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잠시 되감아보자. 때는 앨리스가 레이무에게 목도리를 안겨주었을 시각이다. 레이무는 목도리를 만지작대다 김을 한 번 약하게 내뿜었다. 잠시 손을 들었다. 소바집 점주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신호를 주기 위함이었다. 신호가 전달되자 레이무는 뒤의 장지문을 열었다.
“돌아가. 일 해야 돼.”
“응!”
의외로 고분고분하네. 레이무는 한 손을 허리에 짚고는 픽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앨리스는 금방 일어서려 들었다. 레이무는 손을 뻗더니 앨리스를 잠시 동안 다시 앉혔다.
“내가 신사 떠날 때까지만 여기에 있어. 요괴랑 친하다는 이상한 헛소문이 돌면 안 되니까.”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장지문은 닫혔다. 레이무는 목도리를 잠시 정돈하고는 양 손을 모은 채로 벌벌 떨어대는 아낙네에게 말했다.
“무슨 일인지는 가고 나서 들을게. 한시가 바빠 보이네.”
레이무의 소매에서 불제봉이 빠져나왔다. 레이무는 쥔 불제봉을 세로로 가볍게 내려찍었다. 허공에 스키마 비스무리한 틈새가 열렸다. 레이무는 아낙네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고는 눈을 감으라 일렀다. 눈이 감김을 확인하자 살짝 안아들고 틈새로 걸어 들어갔다. 아낙네의 눈이 떠지자 장소는 마을이었다. 그 중에서도 자신의 가게 앞이었다. 레이무는 성큼성큼 거침없이 내부로 들어섰다.
“단순히 일어나지 못하는 거야? 아니면 뭐야?”
“며칠 전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였는데, 오늘이 돼서는 도중에 쓰러졌습니다.”
그렇다면 단순한 과로인가? 레이무는 짐짓 짐작했다. 아낙네도 생각을 대충이나마 예상한 것인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부정을 표했다.
“몇 주 전에 고용한 종업원이 한 명 있었습니다. 남편의 추천으로 들였는데, 희한하게도 고용한 뒤로부터는 가게가 갑작스레 흥행하기 시작했지요.”
아낙네가 마른침을 삼키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갑자기 종적을 감춰버린 겁니다. 그와 동시에 남편의 상태가 이상해지기 시작했어요. 그 아이를 다시 데려오라, 계속 혼잣말을 중얼거리기도 하였고요.”
“단순히 손이 없어진 탓에 생긴 과로는 아니고?”
“그 아이가 사라지면서 손님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한산해지기까지 했지요. 더 이상 일이 고되지 않아 쓰러질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만.”
아낙네는 레이무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흐렸다. 레이무는 일체 신경도 쓰지 않고 정면의 문을 열었다. 안내에 따르면 이곳이 남편이 쓰러져있는 장소였다. 단순한 과로일지 아닐지는 이제부터 판별해본다면 될 일이었다.
방은 한산했고, 눈에 띄게 특이한 물건이라고는 없었다. 방 중앙에서는 핼쑥해진 채 누워있는 한 중년 남성이 있었다. 레이무는 그 곁에 앉더니 턱을 괸 채 우두커니 남자를 보았다. 수십 초를 가만히 있었을까, 레이무가 말했다.
“물 한 잔만 가져다주겠어? 그리고 남편의 옷가지도 전부 다.”
아낙네는 흠칫하곤 부리나케 방을 빠져나갔다. 쿵쿵 울려대던 발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쯤이 되자 레이무는 피식 비웃으며 말했다.
“어쩌자고 요괴를 끌어들였어?”
“…….”
“숨길 생각 하지 마. 감도는 요기조차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난 둔하지 않아.”
“그 아이는.”
“두둔할 생각 마. 지금 당신이 쓰러진 건 그놈 탓이니까.”
“……예?”
남자는 게슴츠레 뜬 눈을 레이무에게 향하더니 이해가 안 된다는 투로 말했다. 레이무는 턱을 그대로 괸 채로 말을 이었다.
“그 녀석은 아마도 쿠다키츠네야. 인간을 따르면서 술자에게 부를 안겨다주기 위해 일하는 여우 요괴의 일종이지. 당신, 쿠다키츠네에게 설득 당해서 술자가 되었지?”
“……네.”
“당신 가게가 흥행했던 이유는 그 때문이야. 녀석이 다른 인간들에게 붙어 자기 뜻대로 조종하여 이 가게로 끌어들인 거였을 테니까.”
레이무의 말을 듣다 잠시 입술을 오물거리던 남자는 의의를 걸었다.
“그래도! 그러면… 나쁘지는 않은 아이 아닌가요.”
“말했지? 요괴를 두둔하지 말라고.”
레이무가 이를 까득 물었다. 무섭게 변한 레이무의 표정을 보자마자 남자는 눈을 깔며 스스로 입을 봉했다.
“쿠다키츠네는 식사를 취하지 않으면 술사에게 절대 일을 해주지 않아. 그런데 좋은 식사만을 요구하는데다 대식가이지. 녀석은 아마도 충분치 못한 식사 탓에 너를 기피해 떠났을 거야.”
“…….”
“틀려?”
“아뇨…, 맞습니다.”
순간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말이 멎었다. 아내가 옷가지를 주렁주렁 몸에 매단 채 물을 한 컵 가지고 왔다. 레이무는 부적을 꺼내더니 고의로 불태워 재로 만들었다. 흩뿌려지는 재를 물에 흘리더니 그대로 남자에게 삼키라 권했다.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들어 물을 마시는 남자에게 레이무는 말했다.
“떠나기 전, 부족하게 느꼈던 식사는 과연 무엇으로 보충할까? 바로 술자의 부와 기력이지. 그 때문에 지금 당신이 쓰러진 거고.”
“…….”
“그걸 다 마시면 좀 나아질 거야. 부족한 기를 채워줬으니.”
덤덤히 말을 마친 레이무는 받아든 옷가지를 꼼꼼히 뒤졌다. 목깃 부근을 주의 깊게 살펴보다 하나의 금색 털을 발견하고는 부적으로 감쌌다. 마쳤던 말을 다시 이었다.
“요괴는 찾아서 퇴치해줄게. 당신 말고도 다른 사람이 더 쓰러지게 되면 큰일이니까.”
잠시, 방 하나만 빌릴 수 있겠어? 일어서며 레이무는 물었다. 여인은 기꺼이 레이무를 다른 방으로 안내했다. 레이무는 방문을 봉하고는 자신이 나올 때까지 절대 문에 가까이 말라 일렀다. 여인은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계속해서 끄덕였다.
“여기! 여기가 맛있더라고요! 스승님!”
“알겠으니 잠시 진정 좀 하고 말하지 않겠니, 메이링?”
메이링이 눈을 밝히며 스승에게 외쳤다. 또한 손가락을 어느 가게로 가리켰다. 향하는 장소는 이전에 자신이 갔었던 소바집이었다. 메이링의 스승, 이바라키 카센은 한 손을 잡혀 질질 끌려가면서도 메이링의 폭주를 말렸다.
“에이, 몇 년 만에 본 건데 이 정도는 괜찮잖아요!”
“너의 그 열정은 어느 때이든 참 무서워.”
“절 가르칠 때의 스승님에 비하면 티끌일 뿐이죠! 티끌! 자 얼른 갑시다!”
오랜만에 약속을 가져 만나게 된 스승인지라, 메이링은 고양된 마음으로 볼륨 높여 말했다. 곧 히죽 히죽 웃어대며 가게에 도착한 메이링은 문을 설레는 마음으로 밀었다. 아니, 밀려고 했다. 안쪽에서부터 문이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나온 탓에 열지 못했다. 메이링은 살짝 놀란 눈치를 보이고는 안에서부터 나온 레이무에게 물었다.
“어라? 레이무 씨도 점심 여기에서 드셨어요?”
“오늘 영업 안 하니까 가.”
“여기에서 알바하세요?”
“……말을 말자.”
레이무는 잠시 얼굴을 한 손으로 쓸어내렸다. 작게 한숨 쉬며 시선을 뒤로 돌렸다. 곧 점주의 아내가 레이무를 따라나섰다. 메이링은 그 모습을 보다 어리둥절 고개를 갸웃거렸다.
“죄송하지만, 남편이 쓰러진 탓에 오늘은 영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예? 네? 아, 아뇨. 그런 이유라면야 어쩔 수 없죠 뭐…….”
아쉽네요. 뒷목을 살살 긁어대던 메이링은 자리를 비켰다. 레이무는 점주의 아내와 함께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럼 점심을 어쩌지. 팔짱을 끼고 고민하던 메이링은 스승의 의도를 물으려 카센에게 고개를 돌렸다. 카센은 잠시 경직된 채로 레이무에게 시선을 향하고 있었다.
“……메이링.”
“스승님, 어디 맛집 아시나요?”
“따라가자.”
“네?”
“이유는 나중에 설명할 테니. 빨리.”
카센은 메이링의 팔을 잡고는 급히 레이무를 쫓았다. 들키지 않게 벽 뒤로 숨어가면서. 이런 어두운 표정의 스승은 꽤 보기 드문지라, 메이링은 연유를 모르면서도 레이무를 함께 쫓았다.
카센은 덤덤히 걷는 레이무를 떨떠름한 눈치로 보며, 계속 쫓았다. 레이무가 중간에 누군가와 충돌할 듯싶으니 일선에 나서려 잠시 일어서기도 했었다. 다행히도 일말의 해프닝인지 금방 자리를 비키고 레이무가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지만 말이다.
레이무의 발걸음이 끝난 장소는 어떤 당고 가게였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장소였다. 가게 내부로 레이무가 들어서자 간신히 내부를 볼 수 있을 정도의 구석으로 카센은 몸을 옮겼다. 메이링은 카센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따라보다 물었다.
“스승님,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
“잠시, 무언가… 익숙한 느낌이…….”
카센은 질문에 답하고, 턱을 괴면서도 시선을 놓지 않았다. 레이무는 줄도 무시한 채 들어선 가게에서 어떤 종업원을 보더니 시선을 교환했다. 곧 피식 웃더니 단숨에 가게 입구 쪽으로 끌고 던졌다. 그리고는 일렀다.
“넌 마을 인간을 해했다. 이게 죄목이야.”
“아야야……, 예?”
“천지만물의 정의로서 먼지가 되어라.”
레이무가 소매에서 부적과 함께 주문을 외웠다.
“금禁.”
검은 연기가 주위로부터 피어오르더니 폭발하듯 터졌다. 앙칼진 외마디 비명이 울려 퍼졌다. 단숨에 사람들의 시선이 몰려들며 소동이 일었다. 레이무는 손을 홱 흔들어 검은 연기를 치웠다. 연기가 떠나자 원래 있던 여인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금색빛깔 털의 여우가 나타났다. 여우는 끊어질 듯한 숨으로 구슬프게 울어대었다.
“엄살 부리지 마. 위력은 충분히 조절했으니.”
레이무는 울음소리에도 개의치 않고 말했다. 여우의 모습이 드러나자, 요괴가 나타났다는 외침이 소동의 중심에서부터 일파만파 퍼졌다. 사람들은 잠시 몇 발짝씩 뒤로 떨어졌다.
“네가 요괴인 게 드러나지 않았으면, 그건 그것대로 큰일이었으니까.”
레이무는 말을 마치며 부적을 꺼내들었다. 레이무의 손이 다시 소매로 향하는 것을 본 카센은 급히 붕대를 찬 손을 자신의 옷 사이로 집어넣었다. 그 찰나에 레이무가 다시 주문을 외어 주술을 작렬시켰다.
“금禁.”
검은 연기가 다시 시야를 집어삼켰다. 옷에 집어넣었던 손을 꺼낸 카센은 잠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손에는 방금까지 낑낑, 고통스럽게 울어대던 여우가 쥐어져 있었다. 메이링은 카센과 레이무, 양쪽을 번갈아 돌아보다 눈을 휘둥그레 떴다.
“스승님, 그거 방금까지 저기 있던 여우…죠……?”
“미안하지만, 메이링.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꾸나!”
“예?”
탁! 카센이 가볍게 도약하자 갑작스레 종적이 사라졌다. 메이링은 시선을 둘 곳을 몰라 했다. 그것도 찰나이고, 다시 시선이 정면을 향해 고정되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가게 앞에 있던 레이무가 갑자기 메이링의 앞에 나타난 탓이었다.
“……너.”
레이무는 눈을 살벌히 뜨더니 반쯤 앉아있는 메이링을 매섭게 내려다봤다. 영문을 모르는 메이링은 잠시 굳은 채로 눈동자만을 빙빙 돌려대다가 간신히 입을 열며 말했다.
“어…… 음……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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