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보다 시간이 걸려 버려서 말이지."
센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코우를 일으켜 세웠다. 코우는 자신의 팔을 잡고 당긴 센라의 손이 평소처럼 우악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일부로 힘을 적게 준 것인지는 모르나 항상 느끼던 박력이 아니었다. 센라는 복잡한 시선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코우의 이마에 딱밤을 주었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코우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앗! 뭐하는.."
"이제 정신 차린 모양이네."
코우는 그제야 자신이 생각에 너무 깊이 빠져 들었다는 것을 자각했다. 둘 다 무사한 시점에서 무얼 고민한단 말인가. 못 미더운 후배가 정신을 차린 것을 확인한 센라가 자신이 걸어왔던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곧 나머지 토벌대들이 몰려 올 거다. 서두르는 게 좋겠어."
"네."
간신히 대답한 코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렇게 피투성이인 두 요괴는 하얀 설원을 피로 이루어진 흔적을 남기며 걸었다. 최대한 위치를 특정 당하지 않기 위해 나무가 우거진 숲속을 헤매며 토벌대와 싸웠던 장소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얼마나 걸었는지는 모르나 숲을 빠져나온 센라의 눈앞에 바위로 이루어진 들판이 나타났다. 아직 누구의 발길도 타지 않았는지, 온통 흰 눈이 쌓여 있었다. 센라는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터벅터벅. 평평하고 기다란 바위로 걸어간 센라가 거기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의 상체가 앞으로 굽혀졌다. 피곤에 찌든 모습이었다. 그런 자신에게 걱정의 눈빛을 보내는 코우에게 센라는 괄괄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릴 쫒는 걸 포기한 건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진 녀석들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군."
센라는 그렇게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이어갔다.
"그깟 놈들과 좀 싸웠다고 이렇게 피곤해지다니. 천하의 센라도 한물 간 모양이야."
자조의 말을 읊조리며 한숨을 내쉰다. 코우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런 시선을 느꼈던 걸까. 센라가 고개를 들어 코우와 눈을 마주쳤다. 그는 양 입가를 끌어 올리며 힘겨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인데. 사실 네가 요괴로서의 힘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어. 전에 그 센조라는 땡중이 알려 줬었거든."
"선배..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거예요?"
지금 상황에 맞지 않는 얘기를 꺼내드는 센라가 심상치 않은 코우가 그리 물었다. 아까부터 느꼈던 거지만, 지금의 선배는 평소와는 많이 달랐다. 그리고 그런 사실이 코우의 불안을 더욱 가중 시켰다. 떨리는 마음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다.
선배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안 좋은 예감이 드는 것은 왜 일까?
코우는 센라가 이 이상 얘기하는 것을 막고 싶었다. 분명, 모든 것을 말하고 나면 그 불길한 예감이 현실화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자신이 너무도 싫었다.
센라는 코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조금 그리운 듯한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며 얘기를 이어갔다.
"어쩌면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는지는 몰라. 네가 약해빠진 요괴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그건 바로 네 요괴로서의 근본 때문인 거야."
".. 요괴로서의 근본이요?"
"그래. 달리 말하면, 요괴를 결정짓는 요성(妖性)이다. 로쿠로쿠비의 목을 늘린다. 카마이타치의 날카롭게 벤다. 그리고 나 같은 오니라면 두 말 할 것도 없이 폭력이지. 요괴의 성질을 결정짓는 근본은 제각각이지만 그것들은 모두 요괴로서의 힘을 발휘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아니, 반대인가? 그런 요성을 지녔으니까, 그에 걸 맞는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거겠네."
하하. 센라는 때 늦은 깨달음에 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중요한 후배의 근원. 코우의 요성에 대한 것을 입에 담았다.
"그런데, 넌 그런 요성이 너무나도 보잘 것 없어서 요괴로서의 힘 역시 형편없었던 거야. 단지, 생을 연명할 뿐인 요괴에게 강한 힘 따위 주어질 것 같나?"
코우의 본질. 그것은 오로지 생을 갈구할 뿐인 생존 본능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생을 지닌 자라면 누구라도 가지고 있는, 요괴의 성질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렇기에 코우는 약한 것이다. 요괴로서의 힘을 지니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질병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태어난, 생을 바라는 염원들에서 비롯된 요괴인 이상 그것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아니,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단 하나뿐인 방법을 센라가 알려준다.
"그러니까. 바꾸는 거다. 네 그 보잘 것 없는 요성을."
"바꾼다고요? 제 요성을..."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코우의 물음에 센라는 한없이 진중해 보이는 눈으로 긍정했다.
"그래. 강한 요괴의 요성으로 바꾸면 되는 거지."
하지만, 그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요괴로부터 얻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어떻게 말이에요?"
어떻게 해야 하냐는 것이다. 센라는 즉답했다.
"네가 그 요성을 가지면 되는 거야. 그 대신 그걸 건네준 요괴는 그 요성을 잃게 되는 거지."
그것은 즉, 요괴로서의 본질은 잃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달리 말하면 요괴에게 있어 죽음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과연, 어느 누가 코우를 위해 자신의 목숨 같은 본질을 건네준단 말인가. 하지만, 그런 요괴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코우는 센라가 그 얘기를 꺼내든 이유를 비로소 알아차렸다. 코우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설마.. 선배!?"
"왜 인마. 너 강해지고 싶지 않은 거야?"
"강해지고 싶어요. 하지만, 그건 선배와 계속 함께 있고 싶어서지!"
코우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억한 감정에 막혀 그는 말 대신 두 눈에 흐르는 투명한 눈물로 자신의 심정을 표현했다. 가슴이 먹먹해오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힘을 바래 왔었던 말인가. 선배는 왜 지금 그런 얘기를 꺼내는 것인가.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그러나 코우는 그것을 끝끝내 부정하고 싶었다.
센라는 울상이된 코우에게 자신의 진솔한 기분을 들려주었다.
"난 말이지. 널 만난 덕에 지금까지의 내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었어."
"선배..."
코우는 무어라 말하고 싶지만, 주체 할 수 없는 슬픔 때문에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눈물로 선배의 모습이 흐려진다. 그러나 그 흐려진 모습으로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자신과의 만남을 회고하는 선배가 어딘지 모르게 나약하다는 것을.
센라는 즐거운 것을 떠올린듯 옅은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변덕이었어. 너 새끼가 하도 한심해서. 그래서 무심코 널 데려 다니기로 정한 거다. 그 찌질한 정신 상태 좀 고쳐 줄려고 말이야.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지. 네 한테 과거의 나 자신을 투영하고 있었다는 걸. 알고 보니 진짜 찌질한 놈은 나 자신이었던 거지. 더럽게 우스운 얘기지."
자조하듯 크큭, 웃은 센라는 뚝 하고 얼굴에 웃음기를 지웠다. 그리고는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진지한 어조로 얘기했다.
"쵸라는 녀석이 이끌던 백귀야행 기억나지? 실은 널 거기에 두고 가야하나 하고 고민 했었어. 왜냐면 너 거기서 성실함으로 인정받는 분위기였거든. 그 짧은 시간 동안 제법 잘 적응하는 모습도 보였고. 게다가.. 그 뭐야... 바로 여자까지 만들었잖아. 부럽게스리."
센라는 다소 삐친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 코우는 그 때의 기억이 되살아나는지 어색하게 웃으면서 손사래 쳤다.
"세이 씨와는 그런 관계가 아니에요! 으음... 그런 관계가 되고 싶긴 했지만."
쑥스러워하는 후배의 반응에 센라는 야유하듯 휘파람을 불었다.
"역시, 중간 다리 걸고넘어지고 싶었던 거네. 안 그런 척 하더니만.. 엉큼한 새끼."
"그..그러는 선배는 예쁜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면서!"
"뭐, 남자로서는 당연한 행동이지. 어때? 이참에 여자랑 교합을 하는 방법에 대해 배워보지 않을래?"
"쓸데없는 간섭이네요."
그렇게 맞받아친 코우의 얼굴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도 부끄러움으로 빨갛게 열기를 띤 얼굴은 숫총각 그 자체였다. 내뱉는 목소리가 하나같이 울음 섞인 것들이었지만,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선배와의 대화를 있는 힘껏 즐기고 있었다.
센라는 이어서 다른 추억을 끄집어냈다.
"아~ 오늘 따라 미치루 씨가 유난히도 보고 싶네."
"그 요괴집을 아직도 못 잊은 거예요?"
한심하다는 듯이 묻는 말에 센라는 미간을 좁히며 불쾌감을 드려냈다.
"한 때 반했던 상대인데, 그리 쉽게 잊겠냐!"
"하하.. 그러네요."
그런 센라의 진담에 코우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하게 웃었다. 워낙 울상이라 웃은 티가 나지 않았지만.
참 부질 없는 일이었지. 하고 센라는 그 날의 일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얘기로 넘어갔다.
"이치린 씨도 아까웠지. 하지만, 난 끈질긴 남자가 되기 싫어서 말이야."
"실컷 끈질겨 놓고."
바로 코우의 비아냥이 이어졌다. 그세 눈물이 다 마른 코우는 굳어진 얼굴로 입 꼬리만 올리고 있었다. 센라는 콧방귀를 뀌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고 보니, 천정사에서도 고민 했었지. 센조가 그러더라. 널 천정사에 맡기는 편이 좋지 않겠냐고. 지금 생각하면 그게 옳았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그때 구차한 핑계나 대면서까지 널 데리고 다니기로 했어. 하찮은 내 욕심 때문에."
"그때 선배가 남으라고 했어도 전 어떻게든 따라갔을 겁니다."
"그런 것 보다 내 욕심이 더 컸어. 계속 선배 노릇을 하고 싶었으니까."
그게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만족할 때 까지는 그러고 싶었던 센라. 마찬가지로 계속 후배이고 싶은 것이 코우였다. 센라는 입을 쩝 다셨다.
"그건 그렇고, 결국, 불기분방의 요괴는 만나지 못했군."
"그러게요."
불기분방의 요괴를 만난다는 목표는 끝내 이루지지 않은 채 미완으로 남게 되었다. 못다 이룬 소망이었지만, 미련은 없었다. 다만, 조금 아쉬울 뿐. 센라는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자신을 대신해 코우가 풀어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영차. 바위에 엉덩이를 떼고 힘겹게 몸을 일으킨 센라가 하얀 입김을 뱉어내며 말했다.
"얘기는 여기까지. 이젠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게."
때가 된 것이다. 코우와 옛 추억을 상기하며 나누던 정다운 대화가 그 끝을 고하고 이제 최후의 순간만을 남겨 놓고 있었다. 후배를 응시하는 반쯤 감긴 그의 눈은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입을 꾹 다문 그는 잠시, 그렇게 코우를 바라보고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도 선배가 되는 거다."
"....."
그 말이 의미하는 것. 코우는 이제 후배가 아니라는 소리였다. 받아들이기 싫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실이 코우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혀 들었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이어지는 말을 기다린다.
"자신을 비관하지 말고, 당당한 요괴가 되라고! 넌 지금으로도 충분히 훌륭하니까, 좀 더 가슴을 피고 살아도 돼!"
센라는 털털하게 웃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이걸로 할 말은 끝!"
해줄 말은 다 해주었다. 이제 남은 건 자신의 요성을 받아들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만들 뿐이었다. 아직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이걸로 되었다. 다 죽어가는 자신이 해줄 것이라곤 이거밖에 없으니까.
두 손으로 자신의 뿔을 각각 움켜쥔다. 그런 다음 기합을 넣어 단숨에 부러뜨린다. 그렇게 센라는 부러진 한 쌍의 뿔을 각각의 손에 거머쥐고 있었다. 그 뿔에는 자신의 요괴로서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오니의 요성이 담겨져 있었다.
그것을 코우에게 내밀며 마지막으로 물었다.
"이걸 받아들이면 넌 더는 예전으로 돌아 갈 수 없다. 그래도 상관없다면 받아."
쓸데없는 질문이었다. 대답은 하나 뿐인 것을. 그래도 본인의 의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했기에 어떻게 보면 필요한 질문이기도 했다. 코우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받아 들였다.
자신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오니의 근원을 코우에게 건네준 센라는 만족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 너 이 새끼, 잘 해봐라!"
그리고 그 직후, 한계를 넘은 그의 몸이 무너져갔다. 격렬하게 불타오르고 남은 재처럼 하얗게, 센라의 몸이 그 원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바스러져 간다. 경악과 절망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는 코우에게 그는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남겼다.
"안녕이다."
거쎈 바람이 불어왔다. 센라였던 하얀 가루가 바람에 날려 흩어졌다. 혼자가 된 코우는 땅에 무릎을 찧고 비통하게 울부짖었다. 자신에게 남은 선배의 흔적은 건네받은 한 쌍의 뿔이 전부. 코우는 그것을 소중하게 끌어안았다. 그리고 센라의 유언에 따라 그 오니의 성질을 자신의 몸에 받아 들였다.
변화는 바로 일어났다. 흡수된 뿔이 코우의 전신으로 퍼져 그의 몸을 송두리째 뒤바꿔 갔다. 피가, 살이, 뼈가. 모든 것이 오니의 것으로 탈바꿈한다. 그 급작스런 변화에 코우는 몸이 뒤틀리고 살갖이 태워지는 고통에 몸부림 쳤다.
"끄아아아아아악-!"
지독한 고통이었다. 어떻게든 참아내려 해보지만, 새어나오는 비명은 어쩔 수가 없었다. 참을 수 없는 통증의 연속에 코우는 땅바닥에 머리를 수차례 찧었다. 눈과 흙을 헤집으며 허공에다 발길질을 해댔다.
그리고 최후에는 관자놀이에 센라의 것과 비슷한 뿔이 솟아나는 것으로 그의 육체는 모든 변화를 마쳤다.
무(無)에 한 없이 가까운 요성이 강렬한 오니의 성질로 덮어 씌어 진다.
그렇게 코우는 오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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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라가 주거씀니다.
선배에에에 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