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적에, 하늘을 날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공중에서 땅밑을 바라보며 개미만큼 작게 보이는 사람들을 한둘씩 세보는 그런 생각.
진짜로 나는건 아니지만 그꿈이 어찌저찌해서 이뤄졌다. 벌떼처럼 몰려드는 요정들과 함께.
" 으라앗! 피한다! 될지는 모르겠지만 무조껀 피한다고옷! "
방금 전까지 있었던 궤도로 영탄들이 아찔하게 등을 스쳐지나간다 . 한발에 한번씩 허리를 비틀어가며 필사적으로 피탄당하지않으려 발버둥쳤다. 이정도 탄막은 요정들에게 무심결에 하품을 하는 수준이겠지만, 난 생사를 가를 고도의 묘기를 부려야된다.
척추가, 척추가 한계다앗! 이러다간 도착하기도 전에 허리가 부러져 죽겠어! 신사로 날려지고있는거....맞겠지? 산등성이에 곤두박질쳐서 꼼짝없이 저승행은 아니길.
" 어-이. 내 목소리 들려? 앗, 너무 발버둥치지마. 그러다가 떨어진다아? "
" 스이카! 대체 이게 무슨..... 왁! "
반사적으로 오른쪽 다리를 들어 파란색 쌀알탄을 피한다. 바람이 인정사정없이 기류를 벗어난 다리를 두들겨팬다. 이래선 피탄당한거랑 별반 다를게없잖아.
" 혹시나해서 말하는데, 겁먹어서 팔다리 휘적거리면 절대 안돼. 똑하고 부러져도 난 모른다? "
" 탄막이, 피할수도 없단말야! "
" 주변에 보이는 요정들은 쏴버려. 듣자하니 영력도 조금 다룰 수 있다며? 영탄 맞추는거 도와줄테니까, 자세잡고 맘껏 쏴봐. "
" 말은 그렇게 해도 말이지, 정신없어서 쏠 수가....오옷! "
발레리나가 된 기분이다. 허공에서 들려오는 스이카의 목소리와 대화할 틈도 없이 탄막사이를 누비는 곡예를 선보인다. 그리고 마음껏 쏘라는데 아직은 한발이 최대치란 말이지.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데, 그건 공격할 여유가 있을때 그런거잖아. 경로에서 이탈하지않으면서 피탄당하지않도록 혼신의 허리돌리기를 계속했다.
" 지금은 피하는게 최선이라고. 스이카, 뭔가 자세잡는 요령이라도 알려줘! "
" 날아가고 있어서 목소리 흩어지니까 그냥 앞만 집중해. 막무가내로 보여도 신사로 가는겸에 탄막놀이 가르쳐주는거니까. 그리고 내기 말인데, 아직 해지기 전까지는 시간이 있는걸~ 힘내."
" 내가 어디까지 말해준거지? 여하튼. "
그렇게 말한다면야.... 속으로 플레이어 기체가 됬다고 암시를 걸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 이동키랑 공격키가 먹통난 불량기체지만, 강제 그레이즈가 가능하잖아?
정신을 맑게한 후 주변을 인식한다. 뒤에서 날아오는 탄막은 던지기 당한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전방의 상황은 오히려 탄막이 다가온다기보다는 내가 탄막에 돌격한다는 느낌.
한자리에 고정된 상태로 날아가지만 이변이 일어난게 아니라서 탄 밀도도 낮고, 다행이 추격탄은 보이지않는다. 레이저포 같던 탄막의 이미지를 바꾸고 앞에 있는 요정들에게 힘겹게 손가락을 조준한다.
제발, 잘됬으면 좋겠는데.
" 쐇다아! "
" 맞추는건 나중에 천천히 연습하기로 하고, 읏차. "
엉뚱한 방향으로 쏘아올린 여러발의 작은 탄막이 주위의 공기와 함께 뭉쳐지더니, 그대로 요정들을 향해 날아간다. 나이스 샷. 우수수 떨어지는 요정들 사이로 탄막이 없는 길이 생겼다.
" 통상 스테이지에서 생긴 안전지대가 이렇게나 반가울줄이야. "
요정들은 모르겠지만 다른 강한 요괴들은 육안으로 확인하면서 쏘는거니까 안전지대는 없겠지? 스펠 몇개 정도는 패턴화 가능하니까 어느정도 대처되려나.
게임에서처럼 스펠카드 몇몇은 익숙해지면 피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품었다. 실전으로 느껴봐야 아는거겠지만.
스이카의 보조 덕분에 탄막쏘기에 집중할수 있었다. 아무렇게나 영탄을 쏘면, 그녀가 그것들을 모아 날리는 방식으로 요정들을 격추시키면서 나아갔다. 혼자 탄막놀이에 나섰다면 한발도 못맞췄을지도 모르지만.
탄막을 쏠때의 감각을 배웠다는걸로 해야지. 중간에 보이던 커다란 요정들의 탄막 흩뿌리기에는 애를 좀 먹었지만 생각보다 쉽게 돌파해냈다. 진짜로 탄막놀이에 익숙해지기 시작한걸지도.
" 이대로가면 시간안에 도착하고도 남는데 말야, 탄막도 의외로 잘피하는거같고. 본격젹으로 한번 즐기다가와. 탄막놀이 초보자한테 적당한 상대를 모아왔으니까. 지금쯤이면 거기로 갈거야. "
본격적이라니, 지금 내 허리는 남아나질않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날려지는 속도가 갑작스럽게 느려졌다. 숲 한가운데의 하늘에 우뚝선 내 앞에, 붉은 노을을 뒤로한채 금발의 소녀가 불쑥 튀어나왔다.
초보자라고 들었던거같은데, 내 착각일까. 갑자기 난이도가 수직상승한 느낌이네.
" 인간기준에 맞춰서 데려온거니까 열심히해봐. 유카리랑 같이 마시면서 기다리고있을테니까~ "
".........."
연습후에 곧바로 실전이라니. 오니도 여러모로 성실하구나. 나한테는 그게 독이 되버렸고. 음, 사람을 잡아먹는다. 스이카나 유카리는 말이라도 통하는데 말야, 쟤는 그냥 사람=먹는다잖아!
" 안녕! 이 근처에서는 처음보는걸. 당신, 누구? "
" 난 맛이 없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맛 없어. "
" 날아다니는 인간이라면 강한건가? "
응? 예상하는 반응과는 다르게 경계하는 태도. 루미아는 요괴니까 당연하다라는 연유로 인간을 먹는걸 즐긴다. 그런 그녀가 언제 덤벼와도 이상하지않을 상황인데, 왜 망설이지?
" 하지만 인간은 먹고싶은데에......먹을 수 있는 빨간 무녀처럼 강하면 곤란하잖아~ "
아~ 그렇군. 범 무서운줄 모른다는 하룻강아지가 학습한거네. 잘만하면 별탈없이 지나갈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왠지 안심됬다.
" 맞아! 나도 엄청 강하다구. 멋모르고 탄막놀이로 덤벼들단 험한꼴 볼거야 루미아. "
" 그런건가~ "
망설이는 동안 잽싸게 도망가버리면 끝인데, 스이카는 술마시느라 난 안중에 없는것같다. 고민하는 요괴와 밀도속에 붙들린채 식은땀을 흘리는 인간사이에 흐르는 침묵. 아, 제발! 움직여라 내몸!
어스름의 요괴가 코앞까지 다가오는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않았다. 얼굴과 얼굴이 와닿는 거리에서 루미아는 코를 킁킁대며 냄세를 맡았고, 씨익하고 미소짓는 그녀에게 불안한 기운이 느껴졌다.
" 좋은......냄세가 나. 무녀랑 마법사랑은 다른 맛있는 냄세..... "
" 술이야 술. 원한다면 신사에 도착해서 얼마든 마시게 해줄테니까 허튼 생각은 그만둬. 나 건들면 진짜로 화낸다? "
손을 꽉 움켜진채 작은 영탄을 만들어낸다. 아까 마구 쐇던 탄보다 훨씬 작아진것같지만 오니의 능력이 담겼으니 위협용으로는 충분했다.
.....고 생각했었지. 갑작스럽게 영기가 빠져나가는 감각과 함께 영탄이 푸시식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아까까지도 잘만쓰던 핸드폰 배터리가 방전, 딱 그런 느낌이었다.
영력만 충분하면 어떻게든 비벼볼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이게 뭔 변덕이지. 루미아는 상황을 이해한건지 못한건지 알 수 없는 미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 강하더라도 인간인걸! 맛있어보이니까 먹을래! 인간은 요괴한테 잡아먹힌다, 그건 당연한거야. "
그녀뒤로 보이는 문양을 보아하니 처음부터 스펠카드를 쓸거라는 일종의 선언인듯하다. 지금까지 피해봤던 요정들의 탄막상태를 기준으로 예상해보건데 난이도 이지에서 적어도 노말정도. 좋아, 그정도면 오기로 버텨낼수는 있다. 자세히보니 그녀의 뒷편 멀리 신사의 입구를 상징하는 기둥들이 보였다.
조금만 더하면 클리어고, 꿈에서 깰 수 있다. 각오를 다진채 자세를 잡았다. 인식을 바꿔서 그런지 탄막을 쏜다라는 감각이 약해진 대신, 자유롭게 공중에서 움직일 수 있게되었다. 특유의 십자가 자세를 하고있는 루미아로부터 천천히 거리를 벌렸다.
" 당신은 먹어도 되는 인간인건가! "
" 그래, 이건 탄막게임이야. 그러니 아무 문제없어. "
" 잘 먹겠습니다아~ "
" 순순히 잡혀준다고는 안했거든! "
우와, 난다는건 이런느낌이구나. 뭔가 감동받았어. 감동을 만끽할 여유따위는 사라져버렸지만. 루미아는 품속에서 꺼낸 카드를 높이 치켜세운채 당당하게 외쳤다.
" 월부... "
잠깐만. 월부라니?
" 「문 라이트 레이」"
눈앞으로 날아오는 수많은 탄막, 그리고 이동범위를 제한하는 두개의 거대한 레이저탄. 아차하는 순간 광탄 하나가 머리카락을 스쳐 태워버렸다.
레이저 탄 때문에 이대로 도망치기는 무리였고, 어째선지 날아오는 통상 탄막은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조금더 높이 올라가야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채웠다. 인간은 특정 고도 이상에서는 숨을 쉴 수 없다라거나 기온이 떨어져 얼어죽는다 등의 상식은 이미 이성과 함께 증발한지오래.
최대한의 속력으로 무작정 높은곳을 향해 날아봤지만 루미아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채 거리를 좁혔다.
" 우~ 도망치지 말고 순순히 떨어져달라구. 내려가서 천천히 먹고싶단말야~ "
" 갑자기 하드모드라니 정신나간거냐아아앗!!! "
" 힘빠지게 하지말고 느긋하게 죽어! 야부 「나이트버드」! "
" -------?!!!!!! "
첫 스펠카드깨기 성공한....건가? 숨돌릴틈도 없이 펼쳐지는 두번째 탄막. 분명 모든 난이도에서 쉬운 녀석이라 생각했는데, 죽을 맛이다. 스펠카드 룰에 있던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하게되는거야? 여기서 꼼짝없이 잡아먹히는거?
잡념은 잠시 떨쳐두고, 눈앞에 펼쳐진 탄막에 집중했다. 시야를 완전히 메꾸는 알록달록한 광채들. 틈이 없는건 아니지만, 피할때마다 집중력에 한계가 오는게 절실히 느껴졌다.
30초정도만 더 버티면 될거같은데, 1초가 10초같은 상황이었다. 설마 버티기라는 개념이 존재하지않는다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들.....에잇! 집중해! 우선 살고보자!
" 왜 안맞는거야? 반격도 못 하는 인간주제에! "
" 안맞는다고 생각하면 제발 포기하라고! "
" 슬슬 나 화나기 시작했어. "
굶주린 맹수의 얼굴을 한 그녀가 마지막 카드를 꺼내든다. 그나마 홍마향 스펙이라 여기까지 버텨온거겠지만, 마지막 스펠은 무리다.
영력과는 별개로 정신력의 소모가 너무 커졌다. 게다가 눈을 부릅뜬 상태로 찬바람을 맞은 탓에 시야도 흐려졌고. 이상태론 시간이 지날수록 빨라지고 빽빽해지는 탄막을 돌파하는건 진짜 무리.
능력만 뭔지 알 수 있다면 어떻게든 활용할텐데. 적어도 게임처럼 탄막이 보인다면 피할수 있을텐데!
" 암부「디머케이션」"
스펠카드가 개방된 것을 깨달았을 때는 코앞에 이미 탄막이 들이닥쳐있었다. 피하기에는 이미 늦은 순간. 눈을 감고 생각한다.
한발이면 피츙, 잔기가 남아있다면 컨티뉴지만.....그런게 없는 난 잡아먹히겠지. 루나틱인가, 차라리 루나틱이라면 거뜬하게 해내보이겠어. 루미아 너, 꿈에서 깨고나면 재도전이다, 임마.
천천히 흐르게 느껴지는 시간속에서 머릿속의 이미지가 선명해져간다. 뭐지? 홍마향 노미스 클리어를 목표로 한지 40일차 되는 날의 리플레이 기록같은데. 패턴없는 극악의 스펠들만 옹기종기 모아뒀단 말이지, 홍마관 패밀리는.
그에 비해서 루미아는 상대적으로 쉬웠다. 그래, 쉽다고. 이 녀석은 쉬워. 통상 탄막이 좀 들쭉날쭉하지만 쉬웠다고. 그런 생각이 끝나고 눈을 떴을때, 왼쪽 어깨와 팔이 어디론가 날아가 사라져있었다.
꿈이니까 아프지않아, 절대로 아프지않아. 정말로 죽겠다는 위기감에 넘쳐흐르는 아드레날린 때문인지, 아니면 꿈속이라는걸 확신하는 내 인식때문인지는 몰라도 고통은 느껴지지않았다.
" 먹을 부위가 줄어들어버렸네. 아쉬운걸. "
" 적어도 너한테는 한방 먹여주고 끝내겠어. 꿈에서 깨지도 못하는데, 마을에 오자마자 하루종일 오니한테 끌려다니고 이젠 팔까지 없어져버렸다고.
"
케이네 씨의 서당에서 구현했던 레이저탄보다 강한걸로.....마스터 스파크급의 먼지로 만들어버릴 위력은 아니더라도 루미아에게 타격이 갈만한 영탄을 떠올린다. 자세를 잡고 입을 앙 벌린채 날아오는 그녀의 얼굴에 손바닥을 조준한다.
" 이거나 먹어라아아아아!!!!!!!! "
만화같은거 보면 이럴때 주인공이 각성해서 엄청난 기술을 선보이던데, 숲의 절반이 날아갈정도의 위력을 가진 에너지포라던가. 그런 생각을 하니 감각도 이상해져버렸다.
주변에 있던 루미아의 탄막들이 게임밖에서 바라보듯 2차원적인 평면에 늘어져있었다. 탄막이 뿜어져나오는 중심에 그녀가 서 있었다.
" 반짝반짝거리는걸~ "
" 안피하고나서 나중에 후회하지마! 간다! "
" 이거 실례. 기분좋아서 그만 자버렸네헤... 충분히 즐긴거같으니까 얼른 가자아. "
" 스이카야? 잠ㄲ....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악!!!! "
오늘만 해도 몇번이나 비명을 질러댔지, 손바닥에서 탄막이 발사되기 직전 들려온 취기섞인 스이카의 목소리에 반응하듯 몸이 다시 목적지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날려졌다.
탄막을 피하느라 상처투성이가 된 몸은 능숙하게 마지막 스펠을 돌파하고 경로에 서있던 루미아를 향해 머리부터 돌진했다. 그녀는 갑작스러운 돌발행동에 당황했는지 양팔을 펼친채 자리에 굳어있었다.
" 뭐, 뭐야! 그렇게 잡아먹히고 싶으면 좀 더 천천히 오....꺄아아!! "
여자아이의 비명소리와 저멀리 튕겨나가는 루미아. 노을은 이미 진거같고, 제시간안에 하쿠레이 신사에 도착하는건 실패로 돌아갔다. 아, 사라진 팔은 찾아야되는데. 눈앞이 캄캄하다.
만신창이가 된 내가 마지막으로 느낀건 귓가를 맴도는 바람 소리뿐이었다. 이후에 나타날 요정에게 피츙당할지는, 왠지 남의 일인것처럼 느껴졌다.
기절한 동안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는데, 정신차리면 모르는 천장이 있는 곳에서 레이무가 무심하듯 하면서도 걱정하는 눈빛으로 날 깨어나길 기다리는 모습이 훤할거라고 믿었다. 그래야 여기까지 고생한 보람이 있지.
아무리 철벽무녀라도 상처투성이에 팔도 없어진 인간한테 도움을 주는걸 외면할리가 없을거아냐. 적어도 겉모습은 가녀린 소녀가 간호해준다니. 아, 상상만해도 엄청나게 치유된다.......
그런 기대는 안면을 새전함에 들이박은후 날라가 신사 문풍지를 뚫고 방안으로 내팽겨진 순간 와장창 깨져버렸다. 흙먼지를 뒤집어쓴채 주변을 둘러보니 평범한 방안에 결코 평범하지않은 두 요괴가 술잔을 기울이고있었다.
스이카는 반가운듯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저런 순수해보이는 모습으로 가차없이 던져버리다니, 적어도 착지정도는 상냥하게 시켜달라고오.....
" 어머, 정말 멋없는 등장인걸. 보기 추해. "
" 십년감수한 사람한테 너무한데. "
" 고작 잡요한테 그렇게나 당하다니 당신....적어도 저항정도는 할줄알았는데 말이지. "
" 조금만 더 있었어도 전세역전이었어. 스이카가 멋대로 참견한거지. "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솔직히 스이카의 도움이 없었다면 격추당한후 잡아먹혔을지도 몰랐다. 유카리는 실망했다는 눈빛으로 부서진 잔해를 틈새안으로 집어넣었다. 청소할때 무지 편리하겠다.
야쿠모 가의 집안일은 대부분 그녀의 식신인 야쿠모 란이 부담하지만. 자기 식신인데 청소정도는 조금 거들어주지.
" 난 당신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많은 일을 하고있으니까 집에서 느긋하게 있을 권리를 갖는건 당연한거야. 부러우면 틈새여는법, 배워볼래? "
" 스키마 투어는 사양입니다만. "
" 나름 진지하게 권해보는건데. "
" 기운없어서 장난에 놀아날 기분아닌걸."
몸에 쌓였던 피해와 통증이 느껴진다. 신사에 파스가 있다면 열장정도 허리에 덕지덕지 붙여놓을텐데. 왼팔이 있던 자리에는 표현하기 힘든 공허함만이 남아있었다.
"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아. "
" 팔이 댕강하고 잘려나가도 아프지않은거야? "
옆에서 술잔에 들어간 나무조각들을 빼던 스이카가 흥미롭다는듯 다가왔다.
" 잘려나간게 아니라 탄에 맞아서 뜯겨나간거지. "
" 그니까 아픈건 어떠냐구. "
" 하나도 안아픈데다 피도 안흐르잖아? 그야 스이카 네가 능력으로 통증을 흩어지게 해주고있으니까. "
" 에? 나 한참 전에 능력 풀었는데. 그리고 고통같은 추상적인 개념은 그렇게 멀리서는 흩어지게 못해. "
" ........? "
????????!
그녀의 말을 듣고 엄청난 후폭풍이 밀려왔다. 상처를 불로 달군 칼로 찌르는듯한 고통에 방바닥을 굴러다녔다.
" 이러면 거짓으로도 속일 수 있겠어. 인식이란건 무섭네. 바깥세계에서는 플라시보 효과라 그랬던가? "
" 거짓말은 나쁜거야 유카리. 술 나눠주는 대가로 능력이 뭔지 알려주기로 했잖아. 무사하게 돌아왔으니까 말해줘. "
" 잠깐만, 본인이 시끄럽게 구는걸 보면 들을 생각이 없는거같은데. "
" 팔이이이이!!!!! 아파아아아!!! "
눈물 콧물 흘려가며 고통을 호소하는 와중 말끔하게 감각이 사라졌다. 아직도 팔이 붙어있다는 느낌도 함께. 스이카가 건네준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그녀의 부축을 받아 자리에 앉았다.
팔의 절단면에는 틈새가 열려있었다.
" 너무 약해. 두부같아. 역시 바깥세계의 인간이란건 연약한 생물이네. "
" 환상향의 인간이 강한거야. 대부분 음양사 일족의 후손들이잖아. "
유카리가 건네준 잔을 받아 단숨에 들이킨다. 갑자기 정신이 맑아지면서 머릿속에 남아있던 복잡한 생각들이 사라져갔다. 신사를 들이박은 방향으로 눈을 돌리자 처참하게 부러져있는 나무 기둥과 끝부분이 살짝 갈라진 새전함이 보였다.
레이무가 알면 화내겠는걸.
길게 찢은 나무를 모아 부서진 벽을 고치는 스이카가 하늘을 말없이 바라본다. 어둡다. 이미 밤이 찾아왔다.
" 노력은 했는데말야, 결국에는 제시간안에 도착 못했네. 내가 졌어. "
" 아닌데? 아슬아슬하게 세이프야. 노을 끝자락이 지평선에 걸려있을때 도착했으니까. "
" 그럴리가.... "
" 땅은 조금씩 굽어져있거든~ 너도 몰랐지? "
취해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스이카의 말을 듣고 떠오른 진리, 지구는 둥글다. 아니지, 환상향은 둥글다. 태양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면 그만큼의 시간이 생기는 것이다.
안심되기도하고, 의욕없어지기도 하는 당연한 말이네.
" 하쿠레이 신사의 위치를 시간대의 기준으로 잡은건 아니지만, 좋은 볼거리를 보여줬으니까말야. "
" 탄막 피하는거 본거냐. "
" 당연히 구경했지. 애벌레가 꿈틀거리는거 같았어. 그러면서도 탄막놀이는 처음인 주제에 거의다 알고있다는 듯이 피하는점은 칭찬할만하지만. "
그야 어느정도는 감이란게 생겼으니까. 게임에서 보던 것과 비슷하고....일종의 패턴같은걸 외우게되어 당황하지만 않는다면 피할 수 있다.
실제로 경험해보니 체력과 집중력, 그리고 상대를 격추시키지 못하는 화력의 문제였을뿐. 여러가지로 개선해야될 점은 많지만 탄막의 패턴화라는 확실하게 밀고나갈수 있는 공략법이 생겼다.
" 이겼으니까 약속은 지켜 유카리. "
" 글쎄.....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고. 그나저나 그 팔, 안고쳐도 괜찮아? "
" ....스이카, 부탁해도 될까? "
" 이미 잘려버린걸 붙이는건 어려운걸. 게다가 팔도 안보이고말야. "
들짐승이 먹어버린건가. 아니면 루미아가? 내 회심의 일격을 날리기 전에 그녀는 입을 연채 달려들었으니, 사실 팔이 뜯겨나간것도 그녀가 물어뜯어서라는 가능성도있다.
" 팔이라면 여기있는데? "
툭,하고 술상위에 성의없이 던져진 왼팔, 연기가 올라오는 잘린 부분에 타버린 자국이 있는걸 보니 탄막에 맞은게 분명했다.
술을 마시다 올라온 왼팔을 보고 입맛을 다시는 스이카의 이마를 손등으로 내려쳤다.
" 아무리 그래도 주인앞에서 솔직하게 구는건 너무한거 아니냐, 이 요괴야. "
" 요괴가 아니라 오니인걸! 노릇노릇한 냄세가 나서 나도 모르게. "
" 무서우니까 그만해. 진심으로. "
오른손을 뻗어 팔을 집으려하자 유카리가 잽싸게 양산을 이용해 손을 튕겨냈다. 그녀는 왠지모를 승리감이 담긴 미소를 짓고있었다.
" 내가 먼저 주웠으니까, 이젠 내꺼인걸. "
" 한쪽 팔이 없는 상태로 레이무를 만나긴 싫은데. "
" 어차피 돌려줘봤자 스스로는 붙이지도 못하잖아? 이렇게 하자. 경계를 조작해서 원상태로 만들어주는데다 하늘을 날게해주는 대신, 조건이 있어. 내가 이겼을때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아까 내기는 없었던걸로. 어때? "
" 레이무랑 관련된 신사의 일정도는 도와주겠지만. 유카리님이 낸 조건은 거절하겠어. 내 앞가림은 내가 할거야. "
이건 단순히 꿈에서 깨어나면 모든게 괜찮을거라는 생각때문에 뱉은 말이 아니였다. 요괴의 현자가 말한 모든 것에는 뜻이 담겨있고, 계략이 담겨있다.
그녀의 속마음을 알정도로 내가 현명하지 않다는건 누구보다 잘 알고있기에 거절했다. 수락한다면 계속 그녀에게 끌려다닐게 분명하니까.
팔이나 앞으로의 일은 어떻게든 되겠지뭐. 그래도 진지한척 목소리까지 깔 필요는 없었는데, 또 딴지걸게 분명해.
" 그말 진심이야? 외팔이 생활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
" 시간을 들여서 익숙해지면 되니까. "
" 헤....널 보니까 오니랑 비슷하다고 해야되나, 아니면 둔하다고 해야되나? "
" 오니들은 엄청 단단한데다 우직하게 힘쎈 바보잖아. "
" 그러는 넌 오니한테 재롱떠는 인간이었지! 나중에도 또 보여주기로 했잖아. "
" 그렇게 말한적 없었는데 스이카. 정 보고싶다면 나중에 이 구멍에 대파라도 끼고 해볼까? "
유카리가 만든 틈새를 보여주며 스이카의 가벼운 반응을 그에 맞는 농담으로 받아쳤다. 그녀는 신체에 큰 상처가 남아도 싸우는 불굴의 오니니까, 인간과는 상처와 목숨을 건 결투에 대한 가치관부터 달랐다.
하지만 솔직하고 올곧은 자와는 술잔을 나누는 친구이며, 호탕한 성격으로 뭐든 긍정적으로 생각할줄 아는 점이 오니였다.
" 한팔이 없으면 탄막을 쏠때 그쪽으로 영력이 새어나갈거야. 신체의 불균형이 당신에게 탄막놀이에서 약자라는 인식을 못박을텐데? 유감스럽게도 환상향에는 떨어진 팔을 고칠수있는 의사는 없어. "
" 방법이야 어떻게든 있겠지. 적어도 당신한테는 도움받을 수 없어. "
유카리가 숨기고있는 사실을 하나 간파했다. 달의 현자이자 환상향에 거주하는 약사의 존재를 알고있기에 난 그녀의 말에 동요하지않았다.
야고코로 에이린, 마을에서는 그저 뭐든지 낫게하는 약을 파는 약사라는 정도로만 알려져있다. 실제로는 시대를 초월한 의술의 천재이기도 한데말이지. 아, 이거 영원정으로 갈 수 있다는 플래그가 선 건가?
가급적이면 빨리 만날수 있으면 좋겠는걸.
" 존재와 인식을 다루는 정도의 능력. "
" 응? "
" 그게 당신의 능력이야. 어쨌든 약속은 지켜야하니까. "
존재와 인식을 다룬다니, 크게 와닿지는 않는걸. 유카리는 마을로 내려간 레이무에게 안부인사를 전하러간다고 말을 남기고는 틈새속으로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지고, 스이카는 호리병에 든 술을 짤랑거리며 충격으로 금이간 술잔을 내밀었다.
" 그럼 네 능력도 알았겠다....레이무가 오기전까지 같이 마실거지? 술벌레로 만든 술, 맛보고 싶다면서. "
난 말없이 잔을 들어 그녀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