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급한 요괴의 단말마인 '키이이이!'하는 비통한 비명이 들려온 곳으로 달려간 센라의 시선이 낯선 인물을 잡아냈다. 나이는 마흔 쯤 되었을까. 머리털 하나 없는 남자는 손에 석장을 쥐고, 다소 너덜너덜한 법의를 입은 승려였다. 주름마저 익살스럽게 보이는 남자는 방금 자신을 향해 덮쳐온 잡요를 일격에 일소한 이치린을 향해 해맑은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었다.
"야아-. 이거 도움 받아버렸네요. 갑자기 튀어 나오길래 놀랬는데 말이죠."
"저도 설마 요괴들이 그쪽을 덮칠 줄은 몰랐어요."
너털웃음을 짓는 승려와 다소 무안한 표정인 이치린. 담소를 나누는 둘 사이에 센라가 끼어들었다.
"이치린 씨. 여기 있었네."
"네. 갑자기 요괴들이 어디론가 도망가길래 쫒아갔더니, 이 분을 덥치고 있길래."
이치린은 사정을 설명했고, 도움을 받은 승려가 자신을 소개해왔다.
"아, 저는 노리 센조라 합니다. 변변찮은 땡중이지요. 그쪽은 오니시죠? 야아- 이런 곳에서 오니와 마주치다니, 오늘은 정말이지 별스런 날이네."
"음. 난 시소우 센라라고 한다. 그 쪽은 자신을 땡중이라고 했는데, 그런 것 치곤 범상치 않아 보이는데?"
"아뇨아뇨. 부처의 가르침을 받는 몸이면서 세속적인 땡중입니다요. 돈이 궁할 때는 퇴마사일도 하고 있고요."
허허허. 하고 자칭 땡중, 노리 센조는 털털하게 웃었다. 그때, 이치린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중얼거렸다.
"노리 센조라고?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그런, 이치린의 안색을 살피던 센라는 잘 모르겠다는 듯 다시 시선을 센조에게 옮기며 한 가지 의문을 입에 담았다.
"그런데 말이야. 당신, 땡중이라면서 이런 위험한 풀숲엔 무슨 용무로 와있는 거지? 여긴 사람이 다닐 만한 길이 아닌데."
"그건 말이죠..."
센조가 물음에 답하려는 순간, 이치린이 별안간 떠올렸다는 듯 외쳤다.
"틀림없어! 화승 노리 센조야! 에치고의 화승!"
아이고, 깜짝 놀라라. 하고 센조가 이치린의 박력에 움찔거리며 놀라했다. 그런 반응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이치린은 흥분된 기색으로 말했다.
"설마,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이야. 사람 인생 한 치 앞도 모르는 법이네."
"뭘 그렇게 호들갑이야?"
센라가 의아해하며 묻자, 이치린은 조금 잘난 듯한 어조로 설명했다.
"혼슈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인이야."
"그렇게 들으니, 대단한 인물인 것 같네."
미심쩍은 눈으로 센조를 훑는 센라. 이치린의 말로는 필시 대단한 인물인 모양이었다. 무려 혼슈에서 모르는 이가 없다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것치고는 자칭 땡중인 그는 그런 위업에 비해 상당히 가벼워 보이는 인상이었다.
"이치린 씨 말로는 당신 굉장한 사람이라는데, 사실이야?"
확인 차 묻는 말에 센조는 손을 휘휘 저으며 쑥스러워했다.
"뭐, 제 입으로 말하기 그렇지만. 한 따까리 하는 땡중인 셈이죠."
부인하지 않으니, 정말인가 보군.
센라는 그렇게 자신이 품었던 의문을 해소했다. 역시, 그는 상당한 실력의 퇴마사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잡요괴들이 득시글거리는 숲을 단신으로 다닐 리 없으니까. 이런 곳에 있는 이유 역시, 짐작이 가는 센라였다.
"그 한 따까리 하시는 땡중이 이런 곳까지 불도를 닦으러 온 것 같진 않은데?"
"그렇죠! 이제는 중일 보다 더 본업이 돼버린 일을 하려 온 겁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입을 다시며 쓴웃음을 짓는 센조. 복잡한 감정을 얼버무리듯 연신 히죽이던 그는 어느새 센라 곁에 선 요괴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쪽은 일행분인가 보죠?"
센조는 바로 질문을 던졌다. 그에 코우는 "그렇습니다."하고 짤막하게 대답하고는 그를 경계하듯 노려봤다.
"왠지 적대하는 기분이 드는데.."
자신을 경계하는 코우의 태도에 난감하다는 듯 맨들맨들한 뒷머리를 긁적이는 센조. 센라가 그에게 코우를 소개했다.
"코우라고, 내 후배 녀석인데. 최근 인간들에게 안 좋은 일을 좀 겪었거든. 이해해줘. "
"그런 거라면 하는 수 없지요. 믿어 줄지는 모르겠지만, 이쪽은 별로 적대하고 싶지 않으니 너무 경계하지 않아도 됩니다."
센조는 그렇게 자신의 무해함을 역설하지만, 낯선 인간에 대한 경계를 풀기엔 코우가 품은 불신감은 적지 않았다. 퇴마사라고 해서 모두가 자신을 인질로 삼았던 자와 같다고 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쉬이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은 센조가 승려인 까닭이 컸다. 센라를 만나기 전, 코우를 퇴치하고자 쫒았던 이들의 대다수는 승려였고 그것은 그에게 커다란 공포를 심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 공포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자신에 대한 불신을 풀지 못한 센조는 미묘한 얼굴로 머쓱하게 웃었다. 센라 역시, 비슷한 얼굴로 웃고는 표정을 가다듬어 그에게 본론을 꺼내들었다.
"본업이라고 하면 요괴 퇴치를 말하는 것일 텐데. 설마, 나는 아니겠고. 어떤 요괴를 퇴치 한다는 거야?"
"말씀하신 대로 본인은 의뢰를 받은 요괴만을 퇴치하는 주의입니다. 뭐어-, 먼저 공격한 녀석은 예외지만 말이죠."
그리 말하는 센조의 시선이 코우에게 향한다. 마치, 센라 옆에 붙어 있는 코우에게 들으라는 듯이. 그는 시선을 다시 센라에게 옮기고는 잠시 끊었던 말을 이어나갔다.
"의뢰 받은 요괴의 이름은 키리기사케. 인간, 요괴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인 살생을 즐기는 흉악한 충요가 퇴치 대상이지요."
"충요라.. 만만치 않은 요괴겠군."
"양손이 낫으로 변하는 데다, 움직임이 워낙 재빨라서 고전 좀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이미 싸운 모양인데?"
"뭐, 어찌어찌 퇴치했습니다만.."
센조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딘지 쓰게 느껴지는 웃음이 그다지 기뻐 보이지 않은 기색이었다. 그는 그 이유를 바로 뱉어냈다.
"워낙 버거운 상대였던지라, 적당히 상대하는 걸 잊었지 뭡니까."
그리고 입을 삐죽 내밀며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툴툴댔다.
"적어도 신체 일부가 있었더라면 모를까, 다 태워버리는 바람에 퇴치했다는 증거가 없어져 버렸으니까요. 에효.. 내가 하는 일이 그렇지."
자신을 책망하며 후회하는 말과는 달리 그는 그늘 없는 얼굴로 자주 있는 일인양 허탈한 듯 웃어 넘겼다. 그런 그가 우스운지 센라도 덩달아 웃었다.
"이거 아주 허당인 양반이구만! 허허허."
"그거 제 수제자로부터 자주 듣는 말입니다. 허허허허!"
둘은 무언가 통하는 것처럼 소리 높여 웃어댔다. 그리고 잠시, 합이라도 맞춘 것처럼 거의 동시에 웃음을 멈춘 둘은 서로를 응시하며 누구 먼저랄 것 없이 코웃음 쳤다.
"당신, 점점 더 맘에 드는구먼. 같이 술잔이라도 기울이고 싶은 기분이야."
"저도 오니가 전부 그쪽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언제 기회가 된다면 술이라도 한잔 사고 싶습니다."
그렇게 남자 둘은 의기투합해서 다시 한 번 크게 웃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치린은 아까까지의 흥분은 온데간데없이 그저 맥 빠진 눈으로 센조를 바라봤다. 그리고 코우는 센조에 대한 경계가 다소 풀어져 있었다.
*
"이것도 인연인데, 바쁘지 않다면 제가 주지로 있는 사찰에 들려보시지 않겠습니까?"
하고 센조가 센라일행에게 무언가 대접을 해주기 위해 자신의 사찰에 들릴 것을 권유를 했고, 센라는 "그래, 시주밥 함 얻어 먹어보자!" 하면서 흔쾌히 승낙했다.
비록, 주지가 직접 초대했다고는 하지만, 센라는 요괴. 그것도 폭력의 화신으로 악명이 자자한 오니다. 그런 그가 불도를 닦는 승려들이 지내는 사찰에 발을 들인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로 큰일인 것이었다. 주지인 센조의 평판은 물론이고, 소동이 일어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동행인 이치린은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또 한 사람 역시 극구 반대했다. 짐승길을 따라 숲을 벗어나자마자 합류한 센조의 제자, 쿠니마사 호우렌이 그였다. 그는 센조의 절이자, 에치고 퇴마의 본산이라 불리는 '천정사(天正寺)'로 귀향하는 내내 스승인 센조에게 잔소리처럼 반대의 의사를 내비쳤다.
"스승님! 천정사는 파사헌정을 실천하는 절입니다. 그런 곳에 오니를 들이시겠다니. 이건 전대미문입니다!"
이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젊은 승려인 그는 원래 매서운 눈을 더욱 매섭게 만들어가며 스승을 설득하려 했지만, 센조는 그저 귀찮은 듯 "어?"나 "그래?" 라고만 대꾸 할 뿐, 건성적인 대답만 반복했다. 에치고 퇴마의 본산에 오니라는 요괴를 들인다는 일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는 그의 맨들맨들한 머리에 땀방울이 송글했다. 이치린은 그런 그를 거들고 싶었지만, 어떤 말을 하던 간에 저 둘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저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저 오니가 마음에 드신 것은 잘 알겠습니다. 허나, 그것과 천정사에 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일. 정 대접을 하고 싶으시다면, 어디 객잔이라도 들려서 술이라도 사주시면 되지 않습니까?"
"거 참 쫑알쫑알 말 많네. 니가 내 애비냐?"
"이건 천정사의 위신이 걸린 문제라는 것을 제발 알아 주십시요!"
"위신은 얼어 죽을. 요괴 한 두 명 들였다고 없어질 위신 같았으면, 진즉 없어졌겠다!"
"그 요괴가 오니인 게 문제라고요!"
말이 안 통하는 스승 때문에 호우젠은 가슴이 먹먹해 지는 것 같았다. 혈압이 올라 머리에 피가 쏠리는 것을 느끼며 그는 일단, 자신을 진정 시키고자 심호흡을 했다. 에치고에서 가장 이름 높은 퇴마사이자, 덕망 높은 고승인 스승이지만 지나치게 기분파인 것은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었다. 만사를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저 성격만 고쳤으면 좋으련만. 언제 의기투합 했는지, 스승인 노리 센조는 제자의 말 보다 오니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맞장구 치고 있었다.
"너무 나무라지 말라고. 스승이 걱정 되니까 하는 소리 아닌가?"
"누가 모릅니까. 잔소리가 지나치니까 그러는 거지."
완전히 친해져 버린 둘 사이에 제자가 끼어들 공간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쯧, 혀를 찬 호우렌은 표독스런 눈으로 센라를 노려봤다. 어디서 굴러먹은 오니인지 모르나, 한낮 요괴인 주제에 천정사의 주지인 스승의 마음에 들다니. 간혹, 모르는 사람과도 곧잘 친해지는 스승이긴 하나 설마, 오니하고도 친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자못 그의 마음에 시커먼 감정이 싹트는 듯 했다.
그때, 센라가 그에게 시선을 돌리며 실실대는 낯짝을 보였다.
"으응? 제자군. 설마, 나와 센조 사이를 질투하는 건 아니겠지?"
"그.. 그런 바보 같은!"
기습 같은 질문에 호우렌은 저도 모르게 황급히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그런 행동이 결정적이었는지, 센라는 다시 한 번 실실대며 장난기 섞인 어조로 말했다.
"뭔가 기집애 같은 반응이네?"
호우렌은 발끈했지만, 무어라 반박하지 못하고 입을 앙 다물었다. 그런 호우렌에게서 시선을 돌린 센라는 센조에게 즐거운 듯이 얘기했다.
"네 제자놈 좀 귀엽지 않아?"
"이보소. 무슨 위험한 발언을 하는 거요?!"
센조는 정색한 얼굴로 그리 말했다. 하지만, 곧 본래의 풀어진 얼굴로 돌아오더니 "뭘 좀 아는 오니구만. 하지만, 제자놈을 노릴 생각이라면 관두는 게 좋을 거요. 저놈 내꺼니까." 라고 하면서 제자의 소유를 놓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음을 피력했다.
그런 얼빠진듯한 둘의 대화에 호우렌은 머리에 강한 두통이 이는 듯해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관자놀이를 주물렸다. 그리고 그런 그의 심정을 코우는 어쩐지 잘 알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