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괴란 무엇인가. 인간의 공포가 형상화 된 존재이다. 그렇기에 요괴는 항상 인간의 우위에 서 있었고, 환상향이라고 해서 그런 계급체제가 바뀌는 일은 없었다. 공포는 반항할 수 있을 존재이긴 했으나 결국에 극복할 수는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 공포를 토대로서 계급체제는 지속되었다. 그리고 이런 계급체제가 오래 유지되었다는 뜻은 또 무엇인가. 요괴가 인간의 위에 서있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소리였다.
물론 그것이 유카리가 원하는 방향성이기도 했다. 애초에 유카리가 환상향을 만든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요괴는 항상 인간의 우위에 있어야 했다. 공포의 존재로서 군림해야만 했다. 히에다의 아이에게 요괴의 위험성을 극도로 높게 적시하라 한 이유도, 텐구의 힘을 빌려 인간 마을의 여론을 장악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현실 세계에서처럼 요괴가 환상 따위로 치부되어 존재가 잊히면 안 되었으니까. 환상향만큼은 요괴들의 낙원으로서 유지되어야 했으니까. 그렇기에 지금 유카리가 내뱉은 ‘싸움을 놀이로 대체한다.’라는 발언은 레밀리아를 당황케 하는데 충분했다.
“말이 돼? 요괴들이 잘도 수락하겠다.”
레밀리아는 거만한 자세로 턱을 괴었다. 유카리의 이야기를 들으니 기가 찰 지경이었다. 지금 환상향의 요괴가 인간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이유는 압도적인 무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압도적인 무력을 도구로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었다. 싸움을 놀이로 대체하겠다는 말은, 요괴가 무력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인간은 환상향 체제를 유지시키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며? 그런데 인간 하나 때문에 뿌리부터 대격변을 하겠다고?”
“반발하는 요괴들은 전부 레이무가 얼마나 강한지 모르고 있어서 그래. 몇몇 빼고는 손으로 목을 졸리기만 해도 죽어버릴걸?”
“당연한 얘기를 한없이 진지하게 하지 마. 애초에 목을 졸려도 안 죽는 요괴가 오히려 드물다고. 무슨 젠키의 약점이야? 머리와 몸을 잘라서 떼어놓으면 죽는?”
“아, 그거 메타 발언.”
“메타는 무슨 애초에 만화잖아! 그러는 너도 우시오와 토라나 배트맨 같은 거 보여줬다며?!”
쯧. 레밀리아가 혀를 차고는 다시 찻잔을 들었다. 유카리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항상 이래 분위기가 흘러갔다. 진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저 가벼운 말투에 항상 말려들어갔다. 지금마저도 그랬다. 환상향의 존속이 걸린 일이라며 다급히 이야기를 걸 때는 언제고, 오히려 자신이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줄 뿐이지 유카리는 이러나저러나 상관없다는 투였다. 그런 태도가 괘씸해 레밀리아는 심술궂게 물었다.
“그렇게 신경 쓰이면 그냥 틈 봐서 죽이던가?”
“난 레이무를 죽일 생각도 없고, 시도한다 해도 몸에 쳐져있는 결계부터 못 뚫는걸. 하쿠레이 대결계를 유지하는 무녀를 그리 간단하게 해치웠다! 할 수 있을 리가.”
“그래서 고작 그 이유 때문에 싸움을 놀이로 바꾸시겠다?”
“음, 그래!”
“다시 한 번 말할게. 넌 정말 정신 나간 독재자야.”
레밀리아가 이번에도 질색하는 태도를 보였다. 유카리는 이번엔 말을 맞받아치지 않고 부채를 꺼내 제 입가를 가려대었다. 괜히 희희덕 웃는 모습을 보였다가는 짜증만을 돋울 듯싶었다. 물론 눈치 못 챌 정도로 레밀리아가 둔감하지는 않은지라, 손 치우라는 뉘앙스에 곧 부채를 거두어야만 했다.
“그리고 아까 전에도 말했지만, 자존심 강하고 호전적인 요괴들이 그걸 받아들일 것 같아?”
“그러게. 대요괴들은 내가 직접 찾아가서 도게자 몇 번 하면 들어줄지도 모르겠지만… 격이 낮은 요괴들을 설득하는 데는 좀 무리가 있겠네.”
“일단 모든 문제를 도게자로 해결하겠다는 그 마음가짐부터 어떻게 안 될까?”
“왜 그래. 도게자는 자존심 쎈 녀석들한테 은근히 잘 먹히는 비장의 기술이라구? 그 천하의 레이무도 내 도게자를 처음 보니 당황하면서 이야기를 들어주던걸.”
“일단 네가 레이무한테 당하는 취급이 어떨지는 짐작이 가네.”
“그래서 너무 남용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어! 나중에는 달군 철판 위의 사죄를 하게 되어버릴 지도 모르니까!”
“그러면 제발 꼭 해줘. 사진을 찍어서 홍마관 로비에다가 액자로 장식해 걸어둘 테니까.”
말을 끝낸 레밀리아가 또 분위기에 말려들어갔다는 사실을 깨닫곤 이마를 짚었다. 앞으로 진지하게 답하지 말까. 한숨을 푹 쉬고는 이번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재차 물었다.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할 건데? 진짜로 환상향의 싸움을 놀이로 대체할 셈이야?”
“진짜로 그럴 거야. 옛날부터 생각해둔 게 있었거든.”
유카리가 탁에서 손을 떼더니 오른손을 가슴팍 부근까지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끌어올렸다. 마치 공기를 쓰다듬듯 부드러이 손을 회전시키자, 손바닥의 중심부쯤에 화려한 색상의 구체가 여럿 생겨났다. 뭐 어쩌라는 건지, 레밀리아는 눈을 찌푸렸다.
“어때, 아름답지 않아?”
“설마 내가 이걸 보고 와ㅡ 예쁘다 같은 식상한 발언을 할 거라고는”
“와ㅡ 예쁘다!”
“플랑, 네가 그러면 이 언니는 뭐가 되니.”
복도 쪽에서 어느샌가 들어온 플랑도르는 눈을 빛내며 레밀리아의 의자 손잡이 위에 걸터앉았다. 레밀리아는 플랑 쪽을 슬그머니 바라보더니 금세 체념한 듯 다시 유카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유카리는 이야기를 이었다.
“탄막이야.”
“그래 탄막.”
“슈팅 게임 알지? 탄막을 쏴서 피탄시키는 걸 목적으로 하는 게임 말이야. 그 게임을 따라할 거야.”
“그렇게 매력은 없어 보이는데.”
“매력은 중요치 않아!”
그렇게 말하며 유카리는 탄막을 거두었다. 방금 전까지는 조명이 켜져 있어 환하던 방 안이 단숨에 어두컴컴해졌다. 휙, 손을 굴리니 다시 탄막이 생겨나며 방 안이 밝아졌다. 짙은 음영을 얼굴에 고의로 띄우도록 하여 유카리가 말했다.
“중요한 것은 분위기지.”
“분위기라고?”
“난 이제부터 환상향을, 레이무를 속일거야! 정확히는 나의 계획에 참여하는 요괴들을 빼고 전부를 말이야!”
뚝 하고, 다시 빛이 꺼졌다. 유카리는 앉아있던 의자에서 벌컥 일어나며 레밀리아에게 다가갔다. 사쿠야의 실수 때문에 작은 언덕이 서넛 이루어져있던 카펫이 걸음에 따라 속속들이 평평하게 펴져갔다.
“우선은 대요괴! 친분이 있는 녀석들을 계획에 가담시키겠어. 그들에게 이제 다툼은 물리적인 싸움이 아닌 탄막을 통한 결투로만 이루어짐을 연기하라 알리는 거야.”
“오ㅡ!”
“두 번째! 텐마가 가진 언론의 힘을 빌려 환상향에 공표하는 거야. 싸움의 시대가 끝났음을, 이제부터는 예술과 화려함이 가득한 탄막의 결투가 열렸음을!”
플랑이 감탄사를 내뱉자 다시 유카리가 탄막을 생성했다. 어째 아까 전과 묘사가 똑같을법한 행동이었다. 뮤지컬이라도 따라하는 건가, 레밀리아는 생각했다. 만약 이 예상이 맞다면 연출력이 너무 구리다 직접 말해주고 싶어졌다.
“그렇게 마지막! 어중이떠중이 요괴들은 그렇게 언론에, 분위기에 휩쓸려 자동적으로 계획에 참여하게 되는 거야! 싸움을 하는 제 판단이 옳지 않음을, 세상을 통해 깨닫게 되어버리니! 물론, 반발은 있겠지. 하지만 일개 개인일 뿐이야. 자존심이 쎈 요괴들이 집단으로 항거할 일은 없어!”
불이 환하게 켜졌다. 이번에는 유카리의 탄막 때문이 아니었다. 샹들리에의 조명이었다. 방금 전까지는 꺼져있던 전등이었다. 유카리가 움직일 때부터 꺼진 것도 그렇고, 무슨일인가 싶어 레밀리아는 의문을 품다 스위치 부근을 보았다. 사쿠야가 스위치를 만지며, ON/OFF를 조절하고 있었다. 유카리의 분위기에 휩쓸려 어울려 주지 마. 레밀리아는 다음에 그리 알려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니 레이무를 속일 연기에 참여해줘 레밀리아 양! 환상향판 트루먼 쇼의 재현이야! 함께 세계를 속여보자구!”
세레머니를 마치고 지근거리까지 다가온 유카리가 마지막으로 움직였다. 뭘까 했다. 도게자였다. 땅 위에 바싹 엎드려 무릎 꿇고 절하는 것이 빼도 박도 못 할 도게자였다. 경직된 채로 움직이지 않아 넘어짐에 의한 실수가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너무나도 당당하게 도게자를 해버린 유카리를 보며, 방금 들었던 유카리의 말이 맞다고 레밀리아는 생각했다. 난생 처음 도게자를 받아보니, 어째 이만큼 당황스럽기도 힘들었다.
“난 안 해.”
그래도 하기는 싫었다.
“난 할래!”
“플랑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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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개그를 소설의 모토로 삼고 있습니다
다만 작가가 웃기지 못한다는게 큰 단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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윾카리의 도게자 스페셜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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윾카리하면 도게자죠 | 17.11.21 23: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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