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각, 센라들이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산중턱에서 밤새 연회를 열었던 오니들이 하나 둘 씩 눈을 뜨고 있었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술병하며 텅텅 비어 버린 커다란 술통들. 어림잡아 일백은 넘어갈 듯한 오니들의 몰골은 술을 얼마나 마셔대고 놀았는지 대해 온몸으로 증명해주고 있었다.
눈보라가 치는 엄한동설에도 그들의 옷차림은 가볍기 그지없었고, 걔 중에는 심지어 반나체에 가까운 자도 있었다. 이를 볼 때, 오니는 추위를 타지 않는 요괴라고 생각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반화는 틀렸다는 듯 크게 재채기를 하며 깨어나는 오니도 있었다. 황당하게도 그런 오니조차 옷차림이 매우 얇았다. 고작 거적때기 하나 걸쳐놓고 재채기를 하는 꼴이란 바보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멍청한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의 오니들은 누구하나 그의 차림을 지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 같이 바보일 정도로 고집불통인 자들이기 때문이었다.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고집이라 해도 당장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면 트집을 잡거나 간섭하지 않는다. 이 무리의 오니들에게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기에 불문율과 같이 취급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불문율에도 명백히 한계란 것이 있었다.
"두령이 또 안 보이네?"
"캬-. 취했다하면 사라지는 구먼!"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라는 듯 두령의 부재를 확인한 오니들은 저마다 익숙하다는 듯이 푸념을 늘어놓고 있었다. 어제 밤부터 그렇게 퍼마셔댔으니, 조만간 어디론가 사라질 거라 예상했던 오니들은 익숙한 것을 넘어 당연하다는 눈치였다.
"하필이면 오늘 사라지냐."
"그러게. 딱 봐도 우릴 쫒는 것 같은 군대가 코앞까지 다가와 있는 상황인데 말이야."
"아아아-. 진짜 너무 제멋대로라니까!"
오니들에게서 이런저런 불만이 터져 나왔다. 아무리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정도로 익숙하다곤 하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다른 문제였다. 자신들을 퇴치할 의도로 소집된 퇴마사와 병사들이 근방까지 와있는 이 상황에서 무리를 통솔할 두령의 부제라니. 원래 책임감이라곤 쥐뿔도 없는 두령이긴 했지만, 이쯤 되면 완전 나 몰라라 수준이었다.
그래도 오니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침착했다. 당황하거나 난리를 피우지 않고, 그저 담담히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두령에 대한 불평만 내뱉을 뿐이었다.
살점이라곤 하나 없이 뼈에 살가죽만 달라붙어 있는 홀쭉한 오니가 걱정스런 어조로 말했다.
"이대로 그 군대랑 맞닥뜨리면 위험하겠지?"
"위험하다 뿐이냐? 우리 죄다 죽은 목숨이라고."
맞은편의 외눈박이 오니가 그의 말을 받아 그렇게 답했다. 그 말에 그곳에 있던 모두가 심각한 얼굴로 시선을 내렸다.
하긴, 두령이 부재인 상태에서 오로지 자신들을 퇴치하기 위해 꾸러진 퇴마부대가 이리로 오고 있다는데 걱정되지 않을 자가 있을까?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요괴무리의 경우지, 오니들로만 구성된 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들의 걱정은 그런 진지한 것이 아닌, 좀 더 엉뚱한 쪽이었다.
거체에 배불뚝이인 오니가 외눈박이 오니의 말에 동조하며 겁에 질린 음색으로 내뱉었다.
"맞아. 우리들만 재미 봤다고, 두령한테 두들겨 맞을 거야."
"으아아아아! 상상하기도 싫어!!"
외눈박이 오니가 머리를 부여잡고 비명처럼 외쳐댔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 공포가 엄습해 온 것이었다. 몸에 새겨진 공포는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다. 단 한 번이라도 두령에게 매질을 당해 본 오니라면 알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체벌인지.
오니 두령답게 용서가 없는 주먹질은 기본적으로 불사에 가까운 오니라 하더라도 빈사로 만들어 버린다. 즉, 삼도천 강물에 발 한 짝을 내딛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무서운 것은 손맛이 얼마나 매서운지 죽을 만치 아프다는 점에 있었다.
배불뚝이 오니가 자신의 양 팔을 부여잡고 부르르 몸서리를 쳤다. 기어코 떠올려버린 것이었다. 그의 경우엔 출렁이는 양 ㅁㅁ이 통째로 뜯겨진 적이 있었다. 남자 주제에 자기보다 가슴이 큰 게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자비심이라곤 일절 없는 포악한 횡포에 그는 끊임없이 비명을 질러대다, 시끄럽다면서 머리가 두 쪽 나는 것으로 기절했었다.
그런 사소한 심술로도 괴팍한 폭력을 가해오는데, 지금 인간의 군대와 마주쳐서 싸우기라도 하면 어찌 될지는 안 봐도 뻔 한 일이었다.
뼈에 가죽만 걸친 듯한 오니가 말했다.
"그럼, 도망이라도 가?"
가장 무난한 안이었지만, 다른 오니들은 동조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배불뚝이 오니가 그 안의 중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모양 빠지게 도망을 어떻게 가?"
"그건 그래."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마른 오니. 그때, 잠자코 대화를 듣고만 있던 여자 오니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모두를 흘겨보며 끼어들었다.
"그냥 두령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딴 장소로 이동하면 되지 않아? 그러면 최소한 군대를 피해 도망친 게 되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가장 좋은 제안이었다. 현실적으로 사라진 두령을 찾는다는 명목이 있으니, 지금 자리를 뜬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꼬리를 말고 도망친 꼴은 면하니 말이다. 모두가 그런 획기적인 안을 제안한 여자 오니에게 초롱초롱한 눈으로 존경이 담긴 시선을 보냈다. 여자 오니는 찰랑거리는 검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결정된 거네. 그럼, 저기 쳐 자는 녀석들부터 깨워."
바보들 사이에서 유달리 똑똑함을 발휘한 여자는 그렇게 모두를 지시하는 입장에 섰다. 두령이 부재중인 현재로선 그나마 똑똑한 여자를 따르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던 그들은 각자 여러 갈래로 흩어져 아직도 곤히 자고 있는 동료들을 깨워갔다.
*
센라와 코우가 도착한 곳은 무츠국을 길게 가로지르는 산맥에 있는 미스고산 근방의 요괴마을이었다. 추운 날씨라 인적이 드문 요괴마을의 초입에 들어선 센라는 지친 기색으로 무릎을 굽혔다. 바로 뒤를 따라오는 코우보다도 더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괜찮은 거예요?"
하고 코우가 숨을 헐떡이는 센라에게 물어왔다. 센라는 시선을 등 뒤로 돌리며 답했다.
"넌 이게 괜찮아 보이냐?"
그의 시선은 등에 들쳐 업은 여자를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여자를 쳐다보던 센라는 길게 한숨을 토해내며 투덜거렸다.
"와나 씨/발. 어떻게 돼먹은 여자야!"
불만이 터져 나올만 했다. 등에 짊어진 오니인 여자가 해도 해도 너무 무거웠던 것이었다. 그게 어느 정도 무겁냐면 거대한 쇳덩이를 짊어지고 있다고 해야 하나. 체구는 일반 여성인 주제에 말도 안 되는 중량이었다.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발이 눈을 뚫고 들어가 그대로 지면에 박혀들 정도였다. 그 상태에서 가파른 산길을 올랐으니, 괴력을 지닌 센라라 할지라도 욕지거리가 나오지 않으래야 않 나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지독한 고행을 무려 두 시간 넘게 했으니, 센라는 더는 못 걷겠다는 듯 기진맥진이었다. 코우는 힘들어 하는 센라를 거들고 싶었지만, 지금 상황에선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힘의 차이가 너무도 극명해서 같이 들고 나른다는 발상은 감히 할 수 없는 그가 무얼 할 수 있겠는가. 그나마 뒤에서 입으로 격려라도 해주는 게 고작이었다.
센라는 여자를 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아가며 다시 힘겨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입으로 연신 "이런 개 좃같은! 씨부/랄 것!" 하며 욕설을 뱉어냈다.
쿵.쿵.쿵.쿵.
마을에 들어서고 부터는 발이 지면을 파고들지 않는 대신,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땅을 울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자가 얼마나 무거운지에 대해 간접적으로 나마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비유하자면, 암석으로 이루어진 바닥이 무쇠로 된 지장이 만들어낸 충격을 이겨내지 못해 비명을 지르는 상황에 밖을 나 다니던 요괴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갔다.
자신을 희한하다는 눈으로 구경하는 요괴들 중 한명에게 센라가 대뜸 물었다.
"주점이 어디에 있는지 좀 알려주지 않겠소?"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어리둥절해 하던 요괴가 자신을 지목한 것을 알아차리고 대답했다.
"저.. 저쪽으로 가면 나오긴 한데.."
요괴는 참으로 별나다는 눈으로 센라를 훑었다. 곤히 잠들어 있는 여자를 업고 있는 오니라. 보기 드문 모습에 그는 역으로 되물었다.
"그런데, 대체 뭣 때문에 걸을 때 마다 땅이 울리는 거요?"
"그거?"
물음에 센라는 업고 있는 여자를 곁눈질로 바라보며 말했다.
"전부 이년 때문이지. 이 빌어먹은 년은 무슨 태산이 둔갑한 요괴도 아니고, 산을 짊어진 것 같단 말이야."
짜증을 내며 불평을 쏟아내는 센라를 보며, 요괴는 뭔가 물어선 안 될 걸 물어봤다는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아.. 그렇군요. 하하.. 여기까지 업고 오느라 고생 깨나 하셨겠네요."
"하.. 씨/발. 빈말 안 하고 몇 번이나 이 개 무거운 년을 어디다 던져놓고 오고 싶었수다!"
그렇게 불만을 토로한 센라는 코우에게 눈짓하고는 요괴가 알려준 방향으로 걸었다. 그리고 다시 쿵 쿵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땅이 울린다. 그 장소에 모여든 요괴들은 그렇게 걸을 때 마다 땅을 울려대는 오니가 멀어질 때까지 가만히 눈으로 쫒았다.
도대체 등에 업혀있는 여자가 얼마나 무겁길래 땅이 이리도 진동한단 말인가. 센라에게 주점이 있는 방향을 알려준 요괴는 차즘 줄어들어 가는 땅울림에 귀를 기울이며 새삼 세상의 넓음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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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베의 위력을 실감했습니다.
무려 하루새에 선작수가 130을 기록하는 군요. 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