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 경비 임무를 담당하는 초계 텐구의 부대장. 이누바시리 히데오에 대한 텐구들의 인식은 팔방미인이라는 단어 하나로 정리가 가능했다.
무예에 능하며 부하들의 신임이 높은 부대장의 지위에 이 보다 적격인 자가 없는 텐구. 게다가 외모까지 훤칠하니 사뭇 수많은 여심으로부터 최근 10년간 가장 사귀고 싶은 텐구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렇듯 그는 흠잡을 데가 없는 그야말로 진정한 백랑의 귀감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인간이 아닌 백랑텐구이긴 하나 이누바시리 히데오에겐 결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촌 여동생인 이누바시리 모미지를 끔찍이 귀여워하며 아낀다는 것이었다.
어찌나 심하던지 모미지와 관련이 되면 이성을 상실하여 눈이 뒤집히기 까지 했으니, 어떻게 보면 중대한 결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변함없는 신임과 존경을 받는 등 팔방미인이라는 평가에 변함이 없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덕망이 높은지 짐작 해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즉, 히데오는 그런 결점 따윈 자신의 명성에 아무런 흠집도 내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텐구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그는 우울했다.
그것은 부하의 존경을 받는 덕망 높은 초계텐구 부대장. 팔방미인에 얼굴도 잘생긴 완벽에 가까운 백랑텐구인 본인에겐 심각한 것이지만, 주변인에게는 별 일 아닌 사소한 일로 치부되고 있었다. 모미지와 관련된 일이었기에 더 그렇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러다 금세 기운을 되찾겠지.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여동생 바보의 모습으로 돌아가겠지. 그런 식으로 가깝게 지내는 부하들마저 단순한 해프닝으로 여길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 그가 겪고 있는 우울은 다름 아닌 그 모미지와 마음속으로 결별을 선언 했기에 생긴 성장통 같은 것이었다.
*
계기는 대텐구님의 훈계였다. 모미지로부터 그만 독립하라는 그 말씀. 평소의 그였다면 가볍게 흘려 넘겼을 터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때의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녀의 말이 조약돌이 되어 잔잔한 그의 가슴에 강한 파문을 일게 한 것이었다.
사실은 진즉 깨달고 있던 사실을 재확인 했을 뿐이었다. 모미지에게 집착하는 자신이 얼마나 꼴사납고 형편없는지를. 그럼에도 집착을 떨쳐내지 못한 것은 단순한 나약함. 그리고 완벽함이라는 화려한 겉면에 가려진 무미건조한 삶 때문이었다.
부대장이라는 직책을 수행하며 살아오는 동안 그에겐 다른 별 다른 즐거움이 존재하지 않았다. 언제나 완벽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자신을 갈고 닦는 한편, 부하들과 적당히 대하고, 상급자에게도 틀에 박힌 예를 보이기만 하는 나날. 그 덕분에 존경과 명망을 받는 존재가 되었지만, 정작 이누바시리 히데오라는 개인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뒤늦게 진정한 자신을 찾아보려 애썼으나 잘 되지 않았다. 혹, 부하에게 미덥지 못한 모습을 보이게 될 까봐, 완벽이란 탈을 계속 써야만 했고 그럴수록 자기 자신을 죽여야만 했다.
그 결과, 그는 사랑스럽기 마지않는 사촌 여동생을 집착하는 볼썽사나운 남자가 되었다.
그리고 현재 그 볼썽사나운 모습에서 벗어나 보다 더 완벽한 무결점 텐구로 거듭나려 하고 있었다.
그 반동으로 우울증을 겪고 있긴 하지만.
*
자신의 심적 상태와 관계없이 모두에게 모범을 보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리 완벽함을 연기한다해도 가까운 주변텐구에게 울적한 속내를 들키고 마는 것은 필연이었다. 평소 같이 행동해도 한 순간 내보인 나라를 잃은 망국의 왕자 같은 표정은 숨기지 못했던 탓이었다. 그 찰나의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 챈 것은 한때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동기인 카자네 소우지였다.
「모미지에게 미움 받기라도 했어요? 왜 그렇게 서글픈 표정입니까?」
걱정스레 묻는 말과는 반대로 소우지의 얼굴은 마냥 즐거워 보이기만 했다. 그 역시 히데오에게 좋은 감정이 없는 텐구였기에 평소와 사뭇 다른 그의 모습을 잔뜩 놀려댈 심산이었다. 히데오는 태연한 얼굴로 둘러댔다.
「내가 그런 표정을 했었나?」
서투르게 얼버무리는 모습에 소우지의 장난기는 한층 더 커졌다.
「아, 그러고 보니 제가 잘못 생각 했네요. 모미지에게 미움 받는 게 일상인 부대장이 그런 일로 침울해 있을 리가 없으니까 말입니다.」
반은 조롱 삼아 한 말이었지만, 나머지 반은 진담이었다.
집착으로 인해 모미지로부터 미움 받기 십상인 히데오가 고작 그런 일로 울적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는 듯 히데오는 폐의 공기를 모조리 뱉어내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역시, 심각한 일이라도 생긴 거죠?
「심각하다면 심각한 일이지. 내가 모미지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게 되었으니까.」
소우지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실토하는 히데오의 말이 상당히 충격적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우선 제 귀를 의심했다. 모미지와 자신의 사이를 방해하기 위해 틈만 나면 난입해 와서 자신을 보며 죽일 듯 짖어대던 그 부대장이. 그러다 결국 모미지에 의해 반죽음 상태로 쫓겨나던 그 부대장의 입에서 절대 나오지 않을 부류의 얘기였다.
「그건 즉, 제가 모미지와 뭘 하든 상관없다는 말입니까?」
의심이 담긴 조심스런 물음에 히데오는 허심탄회하게 내뱉었다.
「그래. 너랑 물고 빨고 자빠져도 상관없어졌다고. 그게 진정 모미지가 원하는 거라면 난 아낌없이 응원해 줄 거야. 볼썽사나운 집착 따윈 이제 안 해.」
그것은 거짓하나 없는 진담이었다.
혹시나 자신을 떠보려고 한 말이 아니었나, 잠깐 의심을 했던 소우지는 초연한 듯 해탈한 그의 모습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 입을 헤벌린 얼굴로 굳어졌다. 그리고 자신의 눈앞에 있는 텐구가 정말로 자신이 아는 그 부대장이 맞는지조차 의심하기 시작했다.
「누구냐 넌. 지금 당장 정체를 밝혀라!」
누군가에겐 바보 같아 보이는 모습이지만, 소우지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모미지와 관련해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부대장에게 시달렸던 것을 떠올려 본다면 달리 생각해 볼 것도 없었다. 즉, 지금의 부대장은 부대장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가장을 한 것. 우스운 일이지만, 지금의 소우지에게 부대장이란 고작 그 정도의 인식이었다.
갑작스럽게 태도가 돌변해 적대시하는 소우지의 모습에 히데오가 당황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평소의 자신과 다르다고 해도 다짜고짜 신변조사라니. 초계 임무를 띤 백랑텐구라면 바람직한 대응이라고도 볼 수 있었지만, 괘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뭐라고 하는 거야? 내가 가짜라는 말이야?」
「그렇다. 당장 정체를 드려내 부대장으로 변장한 이유와 목적을 밝혀라!」
「너 정말....」
히데오는 기가 막혔다.
아무리 모미지에 대한 일로 괴팍하게 굴었다곤 하나 자신을 진심으로 가짜라 여기는 건 너무한 처사였다. 그렇다고 지금 신분을 증명하려 해봤자, 쉽게 믿지 않겠지. 성가셔진 상황에 히데오는 미간을 좁히고 골똘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이럴 때 어떡해야 저 바보가 자신이 진짜인 것을 알아줄까? 뾰족한 해답이 나오지 않자,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역시, 전 처럼 여동생 바보인 편이 나았어. 그런 체념 담긴 후회도 잠시, 히데오는 아무래도 좋아져 버렸다.
「됐어. 맘대로 생각해.」
「드디어 실토하셨구먼. 역시, 가짜인가!」
여전히 착각에 빠져있는 소우지를 그는 짜게 식은 눈으로 쳐다보며 자리를 옮겼다. 요구에 대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지만, 소우지가 그를 쫒는 일은 없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히데오에 대해 내심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동기이자, 직속 부하인 소우지와 헤어진 히데오는 순찰을 위해 다른 부하의 근무 영역에 발을 들였다.
*
소우지 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부하들에게서도 비슷한 반응을 본 히데오는 그때부터 지금의 자신이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 깨달았다. 자신은 조금 울적할 뿐이라 여기고 있었는데, 제 삼자의 눈으로는 다른 모양이었다. 특히, 모미지에 대해서 집착을 보이지 않는 초연한 태도가 결정타였다.
그게 아니더라도 간간히 내비치는 표정에선 침울함만이 아닌 깊은 고뇌가 담겨진 것을 그와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낸 텐구들이 모를 리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도 모르는 세에 수척해져 있었다. 양 볼이 홀쭉해진 것을 보면 승복 아래의 몸은 얼마나 말라 있을지 얼추 짐작이 갈 정도였다.
넓은 요괴의 산 전역에 배치되어 있는 부하들을 만나보고 순찰을 마친 히데오는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와 이부자리에 쓰러지듯 몸을 뉘었다. 그리고는 지친 얼굴로 한숨을 뱉어냈다.
고되었던 하루 일과 탓인지, 아니면 부하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는 자책 때문인지. 그는 공연히 짜증이 일었다.
마냥 누워만 있을 수 없었던 그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그의 몸이 휘청 거리더니 다시 이부자리 위에 풀썩 엎어졌다. 몸의 용태가 엄청 나빴던 것이다. 그걸 미처 깨달고 있지 못한 히데오는 그 자세로 울분을 삼키며 그대로 수마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아침.
평소 보다 조금 늦게 눈을 뜬 히데오는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무리하게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역시, 얼마 가지 않아 휘청 거렸다. 기운 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은 그는 자신의 이마를 집혀 보며 열을 재었다. 인간들에게 경외를 받는 텐구라 감기일 리는 없는데도 열이 나는 듯 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현상에 그의 얼굴에 쓴웃음이 걸렸다. 다만, 지금 몸이 무지 좋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결국, 외출을 포기하고 그대로 앓아누운 그에게 대텐구가 직접 찾아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출석을 놓치지 않던 텐구가 이제 와서 무단결근을 한 것이 범상치 않아서였다. 피치 못할 일이 생긴 거겠지. 오랬동안 쌓아온 신뢰가 대텐구로 하여금 그의 신변을 걱정하여 몸소 행차하게 만든 것이었다. 그 아닌, 다른 텐구였다면 이는 있을 수 없거니와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정각을 훌쩍 지나 저녁놀이 질 때쯤 찾아온 대텐구는 곧장, 그가 누워있는 침소로 들이닥쳤다.
그리고 병상에 누워 병치레중인 것과 마찬가지인 몰골에 복잡한 감정이 서린 탄식을 뱉어냈다.
「에이, 이놈아. 이게 무슨 꼴이냐?」
자신이 자랑하던 그 부대장이 맞는지도 의심스러운 꼴이었다. 살짝 옅은 잠에 들었던 히데오가 호통에 낮은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그리고 뒤늦게 그녀의 방문을 알게 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다하려고 했으나 곧바로 제지당하고 말았다.
「됐다. 그대로 누워 있거라.」
「허나, 그럴 수는..」
「가누지도 못하는 몸으로 일어나 봤자, 흉하기만 할 뿐이다.」
이유를 듣고 간신히 납득한 히데오는 상체만 일으킨 자세로 대텐구를 맞이했다.
「헌데, 대텐구님께서 어인 일로 이 누추한 곳을 찾으신 겁니까?」
예의상 묻는 뻔한 물음에, 대텐구는 피식, 코웃음 치며 말했다.
「그걸 말이라고. 니네석이 걱정 되서 찾아 와봤어.」
「걱정을 끼쳐 드렸다니, 송구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몸이 안 좋은데, 별 수 있겠나.」
그리 말한 대텐구는 없는 담배를 아쉬워하며 입을 쩝 다셨다. 그녀의 시선이 찬찬히 핥듯이 히데오의 상체를 훑고 지나간다. 진지한 빛을 띤 대텐구의 시선이 그의 눈과 똑바로 마주했다.
「우리 텐구. 아니지..」
말을 하다 도중에 끊은 그녀는 쓰게 웃으면서 머리를 살짝 흔들었다. 그러더니 바로 이어 말했다.
「모든 요괴들은 육체의 질병에는 강하지. 어지간한 병균 따위 이겨 내고도 남을 정도로 튼튼해. 특히 텐구 정도의 요괴가 되면 병사하는 일은 매우 희귀한 일일 거다. 하지만.」
다시 말을 끊은 그녀의 눈은 사뭇 뜨거운 열기를 띠고 있었다. 그 강렬한 시선에 히데오는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시선이 말라붙어 쩍쩍 갈라진 입술에 고정 되었다.
「마음의 병은 연약한 인간에 비해 취약한 것이 요괴이기도 하지. 관념이 만들어낸 불안정한 육신에 혼을 담고 있을 뿐인 존재 일수록 더욱. 우리 텐구도 썩 다르지 않아. 지금 네 꼴을 보면 자명한 사실이니까.」
책망하는 것인지, 아니면 안타까운 것인지. 대텐구는 혀를 쯧쯧 차며 시선을 거뒀다. 그리고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나직이 얘기했다.
「네가 그 꼴인 것은 내가 한 말 때문인 거지?」
히데오는 바로 아니라고 부정하려 했지만, 그 보다 대텐구의 말이 빨랐다.
「아니라고 말 하고 싶겠지만, 내 연륜을 우습게보지 마라. 이래 뵈도 너 보다 곱절은 더 살은 몸이니까.」
「하오나..」
「일단, 내 얘기를 끝까지 들어 보거라, 이놈아!」
수긍하지 않는 듯한 히데오의 말을 잘라낸 대텐구가 타이르듯 호통을 쳤다. 한 순간에 기가 죽은 히데오는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낮췄다. 메마른 입술 사이로 신음이 새어나오는 듯 했다. 대텐구는 입술에 침을 바르고 얘기했다.
「나는 조언 삼아 쓴 소리를 했을 뿐인데, 설마 그 지경이 될 정도로 기운 없어질 줄은 몰랐다.」
미안한 눈초리로 히데오를 흘깃 쳐다본 그녀는 한숨 같은 목소리로 담담하게 이어 말했다.
「내 한 마디에 넌 아마도 삶의 의미를 잃고 만 거겠지. 그것은 지금까지의 네 삶이 사촌 여동생에게 집착하는 것 외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 반증인게야.」
정곡을 찌르는 말에 히데오는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자신에게서 모미지에 대한 집착을 떼어내고 나니 남은 것은 허무였으니, 쇠약해 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대로 계속 쇄약해지다가 종국에는 말라죽는 거란 말인가. 그리 생각하니 허탈해서 헛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말없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에게 대텐구는 답답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이대로 체념할 생각인 게냐? 그렇다면 내가 한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게로구먼.」
그녀의 눈엔 실망의 빛이 어려 있었다. 자신이 총애하던 부대장이란 녀석이 고작 저 정도 밖에 안 되는 사내일 줄이야.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머리가 돌아가는 녀석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된 이상 더는 볼 일이 없다고 여긴, 그녀는 고개를 돌려 이만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히데오가 다급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러 세웠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 겁니까?」
「그 정도는 스스로 생각해라. 너 바보는 아니잖으냐!」
그리 일러준 뒤, 대텐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히데오의 침소를 나섰다. 그리고 한참 후, 혼자가 된 그는 초점 없는 눈으로 대텐구가 서있었던 장소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겨 들었다.
그녀의 말은 고민해 볼 필요도 없이 간단한 것이었다. 모미지에 대한 집착 외엔 삶에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않았던 자신에게 달리 의미를 가질만한 것을 찾으라는 것. 말은 쉬웠지만, 막상 찾으려고 들면 보이지 않는 법이었다.
모미지와 동등한 수준의 것을 대체 어디서 찾아야 한 단 말인가.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너무도 어려운 난제였다.
그때 였다. 이마를 짚은 채 난처해 하는 그에게 대텐구가 돌연, 그의 침소를 다시 찾았다. 문 앞에서 상체만 쑥 내민 대텐구가 잊은 게 있다는 듯 입을 열고 말했다.
「아참. 깜빡하고 이 말을 안 전해줬구나.」
고민에 잠긴 얼굴로 슬그머니 고개를 틀어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그에게 조언 삼아 이렇게 얘기했다.
「너에 대해서는 한 동안 병가로 처리할 터이니, 이참에 바깥세상이나 구경하면서 기분 전환이라도 하 거라.」
그리고는 제 할 말 다 전했다는 듯 모습을 감추어 흔적을 지웠다. 뜻밖의 발언에 히데오는 잠시, 멍해졌었지만 대텐구의 말대로 가끔은 바깥세계에 나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어차피 이 상태로는 제대로 된 근무는 가능할 것 같진 않고, 집안에 누워만 있을 바에야 차라리 바람이나 씌어 수선스러워진 마음을 정리하는 편이 나은 것이었다. 그는 그런 기회를 준 대텐구님의 배려에 감사해하며, 상체를 뒤로 눕혔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바깥세계에 나가서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낼지에 대해 곰곰이 고민하다가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