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많이 흘려서 현기증을 일으켰을뿐입니다. 생명에 지장은 없을겁니다"
막사 내부에서 이누바시리의 상태를 체크한 의원이 말했다. 이누바시리는 붉은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불 위에 누워있었다. 피를 그렇게 많이 흘렸는데도 창백한 얼굴이 아니라는게 조금 신기했다.
"상처도 그렇게 깊은 상처는 아닙니다. 하지만 상처는 상처이니 덧나지 않게 항상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이누바시리가 가늘게 눈을 뜨고 의원을 바라보았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츠바사가 이누바시리를 제지했다.
"누워있어. 의사가 하는 말 못들었어?"
"여기서...이렇게 누워있을수는 없어...지금도 마을은...!"
"마을은 이미 버려졌어. 나와 너 그리고 테루와 테츠가 전선을 이탈하면서 대열이 붕괴되버렸어...지휘계통이 무너지니 순식간에 퇴각할수밖에 없었지..."
츠바사의 말에 이누바시리가 이를 악물고 모포를 질끈 쥐었다. 두 눈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나는...또 다시..."
"이누바시리..."
"나는...아버지의 말대로 백랑 텐구들을 다스릴 자격이 없다는건가...아버지의 말씀이 옳았다는건가...!"
이누바시리가 이를 갈았다. 츠바사는 그런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았다. 머지않아 이누바시리는 굵은 눈물을 흘리며 소리죽여 울기 시작했고, 츠바사는 그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볼수 없어 의원과 함께 막사 밖으로 나갔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짙게 끼어있었다. 환상향으로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끊게 된 담배였지만, 더 이상 피고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을정도로 잊혀진 담배였지만. 오늘만큼은 더럽게 피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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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고 밤이 깊어졌다. 츠바사는 이누바시리의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이누바시리는 허리를 곧게 펴고 이불 위에 앉아있었다. 링거와 각종 의료 도구만 없을뿐 완전히 침대에 등을 기대고 앉은 환자의 모습이였다.
이누바시리는 아까보다는 훨씬 진정된 모습이였다. 한참을 울어 두 눈은 붉게 충혈되어있었지만, 츠바사를 바라보고 대하는 태도는 예전과 별반 다를것이 없었다.
"...츠바사. 부탁할게 있다."
이누바시리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겉옷을 벗었다. 온 몸에 칭칭 감긴 붕대 사이로 흉한 흉터가 드러났다.
"붕대를 갈아주었으면 한다...그리고...상처도 봐줄수 있겠나?"
츠바사는 난데없는 이누바시리의 탈의에 적잖이 당황했으나 이누바시리의 태연한 태도에 금세 당혹감을 접어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누바시리의 뒤에 앉아 붕대를 천천히 풀었다.
붕대가 완전히 풀린 후 이누바시리의 몸의 상처를 직접적으로 볼 수 있었다. 상처는 완전히 꿰매어져 피 한방울 나지 않았지만 붕대에 배어나온 피덕분에 상처는 피딱지로 얼룩져 있었다.
츠바사는 말없이 대야에 담겨져 있던 젖은 수건을 들어 이누바시리의 등의 피를 닦아냈다. 차가운 감촉에 이누바시리가 움찔했지만, 다시 한숨을 쉬고는 수건이 지나갈때마다 고통을 참았다.
"...웃기지 않느냐. 여자의 몸의 곳곳에 칼자국이며 흉터며...게다가 여자의 몸답지 않게 잔근육까지 생겨났다."
"..."
츠바사는 말 없이 이누바시리의 몸을 닦았다. 몸 곳곳에 새겨진 흉터들이 이누바시리의 삶동안 얼마나 많은 전투를 겪게 했는지 알수 있었다.
"예전에 했던말...내 이름...알려주겠다고 했던 말...기억하나?"
"기억하고 말고"
"첫 전투부터 썩 마음에 드는 녀석이였다. 너는. 카라스 텐구의 외모를 한 인간이면서 백랑 텐구에게 헌신하는 모습이 정말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런가...나는 그저 살기 위해서 노력했을 뿐이야"
"그런가..."
이누바시리는 씁쓸히 미소지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이누바시리의 몸에 피딱지가 전부 닦여나가고 츠바사는 깨끗한 붕대를 들어 이누바시리의 상처에 다시 감으려 했다. 하지만 이누바시리는 손을 들어 가볍게 츠바사의 붕대를 부리쳤다.
"내 이름은...이누바시리 키요(鬼妖)...선대인 아버지께서 내게 지어주신 이름이다..."
이누바시리는 말을 잠시 멈추고는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지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로 아버지 다웠다. 귀신처럼 자비없고, 요괴처럼 영악하게 살아가라고 지어주신 이름이다. 그래야 카라스 텐구들을 감정없이 베어버릴수 있다고..."
"..."
"그래도 그렇지. 딸의 이름에 귀신과 요괴를 넣다니...악취미도 이런 악취미가 없구나"
이누바시리는 자신의 팔에 새겨진 흉터를 하나하나 바라보며 잠시 말을 멈추었다. 츠바사는 그저 말없이 이누바시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나도 연약했다. 항상 강직한 모습이였던 이누바시리가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테루, 테츠, 슈고키가 모두 자신의 곁을 떠났다. 게다가 간신히 이뤄낸 화합은 계략에 의해 박살나버리고 말았다.
아마 내색은 하지 않아도 엄청나게 괴로웠을것이다.
"...아버지는 어쩌면 내가 딸이 아닌 아들로 태어나길 원했을것이다."
"이누바시리..."
"하지만 나는 그럴수 없었다. 꽃도 좋았고, 다른 마을의 여인들처럼 아름다운 옷을 입고 돌아다녀보고 싶었다. 같이 여자들끼리 수다도 떨어보고 싶었고, 자수도 놓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수 없었다. 나는 이 백랑 텐구의 수장으로서 위엄을 지켜야 하니까..."
"..."
"그렇기에 화합을 원했던것이다. 나 이후의 후손들이 나와 같은 걱정과 괴로움을 가지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내가 못하더라도...다른 후손들이 해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내 목표는 달성한거나 다름없으니까"
츠바사는 그때 말없이 이누바시리를 힘껏 당겨 끌어않았다. 이누바시리는 잠시 놀란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따뜻하다...정말로...누군가의 품 안에 안겨보는건...너무나도 오랫만이라서..."
"그만해. 더이상 너 자신을 자책할 필요 없어...더 이상 괴로워하지 마. 부탁이야"
"...고맙다..."
품 안에 들어와있는 이누바시리의 몸이 가볍게 떨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가슴팍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이누바시리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츠바사에게 부탁했다.
"츠바사...나를...좀더 안아줄수 있겠나...?"
츠바사는 말없이 이누바시리를 힘껏 끌어안았다. 그리고 둘은 키스했다. 잠시후 두 사람이 가볍게 이불위로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막사 밖에는 풀벌레가 우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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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까지 꾸준히 읽어온 여러분. 이누바시리는 사실 모미지가 아니였습니다.
제가 이거 말 안하려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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