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왕녀와 흡혈귀 - Remy Ritter von Scharlach
[번역] 왕녀와 흡혈귀 - Prinzessin Maria Margarethe von Adelsried
[번역] 왕녀와 흡혈귀 - Her Royal Highness Princess
[번역] 왕녀와 흡혈귀 - Prinzessin und Vampir (1)
[번역] 왕녀와 흡혈귀 - Prinzessin und Vampir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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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는 3년간 훈련에 몰두해왔다. 훈련의 최우선 목표는 공세에 임하는 것도, 전망이 좋은 벨덴에서 적을 요격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 아델스리드의 가도에서 수적으로 우세한 적에게──그게 만일 스웨덴군이여도 이겨내는 것이었다. 성백작국군은 그것을 위한 최적의 훈련을 해왔다.
총성이 울려퍼지고 납탄이 난비하는 가도의 폭은 대강 총병이 장전의 동작을 지장없이 할 수 있으려면 250열로 좁혀지게 된다. 그리고 가도의 가장자리는 삼림지대다. 근처에선 발을 디디는 것도 어렵기에 대열을 갖추고 행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적군의 진형폭은 아델스리드 성백작국군과 비슷한 폭으로 강제 되버린다. 양군은 같은 폭으로 전투를 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스웨덴군 공격력의 원천은 넓은 폭으로 인한 대규모 일제사격이다. ──폭이 제한 되어 전개를 할 수가 없는 총병들은 실질적으로 예비병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장전부터 사격까지의 순환을 스웨덴군은 둘이서, 성백작국군은 여섯 명이서 이루어지게 된다. 이 전투에서 성백작국군은 스웨덴군에 비해 시간대비 3배나 되는 탄을 쏟아붓는 것이 가능하다. 레미 리터 폰 샤라크의 혼신의 책이었다.
“좋아. 이거라면…….”
피해는 명백하게 스웨덴군이 더 심하다. 적은 과감하게 사격과 전진을 계속하고 있지만, 그렇기에 후방에서 장전을 하고 있는 총병도 이따금씩 성백작국군의 총탄을 맞고 쓰러져갔다. 여유가 넘치는 예비병 덕분에 그 공간을 시간을 들이지 않고 메꾸는 것이 가능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그 여유도 없어지고 있었다.
한 편, 아델스리드 성백작국군도 그렇게 낙관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굉음과 함께 발사되는 스웨덴군의 총탄은 적은 수여도 확실하게 성백작국군의 총병들을 죽여나갔다.
마리아에게 승리를 주기 위해선, 적군을 근본부터 부수기 위해선 최후의 수단이 필요다.
“아르님 재상.”
레미는 전장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대로면 우리 군의 피해가 더욱 더 커질 것이고, 경우에 따라선 패배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겠지요.”
“그러니 결정타를 먹이고 이 전투를 끝내겠습니다. ……지휘는 맡기겠습니다. 재상.”
그녀는 고삐를 끌어 말을 반전시켜 아델스리드 방면으로 향했다. 그것을 바라본 아르님은 평소의 인상이 없어질 정도의 웃음을 지었다.
“샤라크 경에게 행운이 깃들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당신의 무용을 제가 이 자리에서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보겠습니다.”
팔을 뻗은 그에게 응해 레미는 그의 주먹과 맞대었다. 모든 잡음이 날라갈 정도의 총성 속에서 둔탁한 소리가 확실하게 울려퍼졌다.
레미는 가도를 달려나갔다. 바로 앞에는 아델스리드 성이 우뚝 솟아 있었다. 그녀는 성에서 시선을 돌리고 후방의 상황을 엿보았다. 앞으로의 행동은 만에 하나라도 스웨덴군에게 들켜선 안 된다. 완만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가도를 달리며 충분한 거리를 벌리고 전장이 안 보이게 될 즘에 진로를 오른쪽으로 틀었다. 그대로 나무들을 헤쳐가며 숲 속을 달려가기 시작했다.
──성백작국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삼림지대는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곳이지만 방어를 준비하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성백작국군은 그 지형을 대부분 파악해두고 있었다.
여기는 일종의 언덕지대다. 숲을 들어가는 길에는 완만한 오르막길이고 그 언덕들을 지나서 숲의 중앙으로 들어가면 분지대가 있다. 가도에서는 침엽수림과 언덕이라는 방해물이 있어서 숲 안의 상태를 엿 볼 수가 없다. 병사를 매복시키기엔 최적의 장소다.
숲에 들어온 레미는 기교한 마술로 나무를 헤치고 그저 목표를 향해 달려나갔다. 신비한 광경으로 가득 차있는 숲은 바람에 타고온 연기가 식물들의 향기를 덮고 울려 퍼지는 총성으로 인해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머스켓 총의 포효는 점점 더 커져갔다. 레미는 가도 근처의 숲을 달리며 전장으로 향하고 있던 것이다.
성백작국군의 진지도 넘어간 레미는 스웨덴군의 바로 옆으로 다다랐다. 우거진 나무들이 햇빛조차 가로막는 숲의 골짜기다. 그 곳에는 백 명 언저리의 아델스리드 성백작국군 기병이 말을 타고 대기하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샤라크 경.”
레미를 맞이해준 건 라벨이다. 그는 레미의 모습을 확인하고 바로 그녀에게 달려갔다.
“현황은?”
“문제 없습니다. 스웨덴 군에게 발견 되지도 않았고요. 보병대는 어떱니까?”
“우세하긴 하지만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냐.”
“그럼 저희 기병대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 판도가 달라지겠군요.”
“그렇지. 절대 실패하면 안 된다.”
레미는 전방으로 눈을 돌린다. 레미의 앞에는 나무들 사이에 자신이 아끼는 기병대들이 줄지어 있었다. 근처에서 울리는 굉음과 코를 찌르는 연기냄새도 신경 쓰지 않는 그들의 기마는 꼬리를 흔들며 거친 숨을 내뿜는다. 레미가 3년의 시간을 들이며 키워낸 2천 명의 총병대와 견주는 아델스리드의 쌍벽. 수 백 명의 기병대다.
기병들의 방어구는 레미와 라벨의 플레이트 아머와는 달리 복부만 덮는 부분 갑옷이다. 그들은 몰락한 플레이트 아머를 걸친 기사를 대신해 전장의 구멍을 메꾼 흉갑기병. 그러나 기병들이 허리에 걸치고 있는 것은 권총이 아니었다. 한 자루의 양검이 그 존재를 과시하고 있었다.
구스타프 아돌프는 기사의 돌진력을 현대에도 재현하기 위해 지금까지 권총으로 적진에 달려드는 커튼콜 전술을 사용하던 중갑기병들을 개편했다. 그들에게 권총이나 랜스대신에 양검을 들게 해 발도 돌격을 한 것이다.
레미는 그걸 모방했다. 백 명의 기병들에게 양검을 쥐어주고 총병대와 같이 훈련을 임했다. 표면적인 타격을 입히는 것이 아닌 기병의 돌진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기 위해 적의 진형을 완전히 붕괴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술이다.
“샤라크 경, 이걸.”
부하에게 랜스를 받은 라벨은 레미에게 넘겨줬다. 그가 이미 들고 있는 것과 같은 진짜 철제 랜스다. 원뿔형의 랜스는 햇빛을 받아 빛을 반사하며 목제의 모의 랜스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레미는 랜스의 손잡이를 꽉 쥐었다. 그리고 열병식처럼 기병대의 앞으로 나와 그들의 주목을 받았다.
“긍지 높은 아델스리드의 전사들이여.”
그 목소리로 인해 숲이 울렸다.
“드디어 우리는 이 날을 맞이했다. 북방의 이단자들은 신성 로마 제국뿐만 아니라 여기 아델스리드 성백작국조차도 유린하고 파멸에 치닫게 만들고 있다.”
울려퍼지는 전장의 굉음에도 지지않는 영혼이 스며들어가는듯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우리는 뭘 위해 지금까지 준비해왔나? ──다른 것도 아니다 타국의 악마들에게서 성백작국을 지켜내기 위해서다. 제군들의 아름다운 고향을 남기기 위해서다. 강대한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다!”
레미는 랜스를 하늘을 향해 크게 들어올렸다. 기병들도 은밀 행동이라는 것을 염려해서 소리를 외치는 자는 없었지만 허리의 양검을 뽑아 하늘을 향해, 아니면 레미의 랜스를 향해 강하게 치켜 들었다.
“이 전투의 결말은 이 폰 샤라크, 라벨 장군, 그리고 여기에 있는 용감한 제군들에게 달려있다. 우리들은 일기당천. 제국에 남아있는 최후의 기사이며, 최후의 희망이다!”
모두가 숨을 삼키고 고조된 분위기였다. 기병들의 무기를 쥐는 힘이 몸에 흐르는 혈액이 날뛰는 것처럼 점점 강해졌다.
“겁먹지마라. 스웨덴군은 우리의 책략에 걸려들었다. 이건 이단자의 군세를 쓰러뜨리라는 신의 계시다. 제군들이 휘두르는 칼로 신의 의지를 구현 시켜라!”
레미는 외친다. 신의 눈을 각성시킨다. 흡혈귀의 절규를 울려 퍼트린다.
“신성 로마 황제 페르디난도 3세와 아델스리드 성백작가 가문에 영광 있으리!”
랜스는 하늘을 꿰뚫는다.
“북방의 야만족들에게 긍지 높은 독일 기사의 본망을 보여줘라!”
신의 옥좌를 꿰뚫는다.
“성모 마리아여. 경건한 우리들을 수호하라!”
그녀의 과거를 꿰뚫는다.
“──가자. 제군!”
레미는 투구의 바이저를 내렸다. 그리고 각오를 다지며 지옥의 가마 속인 언덕의 저편으로 향했다. 등 뒤의 기병들도 각자 도망치지 않겠다는 결의의 불꽃을 눈에 담아냈다.
그녀의 우측에는 라벨이 투구를 쓰고 마갑에 둘러쌓인 그의 애마 위에서 랜스를 하늘로 향하고 있었다.
“드디어 시작하는구만요. 경. ──살아남길 바랍니다.”
“라벨이야말로 쉽게 죽지 말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 전쟁에서 살아남아 당신의 비밀을 알아내야만 하는데, 제가 죽겠습니까?”
‘그러고보니 그런 약속을 했었지.’
그녀는 3년 전의 마상창시합의 일을 떠올렸다. 지금와서는 라벨은 레미와 동등한 지위를 가진 존재가 되었다. 기병대의 진형은 단순하다. 플레이트 아머를 걸치고 랜스를 쥔 두 사람의 기사가 선두를 서고 뒤에 기병대들이 따라오는 것이다. 말의 속도와 갑주의 방어도, 그리고 스치기만 해도 꿰둟어버리는 랜스의 돌파력은 그야말로 거대한 탄환과도 같다.
“좋아. 그래도 듣고 싶으면 그에 어울리는 전과는 올려야지. 안 그러나?”
레미의 말을 들은 라벨은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두들기는 것으로 답했다. 그리고 그들은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레미의 날개 장식이 말의 진동으로 인해 흔들린다. 세계가 빛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허리 부근의 연보랏빛 코트가 바람에 흩날린다. 기사가 없어져버린 유럽의 전장에 명예로운 기사가 나타났다. 언덕의 정상에 도달하고 전방의 스웨덴군의 존재를 확인한다. 비탈길을 단숨에 내려가서 전장을 가르기 위해, 승리를 쥐기 위해 그녀는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돌격!”
달리고, 달리고, 달린다. 나무 사이를 지나다니며 나뭇잎을 말발굽이 밟으며 부드러운 숲의 토지를 달린다. 그리고 숲을 빠져나와 비탈길에 도달했다.
4백의 말발굽이 땅을 흔든다. 커다란 땅덩어리는 목판과도 같이 소리를 내며 그 몸을 흔들었다. 기병의 무리는 물길이 되어 비탈길을 흐르듯 내려간다. 그 선두에는 장식이 하나도 없는 거친 플레이트아머를 입은 거한. 옆에는── 짙은 검은색 플레이트 아머를 태양의 아래서 빛내는 흡혈귀.
청각이 마비 되버릴 정도의 총음 속에 있던 스웨덴군도 지면을 흔드는 진동으로 인해 모두가 자신들에게 기병대가 다가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알게 된 걸로는 늦었다. 랜스의 끝은 이미 그들을 향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기습해오는 그들을 향해 바로 발포가능한 총병은 존재하지 않았다. 드문드문 총탄이 날라오지만 그런걸 신경쓰는 기병 따윈 없었다.
그리고 전장에 울리는 천재지변과도 같은 굉음 속에서 레미는 적의 모습이 코앞까지 닿았다는 걸 확인하고 포효했다.
“물어 찢어라!”
흡혈귀의 목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목소리는 가도의 모든 병사들에게 닿을 정도로 우렁찼다.
그 기백에 압도당한 스웨덴군을 향해 레미는 랜스를 한 줌의 자비없이 덮쳐들었다.
비명, 절규, 단말마.
본래는 기사의 플레이트 갑옷을 꿰뚫기 위해 만들어진 랜스가 총병의 사지를 찢는다. 운좋게 랜스를 피했더라도 마갑을 걸친 말의 중량은 인간의 10배 이상이다. 전력으로 달려오는 말에게 부딪힌다면 방어구도 입지 않는 총병은 즉사에 이를 것이다.
라벨도 적진에 돌격해 총병들을 흩뜨리고 있었다. 이렇게 되버리면 스웨덴군도 총을 발사하기가 힘들다. 기사들의 유린을 그저 당하기만 할 수밖에 없다.
성백작국군의 기병대도 두 사람씩 붙어서 달려온다. 적군의 정중앙을 뭉개버리듯이 돌진해 적병을 베어나간다. 두 사람의 기사가 유린하고 혼란에 빠진 적군을 뿌리에서부터 파괴한다.
운 좋게 장전이 끝난 스웨덴군의 총병이 다가오는 기병을 향해 방아쇠를 당겨, 흉갑이 관통당한 기병은 힘없이 말에서 쓰러진다.
기병을 쓰러뜨려 안도의 표정을 지은 그 총병도 그 직후에 다른 기병에게 베여 피를 뿜어내고 땅에 쓰러진다.
주인을 잃은 말은 죽은 주인의 명령을 충실히 속행하고 있었다. 공황상태에 걸린 총병들을 사람이 없음에도 계속 후려쳐나갔다.
기회를 엿보고 있던 아르님이 성백작국군 총병대를 향해 명령의 목소리를 올렸다.
“샤라크 경의 결단을 저버리면 안 된다! 전원, 돌격!”
눈 앞에서 펼쳐지는 기병대의 일방적인 활약에 총병대도 방금 전까지의 피로가 없어지는 것처럼 위세 높게 소리지르며 돌격을 감행했다.
그리고 레미는 적의 병사보다도 지휘관들을 쓰러뜨리기 위해 혼자서 기병돌격을 계속 하고 있었다. 수많은 인간을 꿰뚫어서 랜스는 새빨갛게 물들었고 여기저기가 함몰 된 바실리우스 바실리온의 마갑은 함몰 된 곳의 수만큼 적병을 후려쳤다는 걸 증명하고 있다.
그녀는 바이저의 틈이라는 한정된 시야 속에서 찾아냈다. 그의 모습은 매우 눈에 띄었다. 고급 재질의 청색 군복을 입고 흉갑과 투구를 걸치고 말에 올라타있는 스웨덴군. 분명 그가──
“이 부대의 총사령관……!”
스웨덴군의 총병이 지근거리에서 갑옷을 뚫기 위해 덤벼들었다. 하지만 레미는 그가 방아쇠를 당기는 것보다 빨리 몸을 틀고 랜스를 오른쪽으로 크게 내밀었다.
“아……악!”
심장을 랜스로 꿰뚫린 총병은 즉사해 머스켓총이 땅을 내뒹굴었다. 이번에도 똑같이 우측에서 사령관의 친위대가 장창을 내밀며 창을 레미에게──아니 바실리우스 바실리온의 옆구리, 마갑의 사이로 다가오고 있었다.
말의 움직임을 바꾸기엔 이미 늦었다. 랜스는 방금 전 총병의 가슴을 뚫은 상태다.
“으랴아아앗!”
혼신의 힘을 오른팔에 담아 사람 하나의 중량이 더해진 랜스를 들고 그대로 앞을 향해 돌격했다.
창병의 창이 말에 닿기 직전에 총병을 꽂고 있는 상태의 랜스가 창병의 어깨를 예리한 창끝으로 파고 들었다.
창병은 신음을 내다가 숨이 끊어졌다., 레미는 랜스를 크게 휘둘러 시체들을 내던졌다. 그 장렬한 광경을 보고 숨을 죽이고 있는 스웨덴군 사령관에게 망설임 없이 돌격한다.
“……괴물 녀석!”
그는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말에 매달려 있는 권총을 집었다. 그리고 재빠르게 장전을 마치고 레미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굉음과 함께 발사된 탄은 바실리우스 바실리온의 두꺼운 갑옷에 도탄 되는 소리만 남겼다.
손에 쥔 권총을 내던지고 새로운 권총을 마구에서 꺼내고, 떨리는 손으로 레미를 겨냥해 발사했다. 그리고 도탄 된 곳은 마갑이 아닌 레미의 갑옷일뿐 결과는 변함 없었다.
“제길, 제길, 제기라알!”
권총으로 저 갑옷을 뚫는 건 불가능하다. 마침 장전을 끝낸 총병에게 머스켓총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 순간에도 플레이트 갑옷의 창기병은 랜스의 끝자락에서 붉은색 액체를 흩날리며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코 앞까지 다가온 현실감 넘치는 죽음이라는 공포로 인해 머스켓총이 미끄러질 것만 같았다. 그래도 그는 브란겔 장군에게 분견대를 위임받은 병사다. 랜스의 끝부분이 그를 꿰뚫어버리기 까지 앞으로 수 초. 신에게 빌며 방아쇠를 당겼다.
신은 그에게 응해줬다. 탄환은 레미의 머리로 빨려들어가 커다란 금속음을 냈다.
“해냈어……!”
맞췄다는 반응을 느낀 그는 바로 환호의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총을 맞은 충격으로 뒤로 꺾인 레미의 머리가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 오는 모습을 보고 그는 절망을 느꼈다. 있어선 안 되는 일을 보고 만 것이다.
레미가 살아있어서 생긴 것이 아니다. ──그녀는 죽지 않기 때문이다.
탄환은 바이저의 잠금쇠를 날려버렸다. ──그녀는 펼쳐진 시야 속에서 그를 바라봤다.
머스켓 총은 힘없이 떨어졌다. ──그녀의 랜스는 흔들림이 없다.
“아, 아아…….”
공포로 인해 온 몸이 떨린다. 한기가 온 몸을 감싼다. 심장이 도망치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는 바이저가 없어진 레미의 투구 속을 봤다.
──빨간 눈.
피로 뒤덮인듯한 새빨간 눈동자.
“이, 악마 녀서어어억!”
절규하며 허리에 차고 있던 양검을 다가오는 레미를 향해 치켜들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의 칼이 레미에게 닿는 것보다 빠르게 그녀의 랜스는 그의 심장을 뚫어버렸다.
그는 뻥 뚫린 커다란 구멍에서 대량의 혈액을 뿜어냈다. 그것이 단말마였다. 시체는 순간 하늘을 날았다. 이윽고 시체는 인형과도 같이 사지가 뜯기며 땅으로 떨어졌다.
레미는 그걸 내려다보며 랜스를 하늘로 향해 치켜올렸다. 그것이 승리 선언이었다.
“이걸로 아델스리드 성백작국군은 스웨덴의 군세를 격파했다!”
스웨덴군 총병대는 성백작국군의 기병과 총병의 협공으로 인해 대부분이 붕괴했다. 그리고 사령관이 죽은 걸로 인해 그들의 사기는 완전히 없어졌다.
“이긴……건가?”
뿔뿔이 퇴각하는 스웨덴군의 병사들을 바라보는 레미는 자신이 해냈다는 것에 실감이 오지 않았다. 대부분의 스웨덴군이 퇴각하고 난 뒤에는 무수한 병사들의 시체가 쌓여있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아델스리드 성백작국군의 병사들이 각자 환호의 목소리를 올렸다.
“아델스리드 만세!”
“마리아 마르가레테 각하 만세!”
“총사령관 샤라크 만세!”
흘러넘치는 기쁨의 소용돌이 속에서 레미는 손을 들어 그들에게 응했다. 그래도 지금의 아델스리드 성백작국군은 처음과 비교하자면 많이 감소했다. 총병대는 몇 할이 확실하게 상실했고, 전투의 추세를 바꾼 기병대는 반이 없어져 있었다.
그리고 레미는 깨달았다.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보다 빠르게 그녀에게 달려와서 승리를 기릴 남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빌헬름 라벨의 모습이 없다는 것을.
“라벨은, 라벨은 어떻게 됐나?”
레미는 주변의 병사들에게 물어봤지만 그의 행방을 아는 자는 없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말을 타고 있는 기사의 모습은 없다.
“라벨…… 라벨!”
그녀는 필사적으로 외쳐보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설마…… 그 라벨이 죽어버렸다고……?”
레미는 믿을 수가 없어서 굴러다니는 시체들을 철저히 찾아다녔다. 의식을 잃고 말째로 멀리 가버렸는지, 시체의 산에 묻혀버려서 움직이지 못하게 됐는지, 아니면 정말로 죽어버렸는지──
그 순간이었다. 아델스리드 성 방면에서 말을 탄 병사가 전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아델스리드 성백작국군의 승리는 분명했음에도 그의 얼굴은 매우 험악했다.
“샤라크 경!”
레미에게 도달한 전령은 거친 숨을 고르지도 않고 비명과도 같이 소리 질렀다.
“서방에서 적의 군세가 아델스리드를 향해 침공 중! 그 수는…… 약 2만 이상!”
“뭣…….”
그 보고는 그녀의 뼛골까지 스며들었다. 머리가 새하얗게 되버리고 이성을 되찾은 순간엔 이미 말을 달리고 있었다. 주위의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저 성으로── 마리아가 있는 장소로 향했다.
“……마리아!”
그녀는 성의 예배당에 있었다. 성에 살아있는 자는 마리아밖에 없었다. 단 혼자서 그리스도 상에 무릎 꿇고 이런 상황에 치닫았는데도 신에게 기도를 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예배당의 울려퍼지는 레미의 외침에 마리아는 뒤룰 돌았다. 레미의 모습을 확인하고서는 안도한듯 덧없는 웃음을 지었다.
“아아……레미.”
레미는 마리아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어깨를 매우 거칠게 잡았다.
“지금 여기서 뭘 하고 계시는 겁니까, 당신은……!?”
“레미…… 전 이제 됐어요.”
“이겼어요. 이겼다고요. 우리가!”
소리를 지르는 레미는 화통이 터진 어린애와 같이 마리아의 어깨를 격하게 흔들었지만 마리아는 그저 고개를 저으며 그 설득을 부정했다.”
“아니에요. ……졌어요. 저희는.”
지금 아델스리드 성을 포위하고 있는건 프랑스, 스웨덴 연합군의 본대다. 그들은 분견대가 아델스리드를 돌파하지 못했기에 본대의 압도적인 병력을 이용해서 이 성을 함락시킬려고 한 것이다.
“성백작국군이 아무리 분견대를 이겼다고해도, 황제군이 연합군 본대를 이기는 것이 가능해야 진행이 되지요. ……근데 그 조건이 깨져버렸어요. 저희들은 진거에요.”
순간 성내에 굉음이 울려퍼진다. 총병과 기병돌격의 발소리와는 다르다. 파괴의 소리다. 붕괴의 소리다. 종언의 소리다. 연합군의 포대가 성을 향해 포격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 적어도 당신만큼은 여기서 도망쳐주세요!”
“……그건 안 돼요.”
“왜 안 되는 겁니까!?”
레미는 소리를 지르면서 마리아의 위태로운 눈동자를 계속 바라봤다.
“영토도, 성도, 마을이 망하더라도 다시 재건 가능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죽어버리면 모든게 물거품이 되어버리지 않습니까!?”
“저는 섭정일뿐입니다. 성백작 프리드리히는 살아있고요. 뒤는 그에게 맡기면 됩니다.”
“……적당히 하라고. 마리아!”
여태까지 보여준 적이 없었던 레미의 절규가 마리아를 놀라게 만들었다.
“여기서 아델스리드가 망하는 것도── 당신이 죽는 것도 있어선 안 된다고! 당신이 죽어버리면 내가 당신을 위해 울었던게 뭐가 되는데!”
“……레미.”
“드디어 차지한 지위를 가지고서도 여자 하나를 구하지도 못하면 어떻게 조국을 구한다는 거야!”
그녀의 눈동자가 일그러지며 눈가에서 한 줄기의 눈물이 흘러나왔다.
“포기하지마. 마리아 마르가레테!”
──또는 사랑하는 마리아.
“내 꿈을 위해서!”
레미는 온 몸을 떨며, 오열하고, 고개를 숙인 채 눈물 방울을 예배당의 바닥으로 떨구고 있었다. 마리아는 그녀의 뺨에 손을 갖다대 눈물을 닦아내고 그녀의 얼굴을 품는 것처럼 손을 뻗었다. 레미의 빨간 눈동자와 그 눈에서 흘러 넘치는 투명한 눈물을 자애를 담아 바라봤다.
“……흡혈귀도 우는군요.”
마리아는 웃으면서 레미를 끌어안았다.
약 몇 십문이 되는 연합군의 대포가 무수한 철구를 발사하며 아델스리드 성의 벽을, 시설을 파괴하고 있었다. 병영도, 연병장도, 성의 중심도, 전부 파괴 되고 있다. 시대에 뒤쳐진 작은 성이 멸망하고 있다.
“레미…… 전 이제 지쳤어요.”
머리를 맞대고 눈 앞에 있는 백자와도 같은 피부를 가진 레미의 목덜미에 마리아는 뺨을 기댔다. 그리고 레미의 고동을 확인한다.
“아델스리드 성백작국은…… 제 전부였어요. 작디 작은 별 볼일 없는 영토지만 제게 있어── 폰 아델스리드라는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 자로서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었습니다.”
“그건…… 아냐. 당신은 당신일 뿐입니다……!”
“……그 성백작국이 지금 멸망하려 하고 있습니다. 제겐 이제 미련 같은 건 없습니다.”
“마리아……!”
레미는 그녀와 밀착하고 있기에 마리아의 생각이 단순한 절망이 아닌 마리아의 삶의 끝에서 답을 찾아낸 결말이라는 걸 이해해버렸다.
“레미는 고향을 멸망하는 걸 지켜본 끝에 흡혈귀가 되버렸지요. 그런 길도 분명 지금의 제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겠지요. ……그래도 저도 고집이 세네요. ……전 당신과는 같은 길을 못고르겠어요. 전 신의 가호를 부정하는 것을 못하겠어요…….”
레미의 목덜미에 액체가 닿았다. 그것이 마리아가 레미에게 처음으로 보여준 눈물이라는 것을 몽롱해진 레미가 이해하는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두 사람은 서로 그저 계속 끌어안았다. 등을 계속 어루만지며 계속 울었다. 마침내 예배당의 코 앞까지 폭발음이 울려퍼졌다. 대포가 벽을 쏜 것인지. 불화살이 화약고를 터트린 것인지. 그리고 이 예배당에도 하나의 포탄이 날아와 입구 주변의 벽을 날려버렸다.
“저는 지금까지 신앙을 위해, 신을 위해 발버둥쳐왔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찾아올 마지막 심판의 날에는…… 신이 저를 천국으로 이끌어주시겠지요.”
그것은 마리아에게 있어서는 구제고, 레미에게 있어서는 절망이었다. 그런 날은 영원히 오지 말라고 레미는 빌었지만 그 말은 마리아에게 있어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레미?”
아름다운 성모의 울음 소리는 레미의 귀에 속삭였다.
“전 이런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당신인채로 있어주세요. 당신의 결의를 져버리지 말아주세요. 당신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주세요.”
레미는 마리아의 어깨에서 작게 끄덕였다. 그것이 대답이었다.
“……고마워요. 레미. 이제 저도 안심하고 죽을 수가 있겠네요.”
죽는다는 직접적인 말이 마리아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만으로 레미는 더 크게 울고 오열했다. 마리아는 그녀를 달래듯 머리를 쓰다듬으며 레미에게 말을 걸었다.
“제 부탁을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습니까?”
목소리가 떨고 있었다.
“제 영혼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육체는 없어질 운명이지요. ……레미는 인간의 피를 마시는 흡혈귀죠?”
“네…….”
“부탁이에요. 레미. ……제 피를 마셔주세요. 제 조각을 당신의 안에 넣어주세요. 겁쟁이인 제게 당신의 행복한 미래를 보여주세요.”
비명과도 같은 오멸이 예배당에 울려퍼졌다. 레미는 마리아를 매달리듯 끌어안으며 지금이라도 당장 사라질 것만 같은 그녀를 현세에 남기고 싶어했다. 그러나 마리아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미소를 띄우며 레미에게 마지막 말을 전했다.
“당신의 그 아름다운 이빨로 죽고 싶어요.”
──무너지는 성 안에서 레미는 절규하며 마리아의 목덜미를 물었다.
1648년 10월 24일. 신성 로마 제국, 베스트팔렌에서 이 30년간 진행된 대전쟁의 강화조약이 맺어졌다. 그것이 베스트팔렌 조약이다.
그리고 11월 2일. 프라하를 포위 중이었던 스웨덴군에게 평화의 소식이 전해지고 나서 모든 전투 행위가 종결 되었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교회의 종이 울리며 전쟁중엔 그저 포탄을 발사하던 대포는 축포를 하늘을 향해 발사했다. 그러나 제국은 너무나도 많은 걸 잃었다. 많은 시민들이 죽었고, 많은 농촌이 흔적도 없이 탔고, 많은 도시가 멸망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조약으로 인해 제국은 단일 국가로서의 성격을 완전히 잃었다. 제국내의 영토는 국가의 주권을 얻게 되었고, 신성 로마 제국은 국가연합이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독일의 분열은 확실해진 것이다. 그런데도 황제 페르디난도 3세는 조약을 받아들이는 것을 결의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다녀왔어? 언니. 30년 만인가?”
레밀리아는 오랜만에 동생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델스리드에서 머나먼 곳에 있는 고성에 흡혈귀의 거처가 있었다.
그 고성의 지하 깊숙한── 감옥 안에서 플랑드르가 초췌한 언니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니 이상해. ……피냄새가 자욱한데 우울해보여.”
“응. ……그래. 엄청 슬퍼.”
목제 의자에 힘없이 앉은 레밀리아는 쇠창살 뒤에 차가운 바닥에 앉아있는 플랑드르에게 말을 걸었다.
“그 사람은 옛날의 나를 비춘 거울이었어. 그래서 난, 날 위해 그 사람을 지킬려고 마음 먹었었어.”
“지키지 못한 거야?”
“응. 분명 흡혈귀는 지키는 것보다 부수는게 더 어울리는 거 겠지. 그래도 난…….”
더 이상 안 나올거라고 생각했는데 눈물이 다시 뺨을 흐르고 있다.
“아, 아아…….”
“언니…….”
“나는, 나는……!”
레밀리아는 쇠창살에 머리를 박았다. 쇠창살에서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그녀는 꼬여버린 감정을 오열로 내뱉을려고 한다.
“나는 그 사람을……!”
멈추지 않는 언니의 눈물을 플랑드르는 손가락으로 떠내며 쇠창살 사이로 양팔을 뻗어 레밀리아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마리아…….”
죄 많은 흡혈귀가 외치는 성모의 이름을 가진 자는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