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잘 것 없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어제부터 시작된 비는 어제로 끝났으나, 그 꿀꿀함은 아직 남아 기분이 썩 상쾌한 편은 아니었다. 나지막한 걸음으로 툇마루에 나선 레이무가 남아있는 물웅덩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군군데 비슷한 종류의 것이 몇 더 보였다. 날씨는 회색 구름이 개지 않아 우중충한 터라, 레이무는 전부 마르는데 오래 걸리려나. 그런 생각을 하였다. 그러던 와중 웅덩이의 수면이 흔들렸다. 레이무가 살짝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전혀 면식 없는 텐구가 보였다.
“안녕하세요! 깨끗하고 올바른 샤메이마루 아야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샤메이마루 아야라 밝힌 텐구는 찡긋 웃더니 양손을 건네듯 뻗었다. 손에는 신문 한 부가 들려있었다. 레이무는 신문에 시선을 흘깃 두다, 아야의 얼굴로 시선을 돌려 말했다.
“신문 구독한 적 없어.”
“아야야... 그, 무료로 드릴게요!”
“필요 없어.”
“에이, 그러지 마시고.”
언뜻 듣기에 아야의 말은 쾌활해 보였다. 그러나 레이무에게는 금방 균형이 무너질 무언가로 보였다. 말은 살짝 떨려대고 있었다. 시선은 마주치기 싫은지 흘깃 피해대고 있었다. 레이무는 마지못해 콧숨을 약하게 한 번 쉬고는 신문을 받아들었다. 아야는 잠시 입술에 손을 대다가 고개를 꾸벅 숙이는 자세로 바꾸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붕붕마루 신문, 꼭 구독해주세요! 환상향 전역에 돌리고 있는 신문이랍니다!”
“무료라면.”
아야가 끝마디를 큰 소리로 강조했다. 레이무는 강조할 부분이 다르지 않나, 생각하며 넘겼다.
“엑… 농담이ㅈ… 으, 반응을 보고 결정해 볼게요!”
레이무의 입에서 튀어나온 진지한 농담은 먹히지 않아, 아야는 관자놀이를 눌러대었다. 끝내는 날아올랐다. 레이무는 사라진 불청객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툇마루에 걸터앉아 받아든 신문을 한 차례 펼쳤다.
“…이건 뭔 개뼉다구같은 소리야?”
그리고는 내용에 놀라 인상을 찡그렸다. 환상향, 탄막놀이 절찬리 유행! 이라 대짜로 난 표제는 이곳이 자신이 사는 환상향이 맞기는 하나, 그런 의문을 들게까지 만들었다. 레이무가 느끼기에 요괴는 대개가 이기적이고, 배려 따위는 모르는 부류의 놈들이었다. 그 대개 중 덤벼드는 놈들은 죽었지만, 어쨌든 그랬다.
약간은 위로 향해있던 레이무의 눈동자가 점점 밑으로 내려갔다. 글자를 보던 눈동자가 눈의 껌뻑임에 시야를 잃었다. 레이무는 눈을 닫음과 동시에 한 차례 신문을 접어 구석탱이에 던져두었다. 더 이상 볼 필요도 없다 판단했다. 우중충한 날씨 때문에 기분도 꿀꿀한데, 텐구 신문의 헛소리까지 들어줄 정도로 마음이 넉넉치는 않은 상태였다.
그리 밝지 않은 아침은 지났다. 레이무의 체감 시간으로는 점심이었다. 그런데도 신사 전역에, 그 뿐만이 아니라 좀 더 멀리까지 깔려있는 안개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붉은 끼가 크게 돌고 있어, 자연스레 일어난 기상 이변이 아님을 알리는듯했다. 움직일까 말까, 잠시 고민하던 차. 유카리가 레이무의 눈앞에 나타났다.
“이건 이변이네!”
“알아.”
“있지, 대화를 이어줄 생각은 없어? 레이무?”
“별로.”
레이무에게 있어 이변 해결을 위해 유카리의 도움을 받을 용무는 없었다.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이변 해결은 하쿠레이 무녀의 의무였지, 요괴의 의무가 아니니까. 레이무는 그 의무를 한 번 상기하고 걸음을 나섰다. 유카리는 비행하기 전까지 종종 소리를 내어 걸으며 레이무를 쫓아들었다. 첨벙하고 물웅덩이가 튀기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유카리의 비명도 들렸다. 고개를 틀어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유카리를 본 레이무는 한숨을 푹 쉬고 하늘로 비상했다.
“저기,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매몰차?”
“오늘은 기분이 안 좋아. 어제 요괴 하나가 덤벼들어서 더 그렇고.”
“음, 살렸…지?”
“죽였어.”
“…….”
레이무는 틈새에서 삐져나온 유카리의 질문에 고개마저 틀지 않았다. 정면을 바라보며 무덤덤한 답을 하였다. 요괴를 죽였다 이르자 침묵한 유카리를 보며 레이무가 말했다.
“난 나를 죽이려는 녀석을 살릴 정도로 착하진 않아.”
“실은 그것 때문에 찾아오기도 했거든!”
“뭔데.”
“자, 자. 이 신문 봐봐! 요즘 유행하는 탄막놀이에 대해서 적혀있어!”
유카리가 틈새 내에서 더듬거리더니 신문을 꺼내들었다. 아침에 자신도 받은 적이 있는 붕붕마루 신문이었다. 유카리는 레이무가 읽지 않은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뒤이어 밝은 목소리로 읽었다.
“[환상향에서 싸움이 놀이로 대체되다!] 멋지지?”
“무슨 의민데.”
“요즘 대부분의 요괴들이 싸움에서 폭력 말고 탄막놀이를 채용하고 있거든! 살상력 따위는 전~혀 없는 무해한 놀이야.”
“근 일주일만 해도 다섯 마리나 죽어라 덤벼들었는데.”
“…다섯이나 죽였구나.”
“죽인 건 셋이야.”
“더 이상 태클 안 걸래.”
유카리가 씁쓸히 미소를 지었다. 레이무는 소매에서 부적을 꺼내들더니 개수를 세고는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유카리가 집중하라며 뾰로통한 표정으로 레이무의 정면에 나섰다. 다시 표정을 피고는 말했다.
“아무튼, 그러다보니 룰을 좀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내가 왜?”
“요괴를 상대하잖아? 탄막놀이로 승부를 거는 요괴면 탄막놀이로 상대해줘야지.”
“하는 요괴도 없는데?”
“아니, 대유행중이라니깐?”
“본 적 없어.”
그야 당연하지. 선동과 날조니깐. 유카리는 눈을 슬그머니 피하며 마음속으로 대답을 삼켰다. 흠흠, 헛기침을 한 유카리는 뒤이어 말했다.
“그러니 레이무, 너도 앞으로는 탄막놀이로 싸움을 대체하도록 해. 일단 선제공격은 무조건 탄막이야! 알겠지? 요괴들이 폭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면, 우리도 그 트렌드에 맞춰줘야 하니깐.”
레이무는 붙임성 없는 표정으로 한숨을 픽 쉬었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놀이에 맞춰줘야 한다니, 일일이 귀찮은 일이었다. 게다가 요괴가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니, 인간을 습격하지 않는다니. 그딴 요괴의 본성에 어긋나는 짓이 그들 사이에서 대유행이라는 것도 딱히 신뢰가 가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레이무는 요괴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그런 의심은 더했다. 다만,
“그래, 믿어줄게.”
“고마워!”
지금은 보통의 요괴와는 궤를 달리하는, 그나마 믿을만한 이라 생각하는 유카리였기에 레이무는 신뢰하였다. 유카리는 기뻐하며 신문의 아래 문구를 보이도록 펴들었다. 레이무는 잠시 하늘을 쳐다보다 냉담히 말했다.
“하지만 그 쪽에서 죽이려는 기미를 보인다면, 죽여도 되는 거겠지.”
“…….”
유카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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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보니 레이무 진짜 가차없어 보이네요
그거 노린거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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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젼 둠가이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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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 찢고 죽인다! 까지는 으아니에요! | 17.12.08 18:4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