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기는 기민한 동작으로 검을 휘둘렸고, 그럴 때 마다 센라의 몸에 검의 궤적에 따라 상흔이 늘어갔다. 상흔은 가슴과 배 쪽이 가장 많았고, 팔과 다리가 그 다음을 이었다. 그러는 동안 목을 벨 기회는 많았지만, 카기는 그곳만은 노리지 않았다.
깊지 않아도 치명적인 목. 그 외에도 급소라 할 만한 많았지만, 자의인지 아니면 타의인지는 몰라도 모두 빗겨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센라는 진즉 죽었어야할 정도의 상태가 되어 있었다. 굳이 급소를 노려 단숨에 숨통을 끊지 않더라도 이대로 천천히 죽어가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카기는 방심하지 않았다.
아무런 반격도 하지 않고, 자신의 참격을 몸으로 받아내기만 하는 주제에 눈빛만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카기의 경험상 센라의 눈은 절대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의 눈이 아니었다. 체념이나 초탈과는 다른 강직한 힘이 깃든 눈이었다. 카기는 흡사 맹수의 눈과도 같은 센라의 눈을 보고 있자니, 몸에 제동이 걸리는 듯 했다. 그는 그것이 본능적인 공포인 것을 즉각 깨달고, 센라와의 거리를 벌려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그렇게 마음을 추스른 그는 다시 검을 든 양손에 힘을 실었다.
센라의 상처가 늘어 갈수록 코우의 두려움도 커져갔다. 선배의 죽음이 현실화 되어 가자, 아까까지의 감정들이 두려움으로 치환되어 그를 엄습했고, 더욱 더 무력감에 빠져 들었다. 코우는 자신을 죽이지 않는 퇴마사들이 원망스러웠다.
자신을 죽여 달라는 말을 입에 담으며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코우는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헤이치로는 그런 코우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 오는 것 같았다. 비록, 요괴이긴 하나, 그동안 지켜본 걸로는 코우가 순박한 청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청년이 저렇게 괴로워하는 모습은 그로서 매우 안쓰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무섭기만 했던 오니도 지금은 죽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처음, 퇴마사들이 들이닥쳐 자신과 옆의 코우를 포박했을 때만 해도 이대로 그들의 보호를 받고, 오니가 퇴치되는 것을 바랐을 터였는데. 헤이치로는 그런 자신의 심경의 변화가 스스로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 한 것은 코우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죽음도 불사하고 있는 오니가 반해버릴 정도로 멋지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사나이가 아닌가.'
단순한 행상인에 불과한 자신이 사나이에 대해 왈가왈부 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것 하나 만큼은 당당하게 말 할 수 있으리라. 저 오니를 사나이라고 부를 수 없다면 누굴 사나이라 칭하겠는가.
얼마나 많은 참격을 받아냈는지 모를 센라의 입에서 쿨럭, 하고 각혈이 쏟아져 나왔다. 계속 얕게만 베여 왔지만, 드디어 몸안의 장기에도 손상이 입었다는 증거였다. 힘이 빠진 듯 어깨가 내려온다. 카기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바닥을 박차고 앞으로 튀어나갔다. 어깨 위에 까지 올라간 검이 잔상을 남기고 아래로 내려갔다. 이윽고, 센라의 어깨 죽지에 날이 박혀드는 순간이었다. 카기는 순간 무언가를 눈치 채고 찰나와 같은 짧은 시간 동안 고민했다. 이대로 검을 어깨에 박아 넣어야 하나, 아니면 뒤로 물러나야 하나. 후자를 택한 카기의 검이 어깨에 박혀들었다.
그리고
쿵! 하는 굉음과 함께 지축이 흔들렸다. 넘어진 등불이 다다미를 태우고 있었고, 슬그머니 한쪽 발을 들고 그대로 방바닥을 내려찍은 센라의 발이 그대로 바닥을 뚫고 아래로 푹 꺼져 있었다.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세차게 흔들린 탓에 코우와 헤이치로를 지키고 서있던 퇴마사들이 전부 중심을 잃고 그 자리에서 넘어졌다. 카기는 휘청거리긴 했으나 센라의 어깨에 박힌 검에 의지해 넘어지는 것을 간신히 피했다. 하지만, 그것은 중대한 실수였다.
중심을 잡는 데에 신경 쓴 나머지, 불시에 들어온 주먹을 미처 피하지 못한 것이었다. 복부에 가해진 충격에 카기의 몸은 공중으로 붕 떴다. 그리고는 그대로 반대편으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넘어진 상태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퇴마사들이 서둘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다시 한 번 쿵! 하고 땅이 흔들렸기 때문이었다.
벽에 처박혀 그대로 널브러진 카기는 신음을 흘리며 간신히 고개를 쳐들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광경에 그는 넋을 잃은 표정을 짓더니, 곧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이런, 젠장. 다 된 밥에 재를 뿌렸군."
제대로 몸도 추스르지 못한 부하들이 전부 피떡이 된 채로 싸늘한 죽음이 되어 있었고, 인질로 잡아 두었던 요괴와 상인이 무사히 풀려나 있었던 것이었다. 단 한 번의 실수. 아니, 정확히는 세 번의 실수가 자아낸 광경이었다.
그 세 번의 실수 중 한 번은 센라가 다리를 들고 있는 것을 늦게 알아챈 것이었고, 또 한 번은 신중하지 못하고 그대로 검을 내려친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가장 큰 실수는 센라가 발을 굴려 지축을 흔들어 놨을 때, 칼자루를 쥔 채 중심을 잡는 데에만 신경을 쓴 것.
자신의 완전한 패배였다. 그렇게나 신중을 기했건만, 결국 그런 실수를 저지른 것은 집중력이 약해진 탓이었다. 아마도 오랜 접전으로 인한 영력과 체력의 고갈이 원인이겠지만, 그는 그런 변명 따위 생각하지 않았다.
비열한 방법을 동원하고도 퇴치할 수 없었던 자신이 약할 뿐.
그 대가는 죽음이겠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그것이 두렵지 않았다. 언제나 각오했던 일이었기에 받아들이는 것에 저항감은 가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저렇게 강한 요괴의 손에 죽는다면 퇴마사로서 더 바랄 것도 없었다.
지친 기색으로 한숨을 내쉬는 그에게 센라가 다가와 섰다.
"이제 끝이야?"
"그래. 부하도 잃고, 뾰족한 수도 없는 내가 무슨 수로 싸워?"
"하긴 그렇군."
"하아... 이제 지칠 대로 지쳤어. 갈비뼈가 얼마나 나갔는지, 숨 쉬는 것도 힘들거든."
카기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킥, 하고 웃었다.
"그러니까, 얼른 죽여주지 않을래?"
"단념이 빠르군 그래. 그게 소원이라면 못 들어 줄 것도 없지."
담담한 어조로 그렇게 말한 센라는 손날을 세운 손을 가슴께 까지 당겼다가 그대로 카기의 가슴을 관통했다. 카기는 마지막으로 킥킥 웃음 짓다가 왈칵 하고 피를 한 모금 토해냈다. 그리고 이내 초점을 잃은 눈을 천천히 감았다. 그 뒤로 숨이 머지기까지는 순식간이었다. 그렇게 오니 토벌에 실패한 퇴마사는 쏟아진 등불에 다다미가 타들어가는 냄새를 맡으며 영면에 빠져들었다.
그의 마지막을 지켜본 센라는 한참을 가만히 서 있다가 갑자기 전조도 없이 뒤로 넘어졌다. 깜짝 놀란 코우가 달려왔고, 헤이치로가 그 뒤를 쫒았다. 방바닥에 큰 대(大)자로 뻗은 센라는 타오르는 방바닥의 불로 은은하게 비치는 천장을 바라보며 힘겨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놔.. ㅆㅣ발.... 피를 너무 흘렸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기운도 없는 그는 그 상태로 후배의 걱정 어린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그대로 깊은 수면에 빠져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