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하늘을 날며 오니로부터 달아나고 있는 것은 소녀였다. 아무대나 길러 산발인 머리는 어깨까지 살짝 내려와 흑빛으로 윤기 있게 찰랑 거렸고, 무서운 오니에게 쫒기고 있다는 사실에도 살며시 걸린 미소가 개구쟁이 기질을 나타내고 있었다. 거기에 몸에 걸친 곤색 기모노는 얇고 가벼운 원단으로 몸을 감싸 그 늘씬한 체구가 돋보이게 드려나 있다. 외견만 보면 얼핏 장난기 많은 가련한 소녀일지 모르나 그녀 역시 요괴였다. 등에 돋아난 기괴한 형태의 날개가 밤바람을 맞으며 구불구불거린다. 한 짝은 피같이 붉은 진홍색에 거대한 낫 같은 형태로 세 개나 돋아나 있고, 다른 한 짝은 끝이 화살촉 같은 진청색 줄기가 세 개 돋아나 있었다.
백귀야행에게 각기 무서운 기억을 보게 하는 환영을 뿌린 정체불명의 요괴. 소녀의 이름은 호쥬 누에. 약 한 달 전 즈음부터 거의 매일 같이 환영으로 백귀야행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던 것이었다. 그녀는 오늘 밤에도 즐겁게 노는 백귀야행을 골탕 먹일 심보로 환영을 보게 했는데, 공교롭게도 오니가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으니, 이렇게 쫒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아니, 설령 알았다고 해도 고약한 짓을 그만둘 심성이 못되는 요괴지만.
아무튼 제대로 임자를 만난 누에는 나름 전력으로 도주하고 있었지만, 지붕 위까지 껑충껑충 뛰어오는 오니를 좀 채 떨쳐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우와.. 질릴 정도로 끈질기네. 과연, 오니라고 해야하나?"
끈질기게 자신을 따라붙고 있는 오니를 홀깃 보면서 미간을 좁히지만, 입가에 걸린 미소는 천진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점점 자신과의 거리를 좁혀 오고 있지만, 아직 여유가 있다는 반증이었다. 그러다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지 공중에서 멈춰 선 누에는 자신을 부지런히 따라잡고 있는 오니를 응시하며 키득 거렸다.
"조금 놀래켜 줄까?"
누에의 몸을 검붉은 요사스런 요기가 일렁거리며 두른다. 그리고 그녀의 발밑으로부터 세어 나오는 검은 안개가 서서히 몸 전체를 덮더니 사방으로 증대해갔다. 땅을 박차고 하늘 높이 튀어 오르던 센라의 눈에 그 일련의 변화가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솟아나온 검은 안개가 뭉게구름처럼 커다란 원을 그리며 커져가는 광경이.
그 검은 안개로 구성된 구름은 민가 한 두 개 정도를 집어 삼킬 만큼 커지더니 돌연 수축하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수초.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검은 안개는 무언가 흉흉한 형상으로 변하였다.
온통 붉은 빛이 도는 몸에 사나운 빛을 발하는 눈, 사람을 통째로 삼킬 것 같은 거대한 입에 돌덩이도 분쇄하는 날카롭고 튼튼한 이빨. 머리에 난 갈퀴는 흑빛으로 헝클어져 있고, 땅을 딛지 않고 허공에 뜬 발은 길고 흉악한 발톱을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마수라 불려야 할 짐승이 그 커다란 입을 크게 벌리며 포효했다.
후우우오오옹-! 소름끼치도록 기괴한 포효에 센라는 땅에 착지하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거참 기분 나쁜 울음이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들자, 검은 안개가 변해서 된 마수가 흉흉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수의 꼬리로 붙어 있는 요사스런 구렁이도 그를 노려보며 입을 벌리고, 샤아~샤아~ 하며 위협한다.
"이건 또 뭐야?"
꽤 오랜 세월 살면서 별의 별 것들을 다 본 센라였지만, 저 마수만큼 희한한 생물은 처음이었다. 저번의 그 요괴집도 그렇지만, 후배를 맞이하고 난 후에 떠나는 여행은 여러모로 신기한 것들과 만나보게 되는 듯 했다. 혹시, 운명 같은 그런 건가? 생각은 거기 까지만 하고, 자신을 향해 적의를 드려내고 있는 마수를 올려다보는 센라의 눈엔 흥미로움으로 가득했다.
"환영인지, 진짜인지 일단, 한 방 먹여 볼까나!"
엄청난 각력으로 순식간에 마수의 눈높이 까지 튀어 오른 센라가 허리춤에 붙인 주먹을 앞으로 내질렸다. 그 순간 쾅! 하는 파공음이 터져 나왔고, 주먹의 일직선상에 있던 마수의 머리가 풍압에 관통되어 그대로 커다란 구멍을 남기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 넘어로 점이 되어가는 소녀의 뒷모습이 있었다.
아까의 마수는 미끼였나?
그렇게 판단하는 게 타당할 정도로 누에는 이미 멀찌감치 달아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누에 본인은 이렇게 뒷모습이라도 보이고 있는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분명, 완전히 모습을 감출 속셈으로 구현한 환영일 텐데 이리도 빨리 파훼할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예상 밖의 상황에 누에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져 있었다. 얼른 다른 환영을 준비해 두지 않으면 금세 따라붙을 것 같은 불안을 느끼며 생각에 잠기는 찰나.
슈왁-! 하고 돌연 하얀 기둥이 공기를 가르며 누에 앞을 막아서듯 솟아올랐다. 하늘을 뚫을 기세로 솟아오르던 하얀 기둥이 움직임을 멈추고, 누에를 향해 완만하게 굽어지더니 그대로 그녀의 몸을 꽁꽁 옳아 매는 게 아닌가.
생각에 잠겨있던 터라 갑작스런 상황에 대처 못한 탓에 온몸을 속박 당하고 만 누에는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그리고 날카로운 시선을 느끼고 곤란하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머리 위로부터 목소리가 들려온다.
"드디어 잡았다! 요 녀석!!"
똬리처럼 그녀의 몸을 칭칭 감아 맨 기둥의 정체는 거대한 흰 구렁이였다. 몸이 기둥이라 여겨질 정도로 굵고 그 길이는 무려 마을을 가로 지를 정도로 길었다. 흰 구렁이는 기다란 혀를 날름거리며 누에를 사납게 쏘아보며 말했다.
"더 이상 못된 장난을 치지 못하게 혼쭐을 내 주마!"
"아차.. 잡혀 버렸다."
반성이 없는 얼굴로 혀를 빼쭉 내밀면서 장난스레 미소를 짓는 누에의 반응에 흰 구렁이는 노한 듯 감고 있는 그녀의 몸을 힘을 주어 죄었다. 그러자, 아야야야- 하는 외침과 함께 다급한 사죄의 말이 쏟아져 나왔다.
"미.. 미안! 안 그럴 테니까! 그만 놔 주라고!!"
그러나 아직, 반성이 부족하다 느낀 흰 구렁이는 그녀의 몸을 죄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다. 누에의 입에서 아프다는 비명이 연신 흘려 나왔고, 얼굴이 울상으로 일그러졌을 때였다. 무언가 강한 힘에 의해 흰 구렁이의 몸이 아래로 끌어 내려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흰 구렁이가 누구의 짓인지 확인하려 고개를 밑으로 내려 시선을 떨구자, 바로 땅에서 자신의 몸을 당기고 있던 센라와 눈을 마주쳤다.
흰 구렁이와 눈을 마주친 센라가 불평의 말을 입에 담았다.
"야 인마! 내 은인한테 무슨 짓이야!!"
"은인이라고?"
흰 구렁이는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그에 센라는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내 약한 면을 보여주었으니, 은인이 아니면 무어라 말이야?"
"환장 하겠네. 내 백귀야행은 그거 때문에 매번 곤혹스러워 하는데, 넌 그걸 은혜로 여기는 모양이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흰 구렁이가 난감한 어조로 뱉어냈다.
"너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겠지. 내 백귀야행들은 이 여자 때문에 매일 난처해하고 있다고! 이참에 두 번 다시 장난을 치지 않도록 혼쭐을 내지 않으면.."
말을 채 다 잇지도 못하고 흰 구렁이는 '힉!'하는 짧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아래로 끌러 내려갔다. 센라가 강하게 잡아당긴 탓이었다. 흰 구렁이가 무슨 짓이냐며 고함을 질렀지만 센라의 훼방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흰 구렁이와 센라가 옥신각신 하는 사이에, 누에가 이틈을 타서 달아나려고 했지만, 쉽게 놓아줄 흰 구렁이가 아니었다. 몸을 빼려고 할수록 꽉 죄어 절대 달아나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다. 결국, 몸을 칭칭 감은 똬리로 부터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누에는 체념한 듯이 어깨를 떨구고 한숨을 크게 쉬었지만, 두 눈에 깃든 장난기는 변함없었다. 어쩌면 포기한 듯한 행동이 연기일지도 모른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똬리에 감겨있던 누에의 몸이 돌연 검은 안개가 되어 흩어졌다. 확실히 포박했다고 여겼는데, 마치 허상인 것처럼 사라져 버리자, 흰 구렁이의 눈이 동그랗게 크게 뜨여졌다. 그리고 그제야 흰 구렁이를 잡아당기는 것을 그만두고 그 몸에 손을 놓고 있는 센라는 턱 밑을 쓸면서 '호오'하고 감탄하고 있었다.
기껏 다 잡은 걸 놓쳤어!
흰 구렁이의 눈이 경악과 허탈함으로 동요한다. 그에 센라가 껄껄 웃으면서 약 올리듯이 말했다.
"고년 그거 우리 보다 한 수 위인걸?"
"감탄하고만 있지 말고, 어서 찾아보라고!"
"어디로 갔는지 어떻게 알고 찾아? 그래도 어느 정도 몰아넣는데 성공 했으니까, 섣불리 장난을 걸어오진 않겠지. 그게 아니면 다시 한 번 몰아넣는 수밖에."
"느긋한 소리 할 때야? 난 그년 때문에 골 아파 죽겠는데!"
"미안하지만, 나 하곤 상관없는 일이라서. 저렇게 신출귀몰해서야 어떻게 할 도리가 없잖아. 그보다, 그깟 환영을 걸어온다고 아무것도 못 한 채 쫄고만 있는 너희 백귀야행이 더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네가 특이한 거야!"
계속해서 장난을 친 여자의 편을 드는 센라의 태도에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이는 흰 구렁이. 아니, 아시가타 쵸. 애당초 센라에게 백귀야행의 선두를 맡게 한 것은 전부 아쉽게 놓쳐버린 여자, 환영으로 장난을 치는 호쥬 누에를 잡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예상대로 센라는 미끼역을 훌륭히 소화해냈고, 정체를 드려낸 누에가 도주할 길목에 잠복해 있다가 포박에 성공했었던 것이었다. 결국은 그것도 실패로 돌아갔지만.
만약이지만, 센라가 협조적이었다면, 어쩌면 놓치지 않았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쵸는 속에 천불이 이는 것 같았다. 설마하니, 각자에게 가장 두려운 것을 보여주는 환영을 좋게 해석하여 은혜로 여길 줄이야. 아무리 신중한 쵸라고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오니인 것을 떠나 참으로 별난 센라를 보며 쵸는 기가 차다는 듯 혀를 찼다.
"정말이지, 넌 이해가 가질 않는 녀석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흰 구렁이의 모습에서 금발이 나부끼는 청년으로 돌아왔다. 그런 그의 질책에도 센라는 당당한 태도를 유지하며 주절거렸다.
"두려움조차 극복하지 못하는 녀석은 결국, 소인배일 뿐이지. 내 생각엔 그 신출귀몰한 년의 그 장난이 일종의 시련이라고 받아들이는 편이 너희 백귀야행한테 이로울 거야."
"그런 태평한 소리 좀 집어 쳐. 이번 일로 그 요괴가 경계하게 되었으니, 이제 더 잡기 힘들어 졌단 말이다."
한숨 섞인 말을 뱉어낸 쵸의 얼굴에 고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있었다. 아깝게 놓쳤다는 분함보다 앞으로의 걱정으로 그는 평소답지 않은 초조함을 겉으로 드려내고 있었다. 그런 자신의 근심을 알고 있으면서도 방약무인한 오니의 태도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아까 네가 방해만 하지 않았어도!"
그렇게 책망을 해봐도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고 입을 다무는 쵸. 아무리 얘기해봤자, 자신의 행동에 한 치의 잘못도 없다고 여기는 요괴가 센라라는 것을 뼈에 사무치도록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과거 그와 약 열흘 동안 동행 했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자명한 일이다.
"하아.. 그만하자. 불평만 해봤자, 뭔 소용이겠어."
그렇게 속으로 화를 삭이며 앞으로의 일에 대해 강구하기로 한 쵸가 백귀야행이 있는 장소로 발을 돌리려 할 때였다.
"그래, 화만 나지. 그런다고 해결 되는 일 없어!"
들어본 적이 있는 여자 목소리가 별안간 들려왔다. 쵸와 센라가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거기엔 귀엽게 생긴 소녀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누에였다.