둔다면 두려움에 질러 미쳐버릴 것이다. 범인이라면 그 자리에서 졸도하여 명을 달리할 것이다. 아무리 사나운 맹수라 할지라도, 잔학무도한 요괴라 할지라도 슈텐의 힘 앞에서는 한낮 겁먹은 작은 초식 동물이 되고 말 것이다.
대지를 찢어발기는 흉포한 패력이 슈텐의 전신에서부터 발해져 나간다. 유기는 재빨리 몸을 굽히고 팔을 교차하여 전신을 방어했다. 그러나 그 자비 없는 폭력의 파도는 유기의 전신을 삼켜, 거대한 파형을 유지하며 도시를 갈라놓았다.
쿠콰콰콰콰-!
슈텐의 오의가 휩쓸고 난 자리에는 파편은커녕 돌멩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모든 것을 무(無)로 되돌린 듯 끝없이 이어진 파인 자국을 제외한 티끌도 남아 있지 않은 깔끔한 황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단 한명. 대지를 가르는 그 파괴의 파형에도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존재가 있었다. 남은 힘을 전부 짜내 방어에 전념했던 호시구마 유기. 그녀의 몸은 살점이 여기저기 뜯겨나가 안의 뼈가 노출되어 있었고, 선혈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제 아무리 불사력이 강한 요괴라 할지라도 이 정도까지 상처투성이라면 살아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오니라 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유기는 평범한 오니가 아닌, 투귀라 불리던 최강의 오니 중 한명. 그런 몰골인데도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요력을 완전히 소진 시킨 바람에 그녀의 목숨은 바람 앞의 등잔불. 이대로라면 회복하기 전에 명을 달리할 지도 모를 일이었다.
맘껏 자신의 오의를 펼친 슈텐은 한쪽 팔을 붕붕 휘두르면서 처참한 몰골이된 유기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양 입가를 활짝 찢어 올리면서 자화자찬의 말을 뱉어냈다.
"어때? 방금 생각해낸 오의인데, 끝내주지! 캬~ 위력도 위력이지만, 작명도 잘 되었다니까. 아승지계 패귀발파! 이렇게 까지 죽여줄 줄이야! 하마터면 너도 죽여줄 뻔 했고."
제 잘났다는 듯이 크하하하핫-! 하고 크게 웃는 슈텐. 목숨만 겨우 부지하고 있는 유기가 없는 힘을 쥐어 짜내 대꾸했다.
"어이없어.. 이미 패배를 선언한 상대한테 그렇게 쇄기를 박아야 직성이 풀리냐 넌."
"그 쪽이 오의를 선 보였으니, 이쪽도 선 보여야 공평한 거 아니겠어?"
"ㅆㅂ... 덕분에 죽을 뻔 했어."
"안 죽었으니 됐지. 죽었으면 그 뿐이고."
"핫! 그래, 네 말대로 죽으면 그 뿐이지. 그리고 말이야, 주변을 한번 보라고."
유기의 말에 따라 슈텐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봤다. 보이는 것이라곤 잡초 하나 없이 휑한 바닥과 잘게 부셔진 파편 등, 파괴의 흔적만이 있었다. 그나마 멀쩡한 데라곤 자신들이 싸웠던 곳과 멀리 떨어진 장소뿐.
처참한건 유기의 몸만이 아니라 이 도시 전부였다.
유기는 어이없다는 듯 공허한 웃음을 흘렸다. 이것 보라고 우리가 벌인 파괴 현장을. 아무리 패악을 일삼는 오니라도 이쯤 되면 천재지변이 따로 없었다.
"시원하게 박살났네."
하지만, 정작 파괴를 일삼은 장본인의 감상은 그게 다였다. 유기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짜증 섞인 투로 말했다.
"그래. 죄다 박살냈어."
우리가 말이지.
무의미한 살생은 좋아하지 않는 유기로서는 뼈저린 실책이었다. 성문 밖으로 끌어내서 싸웠어야 했나. 입안이 텁텁한 건 비단 토해낸 피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미 지난 일에 대해 후회한들 무슨 소용인가. 흘린 피가 너무 많아서인지 머리가 멍해져왔다.
몽롱해진 정신으로 자신을 받은 슈텐의 오의를 떠올려보며 힘을 다한 유기는 천천히 눈을 감고 긴 수면에 빠져 들었다. 이후, 그 상태로 방치된 유기를 토라구마와 구마 형제가 와서 회수해 갔다.
싸움이 일단락된 슈텐 일행은 다시 한 장소에 모여 의견을 나누었다. 유기와의 싸움으로 도시가 반파된 지금 다시 영주를 벌하는 일을 재개하기가 어려워 졌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벌을 받을 당사자가 잔해 더미에 깔려버렸으니, 어쩌겠는가.
죽은 자를 벌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들은 저지른 일에 대한 뒤처리는 생각도 않은 채 이대로 돌아가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