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을 나온 에이린은 벽에 기댄 채 서있는 아나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나타는 에이린이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기다리고 있었죠?"
"바보 같은 짓은 이제 좀 그만두는 게 어떠니?"
"가능하면 다음부터 주의하도록 하죠."
에이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뭘 잘못했는 지는 알고 있니?"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알고 있으니 다행이구나."
에이린은 정말로 다행이라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자 아나타는 쓴웃음을 지었다.
"미리 말해주지 않은 에이린도 잘못이라고요."
"아무리 그래도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자고 있는 방에 말도 없이 들어간 건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니? 이대로 가다간 테위가 놀러왔을 때 어떤 짓을 해줄 지 정말 기대되는 데?"
"테위? 그건 누구죠?"
"이나바 테위."
에이린은 귀찮다는 듯이 그렇게만 설명했다. 아나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나바 테위? 이나바? 레이센하고 같은 이름이네요. 아마 그녀도 토끼인가보죠? 그나저나 절 문제거리로만 보는 건 좀 아쉽군요."
"그렇게 생각하면 노력해보렴, ㅁㅁ미수범."
에이린은 그렇게 말하고 걸어가버렸다. 아나타는 할 말을 잃은 채 에이린이 멀어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에이린이 저런 식으로 나오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 예의나 예절을 말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것만이라면 저정도 싸늘한 태도를 보일 리 없다. 아마 카구야가 자고 있는 방에 무단 침입해서 저러는 것이라고 짐작된다. 그러고보니 카구야는 공주라고 했다. 그리고 에이린이 카구야를 존대하는 걸 봐서는 에이린은 카구야를 섬기는 신하 같은 존재일테고. 에이린은 카구야의 안위가 걱정된 것일까? 하지만 자신은 기억과 오른팔을 잃어버렸고, 심지어 이젠 시력조차 잃어가는 인간일 뿐이다. 위험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에이린은 카구야의 안위를 걱정했다?
아나타는 한 가지 가정을 내렸다. 아나타 자신에게는 에이린은 알지만 아나타 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에이린의 반응을 보아서 어쩌면 남에게 위협이 될 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사실이었다.
고마워요, 에이린. 그리고 노력이요? 아나타는 자조하는 투로 말했다.
"노력이라…… 기억나면 시도해보죠."
* * *
그 집은 인간 마을에서 멀지 않은 숲 근처에 있었다. 워낙 인적이 드물 법한 곳이라 직접 찾아오지 않는한 그 집이 있는 지조차 모를 법한 그런 곳. 하지만 동시에 요괴조차 잘 찾아오지 않을 법한 곳이라 가끔씩 생필품 같은 것을 인간 마을까지 사러가는 것이 귀찮지 않다면 사는 데 큰 지장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집을 찾아온 금발의 마법사는 예상할 수 있었다.
마을에서 알아낸 사실에 의하면 이 집엔 바깥 출신의 한 남자와 환샹향에서 어릴 때부터 고아로 자라온 한 여자가 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았다.
금발의 마법사는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은 예상했던 대로 엉망진창이었다. 뭔가 집기류를 이것저것 던지며 한바탕 싸움을 한 것처럼 어지럽혀져 있었다. 그게 아니면 도둑이라도 찾아왔던 것처럼 여기저기에 낯선 물건들이 흩어져있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는 좀 더 조사를 해봐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했던 것도 잠시 시선을 돌린 금발의 마법사는 어떻게 된 상황인지 어렴풋이 알아차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집 한 구석에 말라붙은 핏자국이 보였다.
그리고 그 핏자국의 주인, 혹은 핏자국의 주인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금발의 마법사는 고개를 숙여 짧게 애도하고 좀 더 집 안을 조사해보기로 했다. 아무리 좋지 않은 결과가 그녀를 기다리고 하더라도 해결사를 자칭하는 그녀로써 이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이것이 만약 요괴에 의한 식인 사건이 맞다고 한다면 이대로 넘어갔다간 이 집 주인에게 일어난 불행이 불특정 다수에게도 퍼질 지도 모른다.
금발의 마법사는 빗자루를 들고 있던 손에 힘을 주며 한 걸음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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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게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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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 17.12.04 18:3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