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2년 가까이 업로드 중단했던 소설을 다시 연재하기 시작했음.
아래 링크는 전편이 올려져 있는 조아라 주소임.
http://www.joara.com/literature/view/book_intro.html?book_code=1066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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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의 삶은 매일이 떠들썩하며 피곤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모미지와 그런 여동생에게 집착하는 부대장의 출입으로 내 집은 안락한 보금자리와는 꽤나 멀어져 버렸다. 이게 다 단호하지 못한 내 태도가 불러온 참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불만이 없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는 사이에 시간은 눈 깜짝할 세에 흘려갔다. 벌써 4년이란 세월이 흐른 것이었다.
세월도 참 빠르다 싶다.
요괴의 산으로 귀환하고 나서 4년이라니.
이 생활에 완전히 적응해 버린 지금에 와서는 바깥세상에서 일들이 모두 꿈처럼 느껴질 정도로 오랜 옛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유일하게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리는 것이 있었다.
레이무였다.
그 얘에 대한 소식은 요즘 들어 부쩍 많이 들려온다. 하쿠레이의 비술을 완전히 체득하여 지금은 본격적인 하쿠레이 무녀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상 말단이나 다름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윗 대가리들이 하는 말로는 역대 하쿠레이 무녀 중에서도 특출난 재능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야쿠모 유카리가 나 더러 감사를 표했던 거구나.
본의 아니게 레이무를 환상향의 사정에 끌어 들여 버린 나는 지금도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그때 내가 그 아이를 어떻게 해서라도 떼어 냈더라면 지금쯤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요괴 대현자가 말했다.
하쿠레이 무녀는 그 아이 스스로가 선택한 길이라고.
정말로 그런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 대현자가 나 따위에게 일부로 그런 뻔한 거짓말을 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래. 이런 일은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면 되는 일이다. 이번 대의 하쿠레이 무녀. 레이무에게.
언제쯤 그 기회가 올지는 모르나 만약에.. 정말 만약에. 레이무와 만나게 된다면 나는 그 아이의 진심을 들어보고 싶었다.
*
「아-. 따분하다.」
나는 입가가 찢어질 정도로 입을 쩌억 벌리면서 하품을 크게 했다. 누가 봤다면 참말로 칠칠지 못한 모습일 것이다. 그래도 뭐 어떤가? 지금 이곳엔 나 혼자 뿐인데.
백랑텐구의 비번 날은 대게는 이렇게 따분하기 짝이 없다. 특히, 오늘 같은 날은 모미지도 찾아오지 않고, 그 덤인 부대장 역시 찾아오지 않는다. 그 점은 오히려 나에게 있어 다행이지만, 대신이라고 해야 하나. 지금 나는 따분함을 맛보고 있는 중이었다.
4년이란 세월 동안에 캇파들의 노력에 의해 텐구들의 주거지는 각종 수도 시설과 전등불 하나 밝힐 정도의 전력이라는 근대의 이기를 일부분 맛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 뿐. 나의 따분함을 지울 만한 tv도 pc도 게임도 잡지도 어느 것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근대의 오락을 즐기려면 최소한 바깥세계로 부터 그러한 문물을 가져와야 하니까 말이다.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곤 하나, 여전히 폐쇄적인 텐구 사회에서 그러한 것들은 용납될 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황금 같은 휴일 날에 다다미 바닥에 누워 하릴없이 빈둥빈둥 거리고 있는 중인 것이다.
「조용한 건 좋긴 한데...」
너무 지루하다.
결국, 따분함을 이기지 못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뭐라도 하기로 했다. 생각해 보건데, 여태 동안 나는 이곳에서 건전한 시간을 보낼 만한 취미를 무엇 하나 가지지 않고 있었다. 휴일 마다 따분함을 느끼는 건 분명, 근대의 오락에 익숙해져 다른 놀이거리를 멀리한 나 자신에게 원인이 있을 지도 모른다.
원인을 알았으니,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 인지상정. 나는 즉시, 행동으로 옮기기로 했다.
「이런 일에는 치도리가 소상할지도.」
아직, 잠기운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는 다시 한 번 크게 하품을 내뱉은 뒤, 현관쪽으로 엉기적거리며 걸어갔다. 그리고 바지에 손을 넣어 사타구니 근처를 벅벅 긁으며 문을 활짝 열었다.
「하아암.」
하품이 연이어 뱉어져 나온다. 하늘로부터 따가운 햇살이 내 안면에 그대로 쏟아져 내린다. 눈이 부신 나는 손바닥으로 햇살을 가린 채 살짝 뜬 눈으로 정면을 바라 보았다.
한 여름의 산속답게 온통 녹음으로 우겨져 있었다. 지저귀는 새 소리라던가 찌르르하는 풀벌레 소리. 그리고 시끄럽게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로 내 귀를 어지럽힌다. 나는 단정치 못한 옷차림을 정돈 하고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유우센 치도리.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소꿉친구이자, 캇파인 그녀는 산이나 계곡에서 즐기는 놀이에 통달한 놀이의 귀재였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녀라면 틀림없이 휴일을 보낼 만한 취미거리 하나 정도는 알려 줄 것이다.
만약, 그녀도 나에게 맞는 취미거리를 알려주지 못했다고 한다면, 하는 수 없다. 동료 백랑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수밖에. 그들은 경비대 업무가 없는 비번 날, 주로 장기라던가 사냥 등으로 시간을 보낸다는 듯하다. 물론, 어느 것도 나한테 맞지 않는다.
좀 더, 느긋하게 아웃도어 적인 게 좋은데...
장기 말고.
취미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을 때였다.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그도 나를 발견 했는지, 넉살 좋은 얼굴을 하고서는 이리로 오고 있었다.
「여어-. 소우지!」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더워지는 과체중 백랑텐구, 토도키였다. 그도 오늘 비번이었는지 병장기 없는 가벼운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땀내 나는 몸을 이끌고 나에게 다가온다.
「이 이상 다가오지 마!」
더운 여름에는 반갑지 않은 녀석이었기에 나는 그만 그의 접근을 불허했다. 토도키는 잠깐, 걸음을 멈추는가 싶더니 이내 실실거리며 기어이 땀내 사정권 안으로 침입해 들어오고야 말았다. 토도키가 헥헥 거리며 말해왔다.
「비번인데도 밖에 나와 있다니. 별일 이네.」
「집에 누워만 있는 것도 지루해서 말이지. 근데, 너 왜 이렇게 숨차 있는 거야?」
「아.. 그게 말이지.」
안 그래도 몸에서 영 좋지 못한 체취를 풍기는 녀석인데, 헥헥 대며 땀까지 흘리고 있으니, 내 코가 영 안녕하지 못했다. 내가 냄새로 인상을 찌푸린 것을 아는 지, 녀석은 한쪽 팔을 들더니 거기에 코를 들이 대고는 킁킁 대며 자신의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는 두 눈을 크게 뜨며 약이라도 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앜! 냄새 쩐다!」
「그래서? 대낮부터 왜 땀범벅이냐고?」
나는 강하게 추궁했다. 저 놈의 땀 냄새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토도키는 변함없는 태도로 내 질문에 웃으면서 답했다.
「요즘 몸이 둔해진 거 같아서, 아침 일찍부터 운동을 하고 있었거든.」
이 얼마나 기특한 녀석이란 말인가. 비번 날에도 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다니. 저놈이야 말로 백랑의 귀감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건 제 사정이고. 저 녀석이 몸이 둔해 빠진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하필이면 왜 나와 마주친 오늘에서야 운동으로 땀범벅이 된 거냔 말이다. 냄새 나니까, 제발 운동 후에는 좀 씻고 다니면 안 되냐는 말이 목구멍을 타고 턱밑까지 올라왔다.
그 진심 100%인 말을 삼킨 대신이지만, 나는 이전부터 생각해 왔던 것을 입에 담았다.
「부대장에게 바깥세계에 가서 데오드란트 좀 대량으로 구입해서 가져오면 안 되냐고 물어봐라.」
「데오드란트? 그게 뭔데?? 그런 거라면 네가 부탁해야지.」
「아니. 네가 해야 돼. 냄새 쩌는 네가 부탁해야 설득력 있으니까.」
토도키는 생각에 잠긴 얼굴을 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듯 했다.
「그럴지도.」
녀석도 아는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지독한지에 대해.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도 기분은 별개인 법이다. 토도키는 조금 침울한 어조로 말했다.
「그런데 조금 충격일지도.」
「뭘, 네가 냄새 나는 건 같이 근무서는 백랑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그래도 고집 센 부대장을 설득하는 레벨일 줄은..」
녀석이 침울한 이유는 그것이었다. 예전부터 자신이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설마 부대장이 단박에 오케이 사인을 내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잠깐, 그런데 말이야.
어떻게 모를 수 있지?
아무리 자신이 스스로의 냄새에 둔감하다고 해도 그렇지. 주변에 같이 있던 애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보면 감이 올 거 아냐! 저 녀석의 둔감함은 어쩌면 청각에 장애가 있는 라노벨 주인공 이상일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걸로 자신의 냄새가 얼마나 악취인지 깨달았을 테니, 다행 일러나.
「괜찮아. 데오드란트란 게 땀 냄새 제거제니까, 부대장한테 구해 달라고 해봐. 아, 이참에 우리 부대만이라도 냄새로부터 좀 자유로웠으면 하는데.」
좋은 기회였다. 저 냄새나는 녀석이 울고불고 늘어지면 제 아무리 부대장이라도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참에 우리 부대원들 수만큼 보급하는 방향으로 흘려 갈지도 모른다. 나는 녀석을 다독이면서 그런 기대를 가져 보았다.
토도키는 금세 기운을 되찾아 희희낙락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이번엔 그가 나에게 물었다.
「근데 소우지 너 말이야. 오늘 할 일 없지?」
「으음.. 딱히 할 일은 없지만, 대신이라고 해야 하나.. 비번 날에 할 만한 취미거리를 찾고 있는데 말이야.」
나는 검지로 볼을 긁으며 머쓱한 얼굴을 했다. 토도키가 그런가? 하는 시선으로 쳐다보더니, 헤에-, 하고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무언가 불손한 것을 생각하는 눈으로 말했다.
「그런 거라면 딱 맞는 취미가 있는데.」
「미리 말하지만, 장기나 사냥은 사절이야.」
「너랑 알고 지낸 세월이 얼만데, 그걸 모르겠어? 너한테 딱 맞는 취미가 있다 이 말씀이야.」
「그렇게 형편 좋은 취미가 있을 리..」
나는 말을 끊고, 부정적인 생각을 그만 두었다. 저 녀석이 저렇게 까지 말하는데, 조금은 들어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였다.
「좋아. 일단, 들어보지.」
내가 생각을 바꿔먹자, 토도키는 퍽 수상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도시락을 싸서 근무 중인 네 애인한테 가는 거야. 그리고는 알콩달콩한 시간을..」
「닥쳐! 그게 뭐가 취미야!」
나는 끓어오르는 열을 삼키지 못하고, 성난 고함을 버럭 내질렀다. 농담이라도 질이 나빴다. 모미지가 찾아올 걱정이 없는 귀중한 시간을 그런 식으로 버리라니. 저 녀석 혹시, 텐구가 아니라 오니인거 아냐? 그런 사악한 소리를 하는 걸 보면, 틀림없다. 저 냄새나는 머리털 어딘가에 뿔이 숨겨져 있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우습게도 녀석은 이런 나의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혹시나 녀석이 착각하고 있을까봐 모미지와의 관계에 대해 정정해주기로 했다.
「모.. 모미지는 내 애인 같은 게 아냐! 그리고 인마! 그건 취미가 아니라 그냥 애정 행각이잖아!!」
「그렇게 까지 화낼 것도 없잖아! 너희 둘이 사이가 워낙 좋으니까, 서로 사귀는 사이일 거라고 생각 했었다고.」
「그러니까, 아니라고! 한 번만 더 그런 소릴 했다간 가만 안 둘거야!」
코에서 뜨거운 숨이 들락날락한다. 나도 참 어지간히도 흥분했었나 보다.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저 녀석이 나와 모미지에 대해 그런 관계로 알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나는 치켜 올라간 눈초리로 토도키를 노려봤다.
「아무튼, 나랑 모미지는 아무 사이도 아니야. 그쪽만 그렇지 나는 걔랑 그런 사이가 될 생각 따윈 추어도 없으니까.」
「너무 필사적으로 부정하니까, 되러 수상하다. 너.」
토도키는 어느 사이엔가 나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내가 쑥스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하찮은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는 듯이. 나는 한숨을 내쉬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한 번 더 말하지만. 아니다. 응! 아니라고!」
「알았어. 믿어줄게!」
저 개늠시키. 날 불쌍하다는 눈으로 쳐다보고 말이지.
토도키는 마저 못해 알아들었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 이상 이 녀석과 있다간 본래의 목적을 잃을 것 같았던 나는 그만 녀석과의 대화를 마치고 헤어지려는 찰나.
「아 맞다. 그 소식 들었어?」
「응?」
녀석이 잊고 있었다는 듯, 나의 발목을 붙잡았다.
묻는 듯한 나의 시선에 녀석은 깜짝 놀랄만한 소식을 들려주었다.
「아침에 하쿠레이 무녀가 침입해 왔었다던데.」
「뭐!?」
나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녀석을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