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에는 평소와 다를것 없이 등교 했다. 평소처럼 책상에 앉아 책을 펼치고 주변 분위기를 살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는 별 문제가 없는것같았다. 아직까지는 이치노세의 부재가 신경쓰이는 학생이 없을것이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면 학생들이 술렁일테고 경찰들이 나설것이다. 결계 안에서 죽은 이치노세의 시신을 찾는건 불가능할테지만, 아마 자신도 경찰들에게 조사를 받지 않으면 안될것이다. 이치노세는 사나에와 하교후 실종 상태가 되어버렸으니까.
하지만 준비는 끝났다. 어차피 이치노세의 실종을 눈치채기 전에 두 분은 강림할것이다. 3일. 3일만 버텨내면 그 뒤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것이다.
사나에는 끓어오르는 희열을 애써 억누르며 책상 위에 엎드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매한 사람들은 저마다 제 멋대로 입을 열며 쓸데 없는 이야기로 하루를 낭비할것이다. 아아 그래도 어쩔수 없지. 차라리 모르는것이 속 편할지도 모를것이다. 사나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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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어"
코이시는 문을 닫고 반겨주는 사람이 나타나길 바라며 인사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사토리가 자신의 방에서 나타나 코이시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까와 다를것 없는 복장이었다. 부산스럽던 머리가 약간 정리된것만 빼면. 아마 코이시가 집을 나선 후 조금이나마 세수를 했을지도 모른다.
"어때? 의사가 뭐래?"
"상처는 깊지 않데. 깊게 찔렸으면 조금 처치가 곤란했을지 모르는데, 다행히 약 바르고 상처 관리만 잘 해주면 나을 상처라네"
"그래? 아프진 않고?"
코이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혀. 오면서 진통제 하나 먹고 왔어. 그렇게 심하게 아프거나 하지는 않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렇구나. 어서 들어와. 밥 먹고 쉬자...너도...나도...!"
사토리가 크게 기지개를 펴면서 말했다. 한동안 온몸에 힘을 줘서 부들대다 숨을 내쉬며 몸에 힘을 풀었다. 뼈 마디에서 또각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사토리는 오히려 개운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3일간 잠도 거의 못자면서 논문을 줄창 썼는데...동생 덕분에 쉬어보겠네!"
사토리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마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커피잔을 가지러 갔을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코이시는 그런 언니의 모습을 보며 픽 웃고는 마루에 놓인 소파에 앉아 언니를 기다렸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꾸벅꾸벅 잠이 오기 시작했다. 요새 잠만 들면 상처가 늘어서 그다지 잠에 들고 싶지 않았기에 애써 졸음을 깨려 했다. 그리고 잠깐 눈을 감았다 떴을때 코이시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와있었다.
"에? 꿈? 벌써 잠든거야?!"
코이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이 앉아있던 소파 이외에 모든것이 낮선 풍경이었다. 다 무너져가는 신사에는 두개의 조각상이 얹어져 있었다. 코이시는 천천히 다가가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한 조각상은 철륜을 붙잡고 있는 녹슨 개구리 조각이었다. 다른 하나는 또아리를 틀고 위협적으로 몸을 치켜세우고 있는 뱀이 그려진 조각상이었다.
코이시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뱀 조각상을 만져보았다. 썩은 나무 특유의 거친 느낌이 느껴졌다.
"꿈속이라고 해도...너무 리얼하잖아"
코이시가 발걸음을 옮겨 다른곳을 둘러보려 할때 발끝에 무언가 차였다. 고개를 숙여 아래를 보니 보라색 구슬이 하나 굴러다니고 있었다. 맞은편에는 녹색 구슬이 놓여져 있었다. 코이시는 보라색 구슬을 집어 들어 한참을 바라보다 두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한 가운데에 동그란 무언가가 들어가기 딱 좋은 크기의 홈이 있었다.
크기는 달라 어느 구슬을 끼워야 할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코이시는 천천히 뱀 조각상으로 다가가 녹색 구슬을 끼워넣었다. 덜컥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듯 싶었다.
코이시는 주변을 바라보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제야 코이시는 보라색 구슬을 개구리 조각상에 끼워 넣었다. 구슬을 끼워넣자마자 이번에는 자그맣게 딸깍하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 굳게 닫힌 신사의 문이 열리지 않을까 싶었지만 문은 굳게 닫힌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떄 뒷쪽에서 스르륵하고 무언가 끌려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코이시는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오래된 신사의 경내는 보라빛 안개로 가득차 있었고, 어느샌가 굵은 나무 기둥이 솟아나 있었다. 나무 기둥은 하늘을 찌를듯 드높이 솟아있었고, 끝에는 금줄이 둘러쳐져 있었다. 코이시가 발을 딛으려는 순간 무언가 물컹한게 밟혔다.
"꺄악!"
비명을 지르며 뒤로 펄쩍 뛰어올랐다. 밟은것은 뱀이었다. 마치 흰 끈을 보는것처럼 새하얀 뱀이었다.
"뱀...이잖아?"
그때 앞쪽에서 스르륵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한번...두번...그 이후 쉴새 없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코이시는 떨리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수없이 많은 붉은 눈동자가 코이시를 향하고 천천히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아까 밟았던 뱀과 똑같은 뱀들이 수도 없이 코이시를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뭐...뭐야! 뱀이 갑자기 왜...!"
코이시는 뒷걸음질쳐 도망치려 했으나 신사의 벽에 가로막혀 도망칠수 없게 되었다. 뱀들은 코이시를 둘러싸고 날카로운 이빨을 쉴새 없이 박아넣기 시작했다.
"아악! 하지마! 아파아!"
코이시는 몸부림을 치며 자신을 물고 늘어지는 뱀을 뿌리치려 애썼으나 하나를 던져버리면 다른 한마리가 달려들어 이빨을 박아넣었다. 코이시는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을 굴러다녔다. 뱀이 코이시에 몸에 짓눌려 피투성이 고기조각이 되어도 수없이 많은 뱀들의 숫자는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살려줘...언니 살려줘!"
코이시는 목이 찢어져라 사토리를 부르며 경내를 넘어지며 굴러다니며 돌아다녔다. 이미 온 몸을 감싸고 있는 뱀을 떼어낼 생각따위는 할 수 없었다.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다.
그 순간 누군가 손을 잡고 자신을 세차게 잡아당겼다. 코이시가 정신을 차리자 갑자기 온 몸의 고통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낮익은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집이었다. 언니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코이시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코이시는 점점 상황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안도감이 밀려오고 눈물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어...언니...흑..."
"괜찮아. 이제 괜찮아..."
코이시는 사토리의 품에 안겨 계속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언니 품에서 떨어져 나가더니 비틀비틀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코...코이시?"
"안돼...어째서..."
사토리가 코이시에게 다가가려 하다 걸음을 멈췄다. 베이지색의 겉옷 너머로 피가 천천히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피는 그냥 살갗이 까진것처럼 살짝만 배어나오는 수준이 아니었다. 피는 점점 진하게 배어나오기 시작했고 바닥에 천천히 웅덩이를 이루기 시작했다.
코이시의 목에 날카로운 이빨자국이 생겨났다. 피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어...언니..."
코이시는 이 말을 끝으로 눈이 뒤집혀 쓰러지고 말았다. 사토리는 급히 달려가 코이시를 흔들었지만 계속해서 솟아나는 피를 멈출 재간이 없었다.
"코이시! 코이시!! 아아 어떻게 해...! 어째서 이런 일이...! 어째서...!"
사토리는 패닉에 빠져 어쩔줄 모르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집 전화기로 급히 달려갔다. 전화기에 손을 뻗어 재빨리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앰뷸런스가 도착한건 5분이 채 지나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다.
창문 너머로 누군가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은 앰뷸런스가 도착하여 코이시를 급히 실어가는 모습을 보고는 조용히 인파속에 몸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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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가 채 지나기도 전에 피가 난무하네요.
이것도 꽤 긴 이야기가 될거같은데 어째서 벌써부터 피가 난무하는걸까요.
초장부터 너무 자극적으로 가면 나중에 나올 이야기는 닝닝하고 심심할텐데 말이죠.
그러면 소금간을 더 쳐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